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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회원 인터뷰] 벽장에서 활동가가 되기까지 - 어나더의 Another Story

by 행성인 2016. 7. 2.

 

인터뷰 받은 사람: 어나더(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부모모임)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l2lMrFox, 스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속기: 스톤

 

행성인에서 활동한 지 1년 반 만에 어느새 행성인에 깊게 빠진 어나더를 만났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웹진기획팀, 전국퀴어모여라 등에서 활동하며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유독 오프 더 레코드가 많았던 인터뷰였다는 후문입니다. 벽장에서 파워블로거를 거쳐 활동가가 되기까지! 어나더의 매력적인 Another Story 를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오소리: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어나더: 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나더 미’입니다. 나이는 22살이고요. 행성인에서 활동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고요, 웹진기획팀과 전국퀴어모여라(전퀴모)에도 소속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나를 찾아서

 

 

 

l2lMrFox: 어나더라는 닉네임을 사용 중인데 뜻이 무엇인가요?
 
어나더: 원래 풀 닉네임은 ‘어나더 미’예요. 그런데 그게 부르기가 어려워서 어나더라고 줄여 불러 주시는 거고요. ‘어나더 미’라는 게 해석 하자면 ‘또 다른 나’ 거든요. 이렇게 지은 이유가, 제가 가진 많은 모습 중에 한 면이 제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어서 어나더 미라고 지었습니다.
 
오소리: 블로그 만들 때 지은 닉네임이에요?
 
어나더: 네. 2013년 여름에 처음 지었어요.
 
l2lMrFox: 행성인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어나더: 재수 생활을 끝내고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 저는 블로그 활동만 하고 있었어요. 평소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요. 평소에 동인련(동성애자 인권연대. 옛 행성인 이름)에 대해 알고 있었고 단체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마침 제가 알고 있던 바람을 통해서 동인련에 들어왔고요. 그 때가 한창 동인련이 행성인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무실을 홍대에서 지금 있는 대흥동으로 갈 때였어요. 그래서 제 첫 행성인 활동이 이삿짐 정리하는 걸 도와드리는 거였어요. 그때 마루, 병권, 재성, 오소리, 나라, 웅님이 있었어요. 
 
l2lMrFox: 행성인 신입회원 모임을 가보면,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걸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블로그를 하시는 분들도 그렇고. 그런데 어나더님은 꽤 잘 드러내고 활동하시는 거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나요?
 
어나더: 음. 원래 온라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저를 위한 거였어요. 어느 순간 답답해서. (온라인) 활동을 하게 되며 이쪽 커뮤니티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죠. 이것저것 알다보니 바로잡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본인 자신을 위해 활동하는 부분도 크잖아요. 커뮤니티도 커뮤니티지만 내 인생을 위해서 활동하는 건데 저도 비슷한 거 같아요. 제 권리도 제대로 찾고, 연애도 하고.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에 시작하지 않았나 싶어요.
 
l2lMrFox: 아웃팅 위험 때문에 공감 버튼을 못 누르는 정도의 분들도 계신데, 대단한 것 같아요.
 
어나더: 그때는, (아웃팅이) 무섭다는 걸 잘 몰랐어요. 지금 다시 돌이켜 보니까 꽤 리스크가 컸던 활동이었어요. 네이버 블로그가 작은 곳은 아니잖아요. 노출이 되게 심한 곳인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좀 겁 없이 드러냈구나 싶기도 해요.
 
l2lMrFox: 혹시, 그런 활동을 하면서 아웃팅 위협은 안 받으셨는지
 
어나더: 한두 번 있었는데, 당시에는 되게 무서웠어요. 내 신상을 캐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긴 했었어요. 고등학교 동창이랑 연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애들은 지금 연락도 안하고, 걔네가 알아봤자 뭔 일도 없을 텐데. 그땐 이 점을 몰랐어요. 너무 무서워서 포스팅 몇 개를 비공개로 해 놓기도 했는데, 이젠 안 무서워요.

 

오소리: 지금은 오프라인 활동도 많이 하는데 커밍아웃은 자주 하는 편인가요?
 
어나더: 별로 없어요. 부모님한테 커밍아웃 한 게 트라우마가 많이 남은 거 같아요. 커밍아웃을 안 한다고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고요. 제 주변에 숨기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도 해요. 내가 답답해서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남이 누가 물어봐서 “너 게이야?” 라고 하면 “맞아”라고 정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정도.
 
오소리: 근데 왜 사진 공개는 꺼려하는 거예요?
 
어나더: 아직 좀 무서운 가봐요. 사실 사진이 좀 못 나와요.
 
오소리: 그럼 잘나오면 올려도 돼?
 
어나더: 그런 건 아니지만. (웃음) 그런 사진은 완전 공적인 거잖아요. 제가 말한 “너 게이야?” 라고 묻는 건 좀 개인적인 건데, 공적인 건 아직 좀 꺼려져요. 지금은 천천히 얼굴 공개하고 있어요. 감추고 활동했던 게 좀 답답했었나봐요. 부모모임 페이지에 제 얼굴 올라간 것도 저에겐 되게 큰 결단이었어요. 거기서 조금씩 시작하는 거 같아요.

 

 

이래서 행성인이 무섭다는 거야
 
l2lMrFox: 행성인 활동 중에서도 특히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중점적으로 활동 중인데,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됐나요?
 
어나더: 작년 5월 정기모임을 참여했어요. 모임이 끝나고 오소리님이 ‘(부모모임) 대화록을 내려고 준비 중인데, 손이 부족하다. 이것 좀 도와주면 안되겠냐?’ 제안하셨어요. 저는 당연히 알겠다고 했어요. 초심자의 열정이 뭔지. 난 대화록 하고 끝날 줄 알았지, 그렇게 꾀여 가지고...
 
오소리: 꾀였다고? (웃음)
 
어나더: (웃음) 그래서 여태까지 이러고 있습니다.
 
오소리: 이러고 있다고? (웃음) 후회하나요?
 
어나더: 아니요. (웃음) 후회는 아니고. 여하튼 어느샌가 실무진이 되어 있고 부모모임 운영위원이 되어 있고. 누가 해라 해라 해서 한 건 아닌데 책 만들다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행성인 무서운 데야. (웃음) 어쨌든 부모모임 활동에 흔쾌히 수락한 건, 개인적인 사정도 있던 거 같아요. 당시 부모님이랑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리만족도 있었던 거 같고, 지금도 그래요. 그리고 제가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기로 한 결정이, 제가 인생에서 꼽는 좋았던 결정 중 하나 같아요.
 
l2lMrFox: 부모모임 활동 소감이나 부모모임에서 활동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어나더: 활동 전에는 제가 부모님이랑 계속 불행히 살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활동하면서 부모모임에 속해 있는 부모님들의 힘을 받고 나서는 ‘집을 나와 살아도 서로에게 괜찮겠구나’ 하는 용기도 얻었죠. 가장 좋았던 건 부모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막연히 ‘당신은 나의 부모님이니까 나를 이해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부모모임하면서 부모님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드려야겠구나 싶었죠.

성소수자 부모모임 정기모임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어나더(왼쪽)

 
오소리: 어나더가 부모모임 정기모임 사회자다 보니까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다 들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피드백도 줘야 하고. 그러다 보면 지치기도 할 텐데 그런 점은 없나요?
 
어나더: 제가 사회를 보게 된 건 작년 여름쯤 이었어요. 사회보는 게 어려운 건 맞아요. 그래도 사회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게 보여요. 그 말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보고, 저도 또 다른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람은 커요. 저는 솔직히 아직 모르겠는데, 다른 분들이 사회를 잘 본다고 말씀해 주셔서 저는 그거 듣고 으쌰 으쌰 하는 것 같아요.
 
오소리: 사회를 계속 보는 이유가 그런 것인가요?
 
어나더: 네. 그런 것도 있고. 제 역할은 제가 해야죠. 언제부턴가 사회를 보는 게 제 역할이 된 것도 있고. 책임감 같은 것도 생기기도 했고. 제가 맡은 바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앞으로도 사회를 계속 볼 것 같아요.

 

l2lMrFox: 가족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부모모임 활동 전후로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어나더: 부모님은 제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일하고 있는 걸 모르실 거예요.
 
오소리: 부모모임 얘기한 적 없어요?
 
어나더: 없어요. 단 한 번도. 왜냐면 제가 집을 나온 게 작년 8월 말이거든요. 제가 집을 나온 건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나온 거고. 갈등을 일으키는 이슈는 제가 (성소수자 관련) 활동을 한다거나,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본가에 가끔 가도 그건 절대 언급을 안하고 그냥 근황 공유하고 반찬 얻어 오면 끝인 거 같아요.
 
오소리: 부모님을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어나더: 아직은 없어요. 저는 지금이 좋아서요.
 
l2lMrFox: 지금이 어나더님이 아까 말씀하셨던, 부모님을 기다리는 기간인지?
 
어나더: 네. 얼마 전에 서울 퀴어퍼레이드 끝나고 행성인 뒤풀이를 가려고 했는데 아빠한테 갑자기 너 시청 갔냐고 카톡이 온 거예요. 오랜만에 그런 이슈를 꺼내셔서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하루종일 안 읽고 있다가 그 다음날 점심쯤에 읽고 답장을 안 했어요. 그런 걸 봐선 서로 다 암묵적으로 아는 거예요. 그럴수록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계가 좀 나아지면 다시 얘기를 꺼내 볼까 생각 중이에요. 지금은 그게 제 큰 목표인 거 같아요.
 
l2lMrFox: 부모모임이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 프리허그 캠페인을 통해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어요. 어나더님 소감은?
 
어나더: 저는 그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잊고 있었어요. 항상 부딪치면서 일을 하고 매번 보기 때문에요. 저한텐 약간 일하는 동료처럼 여겨졌었는데 퀴어퍼레이드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울고, 환호하는 걸 보면서 ‘아 이분들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라고 다시 상기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저도 좀 다시 자극을 받았어요. 부모님들이 포옹만 했는데도 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 자극을 받았던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오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은 활동가는 아니고 원래 각자의 일을 하다가 활동에 뛰어드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우리(활동가)랑 부딪치는 부분도 많을 텐데요. 그런 걸로 지치진 않아요?
 
어나더: 엄청 많죠. 엄청 많아. 그건 지금 속해 있는 실무진이나 아닌 분들까지도 다 느끼시겠지만. 그 포옹의 감동적인 눈물 뒤에는...
 
오소리: 실무진의 눈물이. (웃음)

 

어나더: 이게 행성인 활동 전체로 맥락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행성인 활동이 하다보면 스트레스 받고 녹록치 않을 때가 많아요. 내가 이걸 왜 하나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근데 결과가 나오잖아요? 그럼 성취감이 엄청나요. 내가 이걸 하면 얼마나 내가 힘들지 알면서도 이걸 끝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알아요. 그래서 계속 하게 돼요. 이래서 행성인이 무섭다는거야. 
 
l2lMrFox: 행성인 ‘전국 퀴어 모여라’에서도 활동 중인데,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됐나요?
 
어나더: 어... 스카우트 받았어요. 재경씨한테. 난 왜 자꾸 꿰이는지 모르겠어. 전퀴모에 대한 선망이 좀 있었어요. 전퀴모가 사람을 잘 안 받아 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서. 그래서 뭐 그런가보다 그랬는데. 저는 서울 밖을 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거의 없었어서 전퀴모에 대한 열망도 있었고. 그리고 작년 퀴퍼에서 그 밀짚모자가 너무 부러웠어요. 근데 가을쯤에 갑자기 연락을 받아 전퀴모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광주도 처음 가보고. 부산은, 전퀴모 직전에 가 보긴 했지만 또 가 보기도 하고. 앞으로도 또 시간 나면 여기저기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한텐 활동 겸 여행 같은 느낌도 들고요. 
 
l2lMrFox: 전국 퀴어 모여라 활동하니까 어때요?
 
어나더: 지역 퀴어들을 처음 만나봤어요. 근데 확실히 수도권 퀴어분들이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서울보다 조심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광주에 있는 학교 동아리를 찾아갔는데, 그 동아리 규칙이 서로의 학과를 알리지 않는 거래요. 그걸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저도 학교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과를 밝히지 않고선, 친해지기가 쉽지 않거든요. 답답하겠다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같은 지역 내니까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을 거 같아서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을 거 같아요.
 
l2lMrFox: 지역 사람들은 서울과는 다르게 이웃끼리 다 알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아웃팅 위협이 서울보다 강할거 같아요. 
 
어나더: 그게 굉장하더라고요. 서울도 건너 건너면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온라인에서 건너 건너 알지. 근데 그분들은 오프라인으로 진짜 건너 건너 아니까.
 

 

벽장 게이에서 파워블로거가 되기까지

 

어나더가 운영하는 블로그 커버이미지

 

l2lMrFox: 행성인에 오기 전부터 퀴어 블로그를 운영했다고 들었어요. 구독자 1400명이 넘어가고 있는데. 블로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나더: 정말 충동적이었어요. 시작한 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게, 기말고사였나?
 
오소리: 역시 시험 기간에...
 
어나더: 그때 딴짓하기가 제일 재밌죠. 한참 고3여름이었을 때니까 지쳐있을 때였고. 기말고사랑 수능 준비하고 있었고. 근데 정말로,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에 치이느라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 받아 본 적이 없었어요. 근데 갑자기 답답한 거예요. 블로그를 그냥 만들고 싶었어요. 남고 게이란 컨셉을 잡아서 시작했는데 그게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이후에는 ‘풋게이’로 다시 컨셉을 잡아서 활동을 1~2년 더 했죠.
 
l2lMrFox: 블로그 이름이 풋게이인데 무슨 뜻?
 
어나더: 처음에는 블로그 시작했을 때, 남고게이로 시작했는데 남고를 졸업하고 나선 남고게이란 타이틀을 쓸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블로그 개편을 하면서 컨셉을 다시 잡았어요. 그때가 제가 게이라이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풋사과 느낌 나게, 풋게이라고 지어 봤어요. 풋풋하다기 보다는 좀 어수룩한 그런 거를…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왜 그렇게 지었는지. (웃음)
 
l2lMrFox: 요새는 본인의 일상보단 퀴어 정보를 많이 올리더라고요. 그렇게 바뀐 계기는?
 
어나더: 개인적인 얘기가 한계가 있었어요. 블로그는 제 필요에 의해서 만든 거예요. 블로그를 만들기 전에는 이반시티나 다음 카페의 존재를 몰랐어요. 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서 아예 몰랐죠. 그냥 그 상태에서 저만의 커뮤니티를 블로그로 만든 거예요. 근데 그게 좀 잘 되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요. 게다가 오프라인 활동을 하다보니 블로그에서 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거죠. 제 얘기가 바닥난 것도 있지만.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활동 이야기, 정보, 메신저 역할로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소리: 저도 활동하면서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포스팅 한 두세 개 하고 유령집이 됐어요. 오프라인에서 내 얘기를 많이 하니까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정보도 페이스북 통해서 얻고. 그런데도 블로그를 계속 운영하는 게 진짜 근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른 sns랑 다르게 관리해야 할 게 있잖아요. 어떻게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거에요?
 
어나더: 이 부분도 책임감 같아요.
 
l2lMrFox: 저도 블로그 10년 차인데, 트위터 페북은 찍찍 쓰고 나면 끝이지만 블로그는 한 번 남기면 되게 오래 가잖아요.
 
어나더: 저도 그 정도의 열정은 없어요. 예전에 한두 시간 글 써서 올리기도 했는데 요새는 절대 못 하고요. 그래도 아직도 블로그를 닫지 않고 생각 날 때마다 관리하는 건 책임감 때문인 거 같아요. 저도 당시에 블로그 이웃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다른 분들한테 그런 것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특히 벽장의 성소수자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이야기를 털어놓고 들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거든요. 블로그는 벽장분들이 많이 하더라고요. 그분들에게 기사 클리핑을 제공하거나 정보도 알려 드리고 싶어요. 저랑 같이 블로그 하신 분들이 많이 접으셔서, 저까지 접지는 못하겠어요. 제가 듣기론 저의 전 세대가 있대요. 재성, 모리가 했던 퀴어 블로거 시절이 있었고, 그게 저물고 제가 온 거 같은데요. 이제 슬슬 제 다음이 오고 있는 시점인 거 같아요. 어쨌든 애정이 있어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 커뮤니티의 시작점이어서 더 특별하기도 하고요. 좀 특이한 게 제가 밖에서 어나더라고 소개하면, “아 그 블로그 하시는 분이에요?” 라고 하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다들 벽장이었던 것 같아요. 중고딩 때, 학창시절 때 많이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스톤: 나도 그 때 봤어요.
 
어나더: 그래서 그분들이 벽장시절, 학창시절 때 조용조용 온라인으로 교류를 하다가 성인이 되고, ‘이제 나도 오프라인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오시고, 저랑 만나게 된 거 같아요. 큐브, 행성인에서 그런 분들 여럿 봤어요. 뭔가 이런 게 활동 단계인가 싶기도 해요. 트위터 하면서 정말 오래전부터 블로그 잘 봤다고 하면 되게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기도 하죠.
 
l2lMrFox: 블로그 인기 비결이라면?
 
어나더: 제일 큰 건 공감대 형성인 거 같아요. 아무래도 남고에 얼마나 많은 게이가 있겠어요. 아니면 여고 내에 바이나 레즈라든지. 어쨌든 저는 청소년 때 블로그를 시작한 거잖아요. 제가 청소년 때 썼던 글을 보면 어이가 없어요. 근데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다 그걸 느끼고 공감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인기가 많았던 것 같고요. 블로그는 눈에 보이는 저의 성장일기에요. 제가 남고게이 벽장에서 풋게이가 되면서 조금씩 사람을 만났어요. 일년이 지나 학교 동아리 들어가고 행성인에 들어가면서 이제 직접적으로 오프라인 활동을 하고 있어요.
 
스톤: 이제 풋게이에서 바뀔 때가 됐네요.
 
어나더: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아직 풋게이 같아요. 블로그에는 초반부터 저의 성장이 다 담겨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오글거려도 지울 수가 없어요. 제가 봤을 땐 오글거리지만, 지금 중고등학생들이 봤을 땐 그때의 제 글에 공감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내버려둬요.

 

오소리: 어나더가 벽장에서, 파워블로거로, 블로거에서 활동가로 거듭났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벽장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한다면?
 
어나더: 저는 벽장이여서 힘들었던 적이 없다 보니 그 심정을 완벽히 공감하기는 좀 힘들어요. 예전의 저였으면 그분들을 겁쟁이라 했을 거예요. 근데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그런 분들을 많이 보고 알게 되었죠. 하지만 벽장문 여는 걸 여러 사람들이 도와줄 수는 있는데 그 사람들이 먼저 벽장문을 두드려 줄 순 없어요. 처음에 어렵더라도. 뭔가 확 한번 시도를 해보면 정말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거든요.
 
오소리: 그니까 그 두드릴 수 없다는 게, 당사자 본인이 약간은 열어야 그때부터 도와줄 수 있다는 거죠?

 

어나더: 그쵸. 너무 수많은 벽장들이 있고 제가 다 돌아다니면서 그걸 다 두드려줄 수 없어요. 저는 어떤 역할이냐면, 당사자가 먼저 열게끔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저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 테니까 먼저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어요. 주변 블로거들 중에서 솔직히 인권 활동 쪽으로 빠진 사람은 저 밖에 없는데,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좋은 퀴어라이프를 즐길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죠. 너무 수동적이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l2lMrFox: 저도 주변에 성소수자 지인이 있는데, 제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나더 씨 말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구나. 그런 걸 깨달았어요.

 

어나더: 벽장 문을 대신 열어주는 방법은 없더라고요. 블로그에서 어떤 사람들이 저를 탓하기도 했어요. 잘 기억은 안나는데, 저보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말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벽장문을 다 두드려줄 수 없다는 말을 그때 답변으로 했었어요.

 

 

활동과 일상의 조율

 

l2lMrFox: 행성인 외에 다른 곳에서는 무슨 활동을 하고 있나요?
 
어나더: 한양대학교 성소수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오프라인 게이를 제대로 처음 만난 곳이에요. 제가 블로그에서 만난 분들은 거의 다 레즈비언분들이에요. 남자들은 이반시티, 히즈, 틱톡, 네이버 밴드, 이런 곳에 가있고요. 그땐 몰랐는데 그 분들은 이미 커뮤니티가 있으니까 블로그가 필요 없었을 거 같아요. 제가 같은 벽장 게이일 때 같은 처지인 레즈비언 누나들이랑 1년 놀았는데, 지금도 친하게 지내요. 근데 제 또래 게이들도 만나 보고 싶었죠. 지금 있는 대학 성소수자 모임에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거기서 연애도 다 했고. 게이들도 만났어요.
 
l2lMrFox: 대학생이나 교수님들이 인권 감수성이 그렇게 높은 거 같지가 않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힘드신 적이 없는지?
 
어나더: 전 아직 학교에서 직접적인 혐오 발언을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근데 타 학교 사례는 많이 들었어요. 교수나 학생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교육이 중요하구나 싶어요. 다양성 교육이 어릴 때부터 필요해요. 저는 20살 넘어서 배웠는데 늦지 않은 거 같아요. 늦어지기 전에라도 대학교에서부터 간단하게 감수성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해요.
 
l2lMrFox: 실제 교수님의 혐오 발언을 접하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나더: 정도가 많이 심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얘기하지 않을까 싶어요. 커밍아웃까진 모르겠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말을 하지 않을까요? 교수님 말에 동조한 학생들한테도 얘기를 할 거 같아요. 요새 드는 생각은, 공개적으로 이게 뭐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말을 하는 것부터 실천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오소리: 거기에 QUV(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까지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나더: 네. 학교 동아리 시작하고, 학교 동아리 운영진이 되면 큐브에 참여할 수 있거든요. 덕분에 다른 학교 퀴어분들을 많이 만났죠.
 
오소리: QUV 행정팀에서도 스카웃 제의 받지 않았어요?
 
어나더: 좀 우물쭈물 하다가 들어가긴 했는데, 아직 하는 건 많이 없어요.

 

 

다양한 면을 지닌 삶

 

l2lMrFox: 행성인 활동, 학교 활동, 아르바이트를 다 병행하고 있는데 벅참은 없는지?
 
어나더: 엄청 벅차요. 그래서 이것 때문에 번 아웃(burn out. 탈진증후군)이 온 적도 엄청 많구요. 제가 활동하면서 알게 된 건데 제가 욕심이 되게 많더라고요. 근데 활동을 줄일 만한 게 없어요. 그래서 줄인 게 웹진팀 활동이었죠. 이번 학기에는 전퀴모 활동도 소홀했어요. 부모모임이 상반기에 너무 바빴잖아요. 가끔 활동이 제 생계를 위협해서 스트레스가 엄청 많이 왔어요. 올해 상반기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무리 활동이 중요해도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걸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요. 이제는 쓸 데 없는 책임감을 쳐 내야 할 거 같아요. 
 
l2lMrFox: 그렇다면 활동과 일상, 어떻게 조율하는지?

 

어나더: 제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 건, 부모모임 실무진 중에 보니까 저만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하고 활동을 하더라고요. 제가 가장 비참했던 순간은 최근에 알바를 구할 때였어요. 학기 중에 일했던 학교 앞 술집은 방학 땐 손님이 없으니까 알바를 구하지 않는 거예요. 그 와중에 저는 주말에 활동을 해야하니까 조건을 따지게 되는 게 웃겼어요. 나 혼자 어떻게든 아등바등 해보겠다고 하느는데 그 안에서 스트레스도 받게 돼요. 거기서 가장 크게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예전엔 조율하는 법을 몰랐어요. 이제부터는 우선순위를 쭉 끌어올려서 거기에 제 생계를 둬요. 
 
스톤: 그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두고, 어떻게 보면 활동에 선긋기를 하는 거잖아요? 
 
어나더: 우선 시간이 안 돼요. 그게 제일 커요. 장소도 너무 멀고. 일만 하고 가도 이미 시간은 꽉 차 있는 거죠. 뒷풀이를 가도 일찍 나와야 되고. 제가 본가에 있을 때는 암묵적인 통금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안산에 살고 있으니까 늦게까지 못 있어요.

 

사실 행성인 활동을 어느 정도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그렇다고 이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행성인은 오래 활동할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젯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관계에서 오는 감정  소모는 행성인에서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여기서 활동을 계속 하고 싶고 애정이 있기 때문에 선을 좀 긋는 거죠. 친목 다지는 곳은 인권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유기동물, 예술 경영, 영어 

 

l2lMrFox: 다른 관심 있는 분야가 있나요?
 
어나더: 유기견, 유기 동물에 관심이 있어요. 제가 본가에서 키우는 개가 유기견이거든요. 원래 동물에 관심이 없었는데, 3년 전에 강아지를 데려 오면서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문화 산업, 문화에 관련된 거 좋아해요. 전시, 뮤지컬, 영화 되게 좋아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도 그쪽이고요.

 

오소리: 하고 싶은 게 뭔데요?
 
어나더: 예술 경영이요. 제가 학교에서 배우는 건 정말 일반적인 기업 경영이에요. 근데 예술 경영은 쉽게 생각하면 극장 경영이나, 공연 기획이에요. 공연에 대한 예산을 잡고, 세세히 책정하는 일들요. 이 공연이 과연 수익을 만들 수 있을까? ‘yes’라 하면 그 공연을 기획 하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오소리: 그럼 행성인 20주년 기념 사업을...
 
어나더: 안돼. 수익성이 없어. (웃음)

 

l2lMrFox: 영어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비결이 뭔가요?
 
어나더: 이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제 대답은 항상 똑같아요. 돈을 많이 들여서. 제가 한창 영어 붐이 일어났을 때 태어났거든요. 제 학창시절이 완전 영어 붐이었어요. 그래서 5살 때 한글이랑 영어를 같이 시작했어요. 영어 유치원도 다니고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영어학원을 안 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유학은 안 갔지만 유학에 쏟을 돈을 다 사교육에 쏟았죠. 그래서 못할 수가 없어요. 저는 제가 잘하는 걸 좋아하는데, 영어는 제가 잘하는 걸 아니까 자꾸 흥미가 붙죠. 그래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l2lMrFox: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신가요?
 
어나더: 저는 그렇게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방에서 맛있는 거 먹고, 넷플릭스 켜서 보는 거 좋아해요. 음악 듣는 거랑.
 

 

이런 슈퍼 루키가 어디있어?

 

원피스에 초신성이 있다면, 행성인에는 슈퍼 루키가 있다!

 

l2lMrFox: 어나더에게 활동이란?
 
어나더: 음 되게 어렵네요. 애증이죠 애증. 애증 한 단어에 딱 정리 되는 거 같아요. 좋아서 시작했죠. 지금도 좋고. 근데 그 안에 스트레스가 되게 많았어요. 근데 아직도 하고 있잖아요. 약간 부부 관계 같아요.
 
오소리: 1년 반이면 신혼 아닌가요?
 
어나더: 신혼도 너무 열심히 했어요. 너무 불태웠어.
 
l2lMrFox: 행성인에 와서 맨 처음에 웹진팀 활동을 했었어요. 다시 웹진팀 활동을 할 생각은 없으세요?
 
어나더: 제가 맨 처음에 웹진팀 활동을 했었던 것은, 웹진팀이 활동을 처음 시작하기 되게 좋은 거 같아요. 글을 잘 쓰든 아니든 되게 기회도 많고요. 그래서 신입회원들이 많이 몰리는 거 같기도 해요. 웹진팀 활동을 다시 하고 싶긴 한데 회의가 다 평일에 잡혀 있어서 참여하기가 어려워요. 발행을 주말에 하기는 하지만, 그 땐 제가 쉬고 싶고요. 저한테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이미 다른 활동으로 좀 벅찬 거 같아요. 
 
오소리: 웹진 팀이 카톡방에서 텔레그램방으로 옮겨갈 때 따라 왔잖아요?
 
어나더: 전 단 한 번도 제가 웹진팀 소속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소리: 가끔 나와요 그럼.

 

어나더: (웃음) 시간이… 소식을 계속 접하고 싶더라고요.

 
l2lMrFox: 웹진팀에 기고하고 싶은 시리즈나 글 있으신가요?
 
어나더: 제가 블로그에 올해 초에 하려다가 못한 게 있거든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의 글을 엮어서 내고 싶어요. 주제는 기본적인 커밍아웃도 좋고요. ‘나에게 활동이란?’ 이라든가. 토막글을 모아서 여러 관점을 모아보고 싶어요.
 
l2lMrFox: 앞으로 행성인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요?
 
어나더: 저 행성인 운영위원 하고 싶어요. 분명히 스트레스 받겠지만요. 근데 행성인에 들어왔는데, 그런 자리 한번 해보고 싶어요. 군대 갔다오고 나선 부모모임 팀장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l2lMrFox: 작년 행성인 송년회 때 신입회원상을 아쉽게 놓쳤어요. 올해의 회원상 받을 수 있을 것 같나요?
 
어나더: 아쉽게 놓친거 맞아요?
 
오소리: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그때 후보가 몇 명 있었는데. 그때 부모모임이 팀 상을 받아서, 어나더가 중복 수상이 되는 거예요.
 
어나더: 제가 그걸 그 자리에서 느꼈어요. 제가 부모모임 상도 받았고, 전퀴모도 상을 받아서. 제가 이미 받은 상태에서 또 상을 받기가 그러더라고요. 뭐 여튼 신입회원 상은 아쉽게 못 받았지만, 이제 줄 때도 되지 않았나 싶고.
 
(일동 웃음)
 
어나더: 이런 슈퍼루키가 어딨어? 이 정도 했으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웃음)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