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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성소수자 안전에 대해

by 행성인 2017. 4. 13.

심해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협박범과 경찰의 2연타로 완성된 혐오범죄

 

곱게 접힌 편지지가 문틈에 끼워져 있던 것을 발견한 건, 오후 7시경. 퇴근 후 곧장 향한 집 현관문 앞에서, 연인의 깜짝 편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기분으로 편지지를 펼쳤다. 하지만 나는 곧 충격과 공포로 손을 떨며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금 장치를 모두 걸고, 믿을 수 없어 다시 읽어내려간 편지는 러브레터가 아닌 협박 편지였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첫 번째 문장은, ‘벽 너머로 들리는 신음소리는 잘 듣고 있다’ 였다.

 

협박범은 자신이 옆집 남자이며, 나와 내 연인이 레즈비언인 것을 알고 있고, 밤마다 신음소리를 듣기 위해 벽에 귀를 대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와이프가 임신 중인데, 다음주에 친정집으로 몸조리를 위해 떠나니 다음주 주말 밤에 자신의 집으로 둘이 와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당시 내 자취방은 양쪽에 집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 부부가 살고 있었다. 협박범은 본인의 집이 몇 호인지 쓰지 않았다. 나는 편지지를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패닉에 빠졌다.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던 끝에 생각해 낸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들고 인근 파출소로 향했다. 경찰에게 편지를 주고 이 협박범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협박 편지를 읽은 경찰의 첫 질문은, “진짜 레즈비언이에요?”였다.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경찰들은 편지를 돌려보곤 일단 돌아가라고 말했다. 집에서 기다리길 40여분, 곧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의 자취방을 훑어본 뒤, 둘 중 한 명이 편지를 들고 왼쪽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 그 집의 세입자 남성이 나오자 상황을 설명하고, 필체를 보겠다며 수첩을 요구하고, 수첩과 편지를 비교한 뒤, 필체가 다르다며 내게 다시 편지를 돌려줬다. 소요시간은 10분. 현관문이 열려있어 문틈으로 그 과정을 보고 있었는데, 현관 안쪽에 서있던 경찰이 질문을 했다. “진짜 레즈비언?” “옆집에서 알만큼 요란하게 해요?”

 

경찰의 2차 가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던 오른쪽 집에 사람이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내가 다시 확인을 요청했을 때 찾아온 경찰은 처음에 온 두 명이 아니었다. 다른 두 명의 남자 경찰이 내 집을 찾아왔고 나를 구경하듯 훑어보고는 오른쪽 집에 같은 절차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 명의 경찰이 집 안에 서있었다. 당시엔 연인이 자취방에 도착해 있었는데, 굳이 목을 빼고 둘러보다 연인을 발견하곤 “그럼 저 사람도 레즈비언?” “저 사람이랑?” 따위의 질문을 던졌다. 연인까지 충격을 받을까봐 나는 황급히 경찰을 밖으로 내보냈고, 수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절차는 10분 안에 모두 끝났다. 당연히 성과는 없었다. 경찰은 집 앞 골목 순찰을 돌겠다는, 사건에 맞지 않는 처방을 내놓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이사를 가기 전까지 매일 매일, 내가 사는 집 건물의 모든 공간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연인과 함께 있어도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작정을 하고 나선 남성 한 명을 여성 두 명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추가 범행의 증거가 될까봐 이사 전까지 버리지 못한 협박 편지는 늘 내 서랍 한 구석에 자리하며 나와 같은 방을 썼다.


 

당연한 권리를 위해

 

가해자가 나를 레즈비언으로 확신하게 된 것은 나와 내 연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들어가거나 나오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동네 어디에서든 내가 연인과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봤을 수 있다. 외부에서 손잡고 팔짱끼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나이기 때문에 내 성적지향은 약간의 의심과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지 알아챌 수 있는, 노출된 정보인 셈이다.

 

나의 정보를 획득한 남성 범죄자의 입장에서, 여성과 여성의 조합인 레즈비언 커플은 너무나 만만한 타겟이다. 가해자가 편지를 내 집 문 틈에 끼워 넣으면서 과연 이후의 내 반응에 대해 아주 약간이라도 걱정을 했을까? 여성 자체를 하등한 동물로 보는 남성 범죄자의 입장에서, 여성 중에서도 남성이라는 힘의 권력을 차용할 가능성이 없는 레즈비언은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앞선 사건은 ‘차별’을 동기로 하는 혐오범죄다. 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내가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해자에게 나는 그런 협박을 받아도 마땅한 대상이 됐다.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해도 되는, 그로 인해서 도망치듯 이사를 가는 시간과 비용을 손해 봐도 되는, 피해를 입어도 어떤 형사적 처벌을 할 수 없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기만 해도 되는 존재. 그것이 나였고, 여전히 나다.

 

여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서울시. 그 여성에 성소수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가.

여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서울시. 그 여성에 성소수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경찰은, 성소수자를 보호해야 할 국민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피해자로서 신고를 넣었다면 마땅히 남성 개인으로서의 호기심이나 편견을 접어두고 경찰로서 나를 대했어야 하지만, 반대로 경찰의 의무를 접어두고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범죄의 이유를 나에게 전가하는 발언을 통해 2차 가해를 했다. 몇 년이 지난 오늘, 다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경찰의 2차 가해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내가 협박 범죄자와 경찰에게 받은 피해를 보상 받을 길은 없었다. 법적으로 성소수자 혐오범죄라는 개념과 그것을 처벌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고 피해를 본 것을 형사처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끊임없이 거절당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 권익옹호를 위한 바탕이 돼야 이후로 조금씩이나마 국가와 법으로부터 보호 받을 마땅한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민으로서 의무를 동일하게 짊어진다면, 국민으로서의 권리 또한 동일하게 보장돼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에 의해 나는 내가 사랑할 사람,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행복추구권에 의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두려움도 없이 손을 잡을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지 두 번째 편지가 문에 끼워질 수 있는 현실 앞에서는 나의 안전, 나아가 생명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선을 앞둔 요즘, 성소수자이기 이전에 국민인 나의 권리를 용감하거나 용감하려 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당사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