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무더운 여름밤, 7월 회원모임을 맞아 어김없이 많은 회원들이 무지개 텃밭으로 모였다. 회원모임에 참가하는 회원들의 열기는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웠다.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설정해둔 스무 명의 제한 인원이 눈 깜짝할 새 다 찼다고 하니, 새삼 그 열기를 다시금 실감한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 회원들을 매료시킨 걸까.
 


 
7월 회원모임에서는 색다른 이야기 손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두 분을 모셨다. 크게 두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하나는 팔레스타인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는 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드게임 ‘인디파타’를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간간히 접해온 이야기였으나, 부끄럽게도 자세히 알고 있는 바가 없었으므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간단한 역사를 설명하자면, 밸푸어 선언,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의 원인으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이 증가했다.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될 무렵,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 중 유대인 이주자 비율은 31%에 달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동정 여론이 급증하게 되면서, 1947년 UN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 48%와 유대지구 52%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시켰으며, 공식적으로 유대민족국가 이스라엘이 수립되었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 아랍 거주민은 물론 주변 아랍 국가들의 큰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자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를 거부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4차까지 이어진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대부분 지역이 이스라엘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현재의 비극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영화 ‘핑크워싱’ 스틸컷

 

 

무차별적인 공습과 학살, 불법 정착촌 건설을 위한 강제 철거 등의 반인권적 행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면서부터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8m에 달하는 봉쇄 장벽을 설치하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사지에 몰아넣는 행위는 국제 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자신들의 문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책이 바로 ‘핑크워싱(Pinkwashing)'이라고 한다. ‘핑크’와 ‘화이트 워싱’의 합성어인 ‘핑크워싱’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이를 부각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를 향한 국제 사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 전략을 일컫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핑크워싱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매우 구체적, 직접적으로 개입해오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로부터 여러 차례 비판 받은 바 있다. 회원모임 참석자들은 모임 전 영화 ‘핑크워싱’을 개별적으로 관람하였다. 영화를 통해 핑크워싱이 이스라엘의 불법적, 비인도적 이미지 세탁에 치밀하게 활용되고 있는 허울 뿐인 가식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그에 대항하여 연대를 통해 행동에 나서고,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일인지도 다시금 깨달았다.  

 

유튜브 영상 ‘Dance with Gay Soldiers in a Warzone – Boycott Tel Aviv Pride’ 갈무리 이미지

 

 

이스라엘이 핑크워싱에 있어 가장 많이 활용하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텔아비브 프라이드’다.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성소수자가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소개하면서 그 중심에 텔아비브가 있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특히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앞에 두고 하루하루 숨죽여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어느 뉴스통신사를 통해 텔아비브 프라이드를 접했다. 작렬하는 태양, 빛나는 모래알과 다이내믹하기 그지없는 해변, 무지개를 들고 환호하며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며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핑크워싱에 완전히 넘어가버린 것이다. 텔아비브 프라이드 보이콧 영상을 보면서 과거 스스로 했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의 자긍심이, 모두의 평등한 사랑과 삶을 위한 뜨거운 외침이 지구 어딘가에서 폭력과 차별을 유지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 거리에서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던 군복 입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다음 날이면 검문과 학살의 현장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극악무도한 행위를 일상으로 영위해나간다고 생각하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텔아비브에, 나아가 이스라엘에는 프라이드가 단 하루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라이드는 평등과 사랑이 있어야만 생겨날 수 있는 것 아닐까. 프라이드는 잔혹한 살생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만큼 악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지키려는 프라이드는, 무지개의 가치는 그런 것이다. 

 

BDS 캠페인을 형상화한 이미지

 


이스라엘의 기만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2005년부터 국제사회를 향해 BDS(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BDS 운동의 전개 배경으로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국제법 위반, ▲1948년 이래 이스라엘의 식민화,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규탄 및 효과적인 해결책을 요청하는 무수한 UN 결의안 통과, ▲ 지금껏 시도된 모든 국제적 개입과 평화적 조율 과정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및 억압 철회를 설득하고 강제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인류 역사가 불의에 맞선다는 도덕적 책무를 짊어진 의식 있는 국제사회 시민들에 의해 진전되어왔다는 점에 가장 큰 무게를 둔다. 인종차별체제에 맞선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중의 역사에서 투쟁의 방식을 차용해온 것이었다.
 
BDS 운동을 통해서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쟁취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평화와 인권에 기인한 내용들이다. 1) 아랍 지역의 점령, 식민화를 중단함과 동시에 분리장벽을 해체하고, 2) 이스라엘 내 아랍-팔레스타인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완전히 평등하게 승인하고, 3) UN 결의안 194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와 몰수당한 재산에 대한 배상받을 권리를 존중·보호·촉진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인민의 불가능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국제법을 완전히 준수하라는 것이다.
 
국외는 물론, 국내 여러 단체도 BDS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야기 손님으로 함께 회원모임에 참가해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2년 전,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에서의 이스라엘 특별전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여 국내 영화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이를 취소시킨 바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거주민 주거권 박탈과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에 건축 장비를 수출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에 대해서도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등 끊임없이 BDS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인권영화제가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제3의 성(Third Person)'을 전격 취소하면서 국내 BDS 운동의 파급력이 점차 커져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영화 배급사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것은 퀴어, 여성 인권에 반하는 행위”, “BDS가 아파르트헤이트보다 심한 범죄”라는 입장까지 내놓으며 서울인권영화제를 압박했지만, 서울인권영화제는 개인의 정체성에 근거한 보이콧이 아닌, 창작물을 생산하고 지원하며 지지하는 권력 구조에 주목하여 보이콧 한 것이라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국내외 여러 단체들의 BDS 운동 연대를 살펴보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뜨거운 연대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다소 무디게 지나갔던 팔레스타인 이슈를 삶 가운데서 마주하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우리는 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보드게임 [인티파다]에 돌입했다. 인티파다는 ‘저항하다’, ‘흔들어 털어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민중 봉기를 뜻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통치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두 차례 거리로 나왔는데, 이를 1, 2차 인티파다라고 한다. [인티파다]는 가자지구, 서안지구, 예루살렘, 텔아비브 등의 팔레스타인 지명이 적힌 판 위에서 지역 간 이동을 통해 자원을 획득하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진행되는 방식이다.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알리고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분께서 직접 만드신 게임이라는 말씀을 듣고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임을 하면서는 점수를 얻고 1등을 향해 달려가는 데만 모두가 골몰했으나, 게임이 모두 끝나고 나서는 제시된 문제가 모두 실제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겪고 있는 삶의 위협이라는 내용에 마음 한 편이 시려왔다.
 
게임 특성 상 4~5명이 팀을 이루어 한 판을 진행했고, 각 팀의 1등과 꼴찌를 뽑아 한 판의 게임을 더 진행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쿠피에’를 가져와 선물을 증정했다. 1등 팀에서는 매뉴얼을 철저히 예습한 오소리님이, 꼴찌 팀에서는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던 바람님이 각각 쿠피에의 주인공이 되었다. 색감과 무늬가 너무나 아름다워 모든 회원들이 탐을 내 사수하는 데 두 분이 애를 좀 쓰셨다는 후문.
 


 
인티파다를 마치고 간단히 소감을 나누었다. 알게 된 것도 많고, 느끼게 된 것도 많았던 7월 회원모임. 회원들은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서 그 모든 것을 정리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무엇보다도 연대의 힘에 대한 소감이 가장 많이 나왔는데, 행성인 역시 적극적으로 핑크워싱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태에 대항하는 연대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나 역시 그 의견에 작은 마음을 보태며,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뒤풀이 장소에서도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분들로부터 모임 시간에 듣지 못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2014년 대규모 공습 당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모습을 보도한 사진

 

“Why are you so proud of Tel Aviv?"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영상에서 본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텔아비브 프라이드의 핑크워싱을 지적하며 보이콧을 요청하는 내용의 짧은 영상이었다. 텔아비브가 나의 자긍심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는 왜 그것을 자랑스레 여기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그건 아주 정의롭고 인간다운 자긍심이기 때문이야, 라고 말할 수 있길 바라며 기도했다. 모두가 편안히 잠들 수 있는 단 하루의 밤 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유일하게 하늘에서 땅으로 올 수 있는 건 별똥별뿐이라고,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밤은 없고, 그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세상이 살아지는 것이라 믿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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