김지학(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편집자 주: 본 글은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화록 출간기념회에서 있었던 김지학 님의 축사 전문입니다.
'[스케치]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화록 출간기념회 - 성소수자 가족들의 자긍심 행진' 보러 가기.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화록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날 제가 축사를 할 수 있도록 초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많이 떨립니다.
오늘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입니다. 그리고 몇 일 전 우리들의 동료였던 성소수자 친구 한 명이 자살 했습니다. 추모와 축하를 함께해야 하는 밤인 것 같습니다.
저는 2년 전 11월 7년 동안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그 해 겨울 12월, 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수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즐겁게 활동하며 지내다 온 터라 한국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냉혹한 현실이 슬프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이런 일이 반복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저께 밤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습니다. 울음 끝에 이런 일들을 한번에 다 없애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점점 줄여나가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 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사례들을 목격했습니다.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더라도 부모님만 온전히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 존중, 지지, 사랑해준다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버틸 수 있습니다. 세상의 차별과 억압을 버티는 것을 넘어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은 부모님들에게도 큰 충격입니다. 당사자들이 본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부모님들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좋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야 자신과 같은 부모님들과 교제하며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르는 부모님들이 정말 많다고 합니다.
부모모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모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모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미국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서 매년 가장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며 큰 감동을 주는 행진은 성소수자 부모와 가족들의 행진입니다. 작년부터 우리나라 퀴어퍼레이드에도 부모모임 피켓이 등장했고 올해는 부스행사 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모임 피켓과 깃발을 보았을 때 정말 가슴이 설레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미국 전역에 '혼인평등'이 결정되기 까지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었겠지만 저는 크게 두 가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모임 입니다. 부모님들의 지지는 당사자들에게 큰 심리적 안정을 주며 행복한 삶의 기반이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성소수자들의 당당한 모습은 '성소수자들은 불행하고 힘든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게 합니다. 그리고 아직 부모님들께 인정받지 못한 성소수자들에게도 큰 용기와 안정감을 줍니다. 또한 일반대중들에게도 '부모가 괜찮다는데 내가 나서서 반대 할 일이 아니다' 라는 인식을 준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커밍아웃입니다. '가시성'은 인권의 지표가 됩니다.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만큼 인권이 없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사회 속에 성소수자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표는 안중에 없는 것 입니다.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의 통계를 봐도 우리나라에는 7-8%의 성소수자들이 있습니다. 더 작게 보수적으로 잡아서 5%라고 생각해 봅시다. 모든 성소수자들이 각자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지지자를 딱 다섯 명씩만 만들 수 있다면, 성소수자 지지자가 우리인구의 25%가 됩니다. 당사자와 지지자를 합치면 우리인구의 30%가 됩니다.
전체 인구의 30%는 엄청난 숫자 입니다. 대권주자 및 모든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확실히 말 할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치면 인구의 30%정도 입니다. 정치인들이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들의 눈치를 엄청 살핀다는 것을 볼 때 30%는 정말 엄청난 숫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소수자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과 가족 그리고 주변에 지지자를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40, 50, 60% 이상으로 지지자는 급증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 그리고 초중고 등 많은 곳을 특강하면서 살펴보면 10-30대의 경우 적게 잡아도 50% 이상은 성소수자들에 대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은 혼인평등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까지 45-5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는 그 보다 훨씬 덜 걸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지지자들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안전을 확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 하도록 합시다. 우리 주변에 우리와 함께 사는 평범한 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 지지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불러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축하와 추모의 말씀 그리고 당부의 말씀까지 올렸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우리 모두가 있는 모습 그대로 당당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 만들어 봅시다. 저도 목숨이 다하는 그 날 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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