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소수자들에게도 침묵을 깨고 경찰폭력과 차별에 저항한 역사가 있습니다. 1969년 6월, 미국 뉴욕의 볼품없는 싸구려 술집 스톤월(Stonewall)에서 시작된 성소수자들의 투쟁은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긍정하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60년대 전 세계에서 벌어진 대중투쟁 물결 속에서 폭발한 스톤월 항쟁은 폭넓은 대중투쟁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제10회 퀴어문화축제 동성애자인권연대 Pink Revolution 퍼레이드 참가단 제안서 중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5월 30일로 예정되어 있던 퀴어 퍼레이드가 6월13일로 연기되었다. 국민장이 마무리되는 바로 다음날 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다 보니, 성소수자들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불안감이 존재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일부 회원들도 퍼레이드 연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결국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단체들은 긴급회의를 개최하였고 퍼레이드를 6월 13일로 연기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날짜연기로 애초에 기획된 프로그램에 많은 혼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가 스톤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가고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외치는 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퍼레이드 참여의 중요성까지 퇴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스톤월 항쟁 40년을 맞는 2009년은 이전보다 자신감이 고무된 상태에서 진정한 스톤월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왕벌들이 침을 쏘아대다

_ 2007년 미국방문 당시 찍었던 스톤월 바





   2007년 나는 미국 노둣돌이라는 진보적인 한인단체의 지원으로 회원 2명과 함께 뉴욕에 위치한 성소수자 단체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방문 일정 중에, 스톤월 바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쳤던 것 같다. 우리는 빠듯한 일정을 쪼개 뉴욕 크리스토퍼街에 위치한 작은 스톤월 바를 방문하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이제는 관광명소가 된 스톤월에는 1969년 성소수자들이 거리에서 투쟁한 사진과 신문이 전시되어 있었고 티셔츠, 버튼 등 기념품을 팔고 있는 정도였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겨우 앉아있었다. 그 누구도 스톤월 역사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1969년 거리를 활개 치며 돌아다녔던 스톤월 소녀들을 상상했다.


수 십 명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던 바에서는 흐르는 물이 없어 사용한 잔을 고여 있는 물통에 대충 헹군 후 다시 잔을 채우고 또 다른 손님에게 내어졌다. 적어도 한번은 손님들 사이에 간염이 돈 적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감독 비토루소는 스톤월을 이렇게 묘사했다. “너무 어리고, 너무 가난하고, 또는 너무 심해서 다른 어떤 곳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한 술집”이라고. 경찰단속으로 늘 시달렸고 뇌물을 챙겨가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 익숙했다. 스톤월은 경찰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칠 때 늘 하얀 경고등을 켰다. 그러면 바에 있던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서로 몸을 더듬던 행동을 멈춰야 했다. 저항이 있던 6월 28일도 주류 판매를 허가 없이 운영하고 있었다는 핑계로 경찰단속이 있었다. 경찰들은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말로 바에 있던 사람들을 농락했다. 그리고 신분증검사를 시작했고 여장남자, 종업원, 미성년자들을 우선 체포하려 했다.


하지만 이 날은 이전과 달랐다.


스톤월 주변으로 군중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폭력적으로 그들을 호송차에 밀어 넣으려고 했을 때는 여기저기서 야유 소리가 쏟아졌다. 그들에게 동전과 술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경찰들은 스톤월 바 안으로 들어갔지만 군중들과 바 안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낀 성소수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스톤월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경찰의 말처럼 그 날은“전쟁 상황”과도 같았다. 시위가 시작된 지 45분 정도가 지나자 경찰은 전투경찰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베트남전 반대 시위 확산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정예부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헬멧을 쓰고 경찰봉이나 최루가스 등 다양한 병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천명에 달했던 성소수자들은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7월2일까지 격렬한 저항을 이어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멸시받던 이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대다수 집에서 내쫓기거나, 학대를 피해 달아나 거리에서 살던 가난한 10대들이었다. 뾰족한 구두 굽으로 경찰을 때리며 조롱한 여장남자들은 저항과 유머가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뉴욕데일리뉴스>는 당시 항쟁의 분위기를 “호모소굴 단속, 여왕벌들이 미친 듯이 침을 쏘아대다”라고 표현했다. 비록 성소수자들을 경멸하기 위한 기사라고 하지만 스톤월 항쟁은 누가 뭐라 해도 여왕벌의 침이 얼마나 매서운지를 보여준 역사가 되어 있다.


 _ 오바마 대통령 후보 당시 동성애자 표심을 공략한 광고


일요일, 스톤월은 정리되었고 다시 문을 열었다. 3일간의 투쟁은 출입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1970년 6월28일 뉴욕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첫 번째 자긍심 행진에 2000명 이상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호주, 유럽 등에 급진적인 성소수자 단체들이 결성되는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톤월 바에서 구입한 티셔츠는 지금도 내가 가장 아끼는 옷 중에 하나가 되어 잇다. 그 때 구입한 기념품은 스톤월을 함께 기억하자는 취지로 가장 가까운 동료들에게 선물했다. 이제는 조용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지만, 스톤월은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삶을 보다 빠르게 바꿔놓았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후보시절 동성애자 표심을 잡기 위해 별도의 광고를 하기도 하였고 현재 대법관 최종후보 명단에는 레즈비언 2명이, 정부 고위직엔 30여명의 게이, 레즈비언들이 포진해 있다. 2009년 뉴욕시는 동성커플 관광을 유치하기 위해 '무지개 순례(Rainbow Pilgrimag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경기침체의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한다. 뉴욕공공도서관에서는 ‘게이 해방의 해 : 1969’란 주제로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스톤월 항쟁 40년, 정말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자신감

스톤월 역사를 접할 때만해도 이름도 남지 않은 거리의 성소수자들이 왜 그곳에 있었을까, 경찰과의 싸움이 정말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게이 아이콘 주디갈란드의 충격적인 죽음이 그날 밤 분노를 악화시켰다는 말도 있지만 가장 설득적인 주장은 사회적 격변과 저항으로 뒤흔들린 사회 속에서 수치심과 비밀 속에 가라앉아있던 성소수자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60년대는 30년대의 경제 대공황을 극복해가는 시기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개 승리해 자신감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전시위가 연일 계속되었으며 흑인, 여성운동이 성장하였고 억압받던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성소수자들도 당시 변화의 소용돌이 앞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삶이 계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스톤월 항쟁은 성소수자들의 의로운 투쟁, 저항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제 2의 스톤월을 꿈꾼다면, 스톤월 항쟁의 과정만을 보기보다, 스톤월 항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던 계기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쌍용차 / 화물, 건설노조의 파업, 용산참사, 민주주의 후퇴 등으로 한국 사회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무엇이 두려운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도 경찰벽을 쌓았고, 용산참사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삶을 건 노동자들의 파업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 우리 성소수자들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명박 정부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승리한다면,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구조와도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6월13일에 개최될 퀴어 퍼레이드에 시민, 사회, 인권, 평화단체 등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부탁했다. 그리고 핑크 레볼루션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려는 저항, 전쟁반대 등 핵심 구호 세 가지를 정했다. 동인련의 핑크레볼루션 참가단에 함께하는 단체들은 성소수자들과 함께 이러한 구호들을 자신감 있게 외칠 것이다. 이것은 스톤월의 정신을 실천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단호한 외침들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퀴어퍼레이드를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을 확보하고 지지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제2의 스톤월을 한국에서 건설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길이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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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와
    2009.06.02 00:00 신고 [Edit/Del] [Reply]
    저도 스톤월에 한번 방문해 보고 싶네요. ㅋㅋ스톤월 40주년이라 우리에겐 정말 의미가 깊은 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탄압이 너무 심해져서 생겨나는 여러가지 일들이 매우 안타까워요. 이럴 때일 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스톤월의 의미를 가슴에 다시 새기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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