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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빛나던 우리들의 자긍심 행진 _ 6월호

by 행성인 2008. 6. 21.
활동소식 : 동인련 회원들이 전하는 동인련 생생한 활동



해와 _ 동성애자인권연대 걸음[거:름]활동가

 

 지난 5 31, 올해도 어김없이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나에게는 직접 거리로 나선 세번째 퍼레이드였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다. 2006년 처음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할 당시의 나는, 혹시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혹은 사진이라도 찍혀 얼굴이 여기저기 떠돌게 될까봐 가슴 졸이던 소심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친구들에게 퀴어퍼레이드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일반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름다운건 제각기 다른 빛을 내는 것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거야.”라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 대해 설명하는 여유도 생겨났다. 그래, 확실히 나도 변하고 세상도 조금은 변한 것 같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올해도 동인련은 퀴어퍼레이드에서 동성애자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를 이야기 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단 동성애자 문제뿐 아니라 사회의 일원인 동성애자로서 매우 민감한 사회적 주제에 대해 당당히 발언을 했고, 우리와 똑같이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를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하지 않는 동인련의 참여가 절대로 바뀔 것 같지 않던 세상의 차별적 시선이 조금씩 변화하는데에 작지만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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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ht! for your Rights! 참가단 차량




  우리가 이번에 거리로 들고나간 슬로건은 ‘Fight! for Your Rights!’이었다. 이것은 남녀간의 결합만이 정상이라는 망언을 했던 이명박에게 우리의 인권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동성애자들의 정당한 요구였다. 또한 천박한 자본논리에 의해 국민 건강권을 미국에게 그대로 넘겨주고만 예의 호모포비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했다. 우리의 주장은 퍼레이드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이명박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더해져 더욱 크고 힘차게 청계천 하늘 위로 솟구칠 수 있었다. 거리의 시민들은 처음엔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힘내라고 그리고 응원하겠다고 소리쳐 우리를 한껏 격려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 동인련 깃발과 성소수자들의 친구 한기연 참가자들 _ 씨네21 사진 인용

 

 더욱 의미있었던 일은, 성소수자들이 모인 축제에서 고통받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모금행사를 진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단지 이주노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동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사냥을 당하고 강제로 출국 당하는 등 처참한 인권상황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단지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보다 열등할 거라고, 언젠가는 범죄를 저지르게 될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한다. 이것은 이 사회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매우 닮아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모금에 나섰고, 많은 성소수자들이 모금에 참여해 기대보다는 많은 액수의 성금이 모였다. 이것은 차별이 성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성소수자들의 동의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언제라도 소외받는 그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성소수자들의 작은 의지 표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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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퍼레이드에서 동인련이 배포한 손피켓


 




  그날 하루, 나는 여러 동성애자 단체들의 모습을 줄곧 관찰했다. 모두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이 결국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 나는 너무나도 감명받았다. 특히나 저녁 뒷풀이 자리에서 친구사이 회원들과 불렀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할만큼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누군가 그 노래를 종로 3가는 이반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이반해방은 여기에서부터 나온다라고 개사해 부르기 시작한 순간은 과연 우리에게 해방의 날이 올까라는 깊은 회의감을 가졌던 나에게 어떤 희망을 던져 주었다.


 

 동인련은 퍼레이드가 끝난 직후, 시청 앞 촛불 문화제로 발길을 옮겼다. 무지개 깃발을 앞세우고 시민들 속에서 시민들과 하나가 되었다. 시민들과 함께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했다. 수십만개의 촛불의 숲 속에서 우리의 촛불도 아름다운 빛을 내었다. 우리들의 자긍심 행진은 그렇게 낮부터 이어져 한밤에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우리들의 빛나던 자긍심 행진은 아직도 이 가슴 속에 무지개 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제각기 영롱한 빛깔로 빛나며 어우러져 고요하게 속삭이고 있다. 희망이 있는 한 절대로 꺼지지 않을 거라고, 꺼지지 않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빛날 거라고. 그렇게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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