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강정마을 활동가)
이 글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소모임 <전국퀴어모여라>의 블로그와 중복 기재 되었습니다.
제주도에 이민온 지 1년하고도 반이 훌쩍 넘었다. 제주도에서의 삶은 퀴어적으로는 모자랄것이 전혀 없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집안에 있는 녀성분들 말고는 ‘생물학적’ 여성-퀴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제주도의 ‘생물학적’ 여성-퀴어들은 꼭꼭 숨어 있거나,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급급했고, 설사 만나더라도 퀴어라는 공통점 외에는 어떤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복희님을 처음 만난 것은 데이트 어플에서였다.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말을 걸었다. 처음 만났던 날 우리는 커밍아웃보다 힘들다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힘겹게 이야기를 했다. 연애 이야기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함께 제주 시청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제주도에서 산책 중 흔히 보는 풍경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키워드를 꼽아 보자면, 되면 하고 안되면 말자, 게으름, 여성주의. 이 정도에요. 늘 퀴어와 여성을 중심으로 살고, 때때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지요. 호호.
-제주도에 온지 얼마나 됐어요?
2012년 3월 달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반대 시위하러 왔어요. 시위와 직접행동이라는 것이 뭔지 접하게 되었고 알수록 직접행동이라는 것에 매료되던 시기였어요.
-직접행동이 뭐예요?
시위랑 비슷한건데 부당한 힘에 저항하기 위해서 내 몸으로 행동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차에 몸을 쇠사슬로 연결한다던가, 외국의 경우에는 나무벌목에 반대하며 나무를 자를 거면 내 목과 잘라라 하는 식으로 끌어안고 있는 방법으로 저항했던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이 직접행동의 예죠. 저도 잘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그린피스 같은 단체에서 한강다리 위에 현수막 들고 올라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렇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목숨을 걸고 막거나 지키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어요.
-멋진데요. 그럼 제주도에 오기 전에 무엇을 했었는지 궁금해요.
별거 안했어요. 그 당시가 이십대 후반이니까 학교 때 배운 기술, 만화나 캐리커쳐로 돈 벌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봐도 난 직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벌어도 편하게 살 수 있을까를 크게 고민했었죠. 그래서 공동체 생활에 관심이 컸어요. 공동체 생활이라고 하면 왠지 규약이 강할 것 같고 목가적이고 금욕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빌붙을 곳이 필요했어요.
-공동체와 잘 어울려요.
돈이 없어서 그래요. (눈물) 가난한 청년의 정체성으로 재밌게 살아볼까 고민했다. 취직해서 돈 벌려고 억지로 하는 일은 힘들잖아요. 마음도 힘들고. 게다가 야근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어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강정에 오기 전에, 제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의 문화카페에서 일했어요. 오래된 도시의 특성을 살려서 학교 근처에서 영화 소모임도 하고, 책도 같이 읽고, 또 짬나면 동네 청소고 하면서 말이에요. 사장님이 어르신들이나 오래된 이야기들 발굴해서 이야기로 가공해서 청년들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었고 그 전에 돈을 벌자고 술집을 연 거였거든요. 취지는 좋은 곳이었지만, 사장님의 꼰대기질과 크게 부딪혀 그 판에서 나와서 어디로 갈까 기웃거리다가 마침 강정마을에 관한 트윗을 봤어요. 시위하면 먹여주고 재워준대서 가 보았죠.
처음 강정에 갔을 때는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도 가서 친해졌죠. 삼거리식당이라고 삼거리에 있는데,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서 공동부엌처럼 쓰는 곳이었어요. 거기에서 같이 밥 먹고 저항활동도 하면서 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어요. 그래서 동네 마을 회관같은 공적인 공간은 모두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어요. 지내 보다가 내가 지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예 육지의 짐들을 싸들고 내려 왔어요.
내려올 준비한다고 밍기적 거리다가 구럼비 바위 발파가 시작되어 부랴부랴 내려왔어요. 내려와서는 구럼비를 발파할 때 사용하는 화약이 보관되는 곳과 이동하는 시간, 경로를 쫓아가서 막아보려는 활동을 했어요. 경찰 측에서도 알고 교란작전 펼치고 진짜 화약 운반하는 트럭이랑 화약 실은 척 하는 가짜 운반차량을 준비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럼 실패한거네요?
네. 직접행동은 거의 실패하는 것 같아요. 공권력이 힘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지연시키는 거라도 하자는 현실적인 목표를 두었죠.
-강정에서는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어렵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퀴어 친구를 사귀고 싶어한 이유가 있어요?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어요. 그럴 필요도 없었고요. 사람들은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거든요. 전 당연히 전 동성애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를 분명하게 써도 (예: 전여친) 그냥 전남친으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어요. 상대가 전 남친 이야기를 하듯 전 애인의 이야기를 하는 정도에요. 강정 내에서 같이 활동했던 성소수자인 연대자들을 겪으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가 드러난 적이 있었는데 동료가 그러더라고요. “나도 그런 사례를 알아” 그래서 저도 손을 번쩍 들었죠. “여기 사례가 하나 더 있네요.”라고 말이에요.
-그게 커밍아웃 아닌가요?
아, 그렇나요?
-이미 꽤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가. (놀람)
자신도 몰랐지만 복희님은 늘 커밍아웃한 상태였다
-근데 꼭 제주도에 온 목적이 강정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네 강정이 아니었다면 제주에 이주할 생각을 안했을 거예요. 강정이 필요로 하는 협력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맞았고, 제가 원하는 삶이 강정에 있던 거예요.
-퀴어 커뮤니티에서 만난 제주도 사람들은 어땠어요?
두명 정도 만났는데, 그냥 딱 한번씩만 만났어요. 한 명은 맥주 간단하게 하고 끝났어요. 다른 한 명은 영화 한번 보고, 그 뒤로 계속 연락만 주고 받고 있어요. 전 쉬는 날에 놀러 나가는게 귀찮더라고요. 굳이 좋은 풍경 보러 차끌고 나가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피곤하고요.
-몸을 움직이면 원래 피곤하지 않아요?
아 그렇구나.(놀람)
복희님은 인터뷰 내내 이렇게 놀랐다(출처: 핀터레스트)
-제주도에서 어떻게 생활을 영유하시나요?
초등, 중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거나 삽화 일을 하거나 문화행사 진행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합니다. 하루에 출근해서 8시간씩 일하지 않고 보통 아침 늦게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얼마전이 여성의 날이었잖아요. 우리 가사분담에 대한 이야기 한번 해볼까요?
함께 살 때, 누군가가 살림을 하는 것에 손 놓고 있다면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할 줄 모른다는 건 핑계죠. 모든 인간은 혼자서 자기의 의식주와 보금자리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을 감당해봐야죠. 일과 살림을 조절하는 것도 삶이잖아요.
-맞아요. 저도 동의해요.
그건 여성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는 돌봄 노동을 하는 ‘노예’를 필요로 하죠. 그것이 식민주의적인 방식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집단이 가사노동을 하고 있으니까 고상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여성의 이야기보다는 남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성차별적인 대우에 맞서면서 일도 함께 해야 해요. 그러니까 에너지가 두 배로 드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여자들은 일을 못한다고, 능력이 딸린다고 해요. 그건 말도 안되는거죠.
저희 집만 해도 그렇거든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믿고 식당을 차렸지만, 가사 노동을 도와주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경제적 활동과 가정의 돌봄 노동을 함께 해야 했던 거죠. 전 그게 싫어서 빨리 독립을 했어요. 엄마를 착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은 어머니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부당하다는 생각은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이상하죠?
-왜 그럴까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돌봄노동을 필요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그건 전형적인 성 역할 때문이기도 하겠죠.
-지금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요즘은 강정에서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일주일에 한번씩 지킴회의를 해서 필요한 일들을 기획하고 일을 나누지만, 최근에는 돈버느라 많은 역할을 맡고 있지 않아요. 나는 강정에서 산책하고 밀린 잠을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해요.
-안해도 되요?
자발성을 존중하는 공동체니까, 강제성은 없어요.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한달에 한번 나오는 4면짜리<강정이야기> 편집을 도와주고 있어요. 또 활동인들의 주거를 지원하기 위한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시간이 맞을 때 방문자들에게 마을안내를 하거나 합니다.
-제주도에서 커뮤니티 어플을 처음 써봤다고 들었어요. 써보니까 어때요?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활동가나 여성주의자라는 말을 하기는 어려워요. 일반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기 힘든 것처럼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는 그런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되죠. 강정마을 활동가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게 일반 사람이든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든 말이에요. 사람들에게 이것은 경계를 지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는 모양이에요.
-일반적으로 퀴어 커뮤니티는 벽장이라는 것을 전제하잖아요. 활동가는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전문 시위꾼이나 빨갱이 같은 단어가 있잖아요. 그것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활동가에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나에게 친근한 감정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활동가라고 하면 갑자기 멀어지거든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아요. ‘나는 조용히 살고 싶은데, 저 사람과 얽히면 피곤해진다’ 라던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던가 말이에요. 요즘은 촛불시위 덕에 좀 덜하지만, ‘힘든 일 하시네요’라고 호의를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자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깐요.
-맞아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강정에서는 어때요, 계속 살건가요?
그럼요. 내가 원하는 게 다 있는걸요.
복희님이 손수 그리고 오린 퀴어퀴어한 리본
한눈에 보아도 전혀 스트레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복희님은 지금도 열심히 즐겁게 잘 지내고 있었다. 가끔은 강정을 떠나서 제주시에 나와서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퀴어로서나 활동가로서 거리낌없이 활동하는 모습은 부럽기도 하고, 덩달아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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