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지난 10월 13일, 충남 인권조례와 관련한 포럼이 열렸습니다. 충남 인권조례는 '성소수자', '성적지향', '성평등' 등이 표현들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제정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행성인 회원 민지희님이 해당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하여 인권조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민지희님의 토론문과 토론 후기를 공유합니다.
[토론문] 성소수자의 인권, 지금 시점에 되짚어봐야 할 문제들
민지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경북 포항시, 충남 아산시 등에서는 인권 조례 통과가 난항을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통과 반대 사유는 ‘성소수자’, ‘성적지향’, ‘성평등’ 등 주로 성과 관련된 표현들이 ‘동성애’로 표현되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조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해당 표현이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대 사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인천의 경우엔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특성상 이슬람문화 등 다문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되어 본회의에서 무산되었다. 반대사유가 그대로 수렴이 되고, 해당 조항들이 실제로 삭제가 되거나 자진철회가 되는 이 시점에 인권이라는 개념이 왜곡될 위험에 처해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지금 인권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가 인권을 말할 때 모두가 동의하는 대전제는 인간의 존엄성일 것이다. 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권 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항목이 빠진다는 것은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권리의 침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인식과 인간의 존엄성이란 전제를 우리가 받아들인 상태에서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인권조례제정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성소수자 관련조항의 삭제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대전제를 흔드는 문제가 된다. 반대세력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인권은 특정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특정집단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 대전제를 지켜 구조적 평등을 맞추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조건부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문제 삼아 조례제정을 반대하겠다는 주장은 인권조례제정이 필요한 시민들 내부에서도 적대적인 구도를 만들어 갈등을 야기시키고, 연대의 분열을 조장한다.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읽고 절대로 물러 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한다. - 동성애 찬성/반대의 프레임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반대세력에 의해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성평등 관련 조항은 “동성애 찬반문제”로 대표화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적대성을 드러낼 때에도 동성애 찬반의 여부로 인해 가장 크게 선이 그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시민들의 대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의 논의가 이렇다보니 일상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동성애 찬반 토론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 프레임이 전제하고 있는 그대로 찬성표와 반대표를 던지며 그에 합당한 근거들을 나름대로 나열하게 된다. 하지만 그 근거들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떠나 동성애 찬반 프레임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논의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이 프레임은 이 사회가 동성애를 허용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관용과 인정의 성격을 갖게 한다. 동성애는 사회적 인정을 필요로 하는 허용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정체성이 불허되는 것은 보편적으로 누려야할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허용의 문제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변명의 빌미를 제공하는 효력을 갖게 한다. (한편으로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에 근거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할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젠더이분법에 근거해 ’정상적‘이라 일컫는 이성애를 수행하지 않는 시민들은 보장받아야 할 사회적, 제도적인 보장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그러한 부당함에 대해 문제제기 하며 동성애 찬반이 아니라 권리의 침해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두 번째, 성적지향·성별정체성·성평등 조항은 동성애뿐만 아니라 더 깊고 다양한 사유를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 섹스와 젠더는 타고나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규범적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운 인식과 접근법을 가질 수 있는 사안들은 실로 다양하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성규범은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한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전 사회적인 영역에서의 차별과 평등권 침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한국 LGBTI인권현황 2016 보고서“를 참고) 성별정체성·성적지향·성평등과 같은 포괄적 논의를 포함하고 있는 문제를 동성애 찬반 문제로만 축소하고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 조례제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인권조례를 제정한다고 해서 차별이 바로 그 시간 이후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조례제정이 되더라도 사회적 낙인이 여전하다면 제도가 아직 포착하지 못했거나 우회하는 형식의 차별은 얼마든지 계속 생겨날 수 있다. 조례제정과 더불어 지자체에서는 본연의 의무와 책임을 갖고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다양한 인권 관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동성애 공포와 혐오를 촉발시키는 HIV/AIDS에 대한 잘못된 지식들을 바로 잡는 것, 동성애/동성혼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와 가족구성이 가능하다는 것, 문란함으로 명명되는 다양한 성애에 대한 편견,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등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무엇이 차별과 혐오인지에 대한 인식이 공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기관에서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특히 공공기관의 공무원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차별로 인한 폭력에 부당함을 호소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이중으로 차별을 겪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의 부당함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을 때 사회적 소수자들은 구조적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내면화시키게 된다. 사회의 평등을 실현할 의무가 있는 공적인 기관으로서 차별로 인한 부당대우가 행해 졌을 때 개인에게 그 책임을 돌린 것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 인권 조례에서 성소수자 항목 등이 삭제된다는 것은 우리의 어떤 가치를 훼손시키는가.
지난해부터 각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각종 인권조례안이 표류 혹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상황도 많이 다르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박병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생인권조례안은 두 번의 유보 결정이 내려지면서 재추진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구체적인 충청남도의 인권조례 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충남도는 2012년 5월 인권조례를 제정한 이래로 2013년 서산을 시작으로 도내 15개 시·군도 모두 인권조례를 제정했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일부 보수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인권조례 폐지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공주·부여·서천·서산·아산·당진에서도 조례 폐지 청원이 접수되었고 논산은 시의원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건 계룡시에서 인권조례를 대표 발의한 김미경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이렇게 시끄러울 줄 알았으면 심사숙고해서 발의했을 것이다.”라며 자신이 발의 한 인권조례를 스스로 폐지를 약속하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내가 이번에 참석한 토론회도 본 예정대로였다면 충남도청에서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또 다시 반대세력들이 ‘성소수자’ 항목을 문제 삼아 토론회가 취소되어야 한다는 민원이 빗발쳤고, 도청은 그 의견을 수렴하여 해당 항목을 빼지 않는 이상 대관해주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하며 결국 대관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토론회를 주최하였던 충남인권교육활동가 모임 ‘부뜰’은 인권조례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이와 같은 입장을 보이고 대관을 취소한 충남도청을 규탄하는 동시에 다른 자리에서라도 이 토론회를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와 함께 10월 13일 아산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실에서 ‘인권조례가 살아 숨 쉬는 지역사회,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사자로 토론회에 참석을 할 예정이었고, 추석동안 토론문을 작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가며 아직 입에 붙지 않은 어색한 단어들을 더듬거리고 고심을 했는데 사실 쓰면서도 그렇고 지금도 이 토론문에 대해서 상당 부분은 내가 잘 소화하고 있는 언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마구 모자이크 해놓은 것 같다는 회의가 들고 있다. 그래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음 뭐 어쨌든 토론문은 나의 손을 떠났고 이제는 토론회만 잘 하자는 마음이었다. 토론회를 참석하기 이전에 연락받았을 때, 또 다시 혐오세력이 이 자리에도 올지 모른다는 주의사항(?)을 전달 받았고, 나는 차라리 한번 마주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토론회 당일 온양온천역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내내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을까를 반복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비장한 마음의 농도와는 아주 다르게 싱겁게(?)도 그들의 격한 환영은 없었으며 토론회 자리에 오신 분들 대부분이 인권이 가진 의미를 모두 잘 공유하고 있는 상태여서 매우 온화한 토론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화로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자리에서 토론을 끝마치고 난 이후에 몇 가지 깊은 고민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체 토론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내 차례에 앞서 발제와 토론을 해주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성평등이 계속 문제로 대두되고 그로 인해 조례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권의 가치를 어떻게 유린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껴 토론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성소수자들이 겪는 지역에서의 문제들을 위주로 얘기했다.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사회 전반적으로 겪게 되는 현실은 사회적 고립인데 지역으로 갈수록 관계망이 훨씬 더 좁기 때문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당사자운동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요지였고, 조례제정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회의 성인식이 재발견·재발명 되어야 사회적 낙인들이 혐오의 정치언어로 선동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했다.
“토론문에 성소수자나 성적지향·성정체성·성평등 이라는 말을 쓰셨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나는 설명하기 위해서 남성·여성, 이성애 외에 다른 성정체성·성적지향 등을 나열하고 젠더이분법이라는 말을 써가며 열심히 설명한답시고 아등바등 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볼 수 있었듯 그런 언어가 사람들에게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미끄러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자리는 토론회의 자리였지 이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자리가 아니었지만 나는 혼자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만 말이 공중에서 떠다니는 것 같고 외롭게 블랙홀 속으로 빠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의 혼란을 느끼셨는지 자리에 계셨던 다른 분들이 말을 보태주셨지만 약간씩은 내가 설명하려는 바에서 벗어나 있었다. 모르지 않는데 왜 전달하기는 이렇게 어려울까? 나는 가장 최근의 관심사인 공공의 언어 즉 개념어에 대한 생각을 얼핏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참석한 분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들으면서 퀴어라는 이 인식틀이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의제를 사유하게끔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동성혼 또는 성별정정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 문제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것에 문제를 느꼈다는 것이고 나아가 퀴어가 성적 취향과 개인만의 문제로 어딘가 덩그러니 분리되는 것이 이러한 문제 축소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남인권교육활동가 모임 ‘부뜰’에서 주최한 행사여서 그런지 교육자인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인권을 알리고 교육하는 교사들이 가진 고민들 역시 들을 수 있었는데 인권이 기술처럼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완전하게 획득되는 것이 아니어서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내면화된 것들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는 차별적 발언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얘길 해주셨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것과 교육도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된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정확하게 알려진 지식에 바탕을 두지 않고 거의 판타지에 가깝게 설명된다는 점과 내용이 전반적으로 성별/젠더 이분법에 기반하여 성역할을 고정하고 정상성을 공고히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 참여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처럼 청소년/학생의 섹슈얼리티는 전반적으로 금기시 하면서 잘못된 성지식을 의무교육이라는 장에서 교육하는 것은 정상적인 성이라는 기준을 주입받아 혐오의 내면화에 기여한다는 점 역시 알 수 있었다.
토론회를 잘 했는지 모르겠다. 시간상 마무리를 하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를 되뇌었다.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단순한 의지만으로 여기에 왔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누군가에게 잘 전달해지 못했을 때 나는 그것을 정말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들도 켜켜이 쌓인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온양온천으로 향하면서 역 앞에서 적극적으로 동성애 반대 서명을 시민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노인들을 보았다. 여기에서도 또 몇 가지 생각이 스쳤고, 나의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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