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화려한 이태원 거리와 상반되는 조용한 우사단로에서, 노오란 네오사인이 눈에 띄는 햇빛서점. 2015년 9월 4일에 오픈한 한국 최초의 LGBT 전문 서점이다. 햇빛서점은 게이들이 낮에도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레즈비언이 햇빛서점을?
햇빛서점을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이태원과 친하지 않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길을 많이 헤맸다. 그리고 오르막길에 절망했다. 그렇게 험난한 여정 끝에 도착한 햇빛서점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달리 소박하며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햇빛서점은 예전에 게이 클럽 파티에 갔을 때 느꼈던 것처럼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느끼는 ‘게이’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른다.)
나는 게이 문화를 생각하면 ‘화려함’과 ‘자유로움’이 떠오른다. 혐오세력들은 게이를 어두운 거리에서 난잡한 성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며 혐오와 차별의 발언을 쏟아내지만 틀렸다. 내가 보았던, 내가 생각했던 게이와 그들의 문화는 항상 자유로웠고, 아름다웠고, 화려했다. 소위 종태원에서 본 그들은 당당했으며,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의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소박함을 즐기는 게이, 화려함을 즐기는 게이, 사색을 즐기는 게이 등 세상에는 다양한 게이들이 살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나의 변함없는 생각은 시스 헤테로 남성보다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이다.)
햇빛서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장 핫 했던 햇빛서점 부채일 것이다. (햇빛서점을 들어가자마자, 그 부채를 찾았지만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레즈비언인 내가 퀴어 퍼레이드에서 햇빛서점 부채를 처음 보았을 때, 사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것이 퀴어 퍼레이드 이후에 그렇게 핫한 반응을 가져올 것이라고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퀴어 퍼레이드가 끝난 후,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았을 때 신기했고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신기함은 호모포비아들이 말하는 혐오발언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게이들만의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레즈비언의 첫경험이라고 하면 좋겠다. 햇빛서점 부채는 사랑의 즐거움을 탐구하는 하나의 기발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즈비언도 이런 기발한 작품을 만들자라는 경쟁심이 생기기도 했다.
햇빛서점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잡지와 책이 눈에 띄었다. 게이 관련 서적 뿐만 아니라 LGBTI 관련 서적들도 많이 있었다. 특히 내가 궁금했던 ‘뒤로’라는 잡지를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호모포비아들이 ‘뒤로’ 잡지를 ‘공포의 게이잡지’로 폄하하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게 혐오 발언을 했다. 과연 그것은 ‘공포의 게이잡지’였을까. ‘뒤로’ 잡지의 주제는 군대였다. 군대에 대하여 잘 모르는 여성으로서, 뒤로 잡지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군대 내에서의 로맨스는 내가 겪은 것처럼 아련한 추억과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군대 내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묵살함으로 인해 나온 마찰과 고통이 전해지기도 했다. 나는 주위의 성소수자 친구들로부터 들은 군대 내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했다. 군대 내 로맨스와 위트하게 현실을 고발하는 글들을 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아가 내가 이를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 외 여러 가지 LGBTI 관련 서적을 보면서, 햇빛서점 사장님의 LGBTI인권에 대한 고민들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외국서적들도 있었는데, 이런 외국서적들이 소개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서점에 비치되어 있는 상품과 잡지들을 구경하던 중에,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들을 볼 수 있었다. 빨리 성정체성을 깨닫게 된 나로서는 자발적으로 남성의 몸과 성기를 본 적이 없다. (여고를 다녔기 때문에 보는 것을 당한 적은 많지만) 남성의 나체사진이 실린 잡지를 펼쳤다가 다시 닫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살면서 내가 이런 경험을 하다니...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햇빛서점 사장님 감사합니다.)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대상의 몸은 조금은 인위적으로 느껴졌고,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느껴졌다. 내가 본 적이 없는, 나와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그림과 같았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처음 만져 본 레즈비언’를 실험한 영상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 영상 속에 나오는 레즈비언과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잡지 속 남성의 몸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이고, 성적으로 끌리겠지만 내게는 특이하게 생긴 물건을 보는 느낌이었다. 당혹스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다니면 불편하지는 않을까?’라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운 이 물건(?)이 나에게는 불편함을 가져오는 물건으로 다가온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사랑의 다양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대상의 몸이 징그럽거나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사람의 몸은 아름다우니까. 비록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햇빛서점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과 잡지들을 감상하면서, 이런 서점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의 대형 서점 같은 경우, LGBT 섹션이 따로 있는데 우리만의 서점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햇빛’이라는 단어는 참 예쁘다. 우리는 열심히 사랑하는 존재이고, 이 거리에서 햇빛처럼 존재한다. 햇빛서점을 나올 때, 한 시스 헤테로 커플이 햇빛서점에 들어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살짝 쇼윈도를 쳐다보았는데 미소를 띄며 천천히 감상하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조금 기대가 된다.
※편집자 주: 햇빛서점 사장님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글에 덧붙입니다.
햇빛서점 사장님과의 인터뷰
Q. 햇빛서점을 열게 된 계기와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혹시 어려운 점들이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4년 전 오랜 방황 끝에 저 자신을 게이로 정체화 하고 나서부터 ‘나는 이제부터 정말 정말 즐거워야만 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황한 시간이 억울해서 하루 중에 한 시간도 빼놓지 않고 게이로 있고 싶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낮에 여는 게이업소도 있었으면 했어요. 제가 가고 싶어서 만든 서점이 햇빛서점인 셈이죠. 그래서 햇빛서점이 좀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돈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고, 인테리어는 친구가 도와주고, 디자인은 제가 하고, 모두 응원하고. 그래서 술술 풀렸던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Q. 햇빛서점에서 제일 아끼시는 책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남자친구가 소속된 ‘앞으로’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뒤로›라는 게이잡지를 냈어요. 너무 고생하면서 내는 것을 옆에서 봐왔기 때문에 저에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창간호가 나왔는데요. 주제는 “군대”입니다. 트랜스젠더의 징병과정을 그린 지도, 군대에서의 연애담 등 성소수자가 군대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느껴져요. 저는 왜 이렇게 야하지 않느냐고 칭얼댔지만 제 말을 안 들은 덕분에 아주 좋은 잡지가 나온 것 같아요.
Q. 최근에 ‘여섯’이라는 책에서 사장님의 ‘낯선 상대’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랜덤채팅에서 커밍아웃 이후의 반응들을 보면서 재미가 있기도 하고, 그냥 편견과 혐오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랜덤채팅을 하면서 혐오와 편견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저는 그 공간이 정말 솔직한 공간이라서 재밌었어요. 나 또한 전혀 거리낄 게 없이 얘기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한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아프지 않았어요. 직접적인 해가 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혐오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게 문제겠죠.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나의 직장 상사, 선생님,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 소름끼쳐요. 그런데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 해요.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즐겁기만 해도 부족한 나의 하루'니까요. 다 비켜주세요~ 이것이 제가 혐오를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Q. 현재 국내에서 성소수자 문화 컨텐츠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요새 성소수자 문화 컨텐츠를 생산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성소수자 문화 컨텐츠 다양화를 위해 햇빛서점만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점에서도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다양한 워크샵과 행사를 통해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최근 고추 그림 콘테스트를 열었는데, 고추 그림 콘테스트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립니다.
그냥 재미로 시작한 행사예요. 햇빛서점의 체크리스트 중에 하나였죠. '고추모양 뱃지 하나 만들고 싶은데,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곧 콘테스트가 나오고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에요.
Q. 마지막으로 햇빛서점의 미래 청사진은 어떤 것인가요? 사람들에게 어떤 곳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지금은 월세 등 많은 이유로 아주 작은 서점이지만 나중엔 좀 커지고, 책도 많아지고, 수많은 행사도 열려서 작은 커뮤니티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항상 즐거운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너무 많이는 말고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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