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0월 28일 <촛불 1주년 - 인권궐기대회>가 종로 보신각에서 열렸다.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 +, 공권력감시대응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페미몬스터즈,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등 인권 운동을 하는 여러 단위들이 공동으로 주최했고 200명 가량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유진 님의 사회, 박미애 님, 윤남님의 수화 통역으로 진행된 인권 궐기대회는, 그 이름답게 시작부터 높은 인권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무대임에도 경사로가 준비되어 있었고, 묵념을 할 때, 일어서는 것이 편한 사람은 일어서거나 각자의 경건한 방법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어 설 수 없는 사람을 배제시키지 않았다.

 

 

촛불 1주년.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청소년 참정권이 요원한 만큼 여전히 차별받고 배제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촛불 1년을 맞이하여 인권의 현실을 알리고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었다.

 

첫번째 발언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수환 님의 발언이었다.

 

 

 

촛불 1주년이라고 합니다. 함께 모여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소수자인 저에게는 지난 1년 동안의 시간이 그리 축하할 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긴 겨울을 거리에서 보낸 우리가 촛불대선을 기다리며 마주한 장면은 동성애에 찬성하냐는 한 대통령 후보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른 후보의 반응은 동성애가 싫고, 반대한다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한 대답이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대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합의가 필요하다는 앞뒤가 안 맞는 말. 한 사람의 존재가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 전락하고, 사회적 합의의 대상,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리는 촛불집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았습니다.

우리는 올해 공식적으로 범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을 지시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A대위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A대위가 유죄판결을 받은 날, 멀지 않은 나라 대만에서는 동성혼이 합법화되었습니다. 저 멀리 서양에서만 들려오던 소식이, 마침내 가까운 대만에서도 들려온 것인데, 어쩐지 우리는 충분히 기뻐하지도, 마음껏 설레지도 못했습니다.

최근의 국정 감사에서는 어땠습니까. 동성애가 국방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야기, 동성애자의 위험한 성관계가 HIV/AIDS를 퍼트리고 복지예산을 축내며 '에이즈 테러'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갔습니다. 혐오 선동으로 유명한 호모포비아들이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기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선정적인 언론 보도까지 보면서, 가만히 이 삶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촛불 1주년에 왜 청와대로 행진을 하냐고 묻습니다. 왜 아직도 집회하고 시위 하냐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정말 오늘이 촛불 1주년이 맞냐고요. 우리는 매일 촛불을 듭니다. 매일의 삶이 투쟁이고 싸움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그렇고, 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주민들, 아무리 애써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민들, 부조리함에 저항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가 그렇고,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대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정말 기념해야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지난 겨울 광장에서 느꼈던 뜨거운 연대의 모습일 것입니다. 촛불을 든 그 누구의 목소리도 배제하지 않으려고 다같이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말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마이크가 건네졌고, 모두가 촛불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때의 염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더 후퇴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안에 있는 힘, 그리고 우리가 함께할 때 생겨나는 힘을 믿습니다. 점점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직장 동료에게, 친구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솔직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커밍아웃은 가장 뜨거운 연대입니다. 내 가장 약한 부분을 보이면서, 당신과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손을 내미는 용기입니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 더불어민주당에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요. 과연 성소수자들에게 연대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그런 용기가 있느냐고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얼른 준비를 하는게 좋을 겁니다. 우리는 더 많이 커밍아웃하고, 더 많이 연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발언은 홈리스 행동 림보님이 발언해주셨다.

 

 

홈리스 인권은 한마디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3년간 일을 했던 직장에서 IMF가 터지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가정도 해체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 길 찾기 위해 새벽에 노가다도 나갔지만, 한달 동안 번 게 25만원. 그것으로 한달 동안 살 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노가다에 나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루 일자리를 얻는 것도 운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지방에 일이 있다고 나온 것이 서울역 거리였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갈 곳을 찾다가 거리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남대문 시장 회현 역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고, 홈리스 일자리 창출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평범한 안전모를 쓰는데 홈리스라고 해서 들어온 사람들은 안전모에 노란 테두리가 걸려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시킬 때마다 괄시하고 멸시하며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2016년 저는 기초수급 신청을 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님의 재산이 기준에 오버가 되었다고 해서 수급에 탈락되었습니다. 그로인해 현재는 2010년 겨울부터 자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겠다고 하였으나 2018년에도 폐지한다던 부양의무제 기준은 2018년 10월 시행으로 2019년 중증 장애인, 노숙인, 노인의 부양 의무자인 경우 소득 기준을 완화한다고 하였으나 2022년으로 미뤄졌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생계비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지금 현재 저는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은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래 5월에 ‘서울로 7017’이 개장되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데 홈리스들은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는 조례를 제정하였습니다. 주요 내용은 구걸 행위, 노숙 행위 등 통행에 방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과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숙 행위, 구걸 행위 등은 통행에 방해되는 행위에서 폐기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거리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빈곤층과 거리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모인 시민들과 홈리스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잘 살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달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12월 22일 날 동짓날에 거리에서 돌아가신 노숙인들을 위한 추모제를 합니다. 그때도 많이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홈리스를 차별하지 말라! 홈리스도 사람이다 인권을 보장하라!

 


행성인 몸짓패의 연대 공연 후 이어진 세번째 발언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상희 님의 발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등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김상희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발언자 제안을 받고 지난 1년의 기억을 되짚어보았습니다. 주마등 같은 기억들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 기준, 장애인 수용시설의 완전 폐지를 위해 5년 동안 지켜왔던 광화문 농성장인 것 같습니다. 5년의 세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며 지켜왔던 광화문 지하 농성장. 박능후 복지부장관으로부터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 그리고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목표로 하는 계획을 세우고 논의를 하기로 약속 받으며 2012년 8월 21일 시작했던 광화문 농성을 지난 9월 5일 1842일을 끝으로 중단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언론에서는 엄청난 변화와 성과가 일어난 것처럼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서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에 일어난 성과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도 상식도 통하지 않았던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비해 아주 조금 말이 통하는 것일 뿐, 진작 오래 전에 있었어야 될 변화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변화가 있기까지 수많은 장애인 동지들의 피눈물로 새겨진 역사와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워왔던 동지들의 투쟁도 있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복지제도는 알아서 만들어진 적이 없습니다. 온몸으로 투쟁하고 저항하여 잘못된 정책을 바꿔내고 권리로서 보장받아야 될 제도가 하나씩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정책과 제도가 생겨나도 아직 사회적 약한 사람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상황들까지 뿌리뽑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동지들과 저는 아직 이 사회가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지금도 제가 길을 지나면 가끔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쌍한 아가씨가 어쩌다 쯧쯧” 이라는 말을 듣고 먹고 싶은 음식보다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계단 없는 음식점을 찾아 다닙니다. 이것은 제가 일상으로 경험하는 차별이고 혐오입니다. 또한 제가 장애인권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촛불 1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저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억압과 차별 받는 사람들이 있었던 촛불과 적폐세력들이 망쳐놓은 국가를 바꾸기 위해 들었던 촛불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저는 1년이 지났지만 광화문 일대를 가득 채웠던 촛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촛불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꺼뜨리면 안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강한 불씨로 환하게 비춰서 다시는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늘 촛불을 들고 현장에서 투쟁하며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번째 발언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잇을 님 발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잇을이라고 합니다. 저는 올 가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퀴어여성네트워크에서 제1회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0월 21일에 예정대로 라면 개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회 장소인 동대문구 체육관에게서 저희는 대관을 취소통보 받았습니다. 대관 담당자가 전화하여 “항의 민원에 시달린다. 동대문 구청에서도 이를 문제삼고 있어서 자기는 중간에 끼었다. 대관을 취소할 근거가 있다. 미풍양속에 저해되고 반대 집회가 열리면 시설 안전 관리 상 위해 우려가 있어서 취소할 수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대관을 취소한다는 전화 통보가 왔습니다. 천장 누수공사를 10월 21일에 하게 되었고 연내에 저희에게 대관해줄 수 있는 날은 없다고 했습니다. 관계자들과 면담을 했지만 “야외에서 하면 어떠냐. 이미 확정된 공사를 대관 담당자가 몰랐다. 실수였다. 양해 바란다.” 라는 무책임한 말들만 반복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부재중 전화를 남기고 ‘왜 전화를 안받느냐’고 그쪽에서 저희를 질타해가면서 ‘대관을 취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런 말들을 흘릴 때, 사실 그 모든 게 대관 취소라는 답을 정해두고서 우리를 모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것은 그 면담의 시작에서 그들이 우리를 쳐다보던 눈빛과 자세였습니다.
생활 체육에서도 성별에 맞는 몸가짐과 능력이 있다고 강요되면서 우리는 운동장을 빼앗기거나 몸의 모습과 움직임을 조롱당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고 집중하기보다 그로부터 배척당하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여성 성소수자가 즐겁게 뛰놀자는 마음으로 준비한 게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 였는데, 그 대회를 위해서 또다시 가장 먼저 성 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에 맞서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를 지난 10월 18일에 했습니다. 궐기대회를 정말 자주하죠? 그런데 궐기대회를 저희가 2015년에도 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인권보호조항을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했었기 때문입니다.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것이라면서 성소수자를 배제했고 이미 제정되었던 성소수자 인권보호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우리를 둘로 나눌 수 있습니까? 그때도 질문했고,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성평등은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에게도 우리는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편의상 나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의사를 묻지 않고 1번과 2번 가운데 하나로 분류한 체제로부터 때로는 국민으로 포섭되고 때로는 국민에서 내쳐져 왔습니다. 때로는 삶의 핵심적인 정체성부터 바꾸기 어려운 조건들까지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가임기 자궁’ 취급 당하지만 평등을 말할 때 만은 우리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단서 조항을 붙여서 논의에서 내쳐집니다. 여성스럽기를 요구하고 또는 단지 여성임을 인정하기 위해서 높은 비용의 미용과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과도하거나 또는 문제적인 여성성인 것처럼 비난하는 이중 메시지를 보냅니다 우리가 성차별에서 빗겨나 있습니까? 우리가 성소수자로 드러날 때만 그 어떤 보호에서도 우리를 제외하는 것은 성차별이 아닙니까?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해석하는 관점을 취할 때, 그 말은 가끔 우리가 성소수자임을 버리면 그 누추한 양성평등에 포함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 테두리 바깥에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기만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저울질 되어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상황은 물론 항상 좋지 않았고 많은 것을 변화시킨 지난 1년 동안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촛불을 들 때, 우리는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라 내용을 바꾸고자 했고 나를 대표해주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모욕적으로 살 수 없어서 나섰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흘렀고 좋아진 것도 있다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대관 취소 직후에 정말 많은 분들로부터 ‘차별금지법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한테 차별은 이렇게 내 일상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에 계속해서 맞닥뜨리고 진저리나게 체감되는 것입니다.

개혁과 혁신을 말할 때, 이런 일상에서 우리들이 겪는 차별을 꼭 같이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대관 취소 이후에 저는 모금함 댓글란에 있는 응원 댓글을 읽으면서 많이 힘을 냈는데요. 혐오댓글도 많았지만 응원 댓글을 남긴 분들 역시 그 혐오댓글들 남긴 것을 보면서도 그렇기에 더욱더 응원의 말들을 많이 남겨주셨습니다. 저는 또 성소수자들이, 레즈비언들이 하는 체육대회는 아예 못하게 해야 한다며 항의 전화를 부추기는 인터넷 글들도 발견하고 또 여러 번 읽어보면서 생각해보았는데요.  우리가 튀어나온 못처럼 세상에 자꾸 드러날수록 혐오를 더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내가 몰랐던, 있는 줄도 몰랐던 우리 편을 더 만나게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내에 개최하지 못하게 된 체육대회는 내년 4월에 반드시 더 잘 치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서 더 잘 해낼 것입니다. 순조롭지만은 않지만 그것이 우리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계속 싸웁시다. 계속 이야기 합시다. 퀴어 여성이 궐기하면 세상이 변한다!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발언은 청소년 인권연대 추진단의 김윤송님의 발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탈학교 청소년이자, 청소년 노동자이고 청소년 인권연대 추진단에서 활동하는 김윤송이라고 합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며 교사에 의한 폭력과 인간으로서 모멸감이 드는 각종 두발, 복장 규제를 경험하면서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게 된 이후에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차별과 하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불안정한 아르바이트 밖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저에게 동의도 없이 반말을 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기특하네. 하지만 네가 뭘 알겠니.”라는 식의 말들을 듣습니다. 투표는 물론이고 정당 가입이나 선거 운동마저 현행법상 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저를 시민으로 대접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박근혜 퇴진 촛불에 함께했습니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촛불 시민이 승리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막상 청소년의 삶에는 변화가 없다고 느낍니다. 청소년도 같이 만든 촛불 대선인데 청소년은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탄핵은 같이 했는데, 선거에서는 배제되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체벌을 당하고 헤어스타일 때문에 처벌을 받고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합니다. 청소년이 선거에서 표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청소년의 인권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청소년의 삶에는 촛불 혁명이 일어나지 못했기에 저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학생 인권 법, 어린이 청소년 인권 법 제정을 위해 ‘촛불 청소년 인권 법’ 제정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만 18세 선거권 요구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만 14세 입니다. 만 18세는 한국 나이로 19살, 20살이고 청소년의 극히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한살이라도 현재보다 낮춰야 하지만 만 14세인 저 또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저의 의견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 저는 살고 싶습니다. 저는 존중 받고 싶고 인간답게 살고 싶고 시민으로 대우받고 싶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인권을 누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존중 받고 행복하고 싶습니다.

 

 

 

 

 

아는 언니들의 공연을 끝으로, 인권과 평등의 염원이 담긴 공을 뒤에서 앞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선언문을 모두 함께 읽으며 궐기대회가 마무리 되었다. 선언문의 내용도 멋있었지만, 선언문을 읽을 때 보통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요청 받아왔는데,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바로 행진을 갈 수 있는 자세’로 선언문을 함께 낭독해 달라고 요청 받았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이다. 발언 내용과 함께 많은 감동을 받아서 전문을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공유한다.

 

 

우리의 선언


우리는 성소수자이고 장애인이며 청소년이고 홈리스이자 여성이며 나중으로 밀려난 모든 사람이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 말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우리의 삶이 그대로라면 세상도 그대로다. 민주주의는 혐오와 함께 갈 수 없으며 빈곤과 폭력의 철폐는 아직 약속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인권은 몸 뉘일 집이고 따뜻한 밥이며 웃은 담은 인사이고 맞잡는 손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상식과 우리는 모두 동료 시민이라는 약속이 인권이다. 인권이 위태로울 때, 촛불 혁명은 완수될 수 없다. 우리가 인권을 누리는 만큼 민주주의도 전진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답게 사람답게 살겠다는 도전을 멈출 수 없다.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 빼앗기고 쫓겨나지 않는 세상, 누구의 삶도 유예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외치자. 인간답게 살아보자!


2017년 10월 28일

촛불 1년 인권 궐기대회 참가자 일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