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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미소가 떠나지 않던 날

by 행성인 2009. 7. 6.
2009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2.


 

친구에게 물어봤다.


“넌 ‘인권’이나 ‘인권운동’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난 좀 부정적?”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권운동이란 이런 이미지 아닐까. 오랜 기간 억압을 받아온 듯한 표정과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어둠의 세계에서 하는 그 정도의 일. 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실제가 괴리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권운동을 비롯한 각종 운동의 지나친 비장함은 그런 이미지를 생성해내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해왔었기에, 이번에 처음 참석해본 퀴어문화축제는 나에게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운동과 즐거움은 하나가 될 수 있구나. 시종일관 화려하고 유쾌했던 그날의 축제 속에서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축제를 통틀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나? 하고 나에게 묻는다면, 난 단연코 게이시대를 꼽겠다. 흐흐. 중고등학생 게이들로 구성된 게이시대의 깜찍 발랄한 무대를 보며,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그리고 흔해빠진 이성애자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열광했다. 어쩜 저리도 요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역할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자의적으로 부과한 것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남자들이 소녀시대를 보며 느끼는 감동을 내가 여기서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퀴어문화축제 역사상 십대들이 공연한 것은 처음이라는데, 그들은 가면이나 마스크 하나 쓰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의상과 안무와 무대매너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그들에게 다시 한번 흑심 그득한 앵콜!


무지개 빛으로, 핑크색으로 치장한 트럭이 앞장선 퍼레이드는 대한민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흥겨운 음악소리에 맞춰 트럭 위 사람들이 춤을 추며 리드를 했고, 나는 성소수자 차별반대라고 써 있는 손팻말을 들고 들뜬 마음으로 뒤를 따라갔다. 강렬한 오후의 햇살에 가뜩이나 검은 피부 그을릴까 하는 걱정은 뒷전이었다. 그만큼 신나기도 했거니와 내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들을 대표하는 퍼레이드를 따라서 서울 시내 한복판을 당당히 휘젓고 다니는 그 쾌감이란!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구경을 했고 건물마다 창문에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축제가 즐겁고 이색적이었던 만큼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 찍어라 찍어. 이렇게 유쾌한 축제를 즐겁게 본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대한민국의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램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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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가지 눈 여겨 봤던 것은 축제에 참가한 수많은 외국인들이었다. 새벽 한시의 홍대나 이태원 클럽도 아니고,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이 대목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 가지는 퀴어 문화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퀴어문화축제의 홍보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퀴어 문화자체가 정서적으로 국내 여타문화와는 다른 궤도에 놓여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 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런 면에서 나는 풍물패 공연을 긍정적으로 봤다. 앞으로도 한국적인 색깔이 물씬 나는 퀴어 문화 축제를 열어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가지는 홍보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 축제를 찾아오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어떤 연유에선지 모르지만 홍보가 널리 되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특정 몇몇 커뮤니티 밖으로 이축제가 널리 알려지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만해도 친구에게 퀴어 퍼레이드에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퀴어가 뭔데?"하는 대답에 더 이상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물며 실제로 성적소수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오바스럽게 해석하는 걸 수도 있지만 홍보가 미흡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축제란 모름지기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참여하여 즐기는 게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선 널리 홍보가 되어야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을 것 같다. 촬영거부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던 사람들을 보며 축제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일 게다.


이 글을 쓰면서 토론토에 사는 친구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캐나다의 공무원인데, 자기 상사가 게이이며 소방원들이 지나갈 때면 hot하다며 엄청 좋아하더라는,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회사 인트라넷을 검색해보면 프로필에 happily married to his partner, Jim 이라는 문구도 써 있단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유쾌한 축제를 통해서 무관심한 일반인들에게 인권운동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척박한 한국 땅에서 인권을 위해 꾸준히 일하는 모든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그리고 이성애자들에게 작은 지지를 보낸다.




김민영 _ 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 (club.cyworld.com/d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