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소개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가시화되면서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부모도 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모임입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서로 위로하기도 하며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악화된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신앙과의 갈등에 대해,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 대해, 어떤 고민이든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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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모임 열아홉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일시: 10월 10일 토요일 4시
 
장소: 서울 마포구
 
참석: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하늘엄마: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무애: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해인: 게이 조카를 둔 이모
- 라라: MTF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 하나엄마: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뽀미: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오소리: 양성애자(누나만 알고 있음)
- 바람: 게이(부모님과 형이 알고 있음)
- 어나더: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마카롱: MTF 트랜스젠더(가족이 다 알고 있음)
- 모과: FTM 트랜스젠더(가족이 다 알고 있음)
- 우키: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 크리스: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 햇: 게이(어머니만 알고 있음)
- 낫소: 게이(어머니와 여동생이 알고 있음)
- 하람: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별아: MTF 트랜스젠더(부모님이 알고 있음)
 
어나더: 자기소개 시작할게요. 21살 어나더미이고요. 대학생이고 저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한 상태입니다.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고 아웃팅을 당해서 어쩌다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1년반동안 트러블 있었다가 상황 회피하고자 돈 모아서 학교 앞에 집구해서 따로 살고 있는 상태입니다. 부모님과 어떻게 소통을 하면 좋을까 하는 마음에 5월에 부모모임 참여하게 됐고, 이제는 사회까지 보게 됐습니다.
 
하늘엄마: 제 아들은 게이에요. 알게 된 건 7년정도, 그때가 우리아들이 대학교 졸업 바로 직전, 우리 아들이 직접 저한테 애기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 통해서 알게 됐어요. 처음에 성소수자가 저랑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전혀 관심도 없었고요, 몰랐고, 무지했어요. 근데 그 당시에 아들이 많이 힘들어 했거든요.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들이 힘들어했을 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게 우리집안의 일인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 아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 아들 살려야겠다, 그게 1순위로 드는 생각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잘 지나가고 2011년부터 친구사이 모임 나오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 2~3년간은 선택인줄 알고 돌릴 수 있는 가능성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친구사이 가면서 다른 친구들보니까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거구나라고 알게 되고 고민이나 힘든 부분도 많이 해소됐습니다. 지금 우리아들과 잘 지내고, 우리아들도 잘 사회생활하고 있고, 지금은 하여간 잘 지내고 가족간의 끈이 두터워진 상태에요.
 
지인: 저는 게이아들을 둔 엄마고요. 알게 된 건 3년전,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입니다. 애가 학교 다닐 때 힘들게 다녔는데, 뭐 때문인지 몰랐다가, 그때는 너무 어리게 봐서 네가 20살이면 인정해준다라고 했어요. 너는 어려서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애가 착해서 설득하면 바뀔 거라는 무지한 생각, 3~4일을 설득하려고만 하고 마찰이 계속 있었어요. 제가 혐오하는 말을 하기도 했고 내가 홍석천이나 다른 사람들은 다 인정하지만 너는 아닌 거 같다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처음엔 내가 잘못 키워서 이렇게 됐나 죄책감에 시달리고, 흔히 엄마들의 반응 그대로 말했어요.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가 있니, 어떻게 키웠는데, 같이 죽자, 너 친구한테 물든 거야, 그랬어요. 나중에 엄마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애가 잘못돼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죄책감은 알고 나서 없어졌고, 지금은 내가 상처 주는 말을 한 거에 대한 죄책감만 있어요. 여기 모임은 작년 1월에 왔고요.친구사이모임은 그 다음에 왔는데 하늘엄마 만나서 위안 많이 받고, 앞으로도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라라: 저는 라라고요. 아이는 22살이고. 아이가 셋인데 큰아이가 성소수자입니다. 저희 아이 정체성에 대해서는 계속 탐구 중이에요. MTF트랜스젠인 줄 알았는데 막상 호르몬을 6개월차하고 있다가 세 번째 애인을 사귀는데 게이친구하고 연애를 하거나 연인으로 생활하고 그다지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게 예뻐지려는 욕구는 강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트랜스젠더로 완전히 트랜지션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 여기 온 이후로 정체성이라는 게 무수한 많은 사람들이 어느 지점에 있는 거지 어느 이름 아래 들어가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중1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방황을 하고 있어요. 자존감이 굉장히 낮고. 그런걸 함께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마카롱: 저는 21 MTF이고요. 아직 수술이나 호르몬도 시작 안 했어요. 마카롱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말에 부모님께 커밍아웃 했는데, 전형적인 부모님의 반응을 하셨고, 저희 가정이 가부장적인 거도 있고 제가 장남인 것도 있고 기독교가 정말로 뿌리 박힌 집안이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오게 됐습니다.
 
모과: 저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마카롱 애인이고요 전 FTM입니다. 중학교 때쯤부터 위화감을 느끼고 나답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다 받아 들여주시고, 앞으로 호르몬도 수술도 다 해가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해주셨는데, 애인 가족의 반대 반응을 보고 충격을 먹고, 하루라도 빨리 애인이 부모님의 이해를 얻을 수 있게 뭔가 행동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부모님 마음이 빨리 안정시켜드릴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우키: 저는 29살이고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대학교도 거기서 마치고 7년전에 한국을 잠깐 오게 됐는데, 그 와중에 옆에 분을 만나게 돼서 어느새 7년차 애인관계로 지내고 있어요. 저는 사실 미국에 있을 때도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결혼도 일반적인 결혼을 할거라고 생각을 하고, 만나게 되면서도 어차피 지금도 내 가족관계, 친구관계 좋은데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있었다가, 7년쯤 되니까 생각들이 바뀌게 되더라고요. 이런 거를 옛날에는 사람들이 의심할까봐 걱정이 많아서 그런 거를 피했는데, 더 이상 이런 거에 대해서 회사생활이나,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있을 때 숨겨야 하나, 이런 생각도 생겼어요. 우리 서로 부모님은 모르시지만, 같이 잘 지내거든요. 부모님도 한국에 오시면 잘 만나고, 형 부모님은 한국에 계시니까 거의 매주마다 봐요. 그 쪽 부모님도 우리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다행히 좋으신 분들이라 저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우리 관계를 가족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이 적극적으로 이 모임을 알아보고 같이 오자고 했는데, 어떻게 좋게 말하고 지낼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크리스: 중학교 1학년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어요. 상황도 안 좋았어요. 원래부터 여리고 조용한 애였거든요. 아주 아주 긴 고민과 힘든 시절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지내다가 대학교 가면서부터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고 자긍심도 되찾고 6년 반, 7년쯤 전부터 이 친구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강해진 상태입니다. 굳이 이 모임에 온 거는, 저희한테는 동거 자체가 결혼이거든요. 동거한 지도 6,7년 됐는데, 다음 단계로 가서 양가에 인정받고 살고 싶어요. 그런데 부모님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저는 커밍아웃을 축제로 만들고 싶거든요. 그런 면들을 같이 고민하고자 나오게 됐습니다
 
햇: 2,3주 전에 추석 연휴에 어머님께만 커밍아웃 했어요. 어머니께서 너무 슬퍼하시는 모습 보고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모임 말씀 드리고 같이 오자고 얘기 했지만 어머니가 아직 인정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시기 때문에 오지 않으셨어요. 저를 바꾸려고 하시고 정신과에 가보는 게 어떤지 얘기도 했고 저는 가보고 싶어요.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거든요. 알아온 건 중학교 때부터인 거 같아요. 그렇지만 한 10년정도 저에 대해 고민했고, 지금은 바뀔 수 없다고 확신이 들어요. 부모님은 아직 받아들인 상태는 아니고 여기서 도움을 받고자 왔어요. 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받아주실 수 있을지, 나아가서 아버지께도 말씀 드리고 싶은데 그건 다음 차례니까요. 그런 상태입니다.
 
뽀미: 저는 처음 나왔어요. 뽀미입니다. 영어 ‘for me’를 읽으면 뽀미가 되잖아요. 제가 뽀미가 된 건 두달 밖에 안됐다고 보시면 돼요. 제 딸이 레즈비언인데요 17살때쯤 슬쩍 자기의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거 같은데 저는 그걸 그때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때 여자애들이 대충 느낄 수 있는, 다른 여자에게 우정이나 호감이 극대화가 된 거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싫다 좋다보다 너의 생각에 엄마는 동참하지 않을 거야, 하고 넘어갔는데, 제 딸은 그 문장을 지금도 뼈아프게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 후로 대학에 들어갈 때쯤 해서 그 친구의 변화나 그런걸 꾸준히 봤잖아요. 그런데 자기를 확실히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 “그래? 여전히 그러니 너는? 그렇다면 엄마는 좋아, 괜찮아. 엄마는 이성애자로 아빠, 남편을 만나서 20여년 넘게 결혼 생활해서 살았는데 그렇게 행복하지 않더라. 그런데 네가 굳이 남자 아닌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는데, 엄마가 굳이 남자를 만나라고 우길 필요가 뭐가 있겠니.” 라고 했어요. 확실히 인정한 거는 20살때부터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 인정을 하는 게 어느 폭으로 인정을 하는지 단계가 있는데 그건 좀 긴 단계인 거 같고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거는, 제 딸이 굉장히 외로워하는걸 느꼈어요. 단단하지 않다라는 느낌이 들면서 왜 그러니 다그치기도 했는데, 사실은 성소수자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사실은 이 친구가 너무 외로워하고 제가 얼마 전에 지병으로 큰 병원을 갔다 왔는데 ‘엄마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돼’ 이러는 거예요. 이대로 내가 없어지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안되겠다, 무언가 조금 더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가도록 해야겠다. 할 수 있으면 해보자. 그런 생각에 전격적으로 뛰어들게 됐어요. 그런 마음으로 왔습니다.
 
고: 26살이고 대학생이고 저는 올 여름에 어머니랑 여동생에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하게 된 1년 반간의 뭐가 있었지만, 하게 된 게 제가 한 달간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여행 갔는데, 이틀 만에 커밍아웃을 했어요. 여행하는 내내 엄마가 자살해라, 인정할 수 없다,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 호적에서 파겠다. 그랬어요. 마지막에 돌아오기 전에 분위기가 좋아져서 돌아왔는데, 그 이후에 어머니가 그런 얘길 들은 적 없으신 것처럼 행동하시더라고요.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이번 추석에도 고향 다녀왔는데, 여전히 그러시더라고요. 관계는 커밍아웃 전처럼 표면적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여전히 그런 말을 한 적 없는 거처럼 지내세요. 바로 이 모임에 돌아와서 얘기 듣고 했는데,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부모님이랑 밀당을 해서 이런데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씀해주셨던 거였어요. 지금은 부모님 마음이 어떤지 보고 있는 단계이고요. 저도 나중에 부모님과 얘기하게 되면 준비된 상태에서 얘기하려고 이야기 들으려고 나오게 됐습니다.
 
해인: 두 아이는 이성애자에요. 제 조카가 성소수자입니다. 처음엔 게이라고 했는데 커밍아웃하는 단계가 다르더라고요. 나눠서 하는 과정을 다 봤고요. 6월부터 나오게 됐는데, 무애님께서 알아보자, 어떤 건지 해서 알아보자 나오게 됐어요. 아이가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전후 과정을 봤는데 전에 이 아이의 표정 행동 하는 거하고 이후의 행동하고 이 모든 게 180도가 달라졌다고 보시면 돼요. 지금 17살인데, 얼마 전에 커밍아웃 하는데 또 달라지는 거에요. 그 알아가는 과정이 있구나, 정체성을. 그런 거를 보면서 제가 많이 느끼게 됐어요. 일단 저는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표정부터 너무 다른 거에요. 저게 행복이겠구나. 저 아이가 힘들었겠구나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저를 돌아봤을 때, 저한테 일어나는 일 외에는 제가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성소수자를 접해보지 않았다면 제가 알 수 없는 건데, 그런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됐고요. 몇 달 나오고 이제 봤을 때는, 부모모임이나 이런 거 보시고 도움이나 공감을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부모모임이 중요하다는 거 느끼고 남들이 봤을 때 어떻게 보면 3자 입장인데, 부모를 떠나서 과정, 이런 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엄마: 우리 딸이 레즈비언인데요. 몰랐어요 저는. 안지가 1년. 딱 저는 듣고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거는 우리 아이구나, 애한테 표시는 하나도 안 내지만, 걱정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우리 아이, 내 자식이잖아요. 우리아이가 행복한 게 뭐일까 먼저 생각해서, 그 후로 애가 커밍아웃을 하던 안 하던 내 딸이었어요. 이번에 온 가족이 다 아니까, 추석 때 하나 파트너랑 인사하러 내려왔는데 아빠랑 인사하고 밥 먹고, 걔들대로 놀고, 아빠가 점심 사주고 먹고, 그냥 아무 일없이 잘 지나갔어요. 걔가 레즈비언이라 다르게 보인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내 딸. 파트너가 여자면 어때요. 좋아한다는데. 아무 생각을 안 해요. 단지 딸.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이거만 생각하지 다른 거는 없어요. 잘 지내고 있어줘서 고맙고요. 오늘 얘기 들어보니까 부모님들이 더 오면 좋겠어요.
 
무애: 12년전에 이혼해서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사는 한 부모 가정 엄마에요. 혼자되면서 행복했거든요. 그 전에는 불행했거든요. 혼자되는 순간 행복한 기분으로 당당하고 열심히 부모를 키우는 그런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아이가 커밍아웃을 작년에 했어요. 엄마 나는 양성애자가 같아요. 그래서, 내가 볼 떄는 너는 게이 같은데, 그랬어요. 그 순간 하리수씨, 김조광수 감독님, 그 당시는 불쾌해 보였던 퀴어축제 등등 스쳐 지나가면서 ‘아 이거는 뭔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게 있구나’ 싶어서 엄마가 알아봐야겠다, 그러니까 너도 알아봐라, 그랬어요. 그게 커밍아웃의 시작이었어요. 제가 혼자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까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 강박관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해야 우리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생각을 했어요. 이거 뭔가 이상한데, 내가봐도 우리 아들이 착하거든요. 혹시 이게 변태나 정신이 이상한 걸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내가 알아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모한테 나가보자 해서 나오게 된 게 친구사이 였어요. 그런데 그 후에 아들이 엄마 나 게이인 거 같아하며 2차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런데 행성인 갔다 오니까 엄마 나 사실은 트랜스젠더 같아 라고 하더라고요. 화났어요. 다른 애들은 한번 커밍아웃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3번 했잖아요. 좀 약오르는 거 같아요. 그랬는데 요즘에 대니쉬걸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아들한테 카톡을 보내줬어요. 그걸 봤나 봐요. ‘그 영화 언제 개봉한대’ 이러면서 거기 안에 내 얘기가 있어 라고 하더라고요. 게이라고 아들이 소개되어있는데 우리 아들이 MTF인거 같다는 확신이 왔어요. 우리 아이가 MTF든 상관없고 행복하게 살아 가는 게 제 궁극의 목표고,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엄마입니다.
 
하람: 21살이고 하람이라고 하고요. 14살때부터 이쪽에 눈을 뜨게 되어서 부모님께 커밍아웃한 상태입니다. 얘기 들어보니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잘 듣고 있는데 막상 얘기하려니 당황스럽네요. 제 얘기를 좀 하자면 처음 커밍아웃 할 때 별다른 얘기 안 듣고 바로 쫓겨났어요. 한참을 혼자 살다가, 집에 이번에 다시 들어갔는데 어느 정도 이해해주시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부모님 데려오고 싶네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커밍아웃을9살때 했는데 그전부터 눈치 채신 거 같더라고요.
 
별아: 22살입니다.  여기 엄마 아들인데요 혼자 나오라면 안 나왔는데 같이 친구 데리고 엄마가 나오라고 해서 나오게 됐는데, 진짜 싫어요. 저 같은 경우 커밍아웃이라기 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화장하고 그런 거 좋아해서 저는 트랜스젠더까지는 아니고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 가지고 살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학교 안 다니고 꾸미기 시작하면서 주위사람들 태도 바뀌는 게 좋으면서도 슬프더라고요. 정말 사람이 이뻐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박혔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압박감이 심했어요. 16,7살때 일반남자애 만났는데, 이쁘지도 않는 여자애한테 뺏겼다는 게 정말 화가 나서 그때부터 예뻐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엄마가 알게 된 건 과거의 사건 때문이에요. 시간 지나서는 엄마가 알고 나서 너는 여자가 되고 싶은 거 아니냐고 먼저 물어봐서 그때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해서 호르몬 받기 시작하고. 최근에 사고가 있었는데, 지금은 반반입니다. 게이인지, 트랜스인지 확실히 정하진 않았는데 이쪽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바람: 행성인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선 약간 부정하시고 모르는 척 하시는 거 같아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모님 지원 하에 작년 7월부터 혼자 살고 있고, 제 정체성은 넓게 보면 트랜스젠더, 작게 보면 젠더퀴어에요. 이분법 안에서 벗어난 사람이죠. 남자 좋아합니다.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하람: 궁금한 게 있는데, 저 같은 경우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부모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여긴 아쉬운 게 아버님들이 안 계시네요. 자녀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하나엄마: 저는 우리 딸이 아버지까지 알잖아요. 큰딸이 알았는데, 안 알려줬어요. 그러다가 우리 딸이 커밍아웃할 때 그때 알았어요. 아버지도 보수적인데, 가족 중에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내나 아니면 자식간에도 꼭 보면 있더라고요. 우리 남편 같은 경우 언니를 장녀라고 생각해서 의지를 많이 했어요. 걔가 말하니까 화를 안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니까. 본인이 의지하는 딸한테 화내는 모습 보이기 싫어하잖아요. 큰애가 아빠한테 조근조근 했더니 그랬더니 자연스레 넘어간 거 같아요. 저는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거든요. 가족간의 유대관계는 언니가 강하니까 걔를 통해서 하니까 넘어가시더라고요. 저도 그게 고민이었거든요.
 
지인: 부모의 반응은 자녀의 나이에도 달려있는 거 같아요. 저는 애가 성적지향을 알기에는 어리다고 생각하고, 얘기를 듣자마자 얘가 불행하게 살 거야,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으로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내가 거부를 해야 얘가 바꾸겠지, 얘가 상처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모르니까.
 
무애: 일단 부모님들의 반응이 다 다르잖아요. 전반적으로 1번 유형은 호모포비아, 안 봐도 된다 나가라, 너는 내 자식 아니다. 2번은 그래 이게 뭔지, 괴롭지만 알아봐야겠다, 어쩔 수 없이,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3번은 들었는데 외면하는 유형이죠. 유령 인간처럼. 우리가 너무 큰 문제를 닥치면 외면할 때가 있잖아요. 부모님들의 반응이 다 다를 거에요. 근데 천만다행으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부모님이면 괜찮은데, 그 외에 반응이면 스스로 독립, 자립 할 수 있는 준비를 성소수자 분들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부모님이 포비아인데 같이 살면 괴롭잖아요. 포비아든가 말든가 그건 부모님의 의식 수준이니까 어쩔 수 없고, 내가 삶을 살아 가는 게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하나엄마: 우리 딸이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는데 커밍아웃 전까지 모르는 거잖아요. 얘가 독립할 때까지 잘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거죠. 가끔 반항을 하잖아요. 나 학교 그만두고 싶어. 이런다고 해요. 그럼 그때는 커밍아웃 이전이니까 고등학교는 마쳐야지 사람 구실을 하잖아요. 일단 고등학교 나오고 대학 들어가야지. 전셋집을 얻었는데 그거를 애 앞으로 해 주는 거에요. 애 아빠한테 안 뺐기게요. 엄마들은 예민하잖아요. 뭔가 준비를 해줘야지. 갑자기 독립한다고 하면 얘가 뭐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해서 독립을 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독립했고요. 19살때 커밍아웃 했으면 저도 돌았을 거에요. 애가 자립을 할 수 있을 때 자립을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하람: 저는 18살쯤에 이 정도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얘기 드렸는데, 그런 얘기하고 나서 쫓겨났죠. 나중에, 아직까지 부모님하고 얘기 깊게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거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거 같아요. 그래서 모임에 나와서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받아 들여주실지 모르겠어요.
 
뽀미: 저는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부모들도 나고 자라고 교육 받고 세월이 길어요. 그 긴 세월 동안 자기의 규범 안에서 생각하고, 키우고, 그걸 통념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서 생활을 했단 말이죠. 그게 굉장히 견고해요. 그 견고한 거 중에 다르다라는 걸로 커밍아웃을 해요. 부모니까. 여태 자기가 생각 안하고 있어도 너는 부모니까 이해해줘야 돼 라는 생각으로 자녀가 이야기합니다. 당연히 자녀지만 한 인간으로써, 어른이지만 이 사람이 받아들여줄 시간, 환경, 그리고 본인의 감정을 해소하고 추스를 여백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어린 친구들은 부모라는 이유로 즉각적으로 환대를 받을, 이해를 받을, 포용을 받을, 그런 기대를 하고 고심하면서 커밍아웃을 해요. 두 쪽 다 이해는 해요. 얼마나 그 동안 외롭고 많이 고민하고, 그랬으면 결심하면서 커밍아웃 했겠어요. 이쪽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건데, 이쪽은 전혀 준비가 안 되어있는 상태겠죠. 어쩌면 이 사람들이 말하기는 갑작스런 폭력이죠. 내가17살때 내 딸이 커밍아웃 했잖아요.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물론 반대급부적으로 호적에서 팔 거야 이런 식으로 반응 안 해서 걔가 견뎠을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때 걔가 해야 할 일을 했어요. 학교 꼬박 나갔고 친구 사귀지 못해서 외로운 것도 말하고, 공부하고 대학을 나가고 그렇잖아요. 대학을 나가야 했지 성인으로 인정 받아야 하니까. 자기 일을 꿋꿋이 했고, 부모랑 대화를 단절한 거도 아니잖아요. 진지하고 믿을만하고 이게 자기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줬어요. 단순히 한 달 동안 보여준 게 아니고 3년을 보여주면서 ‘나도 고민하지만 부모님도 보여주세요. 나는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니까 부모님도 인정해주세요’라는 무언의 표현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그 친구 삶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고. 부모 자식간의 소유의 개념이 아니니까. 그래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존중 받을 만큼 살아나가면, 진지하게 살아나가면,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남들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조금은 인내심을 가지세요. 그거를 부탁 드리고 싶어요. 내 딸이 진짜 집 나가고 그랬으면 호적에서 팠을 거에요. 커밍아웃 한 게 이유가 아니라 내 딸이, 인간의 본분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 그러면 진짜, 너하고는 딸하고 싶지 않아. 이랬을 거 같아요. 그거랑 별개로 진짜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누구한테도 인정을 받아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분명 부모님에게도 인정을 받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낫소: 저는 오히려 모범생 같은 삶을 살았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남들보다 잘했거든요. 고등학교도 특목고 들어갔거든요. 어떻게 보면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규범적인 자식이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제가 커밍아웃 했을 때 부모님이 격렬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좀 했고, 내가 언젠가 부모님 실망시킬 거기 때문에 다른 모든 거에 대해서 남들보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공부도, 행동도 이렇게 하면 엄마가 싫어할 거야, 이런 행동을 싫어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중학교1,2학년때는 너무 아팠는데도 조퇴를 못했어요. 부모님이 싫어할 거 같아서 그랬어요. 그런 정도로 저를 가두는 게 심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커밍아웃 전에 심리상담 받았는데, 진로 때문에 받았는데, 받다 보니 부모님 이야기, 정체성 이야기까지 나온 거죠. 너무 얽혀있는 거에요. 그런 거들 분리해보니, 부모님 충족해야 한다는 마음을 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업결정부터 모든 것에 대해서 독립적인 상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부모님께 말씀했어요. 그때부터 부모님이 ‘네가 변했다. 못 되게, 이기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행을 가기로 했는데, 가려면 준비해야 할 게 많은데, 그런 거 할 때마다 뭔가 트러블이 생기는 거에요, 어머니랑. 네가 알아서 해라. 장남이고 영어도 하고. 다같이 가는 여행인데 다같이 결정하면 좋겠는데, 제대로 못해내면 또 부모님을 충족 못 시키는 거 같고 그랬어요. 그래서 싸우다가 여행가서 터진 거거든요. 모든 게 지치고 내려놓고 싶어서, 환경도 평소 환경이 아니라 그래도 될 거 같은 마음이 들어서 뱉었는데, 뱉고 0.1초만에 후회했어요. 그때부터 네가 동성애자라서 못되게 변했구나, 이기적인 심리상태 보였구나 라고 이야기 하시는 거에요. 중 고등 때 보여드렸던 착한 아이의 모습이 계속 무너지는 거에 어머니가 오히려 화를 내시고, 너는 원래 착했는데, 못되게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시면서요. 제 입장에서는 무기력하죠. 착하게 해서도 안되고 말해도 안되고.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제 자리에서 해야 했던 것들 해오면서, 그 프레임을 가지고만 저를 보시니까 거부감이 심해지더라고요. 이런 경우도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뽀미: 낫소님이 공략을 조금 잘못한 거 같아요. 너무 모범생 코스프레로, 내가 엄마를 너무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잖아요.
 
낫소: 제가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가 그거 때문만은 아니에요. 부모님 관계가 안 좋아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이야기 하셨거든요. 무슨 일 있으면 ‘나는 너 때문에 산다. 너 없었으면 이혼이나 자살했을 거야’ 라고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저한테는 어린 시절이 없었던 거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엄마를 받쳐줘야 하는 상황이 됐었고요. 저도 엄마 인생 필요 없고 내가 생각하는 거 다 표출하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어릴 때는 그게 아니었던 거죠.
 
뽀미: 힘드셨겠어요. 충분히 이해가 돼요.
 
하늘엄마: 지금 했던 얘기를 그대로 엄마에게 얘기해도 될 거 같아요.
 
낫소: 여행가서 마에게 그렇게 말씀 드렸어요. 엄마가 아빠랑 관계도 괜찮아졌고, 나도 엄마 아빠 관계 알고 있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거지, 원망하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도 엄마는 죄책감에 시달리더라고요. 그 전에 몇 십 년 살면서 받은 상처가 있으니까,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 생각을 했을 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잘 못 받아들이잖아요.
 
하나엄마: 우리 엄마들이 다 겪었던 거에요. 저 혼자였으면 너무 힘들었을 텐데, 우리 딸이 적극적으로 오라고 해서 오니까 치유가 된 거 같아요. 엄마도 여기 와야 될 거 같아.
 
햇: 처음 접하셨을 때 화가 나고, 실망, 죄책감 드셨을 거 같고 시간이 약인 건 맞겠는데, 어떤 방법, 어떤 순간에 그런 것들이 풀어지고 이해를 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누나가 있어서 누나가 도와주지만, 저를 가장 믿고 의지하는데, 아버지껜 말씀 못 드리고, 어머니는 이게 왠 날벼락이냐고 하시면서 제 눈을 안보시거든요. 지금도 친하긴 한데, 아침 저녁으로 우울해 하세요. 할 일 생기고 하면 잊어버리고 괜찮아지시는데, 제가 엄마를 부르면 대답하는 힘이 없으세요. 눈을 똑바로 못 보시고요.
 
하나엄마: 대화록에 과정들이 다 나와있으니까 대화록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무애: 우리 아이가 성소수자여서가 아니라, 16년동안 어떻게 내 자식 일을 몰랐지, 그거 때문에 세시간 넋 놓고 앉아있었고,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는 인식이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였어요. 지금 어머니 얘기 들어보니 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 같아요. 지금 그런 상태에서 어디 가자 그러면 저 같아도 싫을 거 같아요. 내가 성소수자인 걸 알았다 하는 기간이 있잖아요. 그 기간만큼 우리엄마도 힘들어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내 부모니까 빨리 이해하고 받아 들여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가지고 커밍아웃을 해서 실망을 하거든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면 좀 더 낫지 않을까.
 
햇: 제가 하는 실망은 왜 못 받아 들여주셨을까 하는 실망은 아니고요. 아플 거고 그런 게 걱정돼요.
 
하늘엄마: 저도 죽을 만큼 아팠는데, 정보를 알려고 애를 썼어요. 엄마는 생각보다 강하거든요. 안지 7,8년됐는데 그때는 정말 옛날, 아무것도 정보가 없었어요. 상담사 이런데 가니까 오히려 아닌 거에요. 상처를 받죠. 저 같은 처지의 먼저 있는 부모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 너무 많이 슬펐고, 그 당시에 2,3년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다 견디더라고요. 엄마니까. 엄마도 아플 만큼 아파야 해요. 엄마는 갑자기 당하는 거니까 쇼크로 오는 거거든요. 지금도 속에 애잔한 거는 뭐냐면, 우리 아들이 26,7살때 쯤 알았는데, 그때까지 우리아들은 십 몇 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다시 회상해보면 그 순간순간 애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잘살고 있는 거만으로 기특해요. 우리 아들은 커밍아웃을 당한 거죠. 알았을 때 아들한테 편지를 썼어요. 그 3일전에, 저는 놀랠 겨를도 없었고요. 그랬는데 그게 엄마는 견뎌지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아들한테 ‘너 무슨 고민 있지. 나 그런 고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있으면 해라.’ 그랬어요. 3일을 기다려도 안 하더라고요. 3일 지나도 말을 안 하는 거에요. 우리 아들이 여려요. 우울증이 심한 상태니까 엄마한테 어떻게 얘기해야겠다 조차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요. 그래서 편지 쓴 거에요. ‘나 알았다. 알았는데, 걱정하지 말아라, 지구가 뒤집어져도 엄마는 네 편이야 했어요.’ 쓰고 나서도 웃기긴 한데. 지구는 어차피 도니까. 그때는 그랬거든요. 기다려주세요. 엄마가 빨리 얘기 안 한다 해도. 처음에 순서가 부정인데, 저는 부정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10대에 ‘엄마 나 이런 거 같아’ 했으면 저도 너 미쳤냐 분명히 그랬을 거에요. 그런데 아들은 그때 아팠거든요. 아파서 그럴 겨를이 없었고, 부정은 저 혼자서. 한강 가서 울면서, 십자가 보면서 울면서 부정하고 그랬어요. 그냥 풀어갔어요. 시간이 지나가면, 여러분도 그게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겠지만요.
 
지인: 제가 미국의 부모모임이나 자료 찾아보니, 처음에 충격, 분노, 그리고 죄책감이 차례대로 와요. 그런 걸 넘어서야 수용이 되고요. 부모들이 너무 심하게 언어적인 폭력, 내쫓고 그래서 가출을 하는데, 너무 심하면 떨어져 있는 게 나아요. 오히려 좀 떨어져있으면, 저도 자료 찾아보면서 많이 생각하게 됐거든요. 제가 가장 변하게 된 거는, 아이 형이 바비를 위한 기도 영화를 보여줬는데, 거기서 하는 엄마 행동이 저보다 심하지도 않았는데, 애가 자살을 해요. 그래서 이게 동성애자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구나,생존의 문제구나. 자료를 보니,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율이 47%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힘든 거를 견뎌냈구나. 지금 이거는 그럴 때가 아니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알게 된 순간 이게 선택이 아니구나 알게 됐어요. 제가 달라진 거는 영화 본 거랑 자료 찾은 건데, 인터넷에 혐오세력들이 올린이상한 자료가 너무 많아요. 그걸 보고 더 나쁘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부모가 알게 되면 어떻게 할지를 모르거든요. 무반응인 분들도 어떻게 할지 몰라서 무반응인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보통 이런 단계를 밟더라, 엄마는 지금 이런 단계야 하면서 말하는 게 나아요.
 
무애: 우리가 어떻게 교육을 받고 자랐냐면, 성소수자가 변태다 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있게 되었어요. 그런 교육을 받고 살아왔어요. 44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그 정보가 잘못됨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감이 빠른 사람은 1년만에 바뀔 수도 있고, 1초만에 바뀔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 10년이 더 걸릴 수도 있거든요. 부모님들이 포비아적이거나 인정을 못해도 여러분은 자신을 알잖아요. 본인이 정신병자도, 변태도 아니라는 걸요. 그런데 부모님들은 이게 뿌리까지 가 있거든요. 그런 걸 이해하고 부모님들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에 친구사이에 갈 때 ‘변태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정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왔거든요. 매스컴에서 성소수자 모습을 그릴 때는 더럽고, 정신병자에, 변태에 이런 모습으로 그려서 나오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깔려서 살아온 분위기에서 그런 것들 받아들였을 때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죠. 저 같은 경우는 스파크가 탁 머릿속에서 생겼어요. 빠르게 바뀐 경우죠. 부모모임 나오신 분들은 오히려 마음이 편한 상태이실 거에요. 안 나오시고 혼자 계시는 분들이 더 힘들 거라고 생각 듭니다.
 
지인: 미국 같은 경우도 평균 받아들이는데 2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크리스: 제가 종합 버전인 거 같아요. 모범생은 아니지만 일탈은 안했고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냥 갔어요. 여기서 커밍아웃한순서로 치면 제일 후배인데요, 제가 이 모임을 나가겠다, 커밍아웃해야겠다 라는 고민 들었는데, 햇이 먼저 선수 쳤더라고요. 논점은 저희 어머니가 자책이 가장 크실 거라는 거에요. ‘다 나 때문이야.’ 이것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20몇살때는 자살했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엄마는 그때 놀랐죠. 애가 힘들어하긴 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모르셨겠죠. 하지만 전 살아남았어요. 이전에 좋지 않았던 상황들을 본인이 책임지고 짊어지려는 사람이라서 내가 이거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요. 자살 정도는 아니겠지만 정말 힘들 거란 말이죠. 아버지는 쿨하신 건지 무관심인 건지 모르겠지만 저항 없이 지나가실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둘을 모아놓고 같이 얘기할지, 따로 얘기할지도 고민이 되고요. 저희 집에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사람은 저에요.
 
하나엄마: 그래도 타겟이 나니까. 내가 직접 상처 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조금 우회적으로 하는 것도 나을 거 같아요.
 
뽀미: 저는 그 전에 어머니와 어떤 형태의 대화를 하셨는지 알고 싶은데 여쭤봐도 될까요?
 
크리스: 아버지와의 투쟁 기간 중 유일한 대화상대가 저였어요. 제가 독립한 이유도 저희 집 상황이 이혼 직전까지 갔어서 그걸 핑계 삼아 나와서 우키와 같이 살게 된 거거든요. 지금은 매우 화목해졌어요.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마지막 숙제 같은 거죠. 어떻게 하면 최대한 엄마가 적게 충격을 받을지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하나엄마: 저도 딸하고 유대가 굉장히 좋았거든요. 어느 날, ‘엄마 나 동성애자야’ 이렇게 얘기하는데 정말 화는 못 내겠더라고요. 사이가 좋았던 사이라. 그리고 집에 와서는 뒤에서 문자 보내고. 아침마다 성경 문구 적어서 보내고 별 짓 다했어요. 그랬는데, 어쨌든 사이가 좋았고, 얘 때문에 살았다고 할 정도로 기쁨을 줬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애였기 때문에 당장에는 그 자리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어요. 그런 얘기를 안 떠올리고, 돌이키려고 성경책 찾아보고 보내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사이가 좋다면 직접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우리 딸 같은 경우는 그렇게 했어요. 좋은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낫소: 예상을 하시면 안될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저는 엄마랑 사이가 좋았거든요. 엄마가 다른 부분에 있어서 다른 세대 부모님들보다 진로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인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아니더라도 엄마는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예상했던 거랑 너무 다른 반응이라 저는 더 충격 받았어요. 그래서 예상을 아예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거 같아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저는 자살하고 싶었거든요. 의 최악의 최악의 상황까지 마음에 두시고 하셔야 어느 정도 충격이 완화가 되는 거 같아요. 우리 부모님으로 생각하기 보단, 우리 어머니도 한 사람의 여자고 인간인데,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거든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엄마도 여자고 기성세대고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받는 충격, 감정적 상처는 당연히 있더라고요. 엄마가 ‘넌 왜 나를 힘들게 하냐, 공격하냐, 뒤통수 때리냐.’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본인도 사람으로써 받는 충격이 있는데, 아무리 아들이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게 힘드신 거 같더라고요. 커밍아웃 전에 부모님을 볼 때 어머니로 보는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기대감을 그리고 좀 버리셨으면 좋겠고요. 우리 어머니가 조금 더 진보적, 수용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기성세대의 그것은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크리스: 그런 부분은 조금 데이터가 있는 게, 아버지는 단서가 있었어요. ‘브로크백마운틴’을 텔레비젼으로 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별 말없이 끝까지 다 보다 가시더라고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그런 저항은 없을 거 같긴한데,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시던 엄마는 더럽다고 얘기하셔서 그때 알았어요. 엄마는 이런 거에 대해서 부정적이구나. 커밍아웃 이후로 저는 진보적으로 행동하고, 계몽하려고 하겠지만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충격 받으실 것 같아요. 시골사람이었고, 사람 자체가 ‘내가 지켜야 한다’ 이게 너무 강한 사람이라서요. 누나는 진보적이어서 서포터니까 같이 있을 때 말하는 게 나을 지, 한 분씩 말씀 드릴 지, 아버지가 같이 있을 때 말할지 고민되요. 갑자기 ‘엄마나 나는 게이입니다’ 이런 게 나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무애: 아무리 계획해도 커밍아웃 폭탄은 터져봐야 알거든요.
 
우키: 제가 궁금한 건 제 부모님도 그렇고 형의 부모님도 그렇고 언젠가는 아실 거란 말이에요. 우리 부모님도 눈치가 빠르시니까 제가 먼저 말을 하던 부모님이 눈치를 채도, 그 과정은 비슷할 거 아니에요? 부정하다가 의심하고 죄책감 가지시는 그 단계겠죠. 어쨌든 올게 올 거라는 게, ‘내가 그걸 먼저 터트려야 하나? 부모님이 먼저 다가 오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친구처럼 저도 장남이고,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미국에서도 한인 커뮤니티는 되게 작은데, 이름만 말해도 네가 누구누구 목사님의 아들이구나 해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거는 내 짐인데 이거를 내가 던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그대로 놔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낫소: 전 동의하는 게, 저는 정말 충동적으로 했거든요. 전혀 커밍아웃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 순간 적으로 던지듯이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아느냐. 서울에 와서 5년 가까이 살면서 전쟁같이 살았고,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아.’ 하면서 해버렸거든요. 그랬더니 내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도 제가 섣부르게 했다고 생각해요. 커밍아웃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고 던져버려서요. 나중에 부모님이 물어 봤을 때 나 사실 그래 라고 하면 평이하게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하람: 제가 그런 케이스에요.
 
낫소: 부산 내려갔을 때 제가 말을 안 한 것처럼 평범하게 대하셨어요. 추석에 갔을 때도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말을 한 게 맞나 헷갈릴 정도로 모르는 척 하셨어요. 척이 아니라 모르는 거 같더라고요.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신건지. 그래서 그런 말을 할 타이밍을 못 잡겠어요.
 
무애: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걸 존중해주세요. 엄마도 시간이 필요해요.
 
뽀미: 충동적인 커밍아웃이었는데, 엄마가 흡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모임 있으니 가자고 하면 너무 갑작스러울 거 같아요.
 
하늘엄마: 그런데 저 같은 경우 그런 모임을 찾아 다녔어요.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요.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요.
 
낫소: 그거 자체를 못하겠어요. 다시 악몽이 시작될 거 같아서요.
 
무애: 그러면 모임이 있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바라봐주고 기다려주세요. 어머니가 예민한 분 같아요. 엄마는 나름대로 내부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을 거에요. 우리 아이는 바뀔 수 있어, 이런 단계일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 손해 볼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크리스:  ‘너네 동성애자들 왜 이렇게 드러내고 살려고 해.’ 이런 얘기들이 있는 거 같아요. 왜 주변에 말하고 인정받으려고 하냐면서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장 사랑 받고 살고 싶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거지, 나 불편해, 단순히 그런 건 아니거든요.
 
낫소: 저도 그건 인정하는데, 너 그렇게 당당하면 진작 이야기하고 살지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걸 일일이 설명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커밍아웃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고민을 해보라는 거죠. 내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남도 아니고 부모가 가지고 있는 삶의 페이스가 있을 텐데, 당황스러울 수 있는 거죠. 간절한 마음으로 그 필요성에 대해 설득이 되어야 부모님 입장에도 ‘그래서 네가 그렇게 했구나’ 할 텐데 저처럼 충동적으로 하게 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뽀미: 크리스씨는 애기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이 돼서 하는 거 같고 우키씨는 안 해도 되지 않느냐 이런 거 같네요.
 
크리스: 저는 정체성 고민으로 죽을 뻔한 시기가 지났고, 직장도 안정됐고, 이미 부모님을 안 본다고 해도 재정적으로 지장 받을 일이 전혀 없어졌어요. 그리고 일부러 애를 부모님에게 더 보여줬어요. 그래서 나중에 우키가 애인인 게 밝혀질 때를 대비해서요. 워낙 사랑하세요 두분 다. 그래 쟤네 둘이라면 서로 잘살겠지 하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결국 저는 미국에 가야 해요. 결혼을 하기 위해 미국에 갈 거에요. 이민을 가는 거죠. 2차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면 1,2년 이렇게 한번 볼 거거든요. 가버리고 하면 상황이 더 안 좋을 거 같아요. 1년에 한번 보는데 그때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는 건 좋지 않을 꺼 같아서 지금이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하나엄마: 커밍아웃을 하는 시기도 너무 어릴 때 하면 애도 힘들고 부모님도 힘들고 이럴 거 같아요. 부모가 제일 걱정하는 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까에요. 치유가 빨리 됐던 건 애가 알아서 잘 살아가겠지, 그런 마음이 있어서 충격이 덜했던 거 같아요.
 
무애: 힌트를 줘서 부모님이 알아차리게 해서 부모님이 먼저 물어보게 하는 방법도 좋은 거 같아요. 저는 감이 빠른데, 우리애가 신호를 보냈대요. 그렇게 신호를 보냈는데 저는 전혀 몰랐거든요. 이런 부모님들이 많아요
 
하나엄마: 말 안 하면 몰라요
 
라라: 제 애가 보면 여성스럽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행동도 말투도, 그런데 저는 조금 여성적인 남자라고 생각하고 산 거에요. 2013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남자친구를 사귀는걸 알게 됐어요. 알게 됐는데, 커밍아웃 전이었지만 그 때 딱 모든 게 다 풀렸어요. 그 동안 어린 시절부터 보여준 행동들이 다 설명됐죠. 얘가 성소수자라서 그런 거구나. 그 때는 그런 단어도 몰랐어요. 남자 좋아하는 아이, 동성애자. 이렇게만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살면서 1년을 보냈어요. 그 동안 미스터리했던 것들이 제가 더 알아가면서 해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자발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어요. 그래서 이 모임을 알게 되어서 오게 됐고 와서는 공부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저도 사회에서 보는 편견이나 그런 시각으로 내 아이를 보고 있는 면이 많았더라고요. 그 때가 작년 8월이었고, 애가 남자 사귄다는 걸 알게 된 거는 2013년 8월이니까 딱 1년만에 오게 된 거네요. 여기 와서 대화를 통해서 아 이게 선천적이구나, 이상한 게 아니구나, 고쳐야 하는 것도 아니구나라는 걸 다 알게 됐어요. 애가 행복하게 사려면 본인인 원한 모습대로 살면 되지, 그런 사람들이 많네, 그런걸 보면서 위안이 되고 좋았어요. 우리애가 어렸을 때 그런 사건 때문에 알게 됐지만, 얘가 얘기를 해줬으면 좋았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휴식)
 
어나더: 마카롱님 얼마전에 커밍아웃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하시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계획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마카롱: 저 같은 경우 부모님께 커밍아웃 전에 한 달 넘게 어떻게 마주할까 고민했고요, 고민 끝에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겠다 싶었어요. 모든 반응과 시나리오를 예상해봤어요. 부모님의 머릿속에 있는 유교적인 사고방식, 싶은 신앙심, 그리고 아버님도 장남이고 저도 장남이라 저한테 기대하시는 그런 마음까지. 정말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하고 커밍아웃 했는데, 솔직히 저는 어떻게 반응하던 충격은 안 받을 줄 알았어요. 쓴 소리 많이 듣고, 미친놈 소리도 듣고, 생각이 없다고 그러시고, 그래서 충격이 많이 컸어요. 집에 있는 게 무서울 정도로요. 부모님이 고민 있으면 말하라고 요즘도 그러세요. 그런데 부모님에게 말하는 게 너무 힘들 거 같아요. 지금은 최대한 평범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하는 상황이에요. 가끔씩 오셔서 설득하려고 해요. 남자로서 살지 않게냐고요. 같이 노력해보자. 그리고 저보고 아픈 거 같다고 얘기하세요. 지금 저는 시간만 있다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친척들 중에 목사님이 두 분이나 있으니까 그런 관계라 부모님이 저를 받아주더라도 부모님이 친척들 사이에서 힘들어할 거 같아서 걱정이 많아요.
 
어나더: 우선 저도 부모님이랑 트러블이 심했거든요. 여기 고정적으로 계시는 부모님들께서는 제가 얼마나 트러블이 심한지 아시잖아요. 저도 집 안에 있으니까 물리적인 위협은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데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용돈을 받지 않고 산지 꽤 돼서 집에서 나왔거든요. 솔직히 1학기, 2학기 바쁜 거랑 비슷해요. 그런데 1학기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지금은 최근 들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인 거 같아요. 말씀 드리고 싶은 거는 본인부터 생각 했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부모님이 처한 상황을 아니까 그것도 걱정하면 내 자신이 더 처량하고 힘들고 그랬는데, 나가서 생각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거 찾고 자기개발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저한테 집중을 하니까 뭔가 확 트이는 받았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직은 내가 남 걱정하는 거보다 지금 내 나이에 내가 어떻게 해서, 게이 라이프뿐만 아니라 어떻게 내 라이프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열심히 살다 보니까 마음이 편안해요 그러니까 주변의 상황보다 본인을 먼저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거든요. 저를 챙기고 나서부터는 훨씬 더 밝아졌고, 잔걱정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되게 많이 없어졌어요. 집에서 나오고부터. 굳이 집을 나오라는 건 아닌데, 어쨌든 그 안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자기에게 신경을 쏟으셨으면 해요. 애인 분도 있으니까 왔다 갔다 의사소통 하면서 그 쪽 부모님하고도 의사소통 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하나엄마: 특히 힘든 부분이 친척 중에 목사가 있다는 거네요. 이 부분이 타켓이 되는 거에요. 내가 보기에 부모와 떨어져서 독립하는 게 훨씬 더 빠를 거 같아요. 그래야지 본인 정신상태도 건강해질 거고요. 주변에서 고치려고만 들 거에요. 고쳐지는 게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일단은 독립을 해서 자립을 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라라: 저도 기독교인이었어요. 지금도 저희 남편도 교회를 다니고, 저는 안 다니는데, 여동생 남편이 목사에요. 그런데 주변이 중요하진 않아요, 솔직히. 성경에 써 있는 말이 뭐가 중요해요.
 
하나엄마: 저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지금 안 다니거든요. 저희 딸을 비난하니까. 교회가 싫은 거지 안 믿는 건 아니에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교회의 편견이 싫어서 떠난 거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요. 그러니까 더 힘들 거 같아요. 벗어나기 힘들 거 같으니까. 차라리 독립해서 자기를 키워나가는 게 훨씬 더 건강해지는 길일 거에요. 전에 목사 부부도 모임에 참여하셨었는데, 아버지가 우리 집안을 망하게 할거냐 라고 하시더라고요. 교회 단체 안에 속해있으니까요. 그 부분도 맞아요. 그래서 스스로 독립을 하는 게 낫다는 거에요. 나를 인정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거는 행복한 거거든요. 그래서 최소한의 가족 중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중요해요. 독립해야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잖아요.
 
라라: 사실 결혼을 하러 미국을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전 한국에서 우리 자녀들을 결혼을 시키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내 부모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해야 할 거 같아요. 희생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거 같아요.
 
크리스: 결혼의 ‘결’자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전엔. 그런데 사귀는 사람이 미국인이니까 생각이 달라진 거죠. 미국은 전국에서 동성결혼이 합헌이 됐으니까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게 내 눈 앞에 이뤄지니까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커밍아웃 해서 문제를 일으켜 이러기 보다는요. 저보다 더 힘들었던 사람도 살아남았고 저도 누구보다 건강하게 잘 살고 있거든요. 지금은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르니까요.
 
하나엄마: 저는 가장 두려운 게 우리애가 커밍아웃 하고 주위에 알려지면 왕따 같은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이에요.
 
크리스: 그게 사회생활이잖아요. 저는 중고등학교 사회생활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친구관계에서 매우 힘들었고, 같은 게이 친구들이랑도 어울리기가 힘들었어요. 주변은 여성스러운데 저는 그렇진 않거든요. 그렇다고 일반남자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어요. 사회 생활할 때는 가상의 여자친구를 만들어뒀죠. 저 자체가 자긍심이 강하고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랑 안 맞으면 데면데면 지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직장이니까.
 
지인: 우리 애가 이렇게 말 했으면 화를 안 냈을 텐데 하는 게 있어요. 너무 세게, 당당하게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동성애자는 보통 자기가12~13세때, 트랜스젠더는 6~7세때 자각한다는, 그런 자료들 보여줘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 때부터 이 날까지 나는 힘들었다, 이런걸 말해야 해요. 우리 애는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 안하고 엄마는 왜 이해 못해, 이런 투로 얘기했기 때문에 제가 더 화가 났었어요.
 
하람: 저는 그건 반대하는 게, 저는 들켜서 그렇다고 얘기한 건데, 심지어 난 이만큼 힘들었다고도 얘기했는데, 그거 알아달라고 징징대냐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아무 근거 없이 얘기를 하진 않거든요. 다 말씀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정말 외면하고 싶으셨나봐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하려고 하시고 그래요.
 
무애: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에요. 보려고 조차를 안 하는 단계가 있거든요. 그런 단계는 부모모임 나오자, 자료 있으니 봐라 이런 게 전혀 안 먹혀요. 그 단계에서는 그냥 놔둬야 해요.
 
어나더: 저는 고3여름때부터 퀴어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 공기계를 부모님이 다 보셨어요. 부모님은 프라이버시 개념을 잘 모르세요. 너는 미성년자니까 무시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블로그를 하는걸 알고 다 들어가보셨어요. 집 나오기 전에는 싸울 때 검색해서 찾아봤으면서도, 그 이후로 본 적 있느냐 그랬더니, 싫어서 안 봤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걸 봤다면,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이런 식으로 얘기했거든요. 그랬더니 보기 싫어서 안 봤다 이러더라고요. 처음에 블로그 보기 전에는 애가 바뀌겠지 했는데, 들어가보니까 생각보다 애가 깊이 들어간 거 같으니까 이제 좀 대화 자체를 꺼려하더라고요. 집을 나와서는 서로 언급을 잘 안 해요. 머릿속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만, 서로 떨어져서 생각을 하는 시간이 있어야, 나중에 자료 들이 밀었을 때 더 먹힐 거 같아요. 그래서 나중을 더 기대하고 있어요. 지금은 저도 마음을 가다듬는 시기고, 부모님도 가다듬는 시기라고 생각해서요.
 
하나엄마: 딸이 레즈비언인걸 몰랐어요. 대학교 때도 주위에 여자친구만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못 챘어요. 한 친구만 계속 사귀는데, 자기가 말하기 전에는 전혀 몰라요.  그냥 좋은 친구다 라고만 생각했지, 얘가 여자를 좋아한다고는 요만큼도 생각 못 해봤어요, 커밍아웃 전에는. 그 이후에는 이제 모든 게 다 풀리는 거죠.  정말로 부모는 내 자식이 그럴 거라고는 요만큼도 생각을 못해요. 최소한 부모님은 알아야 나한테 걱정해주시고 앞으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가족이지. 아니면 몰라요.
 
무애: 커밍아웃 폭탄이 터지고 나면 여파가 큽니다. 충격 받을까봐요. 그 거는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 몫이에요. 내가 사는 게 중요한 거고, 내가 부모에게 불효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나중에 얘기해서 배신감 느끼게 하는 거보다는 조금 더 일찍 이야기해서 알게 해주는 게 좋은 거 같고요. 본인 인생을 알차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좀 더 효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요. 저는 자식의 독립은 냉정하게 해요. 부모들 중에 자기 자식이 소유물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 사람을 존중해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도대체 부모로서 우리 아이에 대한 사랑이란 뭘까. 치맛바람, 정체성을 인정 안 해주는 그거는 집착이죠. 우리 아이가 힘들 때 알아보려고 안하고, 혐오에 맞서지 않고 그런 거는 사랑이라고 생각 안 해요.
 
마카롱: 제가 커밍아웃 전에 계획도 다 짜놓고, 독립할 계획도 다 짜놔서 솔직히 독립은 일주일안에 가능해요. 걱정이 되는 건 제가 괴롭다고 말하면 부모님도 죽을 거라고 말씀을 하세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호르몬도 하고 수술도 하고 바꾸고 싶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제 몸에 손을 대면 바로 죽을 거라고 말했어요. 그 말이 계속 제 머릿속에 남아있어요.
 
엄마들: 그런데 안 죽어.  (웃음)
 
지인: 부모님을 상담 받는 의사분께 데려가면 좋을 거 같아요.
 
마카롱: 저희 아버지가 의사선생님을 안 믿어요.
 
무애: 일단 종교적으로 강하신 분은 의사가 아니라 교황이 와도 안 들어요. 그 분들에겐 동성애자인 동시에 사탄이잖아요. 지금 중요한 건 독립할 때 가장 힘든 건 경제적인 거잖아요. 그러면 내가 알바를 하고 독립할 수 있는 터전을 보면서 해야지. 안 그러면 찌질해져요.
 
하람: 제가 그랬어요. 갑자기 해서.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무조건 부유하고 그런 상황에 있는 거보다는 좀 힘들게 살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나엄마: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되게 대견하잖아요.
 
무애: 여기 못 데리고 오고, 자료 못 주고 그런 거는 그런 단계인 거든요.  이럴 땐 빨리 독립할 시기고, 같이 있다가는 파멸이 와요. 그래서 자살하는 거 아니에요? 자기인생을 열심히 살지 왜 자살을 하고 있어요. 딱 내가 독립할 수 있었을 때 커밍아웃을 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모해야 했으면 좋겠어요.
 
뽀미: 맞습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무애: 저도 이혼하고 어린 애들 데리고 독립을 했던 사람이다 보니까, 맨땅에서부터 일어났던 사람이다 보니까 독립이 얼마나 힘들었다는 거, 제일 무서운 건 먹고 사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얘기 드리는 거에요.
 
어나더: 저도 독립을 하고 과외가 끊겨서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전보다 낮은 시급 받고 신체적으로 힘들게 살아도, 지금이 더 편하더라고요.
 
지인: 이분은 성별변경도 하셔야 하니까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수술 받으려면 부모님에게 조금 도움도 받아야하니까. 전에 트랜스젠더 부모님은 아이가 1년 간의 의사 진단 받고 나서 그럼 그렇게 살아야지, 어쩌겠냐고 받아들이셨어요.
 
하나엄마: 트랜스젠더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전문직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미용 기술이라거나, 옷을 팔거나. 빨리 찾아가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아요.
 
지인: 앞으로 많아지겠지만 성소수자를 환영해주는 회사가 있어요. 러쉬 같은 화장품 회사도 있고.
 
무애: 우리아들을 봤을 때 우리 아들은 MTF거든요. 그래서 많이 공감이 되는데, 호적 정정을 할 때도 부모 동의가 필요해요?
 
라라: 호적 정정을 할 때는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해요. 성인이라도. 동의가 없으면 호적정정은 못하고 수술은 가능해요.
 
(소감)
 
별아: 원래 앉아있는 거 힘들어해서 좀 힘들었는데, 그래도 재밌게 잘 들었어요. 엄마가 참 많이 공부를 했네요.
 
하람: 진짜 많이 아시는 거 같아요.
 
하나엄마: 별아는 좀 생각이 좀 바뀌었나요?
 
별아: 네. 수술은 안 할 거 같아요. 좀 더 찾아봐야겠지만요.
 
라라: 별아는 열일곱 때 미용사자격증 따서 한 번 독립은 했었는데 지금 다시 살고 있어요.
 
별아: 진짜 아는 사람 없는 서울에 올라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아는 사람도 없어서 외로웠거든요. 어려서 그랬나 봐요.
 
라라: 별아는 어렸을 때부터 예뻐지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많이 보이진 않았던 거 같아요.
 
하람: 저는 이 자리가 좀 새로운 세계라고 해야 하나 그런걸 알게 된 계기가 돼서 좋고요. 부모님들이 단합해서 하는 이런 게 있는지 몰랐거든요. 오늘 처음 왔지만 얘기 많이 하고 듣고 좋은 자리가 된 거 같습니다.
 
마카롱: 여기 오기 전까지는 솔직히 희망이, 자신감이 없었고 부모님이 저를 깎아내리시니까 자신감이 없어졌는데, 여기 오고 따뜻한 얘기 들으니까 자신감이 생길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과: 사실은 저희가 꿈도 있고 나중에  바꾼 후에 어떻게 살아갈지라는 비젼도 있거든요. 계획도 세운 다음에 커밍아웃을 한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가장 걱정한 게 아까 말했듯이 부모님이 자꾸 죽는다고 하는 거거든요. 저도 애인 아버지랑 얘기했는데, 진단서도 "나라도 받을 수 있다" 고하셔서 전혀 이해를 안 해주시더라고요. 시간은 몇 년 몇 십 년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만 안 죽는다면 저희는 밝게 살아갈 자신이 있어요.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으니까요. 독립도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생각입니다.
 
우키: 이런 자리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고요. 너무나도 다양하게 배경, 상황도 다른데도 이렇게 같이 열심히 살고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성소수자 떠나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어머님들 좋은 조언들도 많이 해 주셔서, 저도 우리 부모님 많이 생각이 나고요, 저도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들 열심히 좋은 꿈 이루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크리스: 처음 온 목적은 제 장기적 프로젝트도 보고, 얘기하다 보니까 가까운 미래, 먼 미래, 과거 모습 등등 여러 가지 투영 되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인생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기도 했고요.
 
햇: 좋은 시기에 제가 찾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고, 부모님께 시간을 드려야 한다는 것과, 도움 언제 드려야 될지 알게 돼서 좋은 거 같고, 여기 계신 어머님들이 아드님, 따님 사랑해주는 것도 감사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부모님이랑 같이 오면 따듯하게 받아주세요.
 
뽀미: 왜 진작오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는 게 바빠서 이번에 퀴어문화축제 때 부모모임 플랜카드 보고 저런 게 있었네 이랬어요. 채린이가 생각보다 잘 가다가 조울증처럼 꺾이는 부분이 있어요. 사귀는 사람 있다가 헤어진다던가, 오래 못 가는 케이스를 봤거든요. 왜일까 이런 거도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가 부모모임 있다, 너는 할 일이 많은 애야, 너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감정 추스르지 못하고 쩔쩔 돼. 저번 달에 제가 못 나와서 네가 먼저가 한거였든요. 그 이후에 다시 생생해진 거에요. 단순하죠? 그 때부터 엔진이 잘 타고 있어요. 잘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부모들이 참 잘해야 된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까 분리를 잘하지 못하고 계속 나의 소유인양 간다라고 하는데, 자식하고 경계를 잘 세워야 하는데 말이죠. 못 한다 이런 거는 어렸을 때부터 문제고 구조 속의 문제니까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눈 돌리면 이런 단어들 나타나게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우리가 커밍아웃 하는 게 폭탄이라고 하잖아요. 폭탄일수는 있지만 터지고 난 다음에 어떠한 대처방안, 매뉴얼 같은 거, 성격 유형 같은 그런걸 조금 더 구조적으로 구축하면, 별일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될 거에요.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고요 꼭 계속 나올게요.
 
낫소: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정적으로 생각이 든 건, 제가 적극적으로 엄마한테 모르는 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뒤에 결판을 보던가 해야 할 거 같아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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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역 다음 정기모임

 


일시: 12월 12일(토) 오후 4시

장소: 서울 마포구 인근 (장소는 rainbowmamapapa@gmail.com 으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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