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전국퀴어모여라)
안녕하세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소모임 전국퀴어모여라(이하: 전퀴모)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경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활동을 하다가 제주도에 입도한 지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제주도는 전국 최고의 관광도시답게 사시사철이 아름답습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해가 뜨면 뜨는 대로, 집 앞에서 보이는 바다는 하늘과 같거나 비슷한 색을 비춥니다. 매일 변하는 바다를 보면서 즐겁게 지냅니다.
우리는 연결되면 강해지지요. 혼자면 약하지만, 함께 있으면 뭐든지 잘 해왔습니다. 퀴어퍼레이드에 도로에 드러누운 혐오세력도 길을 막을 수 없었고,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맞춰 발레를 추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것 뿐인가요. 퀴어의 대명절 퀴어문화축제는 매해 최대참가자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퀴어와 퀴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요.
하지만 비수도권지역으로 가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서울이야 매주 쉴틈없이 행사들이 열리고, 행성인에서는 매주 새로운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서울에서 지하철만 타면 얼마든지 갈 수 있으니까요.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왜 그러나, 싶었는데 제주도에 이주를 해 보니 알겠더군요. 행성인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올해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서울이야 비행기로 1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그거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 걸리는 시간일 뿐입니다. 퍼레이드에 참가하려면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했고,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내려서 또 지하철을 타고 서울 광장까지 가야 합니다. 그럼 가는 데만 대략 3시간이 소요 됩니다. 비행기값은 또 어떻고요.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아니, 그냥 제주도에서 하면 안돼? 그깟 퍼레이드 예쁜 바다 보면서 하면 더 예쁘잖아. 아니요. 못합니다. 여기는 퀴어들이 뭉칠 수가 없거든요. 이곳은 티나는 사람이라면 연인은 커녕 친구로도 삼지 않습니다. 제주도의 퀴어 분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어딘가에 꽁꽁 숨어 있어서 그렇지, 인구밀도로 친다면 서울 못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애인과 데이트를 하다가 만나는 직장 동료도, 학교 동창들도 신경써야 하고, 부모님의 친구들도 신경써야 하니까요. 제주도에서 만난 몇몇 결혼 적령기의 여성퀴어들은 심각하게 이성애자 남자와의 결혼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섬을 벗어나지 않으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느라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끼리 뭉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지겠죠.
몇년 전 행성인 활동가들과 전퀴모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굳이 왜, 하필이면 서울까지 와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정녕 친구를 만들수 없어서 주말마다 퀴어를 만나려면 서울로 올라올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전퀴모 활동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부산, 광주, 제주, 그리고 대전 등등. 갈때마다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반가워했습니다. 생각치도 못한 환대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우리를 반가워하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이런 모임을 만날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전퀴모가 만난 퀴어들은 지금 열심히 모여서 활동을 합니다. 부산에서는 서로를 애타게 만나고 싶어 했던 두 단체를 연결시켜 주었고, 대전에서는 지부를 결성해서 다른 단체와 연대를 하고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원대에서 성소수자혐오 현수막을 걸었을 때 대전 성소수자인권모임 솔롱고스와 전퀴모 대전지부가 연대해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연결의 힘이고, 우리가 함께 모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어마무시 합니다. 처음에 대전에서 만난 퀴어는 다섯명이었지만, 그 다음해에 방문 했을때 우리가 만난 퀴어들은 50명을 육박했습니다. 우리는 그 힘을 모아서 카이스트 성소수자 동아리 이클, 대전 성소수자인권모임 솔롱고스와 함께 돌아오는 10월 8일, <불온한 당신> 상영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세 단체가 처음으로 연결되는 자리입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연결이 되니 끙끙 앓던 고민들이 모두 해결됐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기적인가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어디서 상영회를 하나 하는 고민도, 대관료 등 재정적인 문제도, 사람들을 어떻게 모을까 하는 문제도 함께 해결하니 놀랍게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전퀴모에서 이런 행사들을 많이 만들 계획입니다. 더 이상은 비수도권퀴어들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우리를 충분히 확인하고, 서로 연대하며,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전퀴모에서 만들고 싶은 세상입니다. 꿈같은 계획이라고요? 하지만 우리가 연결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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