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회원 인터뷰] 넘치는 프라이드를 활동으로 승화하다! - 빗방울의 소나기 같은 활동이야기

by 행성인 2017. 2. 4.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겨울, 주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사람: 빗방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부모모임)

 

 

인터뷰는 행성인 무지개텃밭에서 진행되었다.

 

오소리: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빗방울: 행성인에서 작년 6월부터 활동하고 있는 빗방울입니다. HIV/AIDS인권팀(이하 에이즈팀)이랑 성소수자 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모순의 집합체

 

오소리: 행성인이나 친구사이에 오기 전에는 어떤 공부나 활동을 하셨나요?

 

빗방울: 전반적인 거요? 인권활동에는 관심만 있었고 행동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 전에는 중학교 때부터 먹고 살 공포 같은 게 큰 사람이었어요. 공부하다가 안되니까 여러가지 진로를 찾던 와중에 게임 개발 쪽으로 진로를 잡고 계속 공부를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동안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다가 작년 4월쯤에 그만 뒀어요.

 

오소리: 행성인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셨나요?

 

빗방울: 처음에 디나이얼이었다가 제 정체성을 받아들인 게 재작년 중순이었어요. 그 후 1년동안 은둔 게이로 살았어요. 그러다가 부모님한테 이걸 죽을 때까지 숨길 수 없으니까 커밍아웃을 준비하게 됐는데 그 와중에 부모모임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부모모임에 같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행성인에 대해서 오소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겨울: 부모모임이 기폭제가 되었던 거예요?

 

빗방울: 부모모임 오기 전에 행성인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오소리: 아… 그럼 그때 제가 뭐라고 알려줬죠?

 

빗방울: 제가 행성인이 뭐냐고 했더니, 부모모임이 행성인 소속이라고 알려줬어요.

 

오소리: 정체성을 받아들인 게 얼마 안됐는데, 그 전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이셨나요? 

 

빗방울: 저는 사실 은둔게이, 디나이얼일 때도 잘못된 것은 따져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 어떤 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시위 같은 것도 하고. 그리고 디나이얼 때도 ‘나는 이성애자지만 동성애자를 지지해’ 라는 입장이었어요. (웃음) 그 정도의 디나이얼이기는 했는데, 원래 그런 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오소리: 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셨는데, 투쟁을 좋아했던 건가요? (웃음)
 
빗방울: 투쟁을 좋아했다기 보다 셧다운제 같은 경우에, ‘청소년은 통제권이 없으니까 10시 전에는 게임을 금지시키겠다’ 이건데, 이게 되게 청소년 자기 주체성을 무시하는 거잖아요. 그 때 너무 불만이 컸어요. 심지어 거의 마약산업과 게임산업을 묶으려는 시도도 있었어요. 그때 광화문 앞에서 피켓 들고 1인 시위를 한적도 있었고요.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그렇게 여러 방면으로 많이 활동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한창 고등학교 때 셧다운제 반대 이런 거로 세미나도 많이 나가고 발표도 하고 그랬어요. 마음에 안 들면 따지는 게 어떤 선천적인 제 성격인 것 같아요.

 

겨울: 주변의 반응은 어땠어요? 
 
빗방울: 다행히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도 되게 진보적이시고, 이런 운동을 나쁘게 안 봐서 친인척들까지 ‘너무 훌륭하다’고 ‘멋있다’고 항상 치켜세워줬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가는 길이 틀린가’하고 의기소침 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오소리: ‘디나이얼이면서도 동성애를 지지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보통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디나이얼이라고 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건데, 자신을 부정하는 이유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건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빗방울: 제가 이것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디나이얼이라는 말도 정확히 어떤 게 디나이얼인지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저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게이 야동을 보기 시작했고 난 게이라고 확실히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스무 살까지 입 밖으로 그 얘기를 소리 내서 꺼내질 못했죠.

 

오소리: 왜요?

 

빗방울: 내가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주변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릴 거 같은 공포가 컸어요. 속으론 ‘내가 게인데, 이게 내 정체성인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자기 검열을 했던 거죠. 그게 저의 디나이얼 시기였던 거 같아요.

 

겨울: 저랑 되게 달라서 재미있는 거 같아요.

 

빗방울: 전 겁이 많은 성격이에요.

 

오소리: 겁이 많은데 투쟁 좋아하고, 디나이얼인데 동성애 지지하고. (웃음)

 

겨울: 너무 모순적인 거 아닌가요? 모순의 집합체. (웃음)

 

 

부모모임, 저에겐 힐링이었어요

 

성소수자 부모모임 슬로건과 퀴어퍼레이드 때

 

오소리: 행성인에서 부모모임과 에이즈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빗방울: 부모모임에서 실무팀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 실무나 대화록 정리 같은 일들을 하고 있고, 활동하면서 언론사에 글도 써서 올리고 있어요. ‘오마이뉴스’랑 ‘허핑턴포스트’에 하나 올렸고 가기 전에 하나를 더 올리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요.

 

오소리: 가서 올려도 돼요. (웃음)

 

빗방울: 그리고 에이즈팀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게, 일단 게이로서, 성소수자 운동을 하려는 사람으로서 정확히 알아야 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에이즈 같은 경우는 담론들이 이뤄지는 곳에서만 이뤄지고 제가 찾아가서 공부하지 않는 한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에이즈팀 활동을 선택했던 거 같아요.

 

오소리: 배우고 싶어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어떤가요? 직접 활동을 해보니까.

 

빗방울: 에이즈팀에서 '살롱 드 에이즈'라는 몇 회에 걸친 HIV/AIDS의 역사 교육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뜻 깊었던 거 같아요. 저는 사실 막연하게 ‘HIV/AIDS가 혐오와 차별 때문에 더 확산되는 거다’ 라고만 알고, 또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그게 이뤄지는 가’에 대해서는 몰랐던 거 같아요.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이기도 하고. 근데 그 교육을 들으면서 에이즈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이나 접근 방식들도 함께 알게 됐고, 저번에는 HIV/AIDS 인식개선 거리 캠페인을 다른 단체들이랑 같이 했는데, 뜻 깊었어요. HIV/AIDS 인권을 말하는 게 저를 더 당당하게 하는 거 같아요. 제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된 거죠.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날 맞이 인식개선 거리 캠페인 당시 진행한 인터뷰 영상 중 발췌

 

겨울: 고등학생 때 셧다운제 관련해서 청소년의 자율성 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거 같은데, 왜 청소년인권팀에는 안 들어가셨어요?

 

빗방울: 처음에는 청소년인권팀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지보이스 연습과 항상 시간이 겹쳤어요. 처음에는 잠깐씩 회의라도 나가려고 하다가 결국 일정이 안 맞아서 두 개만 하게 됐죠.

 

오소리: 특히 부모모임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빗방울: 제가 6월에 군입대를 앞두고 커밍아웃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친구들한테 그 동안 계속 커밍아웃 해서 두려움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다르니까. 군대 입대 신청을 해놓고 한 달 뒤에 가기로 한 상태에서,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실패하면 바로 입대하고, 성공하면 군대를 미루겠다라는 생각으로 준비했죠. 되게 치밀하게 준비했던 거 같아요. 그때 회사 다니면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마련해둔 돈이 좀 있었어요. 부모님이 혐오적인 반응을 보일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하면서 편지를 썼죠. 한달 동안 그걸 쓰면서 계속 고쳤어요. 주변 친구들한테도 계속 이 문장 어떠냐고 물어보고. 그렇게 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죠. 거실 컴퓨터에는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받아놓고. ‘거실 컴퓨터에 <바비를 위한 기도>가 깔려있으니 보세요’ 라고 써놓고. 부모모임 책자 찾으려고 부모모임 들러서 받아오고, 그랬죠.

 

결과적으로는 부모님이 보시고 며칠 동안 힘들어 하긴 하셨는데, 제가 ‘나 게이야’ 하고 만 게 아니라 정말 많은 자료를 준비해서 ‘나 게이고, 이건 부모모임 책자고, 이건 <바비를 위한 기도>고, 다 읽어보고, 잘 생각해봐라’ 라고 한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부모님한테 단기간에 엄청난 정보를 주입해서 부모님이 더 받아들이기 쉬웠던 거 같아요. 그냥 ‘나 게이야’ 하고 던지고 나가면, 부모님이 ‘이제 나 어떻게 해야 되지’ 하면서 유튜브에 검색하면 ‘염안섭’ 이런 거 나오고. ‘이요나’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러지 않았던 게 되게 잘한 커밍아웃이었던 거 같아요, 많은 자료를 준비한 게.

 

오소리: 부모님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 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빗방울: 제가 처음에 편지를 던지고 나갔죠. 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며칠 전부터 부모님한테 ‘엄마아빠 나 이 날 엄마아빠한테 엄청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게 있다, 그리고 난 그날 엄마아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친구 집에서 며칠 자겠다’ 하고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되게 겁내 하셨어요, 뭐냐고. 뭔지 가늠할 수가 없잖아요. 저도 되게 겁나 했고, 저보고 불법적인 일이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아니라고 했었고. (웃음) 편지를 써서 책자랑 영화랑 받아두고 나갔죠. 집에서 나가고, ‘엄마아빠 나 나가고 봐, 내 책상에 있어’ 하고 나왔거든요. 그리고 그 뒤에 부모님이 말씀하신 거를 이야기 해 보면, 아빠가 먼저 편지를 봤대요. 아빠가 머리가 멍해졌대요. 엄마는 설거지 하고 있고. 그러다가 엄마가 뭐냐고, 보여달라고. 엄마는 보자마자 막 울면서 ‘이럴 줄 알았다’ 이랬대요. 엄만 옛날부터 ‘혹시’ 하는, 무의식 중에 어느 정도 생각은 했었던 거죠. 읽고 울면서, 막 ‘이럴 줄 알았다’ 그랬다는데, 어떤 감정으로 우셨는지 모르겠어요. 아, 그 편지에 제가 그간의 감정을 상세하게 썼거든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너무 괴로웠고, 이런 일이 있었고, 이렇게 힘들었고, 이런 것들을 썼는데 엄마가 그걸 보면서 ‘그 동안 우리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울었대요. 그러다가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바로 다음날 출장을 가야 했고, 출장 뒤에 엄마는 한 3-4일 있다가 처음 봤죠. 엄마가 돌아오는 날에 엄마, 아빠랑 같이 외식을 하면서 엄마가 여러 가지 물어봤어요. "네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 하겠다고 한 것도 이거 때문이니?" "그건 그냥 내가 하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그런 것들을 설명 드렸죠.

 

어쨌든 일단 혐오적인 반응이 아니었고 이해하려고 계속 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처음 부모모임 때 아빠만 데리고 왔어요. 엄마는 출장 때문에. 아빠는 그 때 부모모임을 왔다 가면서 "네가 행복할 거 같아서 아빠는 이제 다 괜찮다"고, 그런 식으로 말했거든요. 근데 엄마는 안 가봤잖아요. 아빠 말로 간접적으로만 들은 상태였는데, 한달 뒤에 다음날 부모모임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 됐어요. 엄마가 며칠 전부터 거기 모임 잠깐 들렀다 오겠다고, 뒷풀이 안가고, 그렇게 말을 던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뒷풀이 가서 얘기 많이 해보고 그러라고 하니까, 엄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워낙 스트레스라고, 엄마는 회사 일도 힘들고. 그래서 그냥 잠깐만 들렀다 오겠다고 약간 안 가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엄만 다 널 이해했다, 다 이해해서 사실 갈 필요가 없어." 그렇게 이야기 했거든요. 근데 전 그게 중간 과정인 걸 딱 느꼈죠.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아직 속으로는 심경이 정리되지 않은 게 보였어요. 그리고 처음 부모모임 와서 오자마자 울면서 "저희 아들이 게이라고~" 하면서 막 계속 눈물을. (웃음) 계속 울면서 휴지 없어질 때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근데 그런 과정이 필요한 거 같아요. 엄마도 엄마 나름의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부모모임에서 우리 아들이 게이라고 소개하며 울지 않는 정도, 넘어서서 새로 온 부모님들한테 상담해주는 정도까지 됐죠. 

 

당시 빗방울이 부모님께 쓴 편지

 

오소리: 커밍아웃 이틀 만에 아버지랑 같이 왔잖아요. 같이 올 때 들어오기 전에 심정이 어땠어요?

 

빗방울: 하루 전에 아빠가 엄마랑 카톡하면서 ‘무서워서 내일 모임에 못 가겠다’ 라고 하셨대요. 그냥 여러 가지로 정말 거기 가면 우리 아들이 게이인 게 확정이 나버리니까, 그런 심정인거죠. 그래서 그날 아빠한테 가서 말했죠. "아빠, 무서우면, 아직 시간 필요하시면 다음에 가도 된다."고, 매달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빠가 "알았어." 그랬는데 다음날 낮에 갑자기 저를 깨워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갔죠. 근데 아빠는 말 한마디 안하고 가만히 듣기만 했어요. 저는 근데 신나서 떠들었죠.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저한테는 처음이었거든요. 친구사이 정기모임에 먼저 가긴 했는데, 그때는 브리핑을 하는 자리였고, 부모모임은 집단 상담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저 혼자 신나서 떠들었어요. 일단 부모님이 여기 온 게 기쁘고 자랑스럽기도 했고. 아빤 계속 멍했대요. 모임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랬던 게, 거기서 아빠는 말하면 울 거 같아서 말을 못했대요. 나중에 말을 하시더라고요.

 

오소리: 본인은 걱정되는 건 없었어요?

 

빗방울: 저는 계속 아빠가 어떤지를 살폈죠, 긴장하면서. 저야 뭐 다 받아들인 상태지만 아빠는 이제 이틀 동안 완전 빅뱅을 겪고 있는 거잖아요. 아빠의 상태가 어떤지 계속 체크하면서 왔던 거 같아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준비하면서부터, 부모모임 영상이나 그런 것들이 너무나 힘이 됐고 우리 엄마 아빠도 미래에 곧 저기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힘이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고맙고, 저한테 너무 큰 충격과 감사를 주었기 때문에 당연히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활동하면서 더 좋았고, 부모님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오소리: 그럼 커밍아웃 하기 전부터 ‘난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네요?

 

빗방울: 커밍아웃 하기 직전에 부모모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 힐링이었던 거 같아요, 저한테.

 

오소리: 막상 해보니까 어때요?

 

빗방울: 커밍아웃하기 전에 꿈꿨던 것처럼 엄마 아빠도 부모모임에 계시게 되셨고요. (웃음) 잘 활동하고 계시고 좋은 거 같아요. ‘좋은 거 같아요’ 라고 말하는 건 너무 식상하죠? 활동 해보니까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너무 똑같았어요. 다들 너무 좋고, 힐링이고 그렇습니다. (웃음)

 

겨울: 집에서도 활동 이야기를 하나요?

 

빗방울: 부모님이랑 같이 해요. 오늘 누가 이랬고, 오소리가 필름이 끊겼고. (웃음) 다들 같이 활동하다보니 부모모임에 자주 오는 사람은 알고 있으니까요. 평소에도 원래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자주 이야기 하는 거 같아요.

 

오소리: 빗방울이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걱정하거나 그런 거는 없어요?

 

빗방울: 걱정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워낙 저희 가족은 돈독하면서도 각자 영역을 잘 존중해서. 서로 잘 하겠지 하는 마음이 있어요. 아빠는 얼마 전에 퀴어문화축제 때 부모모임의 지인님이 혐오세력한테 팔을 다친 이야기를 듣고 "네가 나중에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긴 했어요. 그런 원론적인 걱정은 있겠죠.

 

오소리: 부모님께 커밍아웃 후, 본인이 바라던 대로 부모님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떤가요?

 

빗방울: 그냥 처음에는 제가 아예 집에서 쫓겨날 것까지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던 거잖아요. 부모님이 당장 나가라고 했을 때 이 돈으로 ‘어디 모텔 같은 델 가서 며칠 묵다가 군대에 입대 해야겠다. 그 다음에 제대하고 어떻게 일을 다시 시작해서 돈을 벌어서 1인 가정을 꾸려나가야겠다’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일단 처음 나온 반응이 혐오적이지 않았고,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반응이었고. 그 뒤로 활동도 진짜 같이 하게 되고. 이제는 부모모임 나와서 조언하는 입장까지 되셨거든요. 다른 부모님보다 빠른데, 전 다 감사한 거 같아요. 부모님이 그런 것도 감사하고. 부모모임에 너무 좋은 사람들이 부모님을 괜찮게 만들어 준 것도 너무 감사하고. 2016년이 너무 잊지 못할, 모두에게 감사할 해가 아니었나, 무슨 시상식에서 말하는 것 같은데. (웃음)

 

오소리: 부모님이 주변 지인들에게 커밍아웃 하거나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빗방울: 주변지인한테 엄마가 커밍아웃을 되게 열심히 하고 다니세요. 제가 처음에 그렇게 말씀 드렸거든요. 엄마가 "그럼 이걸 주변에 다 말해야 하는 거니?" 해서, "의무적으로 알릴 필요는 없지만, 나는 커밍아웃 해서 내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되게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엄마 맘대로 해라." 했거든요. 엄마는 그 말에 공감했는지 그 뒤로 엄마 친구들한테 하나 둘 씩 하고 다니더라고요. 심지어 기독교인 친구들한테도 많이 하세요.


처음에는 기독교인 친구랑 조깅을 하다가 스타벅스에 갔는데 그 친구가 "아 스타벅스는 동성애 지지해서 가면 안되는데 커피가 맛있어서 가." 이렇게 엄마한테 말을 했대요. 그러니까 엄마가 그 말을 듣고 "ㅇㅇ아, 우리 아들이 사실 동성애자고 그런 인식이 잘못된 거다."라고 하면서, 제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 게 있거든요. 커밍아웃 과정과 커밍아웃 편지와 그 이유까지 담은 에세이를 썼는데, 그걸 주로 커밍아웃 할 때 보여주세요, 친구들한테. 그걸 바로 켜서 보여주면서 이거 읽어보라고. 우리 아들이 쓴 거라고. 그래서 읽어보고 친구랑 보통 울죠, 왜냐면 슬픈 글이잖아요. 감동적인 글이니까. 그래서 우는데, 그 친구는 그래도 되게 보수적인 기독교 사상에 찌들어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 친구랑은 그 뒤로 연락이 끊겼대요. 엄마는 근데 그거에 대해서 위축되진 않은 거 같아요. 전 사실 제가 그런 일 당했으면 조금 위축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엄마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그 뒤에도 주변에 계속 커밍아웃을 하고 다니는 거 같아요.

 

오소리: 내가 아까 웃었던 이유는 본인이 쓴 글 가지고 ‘감동적인 글이니까’ 막 이러니까. (웃음)

 

빗방울: '이거보고 울어라'하고 쓰는 글 있잖아요. (웃음) 그런 거 의도한 글이니까요. 그 다음에는 고모한테 커밍아웃을 했고요. 엄마가 고모랑 차 타고 다니는데 고모랑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고모가 먼저 갑자기 "맞아 언니, 만약에 우리 자식이 동성애자라도 우리는 이해해야 돼." 라고 말을 했대요. 엄마가 거기서 울면서 커밍아웃을 했대요 또. 되게 신기하게 주변에서 먼저 말을 해요. 하여튼 그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또 최근에 엄마가 커밍아웃 한 친구가 있어요. 그 이모가 저랑도 되게 친해요. 제가 어릴 적에 자주 같이 놀았어요. 엄마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인데. 근데 그 친구가 되게 보수 기독교적인 사상을 갖고 있어요. 근데 엄마가 제 글을 보여주면서 수많은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주변 친구들한테. 그래서 그 이모한테도 커밍아웃을 그 날 했는데, 이모가 막 울면서 "빗방울은 내 아들이나 다름없다. 종교가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울었대요. 그런데 그 뒤로 엄마랑 다시 만나서 조심스럽게 "내가 아는 목사님이 동성애자셨다고. 탈동성애를 하셨다고. 그래서 그 목사님을 빗방울에게 소개시켜주면 어떠냐." 그러니까 어떤 혐오적인 반응이라기 보단 정말 그 사람 가치관에서는 온전히 저를 위한 선택인 거죠.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해서 엄마가 "그거 이요나 아니냐"고 했더니 아 맞다고, 너도 아냐고 하면서 반가워 하셨대요. (웃음) 엄마는 전혀 생각이 없다고 했고, ‘그건 혐오다’라고 설득을 했는데, 그 이모는 설득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이모를 위한 글을 쓰고 있어요. 그 이모가 저를 자꾸 만나자고 하고, 저도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없고, 제가 출국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서 편지로 전해드리려고 편지를 또 쓰고 있어요.

 

 

이 넘치는 게이 프라이드를 어디에서 해소해야 하나

 

2016 대구 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과 몸싸움을 하고 있는 사진.

 

오소리부모모임 처음에 와서 거기서 행성인을 알게 됐고, 그 와중에 행성인 활동을 하게 된 건데, 그렇게 바로 활동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거든요. 행성인에서는 어떻게 활동할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빗방울: 부모모임에 나오고, 부모님께 처음 커밍아웃 하고, 부모님도 잘 받아주시고, 그 때 프라이드가 넘칠 때였어요. ‘이 게이 프라이드를 어디에서 해소해야 하나’ 하다가 그 때 딱 행성인이 눈에 들어온 거죠. 

 

오소리: 얼굴을 드러내며 활동하고 있는데, 처음에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없었나요?

 

빗방울: 저는 제 벽장문을 여는 과정이 행성인에 들어오고 부모님한테 커밍아웃 하기 전 1년동안 천천히 진행됐어요. 처음에는 가장 친한 친구 한 명한테 했고 점차 많은 사람들한테 커밍아웃 했어요. 처음에 친구한테 커밍아웃 할 때만해도 너무 두려웠거든요. 그때까지 ‘나 게이야’ 라고 하면 주변에서 정말 극단적으로 도망갈 줄 알았어요. 그 친구가 평소에 (성소수자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음에도 ‘나 사실 게이야’ 하고 벌벌 떨면서 말했거든요. 그것도 카톡으로 보냈는데, ‘아 그래?’ 하고 별일 아닌 거처럼 넘겨줬어요. 그때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나는 몇날 며칠 잠 못 자고 겨우겨우 카톡으로 보낸 건데, 얘는 이렇게 별 반응이 없나’ 라고 생각하고. 그 뒤로 용기가 돼서 주변 친구들한테 조금씩 커밍아웃을 했는데 전부다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제 인복이 좋은 거 같기도 해요. 혐오적인 반응이 아무도 없었고, 여남 가릴 거 없이 ‘아 정말?’ 하고, 오히려 멋있게 보는 애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커밍아웃이 이뤄졌고, 부모님한테만 커밍아웃하면 다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성공하고 나니까 ‘이제 정말 드러내서 손해 볼 게 없겠구나, 내가 드러낸다고 해서 도망가지 않겠고, 누군가 손가락질해도 내 옆에 있어줄 사람들이 많구나’를 그 때 느꼈던 거 같아요. 부모님이 커밍아웃을 받아주면서, 아까 게이 프라이드 넘친다고 했잖아요, 초창기에. 그래서 ‘좋아! 난 게이야 다들 봐!’ 이런 생각. (웃음) 즉흥적인 결정이에요.

 

오소리: 이런 커밍아웃의 경험이 나중에 커밍아웃 할 때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커밍아웃에 실패한 사람들은 나중에 하는 커밍아웃도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던 거 같네요. 

 

빗방울: 약간 그런 것도 느껴요. 제가 부모모임 활동을 하면서 편견, 주변의 차별, 직접적인 차별로부터 피해를 보는 친구들을 접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 책임의식을 느끼는 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래서 계속 하고 싶은 거 같아요.

 

오소리: 부모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당했던 차별 사례를 듣는 건 그 사람의 경험담이잖아요. 부모모임 활동 시작 직후에 본격적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했던 게 대구 퀴어문화축제 때지요?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기만 하다가 혐오세력의 민낯을 직접 몸소 겪은 건 대구 퀴어문화축제 때였는데, 심정이 어땠어요?

 

빗방울: 그 때 사실, 주변에서 다 얘기해줘서 예상하고 갔거든요. 프라이드가 넘칠 때라서 그냥 우스워 보였어요. 뭉쳐있는 우리가 너무 강하고, 쟤네 들은 어차피 자멸할 것이고, ‘저 비참한 사람들’ 하면서, 그 사람들을 보는 거야말로 시혜적이 되더라고요. 우린 이렇게 강한데? 그런 식으로 행진 했던 거 같아요.

 

오소리: 겁이 나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빗방울: 네, 오히려 제가 긴 디나이얼 시기동안 겁을 너무 많이 먹어왔기 때문에 그게 깨지는 순깐 확 깨져버린 거죠. 

 

오소리: 대구 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이랑 몸싸움을 하고 있는데, 웃으면서 찍힌 사진이 있잖아요. 그때 상황은 무엇이었나요?  

 

빗방울: 강조새님이 사진 잘 찍어줘서 너무 멋있게 찍혔어요. 그때 제가 프라이드 넘치고 아드레날린 분비된 상태에서 피켓 들고 있는데, 그 혐오세력 아저씨가 갑자기 들이대서 저를 막 안으려고 하는 거예요. 빡치면서도 한심하고 어이없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겹치면서, ‘하’ 하고 웃음이 나왔어요. 그 아저씨가 나한테 몸을 들이댈 때 그렇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강조새님이 찍어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어 정말 멋진 사진 찍어줘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도 활동하고 계신데, 친구사이는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빗방울: 친구사이가 문화 컨텐츠쪽에 더 많이 투자를 하잖아요. 그래서 김조광수 감독님 영화 중에 동명의 영화도 있고, 항상 영화 처음에 지원 단체 ‘친구사이, 게이인권단체’라고 나오기 때문에 저는 처음엔 거기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오소리: 친구사이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빗방울: 친구사이 6월 정기모임 때 처음 나갔는데, 그게 성소수자로서 어딘가에 참여한 처음이었어요. 그 때 갔었을 때 되게 낯설었어요. 그때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도 많구나’ 하고 있다가 행성인에서 부모모임이랑 이어졌거든요. 가만히 있었는데 이끌어 준 게 있어서 저도 쭉 따라온 거 같아요.

 

겨울: 지보이스도 하시잖아요. 친구사이 갔다가 행성인 가입한 다음에 지보이스 들어가신 건가요?

 

빗방울: 네 맞아요. 부모모임 전에 친구사이 갔을 때는 부모님한테 커밍아웃 하기 전이었어요. 그때 뭔가 심적으로 내가 게이인걸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에 처음 갔었죠. 거기 갔을 때만해도 너무 긴장했고 그래서, 잠깐 모임만 들렀다가 나왔어요. 그런데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한 이후에 프라이드가 넘치면서 행성인 활동을 했고, 동시에 지보이스 단원 모집 한다 길래, 이 넘치는 프라이드가 행성인 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웃음)

 

오소리: 친구사이의 지보이스를 다룬 영화 <위켄즈>가 개봉했는데, 그 영화를 7번이나 봐가며 열혈 홍보 대사로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보이스 활동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셨나요?

 

빗방울: 처음에 지보이스 들어가게 된 건 부모님한테 정기공연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되게 드라마틱한 무대잖아요. 내가 저렇게 멋있는 무대에 서있으면 엄마아빠도 감동 받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처음 들어갔고, 처음에는 연습 따라가기도 힘들었고 적응기가 있다가, 뒤늦게 정기공연 끝나면서 되게 좋아졌어요.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지고. 저는 처음 활동 시작하면서 종로에 게이 커뮤니티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지보이스 덕분에 종로 문화에 어울릴 수 있게 됐죠.

 

<위캔즈>를 일곱 번이나 본 것도 홍보차원에서 본 건 아니고, 그런 운동의 역사를 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저는 운동을 한지 얼마 안됐고 생소한 마당에 그간 이 사람들이 겪어온 길, 내가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과정, 그런 것들이 너무 감동이었고, 그래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다고 하다가 일곱 번 보니까 질려서. (웃음)

 

지보이스 정기공연

 

웅: 지보이스 정기공연을 하셨는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빗방울: 무대에서 객석의 부모님을 보는데 계속 눈물을 훔치시더라고요. 끝나고 멋있다고 꽃다발 들고 오시고. 기뻤던 거 같아요. 정기공연에 올라간 거에 대한 뿌듯함. 꿈을 이룬 거잖아요. 고모도 초대했거든요. 고모가 음악을 전공했어요. 흥미롭다는 듯 팔짱 끼고. ‘좋네’ 하고 보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 동생은 민망해하던데. 부채춤 출 때. (웃음)

 

빗방울: 동생은 제가 커밍아웃 할 때 몰랐어요. 엄마는 동생의 반응이 걱정됐다고 해요. 혐오할까 봐.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한 달 뒤쯤 동생 시험 끝나고 나 게이야 이렇게 던졌는데, 가볍게 ‘진짜?’ 하고 말았거든요. 그 때 동생은 별일 아니게 생각했고. 그 뒤 동생이랑 깊은 대화 나눌 시간이 생겼는데, 동생은 저를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더라고요. 제가 인권운동하고 정치적인 얘기 하는 게 멋있다면서 자기는 생각이나 진로가 없는 거 같다고 울더라고요. 확실히 요즘 세대? 라는 걸 느꼈어요. 어릴수록 편견이 없는?

 

오소리: 행성인과 지보이스 두 단체에서 동시에 활동을 하고 있는데, 두 단체를 비교해보자면?

 

빗방울: 제가 배우고 싶은 욕구와 놀구 싶은 욕구가 동시에 있는데, 행성인이 많이 배울 수 있는 단체라면, 친구사이 지보이스는 제가 편히 놀 수 있는 단체라고 느껴요. 배움과 친목을 같이 가지고 싶어서 두 단체 활동을 같이 하는 것 같아요. 모든 단체들이 커뮤니티성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잖아요. 그 비율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요. 저는 그 둘이 완벽히 비례할 순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저에겐 서로 부족한 점을 행성인과 지보이스가 충족해주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두 활동을 같이 하는 게 일정이 바쁘면서도 너무 만족해요. 마지막에 잘 정리했다. (웃음)
 

 

활동하고 광명 찾자

 

 

오소리: 행성인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빗방울: 행성인에서 구술 녹취했던 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아까도 말했던 똑같은 이유인데, 사실 행성인이든 지보이스든 다른 여러 단체든, 제가 삼사십년 전에 똑같이 게이로 태어났을 때 지금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확신을 못하겠어요. 저는 겁도 많은 성격이기 때문에 더 직설적인 혐오와 차별이 많은 사회에서 제가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그 터전을 일궈주고 계속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역사에 대해서 항상 궁금했는데 마침 나라님이 제안해줬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한꺼번에 그 역사를 둘러 볼 수 있었고, 행성인의 시초였던 대동인 때부터 동인련을 거치는 그 투쟁의 역사를 얼핏 훑어볼 수 있었던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는 지금 띵동에 계시는 정욜님과 행성인 대표 남웅님 구술 녹취에 참여 했는데요. 행성인이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막연하게 언제나 이렇게 있었으리라고 생각 했거든요. 가슴 아픈 일들, 사건사고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활동가 개개인의 삶과 태도를 듣는 게 재미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생애사를 깊이 들어본 게 처음이라.

 

오소리: 관심 있는 다른 성소수자 이슈가 있나요?
 
빗방울: 당장에 ‘정말 이게 말이 돼?’ 싶을 정도로, 정말 부당하게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되고 불이익을 받는 법안들이 있잖아요. 군형법도 그렇고 전파매개금지법도 그렇고. 저는 에이즈팀에서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건데, 청소년 HIV감염인의 경우 확진을 받았을 때 바로 부모한테 통보가 가요. 법이 그렇게 되어있는데, 이거 자체가 너무 폭력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것들이 은연중에 곳곳에 깔려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개정하는 게 저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도 운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게 가장 주된, 먼저 처리해야 할 이슈인 거 같아요. 법에 관한 것들이.

 

오소리: 성소수자 이슈 이외에 관심 있는 이슈가 있나요?

 

빗방울: 주로 게임에 관심 많아요. 게임 쪽도 빠르게, 지금 트럼프가 돼서 어쩔지 모르지만, 성소수자 가시화의 트렌드를 타고 게임 쪽도 변하고 있거든요. 주로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은 성소수자 이슈와는 크게 관련 없다고 생각하고, 깊이 생각 안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블리자드나 이런 쪽에서 성소수자 캐릭터를 막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오소리: 이번에 '오버워치'에서 '트레이서'라는 캐릭터가 성소수자라고 밝혀졌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어요?

 

빗방울: 저는 너무 좋았던 게 이전에는 게임 쪽에서나,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시나리오 상에서 성소수자인 캐릭터들은 성소수자인 이유가 반드시 있잖아요. 성소수자라는 게 극중 장치로 쓰이는 거죠. 시스젠더 헤테로 캐릭터가 이유가 있어서 그 정체성인 경우는 없는데 반해서, 트레이서는 그렇지 않아서 좋았던 거 같아요. 트레이서가 커밍아웃 하기 전까지도 그냥 톰보이 스타일의 캐릭터였고, 이유 없이 성소수자로 설정된 캐릭터인 게 너무 좋았어요.

 

오소리: 캐나다로 유학을 갈 계획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계획에 대해 궁금해요.

 

빗방울: 캐나다에 가서 어학연수하고 대학 입학해서 게임 그래픽으로 공부를 이어나갈 거예요. 행성인분들이 캐나다의 퀴어 커뮤니티들도 소개시켜준다고 하셔서, 가서 커뮤니티 속에 녹아 들고 싶고요. 저는 아직 게임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동시에 인권 활동도 계속 하고 싶고요. 둘 다 욕심이 나서 캐나다에서도 병행하고 싶어요.

 

오소리: 알아둔 커뮤니티가 있어요? 

 

빗방울: 호림이 소개 시켜준 아시안 퀴어 커뮤니티가 있어요. 소개를 받았는데 내가 지금 일단 거기 없으니까. 그리고 저는 못 뵀는데, 엄마가 부모모임에서 캐나다에 사시는 분을 만나셨대요. 그분을 소개받기로 했어요.  

 

오소리: 캐나다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이어나간다고 하셨는데, 행성인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갈건가요? 

 

빗방울: 캐나다 현지의 LGBT 커뮤니티에 녹아 들어서 그곳의 상황은 어떤지, 캐나다의 환경은 어떤지에 대해서 행성인 웹진에 쓰고 싶어요. 그러려면 가서 언어적으로 유창하게 해야 하고 빨리 커뮤니티에 녹아드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오소리: 캐나다 유학은 몇 년 생각하고 있어요?

 

빗방울: 캐나다 유학은 4년에서 6년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에 자주 오가고 싶어요. 한국에서 만나던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 퀴어퍼레이드 때도 올 생각이에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게이 디스트릭 빗방울님의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보금자리

현재 빗방울님은 캐나다로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캐나다에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중이라네요. 캐나다에서의 또다른 삶, 응원하겠습니다. :)

 

오소리: 한국에서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캐나다로 가는게 아쉽지 않은가요?
 
빗방울: 6개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랑 정말 빠르게 친해졌거든요. 제가 낯도 많이 가리고 눈치를 많이 봐서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행성인 친구들이랑은 너무 빠르게 친해졌어요. 저랑 잘 맞기도 했고. 그래서 정말 많이 친해져서 가는 게 아쉬워요. 저는 주로 학창시절에도 학교에서 친구를 넓게 안 사귀는 편이었어요. 학교 내에서, 특히 남성집단에서 친절하고, 잘 웃고 이런 것들이 결국 만만하게 보여지더라고요. 결국 무시나 괴롭힘의 대상이 됐는데, 행성인에 오고 퀴어친구들을 사귀면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어요. 긴장을 놓고 저를 마음껏 드러내고 행동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만큼 빨리 친해진 거 같아요.

 

오소리: 언젠간 다시 올 텐데, 와서도 행성인에서 활동 할거죠?

 

빗방울: 물론이죠!

 

오소리: 그렇다면, 미래의 행성인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빗방울: 미래라고 막연하게 생각해보자면 예전에 캐나다 활동가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캐나다는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성소수자가 가시화되어 있잖아요. 퀴어퍼레이드에 총리가 행진하고. 제도상으론 차별 받지 않는 상황이 됐잖아요. 저는 막연하게 한국도 그렇게 동성결혼이 법제화가 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캐나다 실정을 어렴풋이 들어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계층이 세분화되고, 예를 들어 금융권 게이 커뮤니티 같은 것들이 따로 생기게 되고, 사회적 계층과 관련 없이 같이 연대할 수 있는 단체가 없다는 거죠, 캐나다에선. 그렇게 되면서 팔레스타인인 성소수자처럼 다른 소수자성을 동시에가진 성소수자들을 구호할 수 있는 힘은 오히려 약해지고요. 한국도 미래에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인 문제가 해결됐을 때, 내 약자성이 해결됐을 때도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시선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장황했네요. 어쨌든 그런 인권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오소리: 마지막 한마디가 있다면?

 

빗방울: 행성인이 저에게 프라이드를, 자긍심을 선물해 준 그런 단체인 거 같아요. 행성인으로 인해서 너무 좋은 인연들과 만났고, 정서적으로 많이 치유됐고요. 그런 것들이 좋았던 거 같아요. 활동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들 가볍게 활동을 시작해봤으면 좋겠어요. 벽장 속에 있는 과거의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활동하면서 이전의 제가 생각도 안 날 만큼 행복했거든요. 전도사 같다. 전도사 같다. 활동하고 광명 찾읍시다. (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