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희(노들장애인야학)
몇 주 전 서울시청에서는 서울지역의 장애인자립생활보장 예산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장애인이 지역에서 함께 사는 것은 비장애인이 독립해서 사는 것과 달리 ‘자립’이란 표현을 쓰지요. 말 그대로 지역사회에서 그녀/그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산 좋고 물 좋은 장애인 수용시설에 살거나 집안 방에서만 살았던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당당한 주체로, 우리 곁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 우리 일상에 등장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아주 긴 싸움을 해오고 있습니다. 분명 존재함에도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집에나 있지 왜 밖으로 나왔냐고 하는 손가락질과, 불편한데 열심히도 산다는 난데없는 칭찬과 시혜와 동정 속에서 우리는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권리라고, 어찌 보면 당연한 외침들을 여전히 입속에 꼭꼭담아 한 글자 한 글자 발음합니다.
예산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노들야학 학생인 지적장애2급의 ㄱㄴ언니와 저는 발언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언니는 시설에서 5년 전쯤 나와 한글을 배우러 노들야학을 찾았습니다. 국어와 수학만 공부할 거라며 다른 교과과목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복도에서 ㄱ과 ㄴ만 쓰던 언니가 이제 함께 발언도 하러 다니는 게 신기합니다.
ㄱㄴ과 맹
ㄱㄴ언니의 자립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언니는 시설에서 함께 살던 언니와 함께 나와 지금까지 자립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니는 글을 모르고 혼자다니는 것을 많이 무서워합니다. 글을 모르니 당연히 길도 모릅니다. 처음 야학에 올 때에도 야학 교사들이 등하교를 지원했지요. 여전히 언니는 집에서 노들야학까지 오는 길만 알고 다른 길은 전혀 알지 못해 누군가와 함께 다니곤 합니다.
이 언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장애인활동보조제도입니다. 하지만 ㄱㄴ언니는 서비스를 받지 못합니다. 기존의 서비스 자격을 측정하는 기준으로는 점수가 높게 평가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있는지, 밥은 혼자 먹는지에 대한 신체적인 평가기준이 많기 때문이죠. 지금은 한 달에 60시간 가량 활동보조시간을 받았지만, 예전에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 활동보조 없이 집에서 혼자 있다 화마에 휩쓸려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김주영동지의 사고 이후로 등급에 의한 기준이 3급까지 확대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는 않았습니다. 2014년 장애 3급을 받고 시설에 나온 지 얼마 안된 송국현동지는 침대 위에서 불이 났지만 한 발자국도 도망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광화문지하역사 2층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이 함께 살기위한 광화문농성장에는 억울한 죽음들, 단단히 기억해야할 사람들이 모셔지게 됩니다.
광화문농성장 선전물
ㄱㄴ언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날의 자리는 활동보조서비스 보장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언니가 혼자 거리를 다닐 수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었습니다. ㄱㄴ언니는 혼자 잘 다닐 수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언니는 혼자서 길을 다닐 수 없습니다. 언제 시설에서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오래 전’ 이라고 대답할 만큼 숫자와 글을 모릅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할 수 있었을까.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나는 잘한다’ 말하라고 배웠는데, 왜 이 사회의 복지 서비스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난하다”는 것을 부단히도 증명해야 하는가 말입니다.
광화문지하역사의 두 가지 과제 중 나머지 하나인 부양의무제도는 나의 가난을 증명해야만 받을 수 있는 제도의 끝판왕입니다. 부양의무자란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이야기 합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간이 해당됩니다. 기초생활수급비에서 최저생계비의 법적 정의는 국민기초생활법 제2조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입니다. 나라는 가난한 자들에게 이를 보장해야 합니다. 한데 이는 본인 개인에게만 기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더라도 소득 기준이 중위소득 이하인 사람에게만 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시설에서 살다가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나온 장애인이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할 경우, 부모소득을 통하여 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 판가름됩니다. 수급자가 될 수 없다면 가족과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두 가지 나쁜 제도를 없애기 위해 광화문지하역사에서 4년 째 농성하고 있습니다. ㄱㄴ언니는 아직도 이 농성장에 혼자 오지 못합니다. 곧 4월 20일이 되면 달력에 또렷이 적혀있는 장애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혜와 동정으로 묶여 있는 장애인의 시선을 거부하고 당당한 권리의 주체임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집회는 손가락 끝에 달린 심장 같은 거라고, 그래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며 싸울 때 그 손가락이 조금씩 떨려왔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리에, 그리고 농성장에 자주 들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우리 빛나는 우리 존재 파이팅입니다.
광화문농성장 선전물
•장애등급제는 지금?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2015년 6월-12월 사이, 기존의 1-6급으로 나누어져있던 장애등급을 개편한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1-3급까지’를 ‘중증’으로, ‘4-6급까지’를 ‘경증’으로 구분하는 내용을 골자로 중경 단순화 시범사업을 진행한 것입니다. 1월 26일 보도자료에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결과 “서비스욕구 파악을 통해 서비스를 연계하거나 정보를 제공하여 장애인의 복지 욕구를 대부분 해소하는 사업 효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본 시범사업은 장애인 복지의 근본적인 문제인 ‘장애등급’에 대해서는 전혀 접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그 어떠한 변화도 한계가 명확할 것입니다. 장애등급의 중경 단순화는 겉보기에 장애등급을 없앤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등급이 버젓이 살아 있는 거짓 행보이며, 장애등급제 희생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부양의무제는 지금? 정부는 2015년 7월 개정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으로 빈곤층 개별상황에 맞는 복지급여를 제공해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빈곤을 해소하겠다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빈곤을 해소하겠다는 목적과 달리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인 부양의무자기준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교육급여에 한정해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고 부양의무자의 재산·소득기준을 일정 완화하여 12만 명의 신규수급자를 발굴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이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사각지대에 처한 117만 빈곤층 1/10 수준에 불과합니다. 또한 실제 부양의무자기준의 재산·소득기준 완화로 12만 명이 신규수급을 보장 받았는지 통계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빈곤층은 실제 부양 받고 있지 않은 부양의무자의 존재만으로 마지막 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맞춤형 개별급여’로의 전환을 홍보했지만, 사람에게 맞춘 제도인지, 예산에 맞춘 제도인지, 정부의 입맛에 맞춘 제도인지 우리의 삶에서 바로 확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에 함께 하기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에 함께 해 주세요]
1. 단체라면?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으로 함께해요!
-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장애인들이 대상화되는 행사를 거부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알려냅니다. 또한 5월 1일까지,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구조를 철폐하기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투쟁을 진행합니다. 420공투단은 투쟁 기간동안 투쟁 계획과 실천, 공투단의 운영을 함께 논의하고 책임집니다.
*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 신청하기: https://goo.gl/qv4ScK
2. 개인이라면?
2016 420장애인권위원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청원인으로 함께해요!
- 입법청원인은 장애인 권리보장의 시대를 여는 ‘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을 함께 만듭니다.
입법청원인은 2016년 420 장애인권위원으로 위촉되어 장애인의 차별받는 현실을 알리고 지지하는 다양한 실천을 함게 합니다.
입법청원인으로 모아주신 기금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활동,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및 문화제, 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등에 사용됩니다.
* 420장애인권위원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청원인 신청하기: https://goo.gl/nDfC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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