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공모전 접수를 시작했다. 눈에 띄는 점은 공모분야에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항목이 표기되지 않은 것이었다. 지난해 장애와 성소수자,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던 신청조건은 찾아볼 수 없다. 청년과 노인, 노동인권을 적시해둔 것을 보면 허울 좋은 보편적 인권으로 포장한 시도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모전이 분야로 내건 인권은 민감하지 않은 사안들, 쉽게 합의 가능한 이슈들이다.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수위의 논제들만 다루고 있다. 논쟁적 이슈, 합의가 쉽지 않은 인권은 여지없이 인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삭제된 인권은 비시민, 사회적 소수자의 몫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방향을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부에서는 보수세력이 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하며 인권위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내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 중직에 혐오발언이력이 있거나 인권과 아무 상관없는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선동에 앞장선 최이우 비상임의원이나 인권관련 경력이 전무한 최혜리 상임의원은 박근혜정권이 추천한 인사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사회질서를 망가뜨리는 위협세력으로 꼽히지만, 내적으로는 반인권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린 지 오래다.
인권단체를 둘러싼 문제는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차별과 혐오의 사안에 대해 연달아 기각하고 각하하는 태도로 도드라진다. 단적인 예가 최근 기독자유당 진정 각하이다.
지난 5월, 3195명의 성소수자, 무슬림, 이주민 당사자와 그 가족을 비롯한 시민들과 62개 단체는 기독자유당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했다. 20대 총선 당시 소수자 차별을 공약으로 내걸며 정치세력화하는 데 제동을 걸고, 참담한 인권현실을 바꾸기 위함이었다.
기독자유당이 어떤 집단인가. 이들은 종북과 이슬람 척결을 국회와 거리를 막론하고 보란 듯 선전한다. 동성애자를 더러운 좌파로 부르고, HIV/AIDS 질병당사자를 세금도둑으로 부르던 이들의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대중의 오랜 정치적 환멸 위에 보수정권과 재벌, 보수기독교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 소수자들을 밀어내는 전술을 밀어붙이며 기존 위계와 규범을 극단적으로 강화했다. 소위 전문가 집단양성을 너머 혐오를 정치화하겠다고 나온 세력이다. 이들은 수구 우익 정권의 추천과 지원을 뒷배삼아 성장하며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협하고 이들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혐오와 배제에 기대 표심을 얻고 노골적으로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공약을 내세우는 이들을 우리는 혐오세력, 차별선동세력으로 불렀다. 겨우내 외쳤던 적폐청산의 대상은 우리를 소수자로 부르며 생존의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이들이었다. 기독자유당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온‧오프라인에, 집회와 거리 위에 저들이 얼마나 반인권적인가를 알리고, 차별에 반대하는 거리 위의 목소리들을 모았다. 거리 위의 활동은 곧 그간 가시화되지 않고, 연민과 부정적 존재로 아로새겨졌던 성소수자의 얼굴을 알리는 활동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기독자유당을 반인권 집단으로 지적한 성소수자들의 진정을 받아든 인권위원회의 역할은 중요했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발굴하는 것이 인권위의 책무였다. 하지만 결정은 변화에 역행한다. 아니, 인권위 스스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보란 듯 부정한다.
인권위 결과에 따르면 기독자유당의 반인권성은 인권위법이 규정하는 차별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문이 제시하는 인권위의 차별영역은 ‘고용영역, 재화‧용역 공급‧이용영역, 교육‧훈련영역’에 한정된다. 성소수자와 무슬림에 대한 차별 따위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권위법이 제시하는 차별의 영역은 저들이 공문으로 전하는 범주에 한정되지 않는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만 하더라도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을 포괄한다. 이번 각하결정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들 항목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차별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명명백백 밝히기는커녕, 자신의 규약을 스스로 져버리며 인권위의 해체를 외치는 이들의 손을 들어준 꼴이다.
인권위는 이번 진정을 각하하면서 ‘정책권고 등의 조치가 필요할지라도 자신들이 혐오표현문제에 대한 대책마련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를 붙였다. 그렇다면 좋다. 당장 혐오표현에 대해 마련된 대책을 내놓으시라. 적어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인권위가 어떤 노력을 하고있는지 설명하란 말이다. 인권위가 마련코자 강구하는 대책의 항목에는 어떤 인권이 있는가. 혐오표현에 가장 쉽게 노출된 사회적 소수자들을 인권의 대상으로조차 넣지 않는다면 인권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쉽게 합의할 수 있고 이미 합의된 사회적 구성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변화의 시류를 역행하는 꼴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 와중에 인권에 대한 차기 대권후보들의 입장은 심히 우려된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 방패삼아 제 인권의식 결핍을 차폐한다. 반인권으로 물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소수자의 인권보장에 대한 대통령의 책무를 져버릴 수 있는 허울 좋은 핑계가 되었다. 차별금지법 논란이 내용 이상의 과중한 무게를 갖고, 정치인들이 인권에 대해 무게 이상의 부담을 갖게 된 데에는 기독자유당을 비롯한 차별선동세력의 전방위적 집단행동을 무시할 수 없다. 안팎으로 행해지는 반인권의 담론 위에 인권이 후퇴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인권의 후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쌍끌이하는 형국은 개탄스럽기만 하다.
차기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 뿐 아니라 반인권으로 물든 인권위에 인권의 제자리를 잡게 해야 하는 과제를 안는다. 당신들은 촛불이 만든 변화 위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감히 인권을 위계화하고 다른 기관에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는 자신의 존엄과 인권을 요구하는 변화의 노력 너머의 과제가 드리운다. 혐오세력, 차별선동세력으로 불러온 수구 우익정치에 대한 청산을 요구할 뿐 아니라, 적폐가 되어버린 인권기관까지도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을 주관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이주민과 빈곤, 차별과 배제에 내몰리는 모든 이들이 그토록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삭제된 존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항목에 없는 인권일지라도 성소수자는 노동자로, 청년으로, 노인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인권에 대한 의지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임을 알기에- 인권의 본질은 합의된 인권 너머 삭제된 삶에 눈을 맞추고 사유하는 것이다.
적폐 앞에 인권을 합의대상으로 미뤄버린 대통령, 쉬운 인권만 인권으로 삼으며 여타의 인권을 부수적인 사안으로 격하하고 지워버리는 국가인권위원회는 필요 없다. 대통령선거운동의 시작을 앞두고 성소수자들이 요구한다. 아니, 대통령선거는 시작일 뿐이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소수자는 사회의 변화를 끝까지 만들어낼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동성 결혼 법제화를 요구할 것이다. 군형법상 동성애처벌법과 에이즈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금지법안 폐지를 외칠 것이다. 트랜스젠더 성별정정기준 완화와 보험적용을, 성교육표준안의 폐지와 성소수자 인권에 기초한 교육을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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