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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봄을 기다리는 봄날의 편지

by 행성인 2017. 4. 5.


이사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작년 여름부터 성소수자노동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사벨입니다. 처음에 노동권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노동해방과 성소수자 해방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라는 다소 추상적인 궁금증 때문이었는데, 요즘에는 일터를 포함한 일상 곳곳에서 저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가시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느덧 4월로 접어들었지만 바깥 날씨는 어째 봄 같지가 않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홍수연님 추모문화제에 다녀왔는데, 앉아있는 두 시간 내내 다리가 덜덜 떨리더군요. 오랜만에 광화문 촛불집회를 생각나게 하는 날씨였습니다.

 

아직 봄이 다 오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비단 날씨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겨우내 이어진 1500만 촛불이 박근혜를 파면하고 구속까지 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힘도 많이 받고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이 바뀐다!’는 희망도 생겼지만, ‘정권교체가 먼저고 성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던 시기가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금도 ‘확실한 정권교체’라는 구호가 대세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씁쓸해질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답답한 오늘의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부터 자신을 드러내고 혐오에 저항하는 것이겠지요. 성소수자노동권팀에서 활동하는 저의 역할이 있다면,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노동하고 있을 성소수자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조금 더 ‘영혼 있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성소수자노동권팀의 올해 계획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만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술 마시기 전(좌)과 술을 마시고 난 후(우)의 모습

 

 

먼저 인터뷰 프로젝트를 6년 만에 재가동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어떤 차별들을 경험하는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때문에 어떤 고민들을 하게 되는지 꼼꼼히 기록해서 가시화할 계획이에요. 

 

3월 일하는성소수자모임 알바다큐 <가현이들> 공동체 상영

또한 작년까지 연례행사로 준비되었던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일성모)’을 연중행사로 개편하여 일상적으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초기에는 일정이 빡빡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두 달에 한 번 진행하기로 했는데 강연회, 영화상영, 취미모임 등 아이디어가 차고 넘쳐서 벌써 지난주에만 두 차례의 일성모를 진행했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서울 서대문 안산공원에 벚꽃놀이를 가서 신나게 놀다 올 예정이에요.

 

4월 일하는성소수자모임 홍보 웹자보

 

오늘 밤도 추위에 종종걸음을 치며 집으로 들어가겠지만, 다가오는 토요일에는 부디 날씨가 풀려야 할 텐데요. 따뜻한 봄날에 여러분과 함께 일터에서의 설움은 잠시 잊고 재미있게 뛰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진정한 봄날을 앞당길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이 떠들고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