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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행성인 후원인을 만나다 #1 고성원 한울타리 사장님

by 행성인 2017. 4. 13.

 

행성인은 단체 발족 이후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회원/후원회원들의 기여를 통해 단체를 운영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왔다. 20년 가까운 단체 역사 속에 수많은 후원인들이 단체의 버팀목이 됐다. 후원은 우리의 활동과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행성인 20년을 맞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성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후원회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나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행성인이 자료집이나 포스터를 인쇄할 때면 꼭 찾는 인쇄업체가 있다. 거래를 튼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무리 촉박한 일정으로 인쇄를 요청해도 요청한 시한을 넘긴 일이 없었다. 한결같이 친절하고 든든한 곳이라 자연스레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한울타리’ 인쇄소다. 그런데 재작년 겨울, 인터넷으로 들어온 후원회원 신청서에서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고성원. 어디서 봤더라...아! 한울타리 사장님이었다. 놀람 반, 반가움 반. 뜻밖의 후원 신청은 늘 반갑지만, 그저 좋은 거래 업체 사장님이라고 생각했던 이름이 보이니 평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행성인이 만들어내는 각종 자료집과 인쇄물을 접하셨을 테지만 사무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울타리 인쇄소를 직접 찾아가거나 사장님을 뵌 일은 전무했다. 처음 사장님과 얼굴을 맞댄 건 반근혜 탄핵을 외치며 100만 명의 인파가 거리를 메운 작년 11월 12일 민중촐궐기에서다. 전날 급하게 피켓 인쇄를 요청했는데 배송 요청을 깜빡했다. 오전에 연락을 드리니 집회에 참여하신다며 직접 피켓을 전달해 주시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날 광화문 인근을 이동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사장님은 1시간 가까이 걸려서 광화문을 지나 시청 근처에 있던 행성인 대열을 찾아와 피켓을 건네주셨다.

 

2016년 송년회를 준비하면서 한 해 동안 활약한 회원들에게 상장을 줄 준비를 하다가 문득 후원회원 중에서도 감사를 표할 분들이 떠올랐다. 회원 중심인 단체이고 회원/후원회원의 구별을 두지 않다보니 후원회원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감사 표현이 적었던 터라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하루 전날 인쇄를 맡긴 구술사 아카이빙 자료집부터 민중총궐기 피켓 배송 사건까지 유독 송구한 일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레 고성원 사장님을 올해의 후원회원으로 꼽았다. 아쉽게도 송년회에 참석하지 못하셔서 새해를 맞아 상장과 선물을 전달하러 인쇄소를 찾았다.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학생 출신인 친구를 만나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됐죠. 그 전부터도 관심이 있었어요. 공부하고 싶고 책을 좋아해서 좋은 책 읽고 싶어서 인쇄 현장에서 일하게 됐죠. 87년 노동자 대투쟁 있을 때부터 준비해서 88년 1월 14일에 지역노조로 인쇄노조를 만들었어요. 그 당시 87년 투쟁 이후 성과 중 하나가 청피, 제화, 인쇄, 금속 같은 영세사업장들이 조직된 거였어요. 서울지역 인쇄노조 같은 경우 서울지역 200인 이하 사업장이 조직 대상이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노출이었죠. 리드하는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학생운동 출신이 많았어요.

 

인생에서 잘 한 거는 부도 난 것, 수습 잘 한 거랑 마라톤하고 운동하는 거에요.

 

미군 장갑차 사건부터 인쇄 일을 많이 했죠. 고대 학생들이 선거 나갈 때도 와서 편집했구요.


행성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게 2006년에 육우당 추모집을 한울타리에서 인쇄하면서였다고 들었어요.

당활동을 통해서 알았는지 우연히 그 일을 했어요. 책도 가지고 있었는데 사무실에 불이 난 적이 있어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문건을 많이 모았어요. 나중에 읽어 보려고요. 부도나면서 유실되고 사무실 불나서 유실되고 많이 잃어버렸어요. 육우당 추모집도 잘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작년 말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제 해야되겠다 싶었어요. 최현숙 씨가 민주노동당 활동하신 것도 알았고, 예전에는 당게시판에 좋은 글이 많이 올라왔잖아요. 그런 글들 접하면서 배운 게 많았고. 성평등 교육이 있어서 이수도 했었죠. 그리고 진보정당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지지로부터 출발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당활동을 했던 거구요. 이제 사는 게 좀 나아졌으니까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생각해서 후원하고 있어요.
 
행성인이나 친구사이나 제가 어려운 시기에 꾸준히 일이 들어와서, 그때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죠.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우선은 다달이 후원부터 하는 거죠.

 

늘 급하게 부탁드려도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 언제나 촉박한 일정으로 부탁드려도 시한을 맞춰서 작업해 주셔서 놀랍기도 해요.

저는 노동자 출신이라 일을 해야 먹고 살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고 수당이라도 벌려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토요일에 집에 가고 했어요.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까 일하는 게 몸에 뱄어요. 지금도 돈이 없는 건 버티겠는데 일이 없는 건 못 버티겠어요. 일흔 살까지는 열심히 일하려고 운동도 열심히 하거든요.
 
출판사 등록을 해 놨어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책을 출판하는 게 꿈이에요. 돈을 벌면 좋은 책도 많이 내주고, 후원도 많이 하고 싶죠.


동인련이나 성소수자 운동과 관련해서 인상적으로 기억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육우당 추모집 보면서 많이 마음이 아팠어요. 예전에 재개발 투쟁 때문에 시청에 갔는데 싸우고 있더라구요. 2011년인가 재개발 투쟁을 했거든요. 그때 재개발 투쟁하는 사람들도 성소수자들이 정말 잘 싸운다고 이야기하고 했어요. 그때 아는 체도 하고 같이 으쌰으쌰 하고 싶었는데 쑥스러워서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란 게 뭐겠어요. 편안히 일하고, 차별 없이 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잖아요.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사이에 사회가 너무 각박해졌잖아요. 자살율도 높고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사회 제도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게 해결되고 하면 정서적으로 이렇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소수자 운동 자체가 굉장히 넓어졌고, 이젠 당연시 받아들이는 시기인 것 같아요. 1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아요. 그냥 거저 주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행성인에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성소수자 단체에서 편집돼서 오는 걸 보면 감각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성소수자분들에게 가끔 신세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 보이더라구요.(웃음)

 

자주 만나서 편안하고 서로 외롭지 않게 연대해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처음이 힘들지 자꾸 만나다 보면 친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