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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전국퀴어모여라, 일단 대전!

by 행성인 2016. 10. 25.

시경(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전국퀴어모여라)

 

전퀴모 식 건배


안녕하세요, 서울 살다 대전으로 이사 온 시경입니다. 대전에서 본격적으로 행성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전퀴모를 통해서요. 서울을 벗어나고서야 퀴어 네트워크의 맛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오늘은 전퀴모-전에서 보낸 시간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2015. 4. 5. 전국에 퀴어 나무를 심겠다며 핑크핑크한 모종삽을 들고 전퀴모가 대전에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날 레놀을 처음 만났네요. 우리는 로즈마리를 심기로 했고, 레놀과 저는 공원관리자의 손에 뽑혀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히키코마리(히키코모리+로즈마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2015. 5. 16. 서울역, 아이다호 행사에서 Roza를 처음 만나 인사를 했습니다. 대전에 사신다기에 그저 반가운 마음이었지요. 그 만남이 어떤 후폭풍을 가지고 올지 꿈도 꾸지 못한 채...

 

2015. 5. 25. 대전, 저와 Roza와 레놀이 둔산에서 만났습니다. 이제는 전퀴모 대전지부 창립 성지가 되어버린 어느 닭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2차, 3차를 달려 제 방으로 왔습니다. 대전지부 임시 사무실로 삼자며 도원의 결의를 다지고 보니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2015. 8. 8. Roza님의 활약으로 대전지부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급기야 ‘서울에 산다고 소외당한 기분이다 억울해서 안되겠다’는 일군의 친구들이 대전에 오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놀 생각이었는데 자꾸 인원이 늘어나더니 급기야 서해바다(대천)에 방을 잡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그 곳에서 츼팍을 만났죠. 전퀴모 본부에서 재경까지 날아 온, 최고의 서해바다였어요.

 

2015년 9월,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개악에 반대하며 행성인은 대전시의회 앞에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그 날 회사 일로 시의회 안에 있었습니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지요. 마침 그 가을에, 일 년 넘도록 기다려 온 썅차이가 오랜 잠수를 마치고 나타났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2016년 6월의 퀴퍼를 끝내고, 전퀴모가 대전에 오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소소하게 수다나 떨자던 계획은 신청인원 수가 40명에 달하면서 자연스럽게 행사조직이 되었죠.

 

2016. 7. 16. ‘대전산책’,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대전의 퀴어들을 만났습니다. 그 날로 행성인 회원이 된 분도 있고요.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반가운 만남, 우린 밴드를 하나 트고 그 날 이후 이 작은 도시에서의 일상들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참여소감을 묻는 설문지에 적힌 ‘숨통 트임’이라는 네 글자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대전산책에서 확인한 것은 그 밖에도 많아요. 특히 지역 내 퀴어단체들끼리의 지속적인 연대와 교류에 대한 수요가 두드러졌습니다. 함께 목소리를 내고 서로 힘이 되어야 할 때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려면 평소에도 잔잔하게 즐거운 기억들을 쌓아나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첫 번째로, 영화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2016. 10. 8. 대전산책으로 만난 세 단체-행성인 전퀴모, 솔롱고스, 카이스트 이클-가 모여서 영화 <불온한 당신>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대전의 세 단체가 함께 호흡을 맞춰본 것은 처음이었죠. 상영회를 준비하던 중, 2016. 9. 22. 목원대학교 혐오 조장 현수막에 대한 신고가 솔롱고스에 접수되어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퀴모 대전의 썅차이가 함께 하는 등 크고 작은 만남을 지속해 나갔습니다. 정작 상영회 당일 장비 문제로 관람하기 다소 불편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자리해 주신 분들 모두 이해해 주셔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어요.

 

이 대전지역 상영회에 경남/경북에서, 전남/전북에서, 경기/충청에서, 서울은 물론이고 청주, 전주, 대구, 부산에서도 오셨습니다. 세고 또 세어도, 네 번 다섯 번을 다시 세어 봐도 전국에서 모인 퀴어들 90여명이 객석에 있었습니다. 사실 소소한 대전지역 상영회를 기대했던 우리는 감독과의 대화에만 60여명이 남아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죠.

 

2015년 4월, 히키코마리를 심으며 시작한 대전에서의 활동은 이제 일 년 반 남짓입니다. 활동회원편지를 쓰고는 있지만 사실 활동이라는 게 별건가요. 퀴어로서 즐겁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단 한 번뿐인 인생이고, 어디서든 내 모습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울 권리가 있으니까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전국퀴어모여라, 지금 우리가 있는 바로 이 곳에서, 지금, 같이, 즐겁게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