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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퀴어문화축제를 가게 되기까지...

by 행성인 2009. 7. 6.
2009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3.


 

내가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참가한 것은 2007년, 바로 재작년.

그 때 나는 라틴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가경위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라는 카페에 올라온 퀴어문화축제 개최공지를 보고 참가했던 것 같다.

거기서 ‘아수나로’ 회원이자 라티너인 해밀을 만났고, 그로 인해 퍼레이드에 처음 참가했음에도 적응을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시로부터 2년 전(2005년) 나 자신의 첫사랑이 여자였음을 까맣게 잊은 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성애자'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잠시 다른 얘기로 그것도 슬픈 얘기로 빠지자면, 난 첫사랑에 첫 아웃팅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신성시 여기는 성당 안에서 난 첫사랑을 보았고, 그곳에서 첫 아웃팅을 당했었다. 그 사건이 있고 성당의 어떤 중고등부 사람은 ‘혹시 너 엄마하고만 지내서 그런 거 아니냐?’ 하는 어이없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기도 했었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하고만 지내는 한부모가정이다.) 그 이후로 그 성당에는 발길조차 주지 않고 있지만.


 재작년 축제에 참가해서, 난 설치되어 있는 여러 부스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나서 아수나로 사람들과 같이 퍼레이드 행렬에 함께 했는데, 우리가 거리로 나섰을 때 주위에 몰려든 일반 시민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를 그냥 피해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난 용기를 내어 한바퀴를 다 돌고 말았다.

그 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런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지낼 수 있다니.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도 너희들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우리도 너희와 다르지 않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다만 상대가 너희는 이성이고, 우리는 동성일 뿐이라고. 아마 너희들 중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자신이 없을 뿐이야!" 라고 외치고 있었다. 당당하게.

그리고 그 마음은 재작년뿐만 아니라 작년, 심지어 올해에도 변함없이 같았다.

2007년 퀴어문화축제를 마친 몇일 후, 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첫사랑 얘기를 하자 그 지인이 라틴이라는 청소년성소수자 커뮤니티 카페를 알려주어서 가입하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1년 후, 2008년 제 9회 퀴어문화축제 당일.

'대한민국의 고3'이라는 슬픈 처지에 놓여 있던 나는, 그리고 성소수자축제에 간다고 직접적으로 집에다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엄마에게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나중에는 엄마도 라틴의 존재와 자신의 딸이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아마 내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한건 2007년 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내가 남자 얘기를 안 하니까 날 레즈비언으로 생각하게 된 듯. 사실 난 굳이 정하고 싶지는 않은 편이다.)


그 해 축제는 내가 아수나로 회원이 아닌 라틴의 회원으로 참여한 첫 퀴어문화축제였다. 그 날은 라틴 부스 설치도 도와주면서 부스에서 사람들을 맞기도 하였다. 부스에 있으면서 무대 쪽을 보았는데 지난해보다 더 많이 늘어난 사람들의 수에 기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우리 성소수자들이 1년 중 단 하루의 축제에만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

그 날도 난 개막무대, 퍼레이드, 폐막무대를 다 보고 라틴 사람들과 같이 뒷풀이까지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올해. 2009년 제 10회 퀴어문화축제.

올해도 나 자신만의 변화가 있었으니, 이제는 청소년이 아닌 성인(아직 생일이 안 지나 만 18세이긴 하지만)으로 참여하는 축제.

그리고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의 회원으로서만이 아닌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후원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혼자가 아닌 내 곁에 (물론 축제 장소에는 오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있는 나의 모습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덕분에 난 그날 축제를 위한 부스설치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부터 다수의 라티너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애인 어디 갔어요?"라는.

나의 그 사람은 현재 입시 재도전을 준비 중이라 학원에서 공부 중이었다. 덕분에 우울해진 나는 결국 친한 라티너에게 하소연을...

부스 앞에 서있는데 라티너들이 한 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심지어는 1년 만에 보는 얼굴들도 있었다.

난 반가운 마음에 평소에 안하던 오버까지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도 동의하는 의견이겠지만 그 날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RTQJ'의 '게이시대, 말칙게이' 공연이었던 것 같다. 'RTQJ'란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과 '무지개행동팀 퀴어주니어'의 회원들이 모여서 만든 팀이다. 그날 '주황색 스키니'를 라틴의 회원인 '말게찌난'군은 나중에 무대에 올라온,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으로 유명한 탤런트 홍석천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기도...


그날따라 날이 무척 더워서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퍼레이드 때의 열기는, 감히 그 날의 날씨가 이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2007년, 2008년, 2009년... 해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수는 물론 축제의 열기도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년 2010년 퀴어문화축제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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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안녕하세요.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 회원 리아예요.^^

   어떤 동인련 회원의 협박 반, 자의 반으로 쓴 글이었는데, 글솜씨가 많이 부족해서 어떨런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첫 데뷔글(?),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괜찮으시다면 가실 때 댓글에 소감같은 것도 ^^






리아 _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