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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두 개의 민중총궐기

by 행성인 2016. 11. 23.

이경(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민주노총)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민중의 12대 요구를 들고 13만여 명이 집회에 참여
서린로타리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 317일 만에 사망
한상균위원장 민중총궐기를 조직한 죄목으로 1심 재판 징역 5년 선고
700여 명이 형사처벌 받고 수십여 명이 구속된 사건.

 

1년이 지나,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대회
박근혜정권 퇴진을 걸고 전국에서 100만 명이 참여한 최대 규모 집회
경찰폭력으로 인한 부상자 한명 없이 종료된, 언론과 경찰이 칭송한 ‘평화적 집회’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항소심 재판 결심을 방청하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1심의 5년 선고도 모자란다며 다시금 징역 8년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은 지난 촛불집회가 매우 평화적이었다며, 이러한 집회를 정착하기 위해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1년의 간극 속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넘어서야할 간극이기도 합니다.
 
작년에도, 올해도.

 

2015년과 2016년의 민중총궐기대회의 주최자는 똑같이 민중총궐기투쟁본부였습니다. 심지어 구성단체현황도 같습니다. 행성인도 그 중 하나입니다.

두 해 모두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며 내건 요구도 같았습니다. 박근혜 퇴진! 노동개악 반대! 물론 성소수자들의 요구인 차별금지법 제정 또한 항상 내걸리는 요구입니다.
두 해 모두 민중총궐기대회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고,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도 민주노총의 조합원들과 농민, 빈민, 여러 단체 회원, 시민들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행진 코스는 2015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2016년에는 길고 다양했으며, 무엇보다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집회 참여자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태평로 등 주요도로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도로를 점거한 정도로 본다면 당연히 2016년의 규모는 더욱 압도적이었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다른 건 경찰뿐이었습니다.

행성인 회원들은 작년 총궐기대회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으니 아시겠지만, 경찰은 작년에 총궐기대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사전에 갑호비상령(계엄의 전 단계에 해당)을 발동하고 연일 각종 부처 장관들을 동원해서 총궐기와 민중의 요구를 불법으로 매도하기 바빴습니다. 집회 참여자들은 광화문에 모여서 대회를 이어가고자 했지만 맞닥뜨린 건 광화문 네거리를 막아선 거대한 차벽과 거대한 살수차 장비들이었습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들리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차벽으로 꽁꽁 싸맨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폭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누구 탓일까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우리 목소리가 들리도록 광화문으로의 행진을 보장했다면, 잃지 않았을 생명을 빼앗은 것은 경찰과 정권이었습니다.

 

이상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항소심 재판의 최후변론 내용입니다. 광화문으로 막아선 차벽으로 상징되는 권력자들의 질서를 넘어서야만 했던 이들, 그 중 한상균과 백남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백남기다, 우리가 한상균이다”를 끊임없이 외쳐왔던 것이죠. 

 

2016년 민중총궐기는 거대한 힘으로 광화문 차벽을 밀어냈습니다. 늘 접근금지 구역이었던 경복궁 앞과 청와대 인근까지 백만 명의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들이 강요한 질서를 무력화하는 힘이 광장에 모인 이들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순간입니다. 이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걸 생각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란 기분입니다.

 

지난 해 노동개악은 정권이 가장 거세게 밀어붙인 정책이었습니다. 핵심은 결국 정규직 자르고 비정규직 늘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이 지나니 이유를 알겠습니다. 미르, 케이 재단을 만들어 재벌들에게 뇌물을 받고, 정권은 재벌의 노동개악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었죠. 774억이 넘는 뇌물이 오가는 사이에 노동자 한상균은 최저임금 1만원이 되어야 먹고 산다며 투쟁했고, 백남기 농민은 20년 전으로 돌아간 쌀값으로는 먹고 살수 없다며 거리로 나온 것입니다. 774억이면 최저임금 1만원 노동자 37만 명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상균과 백남기의 외침입니다. 이것은 백남기와 한상균과 함께 촛불을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울을 뒤흔들고, 청와대로 가자고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한상균과 함께, 서울을 뒤흔들고 청와대로 향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를 구속시키고 정의를 위해 싸운 이들을 석방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공권력이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둔갑하는 권력의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백남기 농민의 마지막 뜻을 이어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은 시작인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모두의 광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유발언 신청은 매번 쇄도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광장에 펼쳐지는 나날입니다.

 

우리 성소수자들도 광장의 일부입니다. 아니, 광장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지금은 박근혜와 지배 권력을 주저앉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후를 고민하자는 이야기들이 정말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욱 다양한 주체들의 등장을 담보하는 광장임을 우리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에서 ‘단지 박근혜 퇴진’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속적으로 여성과 소수자 혐오, 차별 발언을 문제제기하고 집회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 또한 그러합니다. 

 

아시겠지만 박근혜는 결코 제 발로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권 등 다양한 곳에서 퇴진의 방식을 여러 경로로 그리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임계점을 넘은 분노는 양질전환 됩니다. “퇴진하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진행되진 않을 겁니다. 자신의 힘으로 변화를 이루고, 주체로서의 대화를 경험하고, 민주주의를 체득한 우리들은 다시 그 이전의 질서로 복귀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힘으로 이뤄낸 순간, 다시 그 힘을 고분고분 권력자들에게 이양시키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힘이 셉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광장은 그 어느 곳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진중합니다. 

 

우리가 이룰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질서를 깨고, 그들이 세운 벽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사방을 막아놓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지녔던 이들과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은 한상균과 백남기를 떠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이들,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의 분노를 조직합시다. 그리고 드러냅시다. 그런 경험이 광장에 모인 이들의 공동의 경험이 되어갈 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광장이 열리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