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안녕하세요. 노동권팀에서 활동중인 소유입니다.
행성인 활동에 함께한지도 어느덧 3년째가 되어가네요. 저는 처음에 어느 집회에서 행성인 회원이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동안 벽장에만 있었던 저에게 그 넓은 곳에서 성소수자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발언하는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죠. 물론 그 뒤론 더 신기한 일들이 많았지만요. 캠페인과 행진, 퀴어문화축제와 농성 현장 등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던 다양한 공간에서 행성인은 저를 낯선 곳으로 이끌었고 그 장면들 어딘가에서 성소수자의 얼굴로 함께 소리치던 자신을 떠올리면 여전히 떨리고 부끄럽지만 또 무척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동안 제 삶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어요. 자신을 퀘스쳐너리로 정체화했고, 연애하는 동안 직장에 커밍아웃을 하는 등 자신감을 갖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을 알게 되고,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회원들을 접하며 이런 차이들 속에서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보다 조심스러워지기도 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는 이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이 생겼고, 또 활동 밖의 일상에서는 뭘 할 수 있을지, 활동과 일상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에 대한 고민들도 안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면 활동을 하면서 배운 것들 만큼이나 새로운 질문들도 많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저는 아카이빙 팀에 합류해 행성인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을 돕고 있어요. 동인련과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보면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떻게 그 시기에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놀라기도 해요. 이를테면 낯선 곳에서 무지개를 펼치고 서명을 받고 할 때의 불확실성과 불안이 그때는 훨씬 컸을텐데, 그때 나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면 잘 모르겠거든요. 쉽게 생각하면 제가 그만큼 투철하거나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이고 그건 운동의 성과들을 누리며 살아 온 덕택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 같은 것도 아니고 꼭 퀘스쳐너리로서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낯선 존재와 주장과 공감을 발견해내고, 그것이 운동을 확장하고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닐까? 새삼 잘 듣고 잘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해 주는 여러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 민중총궐기에는 2000년 들어 최다의 인파가 모였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곳곳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의 인파도 역대 최다라는 이야기겠죠. 많은 성소수자 단체들의 깃발이 함께 대오를 이루고 나아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그렇지만 꼭 무지개 깃발 아래가 아니더라도 광장을 수놓은 촛불처럼 우리가 모든 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모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밝혀주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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