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받은 사람: 심기용(철학공방 별난 연구원,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의장)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디올,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는 심기용이 재학 중인 동국대학교 교정에서 진행되었다.

 
오소리: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심기용: 네, 저는 지금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에서 의장으로 활동하는 심기용이라고 합니다.
 
 
‘연애’라는 구속을 던져버리고 

 

 

 

심기용이 강연했던 강연회 포스터

 

오소리: 제가 알기로는 폴리아모리 게이로 정체화하고 계신데 맞나요?
 
심기용: 맞아요. 맞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정체화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 언어가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뿐이지, 폴리아모리 게이라는 언어 속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소리: 정체화 하는 것을 왜 좋아하지 않아요?
 
심기용: 거기 묶이고 싶지 않은 거죠. 내 감정이나 나라는 사람은 더 다양한 사람이고 섹슈얼리티나 젠더도 유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무엇이다’라고 하기 싫은 거고, 다만 밖에 가서 발언할 때 “게이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일단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고,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 소위 정체성 정치를 하는 건데, 스스로는 언어에 얽매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나 자신을 언어화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소리: 한국 사회에서는 모노가미 관계가 일반적이잖아요. 정체화를 좋아하진 않으시지만, 폴리아모리 관련 책도 쓰시고 하는 걸 보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된 건데, 그런 과정이 궁금하거든요.
 
심기용: 제가 재작년에 연애를 처음 해봤는데요. 결혼은 선택이라고 해도,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반드시 연애해야 되는지 알았어요.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설레고 하니까. 1:1 연애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연애가 시작되고 나니까 뭔가 답답하고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닌데 무슨 불편함일까 생각해보니, 언제 한 번은 연락하는 거랑 다른 사람과 노는 걸로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느낀 거죠. 내가 이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기는 한데, 이 사람을 좋아하지만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해도 상관 없다고 느끼고, 나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고.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시작된 거죠. 너무 구속되어 있다고 느끼고,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거는 이 관계망에서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데, 연애라는 이름에 구속되는 것 같았어요. 자연상태에 있는 얘가 다양한 관계망에서 좋은 건데, 나한테 의미가 환원되어 버리잖아요. 누구의 애인, 심기용의 애인. 그래서 알아봤죠. 누가 어떤 사람이 외국에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 있더라. ‘아, 이거다. 우리가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꼭 연애라는 형태가 아니어도 되고, 결혼이라는 형태가 아니어도 되는구나’를 그 때 알았죠. 무엇보다 1:1로 만나는 연애 형태가 절대적이거나 다른 게 불가능한 게 아니구나를 알고 폴리아모리를 찾아보다가 ‘그렇게 살고 싶다’가 된 거죠.  
 
오소리: 폴리아모리로 살아가기로 한 게 이제 3년 째인데, 그 동안 관련 강연도 하고 책도 쓰고 계신 거면 많은 공부를 하셨다는 건데, 그 정도로 삶에서 폴리아모리가 크게 작용을 하는 건가요?
 
심기용: 저는 나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거든요. 나에 대해서 이해를 하다보니까 깊이가 생겼고요. 폴리아모리는 사회문화적 정체성은 맞는데, 동시에 모든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폴리아모리라는 말이 있어요. 연애의 낭만화된 사랑만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풍부하고 풍요로울 수 있는 거잖아요.
 
한 예를 들자면, 어떤 여자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랑 저는 아무런 성애적 끌림도 없고 연애적 끌림도 없어요. 그런데 같이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이거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서로 좋아하거든요. 그 친구가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네가 게이라서 좋다고. 네가 뭘 해서 좋고, 네가 너인 게 너무 좋다고.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게 다 좋다. 이 친구랑은 기존의 연애 의미에 부합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좋아하고 관계하는 건데, 이것도 하나의 사랑이잖아요. 이 사람이 나에게 소중하고. 연애를 하거나 섹스를 하고 싶지 않지만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 감정도 연애를 했을 때 소중한 만큼이나 나에게 소중하거든요. 나에게 소중함을 주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는데 폴리아모리가 가능성을 열어주고 관계의 다양성을 열어줬다고 생각하니까 이 언어가 너무 소중해지더라고요. 폴리아모리라는 말이.
 
다양하게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게 꼭 설레고 두근두근 해야 하고 이게 아니니까. 그래서  저는 별로 연애도 하고 싶지 않아요.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이걸 사랑으로 받아들이니까 그렇게 막 외롭지도 않고. 항상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밤에 전화할 사람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섹스를 할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거. (웃음)
 
오소리: 쓰고 계신 폴리아모리 책은 어떤 내용이에요?
 
심기용: 폴리아모리가 무언인지 기본적인 설명,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용어 설명, 앞 뒤로는 실제로 인터뷰한 폴리아모리의 삶을 가지고 소설처럼 썼는데, ‘한국에서 폴리아모리를 한다는 건 어떤 걸까?’ 한국적인 용어로 폴리아모리의 삶을 썼어요. 폴리아모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죄의식이 너무 커요. 그걸 해소하고 어떻게 하면 폴리아모리로 잘 살 수 있을까 방법론적인 내용도 있고.
 
외국에서 폴리아모리 책을 사서 읽었는데, 폴리아모리가 애를 키우면 어떻게 될까, 1:1 파트너십의 육아가 아니면 어떻게 될까 이런 걸 봤어요. 폴리아모리에게 주어지는 질문을 다시 보면 어떻게 보면 부당하고 우리가 정말 육아에 대해 철학이 없다는 게 느껴지는데, 이미 사람들이 육아를 분담하고 있어요. 유치원에 보내고, 아니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육아를 한다는 건 1:1파트너십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특별히 가족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폴리아모리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똑같아요. 게이나 레즈비언이 동성커플들이 키우면 어떻게 되지? 막 걱정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에서도 애들의 친권자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너네 부모님이 이렇다며’ 하는 시선, 그걸로 인한 따돌림이 문제가 되거든요. 그래서 폴리아모리와 퀴어 커뮤니티가 받는 시선이 비슷해요.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가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그리고 다시 생태주의자로


 

문래동에 위치한 철학공방 별난 (이미지 출처: 철학공방 별난 페이스북 페이지)

 

오소리: 기용씨의 다른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가 철학을 연구한다는 건데요. 철학공방 별난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알고 있어요. 철학공방 별난의 연구분야가 매우 다양하던데요. (생태철학, 공동체, 도시재생, 협동조합, 기후변화, 사회적 경제, 생명권 및 동물윤리, 인문상담 및 철학 상담, 젠더와 횡단성 등) 우선 철학 공방 별난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심기용: 별난은 정말 팩토리에요. 개념을 생산하고 책을 생산하는데, 문래동에 공방이 많아요. 신승철 교수님, 이윤경 님 부부가 같이 하는 문래동에 있는 공방인데, 이 분들이 거의 2개월마다 책을 내세요. 책을 엄청나게 쏟아내시거든요. ‘아, 진짜 공장이다’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고. 기본적으로는 생태주의적인 철학을 하는 공간이고, 신승철 교수님은 자율적인 공동체, 미시정치, 구성주의라고 부르는 그런 것들도 하시고, 소수자 문제도 다루시고. 저는 생태주의로 만났는데, 교수님이 “기용씨는 공방에서 섹슈얼리티나 횡단성, 신체 욕망에 대한 것들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런 거를 하고 있죠. 성소수자나 성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좀 하고, 교수님은 생태주의나 기후변화 문제 등에 대해서 하시죠.
 
오소리: 교수님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심기용: 제가 녹색당에 있었는데, 저는 원래 퀴어라서 녹색당에 들어간 게 아니라, 제가 생태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생태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들어갔어요. 저는 전에 『녹색평론』이라는 책에 빠져 살다가, 이 책이 한계가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생태주의 담론이 너무 뻔하게 반복되는 거예요. 내용이 알차지도 않고, 철학도 부족한 것 같고. 그러다 어느 날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 라는 책을 발견한 거예요. 원래는 녹색하고 적색하고 많이 싸우거든요. 완전 공격적인 제목이라서 봤는데, 책 내용은 유하게 잘 써져 있더라고요. 너무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책을 쓴 신승철 이라는 사람 책을 막 찾아보다가 녹색당원이고, 녹색당에서 강의를 한다는 걸 알고 쫓아가서 만났죠. 그래서 책 너무 잘 봤다, 얘기하다가 한 번 공방 놀러 오라고 해서 친구랑 같이 가서 한풀이 하듯 이야기 했고, 교수님도 제가 문제의식 갖고 있는 걸 맘에 들어 하시고. 관계를 갖다가, 여기 방이 남는데 여기를 연구실로 쓰라고 하면서 방을 주셨어요. 그래서 지금 연구를 하고 있죠.
 
오소리: 굉장히 적극적이시네요.
 
심기용: 네. 저, 적극적인 사람이에요. (웃음)
 

철학공방 별난 연구원 심기용

 

오소리: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전공이 철학이기도 하시지요. 철학을 공부하고자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심기용: 이건 되게 웃긴 이야기인데, 저 되게 집단주의적인 사람이었고 국가주의적인 사람이었고 애국심에 대해 엄청난 환상이 있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그리고 엄청난 도덕주의자여서 그 때 일기를 보면, “국어 사전에서 ‘인간’을 정의할 때, 누군가를 괴롭히고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다 사형시켜야 한다고 쓰여져 있어야 된다”고 쓰여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좋은 국가가 이뤄져야 하고, 이 국가를 다들 사랑해서 공동체의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중학교 3년 내내 생각을 해봐도 국가를 모두가 반드시 사랑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 거에요. 그래서 존경하는 선생님한테 가서 “나는 분명히 국가를 사랑하라고 배웠고 국가가 공동체라고 배웠고 ‘우리나라’라고 배우잖아요. 나도 어디 가서 설득을 하고 싶은데 논리가 없다. 아무 근거도 없는 거 같다.”고 하는데, 선생님이 너무 쉽게 “그럼 국가 사랑하지마.” 머리가 깨지는 느낌이었어요.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한마디 해버리니까, 뭔가 용서받은 기분, 구제받은 느낌.
 
‘그럼 어떻게 살아야하지?’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을 달리하면서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답을 못 찾았고. 녹색 평론 책에 빠져있다가, 지금은 별로 좋아하는 과거가 아니지만 강신주 같은 유명한 인문학자들에게 엄청 빠져있었죠. 그러다가, 한번 집단주의적인 생각이 깨져버리니까, 완전히 자유주의적인 생각으로 빠졌어요. 집단주의가 불가능할 바에는 사람들이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그러다가 들뢰즈라는 철학자를  알게 됐는데 너무 좋은 거에요. 그래서 책 읽었죠. 그리고 개론서를 다 읽었어요. 더 이상 읽을 개론서가 없었어요. 그래서 원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혼자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교수님 찾아가고. 그런데 나랑 너무 안 맞고, 너무 휴머니즘 적인, 칸트주의적이고, 근대주의 적인 사고를 옹호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다가 신승철 선생님을 만난 거죠.
 
오소리: 기용씨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철학자가 들뢰즈인가요?
 
심기용: 들뢰즈가 엄청난 사람이었고, 그리고 가타리라는 사람이 있어요. 신승철 교수님은 가타리 전공자거든요. 사람들이 들뢰즈만 기억하고 가타리를 기억을 못해요. 그런데 생태적으로, 정치적으로 가타리가 더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교수님은 가타리를 더 많이 이야기 하시고. 그리고 윤수종 교수님이라고 계신데, 그 분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가타리 전공하시던 분이셔서, 저도 아무래도 여기 있으니까 가타리를 많이 공부하게 되었죠. 자매품으로 스피노자, 라이히, 버틀러 이런 사람들도 있을 거고.
 
오소리: 중학교 때부터 쭉 이어진 철학, 사상이 기용씨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요?
 
심기용: 저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쟤가 왜 저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거든요.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어요. 철학이 내 삶의 문제인 거예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가 아니고 내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 철학을 해요. 내가 직관하는 게 설명이 안되면 저한텐 그게 좋은 철학이 아닌 거에요. 철학이 제겐 생존의 문제인 거죠. 내 모든 행동, 내 모든 말, 내가 누구랑 관계하는지 철학하고 연관이 되어 있고, 그렇게 연관이 되어있지 않은 철학은 좋은 철학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철학이 아니더라도 거기서 조금 빼와서 지혜를 얻는다던가, 그런 흐름 속에서 제 삶이 있는 거죠. 살아가는 게 다 연관이 되어 있고, 철학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내 삶 전부는 아니지만 거기서 나온 지혜와 관점이 제가 말하고 행동하는데 큰 영향을 주죠. 영향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그 생각들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거죠.
 
오소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은 현재진행형인가요? 완전히 이해하셨어요?
 
심기용: 그렇겠어요? (웃음) 예를 들어, 섹슈얼리티가 되게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섹슈얼리티를 공부할 수 있는 여력이 정말 안돼요. 별 책이 없어요. 젠더 위계나 젠더 폭력에 대해서는 책이 엄청 많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위계와 폭력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에서야 페미니즘 단체들에서 섹슈얼리티를 스스로 구성하는 것, 피해생존자의 섹슈얼리티 이야기가 시작됐고. 그런데 외국은 바텀의 수행성까지도 연구가 되어있고 수동적인 바텀이라는 이미지의 재생산이 제국주의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책까지도 나왔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섹슈얼리티 문화 비평도 엄청나게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는 아예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은 저에게 긍정적이에요. 연구할 분야가 남아있다는 것은 제가 제 자신을 이해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거거든요. 내가 궁금한 게 있으면 고민하고 사유해보면 되고, 그게 나를 이해하는 방법이에요.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게  나를 이해하는 거기도 하기  때문에 . 내가 나를 다 이해했다 할 때쯤이면, 내가 질문이 들지 않는 때겠죠. 그렇게 되지 않고 내가 연구할게 있다는 건 내가 아직 나에 대해서 덜 이해했고 세상에 대해 이해할 여력이 있는 거죠. 그런데 원래 질문이라는 건 절대 고갈되지 않아요. 질문, 느낌표, 질문, 느낌표가 쭉 이어지기 때문에 계속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퀴어 대학’의 ‘총장’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의장 심기용


오소리: 현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에서 의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먼저 QUV에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활동하게 되셨나요?
 
심기용: 2년 전부터 활동을 했어요. 제가 2013년에 들어왔을 때 동국대에는 비공식적으로도 동아리가 없었어요. 2014년 11월에 제가 커밍아웃했던 분이 레즈비언 선배님이었는데, 우리학교에 모임이 있다고. 동국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큗’ 처럼 가시화된 동아리가 아니라 비공식적인 게이 소모임이었어요. 저는 2013년부터 게이 커뮤니티가 너무 필요했거든요. 시스젠더 헤테로 사이에서 살다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 그 다음 년도 회장님이 “큐브라는 게 있고 네가 사회 이슈에 관심 많은데 큐브 한 번 나가볼래?” 그런 거죠. 그게 회장님이 바빠서 대신 나가라는 거였는데, 대신 나가고 또 대신 나가고 하다 보니 결국 6개월을 채우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모임의 회장이 되고 학교 내 기존 모임들을 통합해서 지금의 ‘큗’을 만들게 됐죠.
 
오소리: 모임들을 통합했다고 했는데, 다른 모임도 있었던 거예요?
 
심기용: ‘비행’이라는 LGBT 인권모임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활동을 못했죠. 저희 회장님하고 그쪽 누나들하고 알게 됐는데, 마침 우리는 남자 모임이고 거긴 여성이 많았던 모임이니 우선 이분법적으로라도 비율이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 서로 좋아하면서 합쳤죠. 준비하는 동안 더 많은 젠더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합류하고. 그래서 그 모임은 동아리 ‘큗’이 되었어요.
 
오소리: 그렇게 ‘큗’을 거쳐 QUV에서 활동하시다가 올해부터 의장직을 맡게 됐는데, 의장은 먼저 자원을 하신 건가요?
 
심기용: 네 그렇죠. 자원을 한 계기는 일단 QUV에 애착이 있었죠. QUV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성소수자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고, QUV 덕분에 소중한 친구들을 너무 많이 만났고. 너무나 소중한 모임인데 의장을 할 사람이 없었어요. 조직의 장으로서, 의장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 이상적인 조건이 있잖아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 비하가 아니라, 저는 항상 제 자신이 의장으로서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전국 단위로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고민을 많이 하던 와중에 '조기대선 대응'이라는 요소가 가장 크리티컬 했던 것 같아요. 지금 QUV에서 대선 대응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당 활동 경험이 있었고, 활동에 전념할 의지가 있었고. 12월 말까지도 의장 후보가 보이지 않으면 이 역할들을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던 와중에, 없어서 제가 출마를 하기로 했어요.
 

QUV의 주관으로 지난 4월 7일 진행됐던 <불금의 약속 성소수자 촛불문화제 - 대통령 후보는 평등을 약속하라!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


오소리: 의장이 되고 3개월동안 활동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심기용: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고요.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고요. (웃음) 역점 사업으로 뒀던 것 중 대선 대응, 체육대회는 끝났고. QUV가 전국 단체로서 지역에서의 활동도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제가 비전으로 내놓았던 거였는데, 그래서 지역 워크샵을 곧 열어요. 그거 하나 남았고. 큼지막한 사업은 다 끝나서 후련한 마음은 있네요.
 
오소리: 대선 대응과 체육대회는 잘 한 것 같나요?
 
심기용: 네. 잘 한 것 같아요. QUV가 엄청 성장했죠.
 
오소리: 제가 봐도 QUV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QUV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심기용: 일단 성소수자 단체 중에 유일하게 ‘청년’ 프레임이 씌워진 단체라서 언론의 주목도가 커요. 그리고 유일하게 ‘대학’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단체여서, 대학교에 있는 여러 인프라에 개입할 수 있어요. 대학 내에 있는 페미니즘 모임이나 총학생회 등과 함께 힘을 규합해낼 수 있는 단체인 거죠.
 
그리고 한국은 특별히 대학이 만연해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조직 사업을 잘하면, 기독교랑도 한번 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전국에 교회가 있듯, 우리도 전국에 거점이 있는 거예요. 지역 대학 모임을 거점으로 하면 전국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그리고 영향력이 커요. 일단 수적으로 크죠. 저희가 추산을 해도, 어제 기준으로 54개 대학 59개 모임이 되었는데, QUV가 움직이기만 해도 60개 단체가 움직이는 거예요. 60개 단체를 평균 50명으로 잡으면 3천명이거든요. 우리가 순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3천명인거죠. 물론 그 사람들이 다 QUV나 인권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접근가능성이 있는 것이니까요.
 
전국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청년/대학생을 규합해낼 수 있는 단체로서 성소수자 운동에 있어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하나는, QUV활동가들 사이에서 작은 대학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체육대회는 다른 단체에서도 할 수 있겠지만, QUV체육대회는 마치 한 대학에서 모인 것처럼 ‘퀴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이는 경험인 거죠. 재미있어요. 캠퍼스의 문화나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다 보니 생기는 문화적인 재미가 있죠.

 

'퀴어 대학 총장' 심기용. 지난 대선 기간, 심상정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바 있다.

 
오소리: 네. 그렇게 큰 규모의 ‘퀴어 대학’의 ‘총장’님이신데. (웃음) 부담은 되지 않으세요?
 
심기용: 점점 이 자리가 부담스러워지는 자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는 개인에게는 안 좋은 것 같아요. 원래는 QUV가 생겨날 때, 10여개 단체가 규합을 해서 만들어진 건데, 그때는 의장단과 행정팀에 너무 큰 역할을 주지 말자고 했어요. 왜냐면 서로 바쁘고, 서로 모임 생존하기도 힘들거든요. 겉으로는 잘 되고 있는 모임도 투표 올리면 투표율 낮고, 모임의 생존이라는 건 상시적인 문제인데. 다만 이미 행정팀에는 행정력이 생겼고 의장단에는 대외적인 업무가 생겼고. 심지어 대선 대응을 하면서 QUV가 정치에도 개입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고 QUV 의장은 정치를 할 수밖에 없어요. QUV는 연대체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큰 역할을 맡거나 서로에 대한 책임이 그렇게 클 수 없지만, 의장이 대표성을 가지고 해야 할 정치활동이 많아진 거죠. 너무 부담스럽죠. (하하) 그리고 돈을 받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소리님은 돈 받으시잖아요. (하하)
 
오소리: 어머.
 
심기용: (웃음) 심지어 대학 단체라서 예산도 엄청 작아요. 그럼 개인이 엄청 희생해야 해요. 지금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금적으로 심리적으로 맨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때가 많죠.
 
(그래서 오소리는 인터뷰 후 1차 뒤풀이를 쐈다고 한다.)
 
오소리: 의장 하면서 좋았던 점은 없나요?
 
심기용: 제가 어떻게 보면 되게 차가운 사람이에요. 내가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고, 옳은 건 옳고, 틀린 건 틀린 사람이에요. 이 선이 명확해요. 그런데 또 정은 많은 사람이라서 리드할 때 팔로우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너무 소중하고 좋은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장으로서 갖는 혜택 중의 하나는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건데, 지금 제게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내가 의장을 하지 않았다면 갖지 못했을 기쁨의 만남들이었죠. 지금 와선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 같고. 요즘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웃음)
 
오소리: QUV가 ‘대학 성소수자 모임 연대’로서 이점들이 많이 있는데, 한계점도 있을 것 같거든요.
 
심기용: 연대체라는 게 한계죠. 장점이고 가장 큰 화력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한계고, 약점이에요. 연대체이기에 서로에 대한 책임이 적은 것은 좋은 것 같아요. 각 모임 스스로 책임지는 것도 어렵거든요. 그걸 규합해서 중간 역할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건데, 다만 대학생인 게 한계에요. 그리고 연대체인 게 한계인 것은 사람 동원이 안 돼요. 홍보는 많이 되는데, 서로 여력이 다르고, 특히 시험기간이면 이 시기에는 활동을 의식적으로 줄여야 해요. 중간고사가 거의 3주 정도 되거든요. 그럼 제가 임기 중에 3주정도는 제대로 시간을 못쓰는 거예요. 이번 대선 대응 때는 어떻게든 한 건데, 활동력 규합이 너무 안 되어 있죠. 이걸 보완 하려면 어떻게든 행정팀이 확장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연대 모임이 아니라 활동가 위주로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행사를 하더라도 현장에서 인력이 필요하고, 당장 의장단과 행정팀에 주어진 업무 과도함이 있는데 이걸 분담해야 하고. 그러려면 행정팀 활동가가 생겨야 하는 거죠.
 
그리고 비대학 청년에 대한… 이건 뭐 존재 자체의 한계죠. 비대학 청년들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러한 청년조직이 만들어질 기미도 안보이고.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 성소수자 분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데, 존재 자체의 한계라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는 한계죠.
 
 
“나는 미필이다. 나도 잡아가라!” 
 

집회에서 "나도 잡아가라"고 외치던 심기용은 정말 연행당했다. 석방 직후 발언 중인 심기용.

 

※편집자 주: 지난 4월 26일,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 시절)의 '동성애 반대한다' 발언에 항의하던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연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디올: 얼마 전 육군에서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이 있었고, A대위가 구속되기도 했죠. 대학 내에서 ‘나도 잡아가라’ 릴레이 대자보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거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심기용: 에피소드 많죠. 찢어지고 대자보에 물 뿌리고. 혐오적인 행동들, 차별적인 행동들이 있었고요. 이제는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게 되어 버렸죠. 재미있었던 지점은, QUV에서 조직하거나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쓰기 시작했는데, 대학교 동아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대자보들이 어디에선가 올라오고, 여대에서 ‘왜 우리학교엔 cc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런 거 올라오면 사람들 재미있어 하고.
 
에피소드보다도 의미가 중요한 거 같아요. ‘안녕들하십니까’ 이후로 릴레이 대자보가 이렇게 전국적으로 붙었던 시기가 없어요. 그런데 이 A대위 사건 때문에 전국에 대자보가 엄청 많이 붙었어요. 유례없는 일이고, 그 중심에서 QUV 소속 단위들이 분명히 역할을 했지만, 오랜만에 대학 담론이 성소수자 이슈로 확 잡혀버렸고, 대자보나 이런 활동에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총학생회도 참여하고. 성소수자 담론이 더 이상 대학사회에 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았죠. 담론이 많이 확산된 것 같아요. 적어도 대학교에 다니면, 성소수자에 대해서 들어보게 됐다는 거죠.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됐고.
 
디올: 이 사건에 대한 본인의 현재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심기용: 저는 큰 일이 일어나면 감정이 안 들어요. 뭐냐면 그거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큰 사건이 일어나면 무덤덤해요. 당연히 발언을 할 때는 분노스럽기도 하고 이걸 이성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는데, A대위 사건 같은 정말 큰 일에는 감정을 쓰지 않아요. 큰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의장이고 스스로 인권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단순히 좌절하면서 체력적으로 지치면 안되니까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심리적으로 속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취 음성 파일을 듣다가 펑펑 울었어요. 그 음성 파일을 들을 때 내가 그 조사받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끝까지 못 듣겠더라고요. 제가 지정성별 남성이지만, 마초적인 중년 남성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요. 이미지 적으로 남성인 사람에 대한 위압감이 있는데 그 모든 감정과 경험이 다 살아나면서 너무 서러운 거예요. 군검사가 실망시키지 마라 이런 이야기나 하고. 무엇보다 저기 내 게이 동생들, 내 친구들이 군대에 가있고, 그 안에서 이 사건 때문에 충격 받아서 우는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펑펑 울었어요. 그것 외에 감정소비 하는 것은 없었어요. 물론 짜증은 나죠.
 
디올: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국방부 앞 집회 때, “나는 미필이다. 나도 잡아가라” 며 공개적인 발언을 하셨는데, 그때 감정은 어땠나요?
 
심기용: 내가 죽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나는 자유롭거든요. 이런 거 공개되어도 죽지만 않으면 돼요.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간사하니까 만약 내가 숨길 수 있고 숨겨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숨기면서 사는 것이 내 인생에 편하겠죠. 심지어 (병무청 신체검사)1급이라 도망도 못 가는데요...

 
그런데 누군가 이미 범법자가 되어버렸잖아요.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내가 성소수자인 상황에. 죽지 않으면 괜찮다는 말을 좀더 예쁘게 하면 ‘될 대로 되라’ 인데, 굳이 군대에 가서 숨기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가족이 보고 전화하고, 이미 기자회견에서 얼굴 다 나오고, 심기용 치면 기사 다 나오는데, 국방부에서 잡아가려면 잡아가고 수사할 테면 수사하라지. ‘될 대로 되라’의 연장선인 거예요.
 
디올: 그럼 두려움이라기 보다 분노인가요?
 
심기용: 짜증이죠. 저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분노하거나 슬퍼서라기 보다 짜증으로 반응해요. 짜증내는 거예요. 그런 짜증나는 것을 굳이 참고 있을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디올: 그럼 처음 발언할 때, 바로 직전에 걱정되었던 부분도 없었어요?
 
심기용: 성소수자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걱정했어요. 이게 너무 걱정되고 정확하게 발음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웃음)
 
디올: 군대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기용: 군대 문화는 최악이에요.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돼요! 인간에게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있을 수 있어요. 완전히 나쁜 것 만도 아닐거고. 그런데 군대처럼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녹음 파일 보면 너한테 실망이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국가에서 성교육을 할 때도 그렇거든요. 자기가 통치해야 할 대상에게 공포심과 수치심을 줘요. 자긍심과 공동체감을 주는 게 아니라 공포심과 수치심을 주고 굴욕을 줘서 굴복시키고 통제해요. 관심병사 관리가 대표적이죠. 애국심이 뭐에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소중함과 사랑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굴욕으로 통치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에 예속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야 조직이 운영될 수 있으면 그 조직은 최악이죠. 그렇게 해야만 조직 보위가 되는 모임이면 해악이라고 생각해요.
 
군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만 봐도 집단 숙박을 하니 동성애가 문제라는 건데, 그러면 사실 문제는 동성애가 아니라 집단 숙박이 문제잖아요. 좁은 공간에 몇 십 명 모여서 살게 하잖아요. 공간을 분리하던지, 동성애 성향이 강한 사람은 면제를 하던지 해야죠. 우리의 성적 충동이나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자신과 군 공동체에서 스스로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를 다같이 실효적으로 고민해야죠. 이상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강제로 징집하면서, 특정한 섹슈얼리티가 드러났다고 처벌하면 차별이잖아요.
 
오소리: 그런 군대, 안가고 싶지 않나요? 병역 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기용: 내가 감옥에서 섹스를 할 수 있으면 가겠는데, 그걸 참을 방법이 없어요. (웃음) 병역거부 생각은 없어요. 병역거부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대학 졸업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서 병역 거부가 방해가 되고, 병역거부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병역 거부를 안 하겠죠.

 

"내가 나로서 온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찾아나갔으면 좋겠어요."


디올: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성소수자들이 더 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심기용: 위축되는 분위기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이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고 같이 세상을 바꿔보자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내가 코멘트를 할 건 없어요. 자신을 숨기게 되는 것은 내가 뭐라고 코멘트를 하더라도 그건 사회 구조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결정할 문제거든요.
 
질문해 주신 게 ‘일반 대중으로부터 숨는다’ 이건데, 사실 오픈을 하고 성소수자 운동에 매여있을수록 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만 살게 되는 거 같아요. 게이 동아리 들어오고 나서 ‘나는 행복한 성소수자가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로 더 들어가게 되고, 지금은 내 삶에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주변에 잘 없어. (웃음)
 
성소수자라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건 맞고, 내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살아도 차별이 없어야 하는 건 맞는데, 이건 시간이 걸리고 싸워야 되는 문제인 거죠. 나서지 않고 자신을 더욱 더 숨기게 되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은 삶을 풍요롭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요즘 들어 ‘행복한 성소수자’가 꿈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 행복한 심기용’이 꿈이거든요. 내 삶에는 섹슈얼리티와 젠더 문제 말고도 사실 다양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삶의 영역들이 풍요로워지는걸 포기하거나, 개발하는 걸 멈추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거지, 내가 행복한 성소수자가 되는 게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물론 그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조건은 맞는데, 그거 말고도 다른 풍요로운 것들이 있다는 거죠. 본인이 숨는다고, 불행한 성소수자라고 해서 불행한 사람이 되진 말라는 거죠. 차별 현실로 인해서 아예 삶이 무너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여지는 도처에 깔려있으니까.
 
그런 건 있죠. 대학생이시라면 QUV 의장으로서, “대학 동아리에 많이 들어가십시오.” 제일 중요한, 모든 것의 변화의 시작은 ‘내가 나로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내 인생에서 계속 생겨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때 본인의 인생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사회의 변화도 시작돼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운동이 되는 사회잖아요. 예를 들어 게이들의 애널 섹스가 운동이란 말이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 내가 온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찾아나갔으면 좋겠어요.
 
행성인이나 친구사이 같은데 들어가고, 사람들 발언하는 거 보다 보면 멋있고, 그러면 발언하게 돼요. QUV 행정팀원들이 그랬거든요. 처음에 발언할 수 있는 게 권순부(QUV 전 의장), 그리고 의장이니까 심기용. 그러다가 심기용 하도 발언 많이 하고 기사 많이 나고 그러니까, “발언할래?” 하면 행정팀원들이 “어, 할게.” “얼굴까도 돼?” “어, 할게.” 그게 시작이란 말이죠. 내가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공동체가 내 발 밑에 기반하고 있을 때, 성소수자 운동이라던가 변화를 위한 사회적 기여가 그 때 시작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먼저 인 것 같아요.
 
디올: 이번 사건을 접한, 군대에 가야 할, 현재 군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심기용: 두려워하거나 위축돼서 공포에 예속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UV가 이번에 슬로건으로 낸 것이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는 건데, 누군가는 계속 목소리를 내면서 싸우고 있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단지 공포에 예속되어 있지 말고 침착하게 기다리시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니까 무서운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이 상황을 한 번 겪어봤잖아요. 사실 진짜 처벌받는 것 보다 공포에 예속되어 있는 기간이 더 힘들어요.
 
 
죽지만 않는다면, 나에겐 술과 우정이 있으니까! 
 

 

 

오소리: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에 있어 오픈리이긴 한데, 오픈리에도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QUV 활동하면서 발언도 많이 하고 연행도 당하시면서 일반 대중들한테도 많이 노출이 됐어요. 좀 느껴지시나요?
 
심기용: 아버지에게 전화 온 적이 있긴 한데, 저랑 친한 사람들이 “너 기사 많이 나오더라.” 이 정도 밖에 없고. 기사 엄청 많이 나오는 활동가들도 사람들은 잘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그런 사회인데 내가 무서워할게 뭐가 있어. ‘심기용’에 대해서 QUV라는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지, ‘심기용’이라는 개별 인물에 대해서 유명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소리: 사실 성소수자들이 운동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노출됐을 때의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심기용: 제가 아까부터 ‘죽지 않잖아요.’ 라고 얘기하잖아요. 이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생계에서 대기업에 간다거나 오픈리적인 커밍아웃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고 내 커뮤니티나 주변사람들이 알아도 된다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의 사회가 됐다고 생각해요. 봐라, 내가 이렇게 사회에서 많이 돌아다니고 국회에서 연행이 되고 그러지만 내가 죽진 않지 않나.
 
디올: 지금은 얼굴을 드러내면서 활동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어땠어요?
 
심기용: 커밍아웃을 처음 할 때 30분이 걸렸어요.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남..남..” 하다가 30분, 1시간이 지나가고. “내가 남자를 좋아해”가 그렇게 목에서 안 나왔어요. 그러다 그런 경험을 200번 정도 하니까 귀찮아져서 오픈 해버렸어요. 무엇보다 내가 죽을까봐 걱정했는데 안 죽고 살더라고요.
 
디올: 왜 죽을까 봐 걱정했어요?
 
심기용: 죽을까 봐 걱정한다는 게, 내가 이걸 공개한다고 했을 때, 마치 들켜서는 안 되는 치부를 들킨 마냥 사는 게 싫었고, 일베나 기독교 사람들이 나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죽지 않네, 죽지 않네 확인하다 오픈을 한 거죠.
 
디올: 처음에 30분이 걸렸다는 거는 망설임의 이유가 있었던 건데 왜 그랬을까요?
 
심기용: 모르겠어요. 거부감에 대한 걱정이었다기보다 막연하게 금지된 사람처럼 여겨졌으니까. 범법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심리와 비슷했나 봐요. 그런 거를 생각해보다 말았는데, 그때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특이한 문제고, 말을 했을 때 오는 반응이 두렵기도 하고. 그렇죠. 금지되어 있는 건데 나는 금지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거잖아. 그게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소리: 아까 전에 아버지한테 전화 온 걸 잠깐 얘기하셨는데.
 
심기용: 뭐가 싫어서라기 보다 그냥 가족한테 일부러 안 알리고 있었거든요. 굳이 경제적인 위험수를 던질 필요가 없었는데, 엄마, 아빠는 내가 성소수자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나 봐요. 다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몰랐으면 좋겠다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도 안 되는 거지. 남자남자가 좋아한다는 걸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거지. 이 문제가 가족들에게 공론화가 되면 문제가 생길 수는 있는데, 다만 그렇다고 해서 삶에 큰 문제가 있냐 라고 하면 아닌 거 같고. 엄마, 아빠가 다행히 문제삼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고. 그런데 한번쯤 싸울 것 같아요. 싸운다는 게 의절하거나 그런 게 아니고, 문제는 내가 성소수자인 게 아니라, 활동하는 게 문제인 거 같거든요. 집안 사람들이 문화적으로는 생각이 열린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괜찮을 거 같아요. 나 결혼할 거 기대한 것도 아니고.
 
오소리: 아버지는 언론 통해서 아신 거예요?
 
심기용: 제가 가족들 보라고 페이스북 프로필에 일부러 QUV, 동국대 큗 다 써놨어요. 엄마가 가끔 염탐하거든요. 그래서 “네가 성소수자 당사자니?” 이렇게 물어봤어요. 아빠는 제가 연행됐을 때 쓴 글을 본 것 같고.
 
디올: 굳이 알릴 생각은 없었다면서. (웃음)
 
심기용: 커밍아웃 할 생각으로 그랬던 건 아니고, 활동하면서 저절로 알게 되겠지, 그냥 알았으면 싶기도 했고.
 
오소리: 행성인은 회원단체라 많은 회원들이 활동과 생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소진이 오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기용씨는 그런 소진이 오진 않나요?
 
심기용: 저는 소진이라는 게 없어요. 왜냐면 제가 활력이 엄청난 사람이어서도 있지만, 그런 거라기보다 감정소비를 많이 안 하려고 노력을 해요. 대신 짜증을 많이 내고. 슬퍼하거나 공포에 예속되는 게 아니라 짜증내려고 해요. 짜증으로 모든 감정을 해소하려고 해요. 짜증난다는 거는 분노보다는 감정의 수위가 적다고 생각하거든요. 짜증난다는 건 걸리적거린다는 느낌, 그래서 이걸 치워내야겠다는 느낌이라, 내가 엄청난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아니고 감정이 어느 정도 계속 유지가 되니까 소진이라고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철학연구를 하고 있는데, 철학이 저한테는 그냥 삶이고, ‘사유를 한다’는 걸 계속 가져가는 사람이고, 사유를 하다 보면 당연히 내가 어떤 태도나 행동이나 실천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활동을 멈출 이유도 없어요.
 
오소리: 이걸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활동과 생업을 병행하면서 소진을 막는 기용씨만의 방법이 있는지.
 
심기용: 술과 우정. 저는 제가 소중한 사람들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내가 힘든 거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게 더 힘들고.
 
오소리: 베푸는 걸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가요?
 
심기용: 사실 시혜적인 마음도 있겠죠. 어느 순간엔 그런 게 생길 수도 있겠지. 마음이란 게 내가 통제한다고 해서 특정한 마음만 항상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시혜적인 관점도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보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큗에서 활동 하다 보면, 회원들이 가끔 ‘이 동아리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는 얘기를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한마디 때문에 뽕에 취하는 거죠. 그 사람의 한 마디와 눈빛과 영혼이 내 마음에 담길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이 인간이다’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이게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영혼이 되는 사람들이 생기거든요. 내가 활동한다는 거는 그 사람들이 내게 그 영혼을 구성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난 그냥 그렇게 또 활동을 하는 거예요. 활동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우정과 정을 쌓게 되면 이 사람들이 활동하는 일이 내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그리고 저는 정말 삶이 어려울 때 철학 책을 읽어요. 철학 책을 읽을 때, 정말 좋으면 신체적으로 오르가즘이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좋은 책을 읽을 때는 한 장 읽고 막 너무 행복해서 산책을 해요. 그런 시간을 보낸다거나. 이 책이 좋았다는 거는 나에게 좋은 문제의식이 된다는 거고, 이 문제의식을 나의 식대로 소화를 해서 행동을 하고 싶게 만들어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거지. 철학이 곧 내 삶이라고 하는 게, 그런 게 다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하는 일이 저한텐 곧 실천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질문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소리: 성소수자 이슈나 철학 외에 관심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심기용: 일단 장애인 인권. 신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장애라는 문제가 신체의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신체욕망이라고 하는 지점에서 성소수자 문제와 굉장히 닿아있다고 보고. 일단 소수자 문제는 항상 관심이 있어요. 소수자는 새로운 주체성이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주체성이라고 보거든요.
 
또 관심이 있는 건 저는 식물을 되게 좋아해서 식물을 많이 키워요. 다육이들 많이 좋아하고. 그리고 음악 되게 좋아하고. 이소라. 옛날 노래 되게 좋아해요. 2000년대 전에 나왔던 노래들 좋아해서 많이 듣고 음악적으로 관심 많고, 예술 쪽으로 관심이 되게 많아요. 잘 알아서가 아니라,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지 모르겠는데, 카톡을 잘 못하겠어요. 왜냐하면 언어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타이핑을 하는 건 순간 언어생산을 하는 건데, 나는 매번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차라리 전화를 했으면 좋겠어. 카톡 하나라도 언어를 만들려면 일의 연장선상 같은. 그래서 따로 시간을 내서 의미를 잘 해석해내기 어려운 이미지들을 찾아다니기도 해요.
 
그리고 또 그런 것도 있죠. 저는 정치철학 공부를 했는데, 도시사람들이나 지금 사람들이 난민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젠트리피케이션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주변부로 계속 밀려나고 있는데 아무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 않고, 이 문제의 핵심적인 지점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남자에 관심 엄청 많고. (하하하)
 
오소리: 관련해서 배우고 싶거나 해보고 싶은 것은?
 
심기용: 마사지 배우고 싶고, 여러가지 용도가 있어서. (웃음) 행정팀원들 마사지 해주고 싶어서. 너무 고생하니까.
 
언어를 조금 다양하게 배우고 싶어요. 수화배우고 싶어요. 단지 청각장애에 대한 수화가 아니라, 사실 요즘 언어생활에 대한 신물이 나서. 언어에 대한 강박증이 너무 심하고 신경증이 심한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우울증이 되는 거거든요. 표현 규제 운동이 절대화될수록 사회가 우울증이 만연한 사회가 될 거예요. 물론 표현 규제 운동의 순기능이 있지만 그 특유의 해석적 신경증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언어를 버려야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어 말고 다른 신호 체계를 배우고 싶어요. 몸동작으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고. 말로 욕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내 몸으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섹스도 배웠으면 좋겠고. 그것도 몸의 대화니까. 누가 강의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오소리: 취미는 있나요?
 
심기용: 저는 게임 해요. 되게 잔인한 게임 좋아해서. 가상세계에서는 평화 이런 거 좋아하지 않거든요. ‘롤’ 하고요. 산책을 많이 하고 노래를 많이 들어요. 명상을 좀 자주 해요. 정신력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감정소모가 안될 수는 없고. 그리고 가장 최고는 역시 술과 남자.
 
오소리: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궁금해요. 아직 대학생인데, 졸업 후에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실 건지?
 
심기용: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번에 QUV 의장을 하면서 느꼈어요. 정치라고 하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칼을 들고 달려드는 곳이구나. 심지어는 내가 적어도 같은 진영이라고 생각했던, 공감을 갖고 있던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이런 거 있잖아요. 뒷담화, 험담하면서 편가르기도 되고, 서로 눈에서 적대적인 경계의 눈빛이 오가고, 인사하면 안 받아주고. 그런 것들도 있었고.
 
저는 원래 성격이 리버럴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대화 하고 토론하는 건 다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치공간은 어떤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거 같아요. 잘. 함부로 질문하면 빻았다고 하고 매맞잖아요. 어느 사회든 질문의 질이 나빠도 질문하는 사람 때리면 안되거든요. 이게 사실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치공간은 배제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그래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들긴 해요. 어떤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확고한 생각으로 남을 배제해가면서.
 
칼 슈미트가 정치를 적대의 정치라고 하거든요.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는 게 정치라고. 정치라는 공간이 너무나 그런 거예요. 질문이 허용되어 있지 않은데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고. 질문을 하고 그 말과 개념을 만들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괴로워요. 이게 너무 안 맞아. 차라리 제도 투쟁을 하면, 제 언어로 확신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성소수자 내부에 있는 여러 가지 퀴어 담론들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정치는 진짜 적을 만들고 사람을 싸우게 만들고 결국에는 배제하게 만들고, 돌아서게 만들고. 옛날에 친했던 친구들 막 파토나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나는 이거 감당을 못하겠다.
 
그리고 거기서 배제의 수위가 높은 정치를 해서 얻는 행복보다, “어떤 사람이 요즘 이렇게 얘기한대. 빻았지 않냐?” 이러면서도 “그런 지점은 생각해 볼만한 거 같아.” 이런 자유로운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그런 그룹에 있었을 때의 쾌감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공부한걸 말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질문한 걸 정리해서 말하는 사람. 생각이 유별나서 욕을 먹는다,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뭐. 욕을 먹어도 내 생각인데.
 
오소리: 활동가가 될 생각은 없어요?
 
심기용: 요즘 고민인데. 활동가분들하고 이미 너무 정이 많이 들었고. 물론 그거 때문에 남아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그런 거 있잖아요. 집회를 하는데 준비를 같이 해보자. 현장인력이 필요하다. 그럼 가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난 그게 활동가가 아닌가 싶은데. 그거 하면서 공부할 수 있거든요. 성소수자 활동이 요즘 들어서 좀 빡세지고 있기는 한데, 엄청나게 빡세지는 않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좋은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죠. 활동을 하되, 합의된 제도 요구에 대해서만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제시하는 정책적 요구에 관해서는 배제적으로 정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생각해요. 성소수자 인권운동 빨리 끝내버리고 다른걸 하고 싶어요. 물론 본연은 학자이고 싶어요. 누군가와 질문을 발전시키는 사람이고 싶어요.
 
 
‘자유의 파시즘’을 하자!

 

 

5.17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맞이 "성소수자 혐오반대 시민 필리버스킹"에서 발언 중인 심기용.

 
오소리: 마지막으로 한 마디.
 
심기용: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혁명의 순간 중의 하나가 (프랑스) 68혁명인데, 68혁명 때 ‘욕망을 얘기하라. 욕망을 노래하라’ 이게 하나의 슬로건이었단 말이에요. 저는 그런 난장판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 운동을 통해서 약간 카니발이 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소수자는 기존 권력에서 볼 때 위험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인데, 위험한 순간이 열려야 그게 해소가 되고, 해소가 되어야 성장할 수 있거든요. 위험한 욕망들이 사랑의 영토 안에서 발산되는 장면을 사람들이 더 많이 경험해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질문이 가로 막혀져 있고, 질문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유효한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좀 열린 상태로 토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열렸을 때 재밌을 거 같아요. 그런 관계망이 마련되는 게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만 68혁명에서 나왔던 여러가지 용어 중에서 우리가 파시즘이란 말을 싫어하잖아요. 전체주의라는 말과 엮어서 사용하는데, 사실 ‘대중의 집단적 열망’을 파시즘이라고 하는데, 이게 당연히 집단주의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겠죠. 그런데 오히려 파시즘이 주장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68혁명은 되게 파시즘적인 순간이거든요. 대중의 열망으로 도시점거하고 거기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막하고, 월스트리트도 비슷한 욕망이 있었던 거고. 근데 그게 사실 전체주의적인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차이와 자유가 보장되는 파시즘이 있는 거예요. 자유를 위한 혹은 차이를 위한 파시즘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차이가 단지 내파하는 형식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욕망을 더 긍정하고 발명하기 위한 공동 전선이 되는 거죠. 차이나 자유로움도 대중적인 열망을 분명히 만들 수 있을 거고, 우리가 앞으로 정치를 할 때 이걸 자극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QUV나 여러 성소수자 단체뿐만 아니라 소수자 단체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정치를 하거나 살아갈 때, 차이와 자유로 하나의 파시즘적인 전선이 될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내자. ‘자유의 파시즘’을 하자 이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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