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받은 사람: 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인터뷰 한 사람: 조나단, 주원, 길벗(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조나단: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오소리: 행성인에서 상임활동하면서 웹진기획팀과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소리 입니다. 양성애자로 정체화 하고 있어요.

 

 

애인따라 삼만리

 

인터뷰는 오소리의 집 근처 카페에서 진행됐다.

 

주원: 행성인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어요?

 

오소리: 가입은 2013년 5월에 했어요. 그 전에 애인과 같이 성소수자 인권포럼의 행성인 세션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행성인을 알고는 있었어요. 그러다 애인 권유로 5월쯤 ‘살롱 드 에이즈’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그때 프로그램이 되게 좋았어요. 에이즈에 대해서 잘 몰랐고 인권에 관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그 프로그램 들으면서 인권과 에이즈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요. 거기서 정욜 님이 행성인 가입을 권유 하셔서 즉석에서 가입을 했어요.

 

조나단: 그러면 애인은 어떻게 행성인 회원이 되었어요?

 

오소리: 애인은 2009년에 육우당 캠페인을 갔는데, 자유발언 시간이 있어서 무대에 올라가서 발언을 했대요. 그때 이경님이 발언을 듣고 (그때는 동인련이었으니까) 동인련 노동권팀에 함께하자고 해서 오케이했다고 하더라고요.

 

조나단: 행성인에 오기 전에는 어떤 공부나 활동을 했나요?

 

오소리: 그 전에는 대학교만 다녔어요. 제가 전공이 화학공학인데, 맨 처음에 학과 선택할 때 단순하게 화학이 좋아서 선택했거든요. 근데,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게 화학이랑 화학공학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막상 들어가서 공부하니 재미가 없었어요. 대학에 오긴 했으니 졸업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는 수 없이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요. 재미없고 무료하던 와중에 애인을 만나고 행성인을 알게 되고 그렇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 전까지는 인권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특히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하고 있었어요.

 

조나단: 그렇게 행성인에 와서 웹진팀 활동을 시작했고, 또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활동 계기를 알려주세요.

 

오소리: 2013년 5월에 가입하고 6월 퀴어퍼레이드 전에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어요. 퀴어퍼레이드에서 애인과 함께 입을 티셔츠를 제작하려고 들렀거든요. 그 때 마침 웹진팀이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참이었는데,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녁을 함께 먹게 됐는데 ‘웹진팀에서 뭐 먹으면 이제부터 웹진팀이라고’ (웃음) 하는 거에요. 그때 당시 퀴어퍼레이드에서 돌릴 호외를 만들 때였어요. 그래서 웹진팀에서 하게 된 첫 일이 호외 만드는 것이었죠.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주원: 작년에 웹진팀장이었는데 좋았던 부분과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소리: 힘들었던 것은 현재 상임활동도 같이 하고 있잖아요. 실시간 발행 체제가 되면서 정기발행 때 외에도 웹진을 손볼 일들이 많아졌는데 상임활동과 편집장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업무가 많더라고요. 그런 게 좀 힘들었어요.

좋았던 것은 ‘편집장 부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웹진이 발행된 후, 사람들 반응이 좋으면 기쁘더라고요.

 

조나단: 올해 웹진팀에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뭐에요?

 

오소리: 제가 편집장의 역할은 안 하지만 웹진의 기획력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사실 웹진팀에는 애정이 많아요. 처음 행성인 활동을 웹진팀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현재 상임활동하면서도 웹진을 내려놓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고요. 활동의 맨 처음 시작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행성인 회원 중 친한 회원들도 다 웹진팀에서 만나게 됐으니까요.

 

조나단: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잖아요. 부모모임은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어요?

 

오소리: 제가 2014년 12월에 미국을 방문했어요. 미대사관에서 운영하는 IVLP프로그램이었는데, 저 포함해서 7~8명의 신예 활동가들이 미국에 있는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미국이 한국보다 성소수자 운동이 앞서니까 가서 보고 성장하라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죠. 그 때 갔던 곳 중 하나가 뉴올리언스에 있는 PFLAG(Parents, Families and Friends of Laesbians and Gays) 지부였어요. 낮에 그곳 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하고서, 마침 그날 저녁에 열린 그 지부의 정기 모임에 초대받았어요. 한 달에 한번 있는 모임인데 운이 좋았죠. 그 정기 모임에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서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어요. PFLAG 뉴올리언스 지부처럼 한국의 부모모임도 크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며 마지막에 모리(당시 부모모임 담당) 태그 걸고 ‘같이 할게요!’ 라고 했죠.  그렇게 호기롭게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1월부터 부모모임 활동을 시작했어요.

 

오소리의 미국 LGBT단체 방문기 ② – 뉴올리언스편

 

주원: 소감이 어때요?

 

오소리: 그 때 당시만 해도 규모가 작았는데 지금은 정말 커지고 많이 알려졌어요. 뉴올리언스 지부보다 오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그게 뿌듯해요. 저 혼자만 한 것은 아니지만요. 나중에 더 나아가서 미국에 있는 단체처럼 독립된 단체로 더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한가지 아쉬운 것은 미국 단체에서 오셨던 분들은 정말 다양했거든요. 연령부터 가족 관계, 기혼이반, 할머니,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이가 딸려있는 트랜스젠더나 어린 동생과 같이 온 성소수자도 있었어요. 한국 부모모임도 다양한 관계의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한국 특성상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요.

 

주원: 가족들을 부모모임에 모시고 싶나요?

 

오소리: 엄마를 부모모임에 모셔오는 게 제 큰 꿈이에요. 아직 커밍아웃을 못했어요. 부모모임 활동하면서도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부모모임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은 커밍아웃 방법인지 다양한 정보들을 듣지만 실천에 옮기기 너무 힘들어요. 제 최대의 과제인 것 같아요.

 

주원: 누나에게는 커밍아웃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그 후일담을 듣고 싶어요

 

오소리: 직접 하지는 않았어요. 애인네 학교 축제에 갔는데, 야외에서 하는 음악다방 행사가 있었어요. 사연을 들려주고 신청곡을 틀어주는 행사였거든요. 그날 따라 사연이 ‘사랑’ 중심이었어요. 애인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에서 ‘오늘 너무 이성애 중심적이다’ 라는 말들이 오고 갔어요. 그래서 이렇게 있을 수 없다고 해서 호기롭게 저도 사연을 보냈죠. ‘오늘 애인을 따라서 오게 됐다. 저도 남자고 애인도 남자다. 근데 내가 얘를 사귄다는 것을 한번도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고 사연을 보냈어요 총학생회장이 사회를 보았는데 그분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분이었는데요. 괜찮다면 사연을 직접 읽어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애인을 끌고 올라갔지요. 사연을 읽고 마지막에 사랑해 하면서 껴안았어요. 같은 테이블에 앉은 형이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누나 남자친구의 친구가 그 형과 친구였던 거에요. 그래서 누나 남자친구가 누나에게 알리고, 누나도 영상을 본 거죠. 누나에게 전화가 왔고 그렇게 누나가 알게 되었죠. 누나는 되게 덤덤했어요. 다만 애인이 이 친구라는 얘기를 했을 때는 조금 놀랐어요. (웃음) 공익 같이 하던 시절에 누나 집에 애인을 데리고 간 적도 있고 해서 누나가 제 애인을 그 전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누나와 같이 술을 마신 적도 있고요. 통화 말미에 언제 한번 만나서 애인과 밥이라도 먹자며 전화를 끊었죠. 진짜 데려가서 인사를 했고 잘 받아줬어요. 요즘도 가끔씩 안부를 물어요. 얼마 전에 애인과 여행갈 때 차도 빌려주면서 아이스박스에 반찬을 실어주기도 했고요.

 

 

호기로움과 의지만 있으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과도한 설정샷

 

조나단: 현재 상근자로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사무국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어요?

 

오소리: 사무국 일이 사실 체계적으로 나눠져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그런 시스템을 잡아가려고 하고 있어요. 서로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아요. 일단 기본적인 전화 및 메일 응대는 상임활동가들이 다 같이 하고 있구요. 저는 주로 새로 가입하시는 신입회원분들께 전화 드려서 안내하고, 행성인 행사 시 참석자 확인 및 취합을 담당하고 있어요. 종종 행사 웹자보나 피켓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재정 부분에서는 수입지출 관리를 하고 있기도 해요. 사실 팀 활동도 하고 있기 때문에 팀 관련 업무들을 상근활동 하는 시간에 많이 할애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무국 업무에 집중하려고 올해는 팀장 자리를 다 내려놓았죠. 그리고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구넷) 연대 활동 담당을 하고 있고 올해는 인권단체 연석회의 담당자도 맡게 됐어요.

 

주원: 상근자로는 왜 어떻게 일 하게 되었어요?

 

오소리: 처음에 행성인에서 활동하며, 인권운동을 하는 게 너무 재미 있었어요. 재미 붙였을 때가 취업을 걱정해야 할 4학년이었죠.

 

어느 날 교양 수업으로 듣던 철학 수업 시간에 니체의 ‘힘에의 의지’ 그리고 ‘긍정적인 삶’과 ‘부정적인 삶’에 대해 듣게 됐어요. ‘부정적인 삶’은 소문대로, 그저 나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고 여기서 주체는 ‘they’ 이고요. ‘긍정적인 삶’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결과마저도 (결과가 ‘그들’에게는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긍정하는 것이고 여기서 주체는 ‘나’이죠.

 

수업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경우의 수에 따라 이것저것 재보기도 하고, 당장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수업 마지막 즈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었어요. “평생을 다 바쳐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손 들어봐라.”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저 홀로 당당히 손을 들고 외쳤던 기억이 있어요. “인권운동이요!” 라고요. (웃음) 전업 인권활동가가 제 꿈이 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때 당시 운영위원이 아니었는데도 운영회의에 항상 참관을 갔고 행성인 모든 활동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가했어요. 그러다가 2015년 초쯤 상근자 자리가 공석이 되어 한번 도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아쉽게도 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15년 여름에 혹시 반상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이 왔죠. 단체가 커진 만큼 두 명의 상근자만으로는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후에 단체 재정에 여유가 생기면서 16년도부터 전임상근을 하게 되었죠. 주위에서 ‘의지로 상근 활동가가 됐다’고들 해요. 처음에 상근 활동가로 지원할 때에는 “나 아니면 누가 상근 하겠냐” 호기롭게 이야기 했었는데, (웃음)  요즘에는 그때 호기만 넘쳤구나 하는 생각도 해요. 제 부족한 점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더라고요. 의지만으로는 안되고 공부도 많이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조나단: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좋은 부분과 힘든 부분은 뭐에요? 힘들 때는 어떻게 견디나요?

 

오소리: 처음 6개월은 힘들었어요. 그냥 활동이랑 상임 활동은 다르더라고요. 회원일 때도 알아서 열심히 일을 하기는 했는데, 책임감이 다르더라고요. 회원으로서 팀 활동을 할 때는 내가 사정이 있거나 힘들거나 피곤해서 빠져도 큰 무리는 없는 거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잖아요. 물론 상임활동을 하면서도 정말 아프거나 피곤하면 쉴 수도 있겠지만 다르더라고요. 또 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에요. 같이 일하는 나라나 웅은 지식도 정말 많고 활동을 오래했기 때문에 활동감각도 있는데,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리고 인권단체 상임활동가의 활동비가 많지 않잖아요. 전에는 반상임이라서 월급이 더 적었기에 생계 유지가 좀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전임 활동가가 되면서 활동비가 늘어났기 때문에 조금 해결이 되었지만요.

 

그리고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는 게 힘들었어요. 주말이나 저녁에도 계속 행사나 업무가 있고 하루 종일 신경 써야 하고, 내 시간이 없어지더라고요. 6개월 정도 하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방법을 익힌 것 같아요. 지금 와서는 크게 힘든 것은 없어요. 힘들 때는 힘들고 바쁠 때는 바쁜 거야 뭐 다들 겪는 일이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억지로 하는 일이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힘든 일들은 애인에게 보통 털어놓으며 풀어요. 역량적인 면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요즘은 행성인 뿐만아니라 타 단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성명서나 글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역량도 더 느는 것 같고요.

 

좋은 점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오롯이 몰두해서 할 수 있다는 거요. 기자회견 같은 행사가 낮에 열리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참여를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낮에 열리는 집회나 행사에 다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또 행성인에서 마련한 자리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다른 연대 단위에서 반응이 좋을 때 뿌듯해요. 이번에 인증샷 캠페인 할 때 각계각층에서 인증샷을 많이 찍어서 보내주셨는데, 행성인의 상임활동가 라는 게 뿌듯했어요.

 

길벗: 상임활동가 오소리의 일과가 궁금해요.

 

오소리: 행성인은 출근이 자유로운 편이에요. 저녁이나 주말 일정도 많아서 탄력 있게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점심을 같이 안 먹는 경우가 많아요. 낮에 일정이 많으니, 사무실에 없을 때도 많고 각자 밥 때가 다르더라고요. 웅은 3, 4시에 점심을 먹기도 해요. 띵동이나 연분홍치마는 주방시설이 되어 있어서 같이 밥 먹는다는데 그런 게 부러워요.

 

조나단: 사무실에서 일할 때, 사무국원들은 어떻게 일해요?

 

오소리: 업무가 많으니 주로 각자 자기 업무를 해요. 그래서 일할 때 서로 대화를 좀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 대화를 많이 하며 상임활동가들끼리의 시간도 많이 가지면 일의 능률도 더 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주원: 사무국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본다면요?

 

오소리: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데 많이 가르쳐줘서 고맙고 앞으로 잘해봐요! 자주 밥 같이 먹고 술도 자주 마셔요!

 

조나단: 가구넷 연대 활동에도 오래 참여했잖아요. 가구넷은 어떻게 연대하게 된 거에요?

 

오소리: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어요. 결혼해서 시골에 집을 짓고 마당에 개 키우면서 사는 것 같은 거요. 단순히 결혼이 진짜 하고 싶어서 가구넷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연대체 활동을 하게 된 거에요. 그 로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에요. 운동으로서만이 아니라 제 삶의 목표죠! 동성결혼!!! 내 꿈은 내 손으로! (웃음)

 

그런데 가구넷 활동에서 주로 다루는 게 법적 쟁점이다 보니까 변호인단 쪽에서 실무를 많이 해요. 그래서 나는 가구넷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올해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개편되었어요. 변호인단과 캠페인팀 이렇게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분담할 수 있게 되었죠. 올해는 캠페인팀에 들어가서 활동하기로 했어요.

 

 

행성인 공식 사랑꾼의 달달한 러브스토리

 

Mn 은 오소리 실명의 약자. Ju 는 오소리 파트너의 영어 이름.

 

조나단: 아까도 종종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행성인 공식 사랑꾼인데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요?

 

오소리: 2012년 12월 6일에 처음 만났고 사귀기 시작한 날은 2013년 1월 6일 이에요. 제가 구청에서 공익근무를 할 때 만났어요. 구청 건축과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애인을 후임으로 만난거라, 처음 본 날을 정확하게 기억해요.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보자면 반가를 쓰고 제가 오후에 출근을 했더니 못 보던 공익이 앉아있는 거에요. 그때는 그냥 반가웠어요 새로 얘기 할 사람이 생긴 거니까요. 둘 다 담배도 피고 술도 자주 마시고 밥을 같이 먹다 보니 조금씩 친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곁을 지나는데 컴퓨터로 페이스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즈음이 제가 페이스북을 갓 시작했을 때였거든요. 제가 제 이름을 페이스북에서 찾아서, “친구 추가해요.” 하고 지나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엄청 고민을 했다고 해요. 애인은 오픈리게이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페이스북을 보면 누구나 게이임을 알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결국 친구수락을 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 담벼락을 훑어 보는데 사회운동, 노동운동, 성소수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더라고요. 처음에는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제가 학생 때 학생회 활동은 했지만 집회에 나가거나 운동까지는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해보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을 하는, 되게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더 훑어보는데 담벼락에 ‘I am gay, I am not a terrorist’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렇게 게이인 걸 알게 됐죠. 그래도 직접 이야기 하기를 기다리며 따로 말은 안 했어요.

 

어느 날 애인 집 앞에서 술을 마시는데 커밍아웃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고 있었다고 먼저 얘기해주길 기다렸다고 이야기 했죠. 그 다음부터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요. 비밀을 털어놓은 사이가 된 거니까요. 그 당시만해도 저는 제가 이성애자인줄 알고 있었어요. 호감인줄만 알고 있었죠. 저랑 애인이랑 제 애인의 가장 친한 친구 한 명과 셋이서 술을 마시게 됐는데, 그 친구가 제게 “진짜 이성애자냐”고 물었을 때만해도 저는 이성애자다 라고 했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애인과 애인 친구가 미리 물밑작업을 해놨더라구요. 제 정체성 확인해보려고. (웃음) 그런데 그 후 일주일 뒤에 먼저 애인한테 고백을 했어요. 저도 긴가민가 했던 거죠.

 

어떻게 고백을 하게 됐냐면 함께 술을 마시는데 한참을 마시다가 애인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네가 좋아질 것 같다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저한테 전화를 해보라고 했어요. 애인을 만나기 전에 미리 수신자 전용 벨소리를 지정해놓았거든요.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였어요. 1분 남짓 지나서 ‘사랑해도 될까요’라는 가사 부분에서 울리던 벨이 끊어졌어요. 그때 제가 이야기 했죠. “사랑해도 될까요?” 그 때가 1월 6일 딱 넘어갔을 시점인 12시 34분이었어요. (나중에 일어나서 통화기록을 확인해봤어요.) 그러고 나서는 제가 긴장이 풀렸는지 쓰러졌고 다음날 일어나보니까 어느새 애인이 되어있었지요.

 

조나단: 연애 전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없었어요?

 

오소리: 이전에 해본 적은 없어요. 지금 애인과 사귀고 나서 게이인가 양성애자인가 고민을 했죠. 그 전에는 여성을 만났었거든요. 그 때 감정이 거짓된 감정이 아니었고요. 그래서 양성애자로 정체화를 했는데, 물론 지금 애인과 헤어질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 내가 다시 여성을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은 해요.

 

조나단: 최근에 함께 살게 되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또 연애가 지금의 삶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도 듣고 싶어요

 

오소리 ♡ 곱단의 새로운 보금자리. 인터뷰를 마친 후 웹진팀원들과 함께 오소리네 집들이를 했다.

 

오소리: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공간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런 변화는 있는데 관계에는 별로 차이가 없어요. 둘 다 자취를 해서 학생이었을 때, 방학 시즌에는 동거했던 경험이 짧게라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집이 이전에 살던 집에 비해서 많이 좋아져서 둘 다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데 서로 바빠서 집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고 있어요.

 

영향은 굉장히 크죠. 제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성소수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요. 애인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싶어요. 애인이 길잡이 역할을 한 건데 그 변화가 마음에 들어요. 주변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하죠. 엄마가 특히 싫어했어요. 나름 ‘전도 유망’한 학교와 전공이었는데 전공을 살리지 않고 인권운동에 뛰어들었으니까요.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진 않았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인권단체라고 이야기는 했거든요. 엄마가 그날 밤새 펑펑 울었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저는 이게 좋고 재밌으니, 엄마도 이제는 어느 정도 설득은 된 상태에요. 하지만 커밍아웃 전이니, “그래도 결혼하려면 돈을 좀 모아야 하지 않겠니?” 하시기도 해요.

 

조나단: 연애 하면서 키스 퍼포먼스 등 게이커플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을 많이 했는데 부담되거나 어려운 점들은 없었나요?

 

오소리: 사실 저는 그 키스 퍼포먼스를 했던 게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거든요. 호기로운 게 있었어요. 그때 물론 호기로운 마음으로 했었지만, 사실 지금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애인과 헤어질 생각이 없고 가족 구성권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커플의 관계를 좀더 외화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가시화 운동 일환으로요. 그날 찍힌 사진이 ‘한겨레 21’에 두 페이지에 걸쳐서 크게 사진이 나갔어요. 그래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안 한 상태지만, 그 사이 인터뷰나 기자회견도 많이 했는데 모르시더라고요. 이쪽에 관심 없는 사람은 찾아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것 같아요.

 

선암여고탐정단 동성키스장면 검열반대 기자회견 중 키스 퍼포먼스 (한겨레 21)

 

제가 페이스북을 일반 제 친구들도 다 볼 수 있게 계정을 사용하는데요. 활동하는 거 다 올리거든요. 그런 이유가 일일이 커밍아웃하기 귀찮아서예요. 커밍아웃을 하는데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비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알아서 먼저 페북 친구를 끊어서 걸러지더라고요. 안 끊고 있는 친구들은 관계가 어느 정도 이어져 나가는 거고요. 그게 편하기도 하니, 언론에서 보도 되어서 누군가 알게 되어도 편하다고 느껴요. 그 이후에 소통하면 되는 거니까요.

 

주원: 페이스북에서 인상 깊었던 반응이 뭐에요?

 

오소리: 신기한 게,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였는데도요. 한번, 제가 지나가는데, 주변에서 수근수근 거리는 게 느껴진 적은 있었어요. 그래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없었어요.

 

조나단: 이 자리를 빌어 애인에게 그 동안 못했던 한마디를 해본다면?

 

오소리: 내 삶의 방향을 찾게 해줘서 너무 고맙고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 힘들어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 너무 미안해. 우리 앞으로 더 알콩달콩 즐겁고 기쁘고 신나게 잘 살아보자. 사랑해<3

 

 

내 삶의 터, 행성인

 

인터뷰 때 그의 파트너 곱단도 잠시 들려 함께 했다.

 

길벗: 초등학생 때 꿈은 뭐였어요?

 

오소리: 대통령이요. (웃음) 중학생 때에는 교사가 꿈이었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에는 그냥 일단 ‘좋은 대학에 가자’가 목표였죠. 대학생 때에는 이 길을 만나게 되기 전까지 꿈이 없었어요.

 

조나단: 취미는 뭐에요? 쉴 때 어떤 것을 하며 노나요?

 

오소리: 게임을 많이 해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PC로 RPG 게임을 많이 했어요. 중학생 때는 밤새서 게임을 하기도 했고, 대학생 때에도 많이 했어요. 한번씩 손댄 것만 포함하면 30개도 넘을 거에요. 요새는 누워서 스마트폰 게임을 많이 하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워있고 싶더라고요. 컴퓨터 앞에는 못 앉아있겠어요. 요즘은 포켓몬 고를 즐겨 합니다. (웃음)

 

조나단: 활동 외에 배우고 싶거나 새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이 있나요?

 

오소리: 공부를 좀더 많이 하고 싶어요. 상임활동을 하다 보니까 성소수자 활동가나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싶도록 존경스럽고 대단한 활동가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활동으로서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신입 활동가들이 행성인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건데요. 행성인은 회원들이 알아서 살아남으며 활동하는 구조라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회원들이 많다 보니까 일일이 다 케어 할 수는 없어도 시스템을 만들어서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신입회원 메일링도 따로 없거든요. 그런 것도 만들어 보고 싶고요.

 

조나단: 활동 외에는요?

 

오소리: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요. 아 그런데 이것도 활동이랑 연결되네요. 성소수자 해외 소식이 보통 영문 기사로 되어있잖아요. 짧은 영어로 뜨문뜨문 해석하다 보면, 해석이 잘 안되기도 해요. 또 해외 활동가 방문하는 경우에, 통역이 붙지만 온전히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보니까 답답하더라고요. 또 해외에 활동 견학 프로그램 기회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 외에는 기타나 악기를 배워보고 싶어요. 대학생 때 호기롭게 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서 기타를 샀거든요. 혼자 하다 보니까 힘들고 재미도 없어서 지금은 먼지가 쌓여가고 있어요. 또 그래픽디자인 같은 것도 배우고 싶어요. 포토샵을 다룰 수 있지만 아마추어 수준이라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조나단: 향후 다른 직업도 생각하고 있나요?

 

오소리: 미래에 뭐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상임활동도 이제 2년이 안되었고 당분간은 계속 행성인에서 활동하고 싶으니까요. 아주 나중에 ‘이경’이나 ‘욜’처럼 행성인에서 뻗어 나가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처럼 다른 운동과 성소수자 활동의 끈을 만드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주원: 늘 회원 인터뷰는 오소리가 담당이었는데, 이번에 인터뷰 받은 소감을 알려주세요.

 

오소리: 막상 받아보니까 많이 어색하긴 하네요 미리 준비를 할걸 하는 아쉬움도 남고요.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해본 적 있지만, 웹진에서는 처음 받아보는데요. 일단 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디서 길게 제 얘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매체와 인터뷰 할 때도 저에 대해서라기 보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요. 회원 인터뷰가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많이 할 수 있다는 것. 많은 분들에게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인증샷 캠페인

 

주원: 오소리에게 행성인이란?

 

오소리: 저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행성인에서 활동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좋은 만남의 장이자 제 삶의 터인 것 같아요. 제 삶이 행성인을 통해서 확 바뀌었고 행성인 중심으로 삶이 이뤄지고 있어서 행성인 사무실에 가면 집에 온 것 같을 때도 있어요. 행성인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인 것 같아요.

 

길벗: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마지막 한마디를 해주세요.

 

오소리: 행성인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공간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던 저도 활동을 하며 이렇게 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서로 많이 배울 수 있는 편안한 공동체인 것 같아요. 행성인에 오는 것을 주저하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저희 웹진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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