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받은 사람: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 상임활동가)
인터뷰 한 사람: 길벗, 오소리,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길벗: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웅: 저는 행성인 상임활동하고 있고요 3년째 공동 운영위원장을 하면서 HIV/AIDS 인권팀과 웹진기획팀 깍두기로 활동 중인 웅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사람 만나러 나왔죠
길벗: 행성인에서는 언제부터 활동하셨나요? 계기는 무엇인가요?
웅: 행성인에는 2003년도부터 나왔어요. 동성애자인권연대였죠. 당시 동인련에서 제일 큰 행사는 연합캠프였어요. 대학교 모임들이 같이 여름 인권 캠프를 준비했어요. 2000년대 초반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대학모임이 많이 생겨난 시기였고 저희 학교 모임도 활동을 시작하던 때라서 준비를 같이 하자고 초대 받아서 나왔죠. 그때는 사무실이 후암동 옥탑방에 있었어요. 처음 갔을 때 좁은 방 한 칸에 성소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 교육장 1/4 정도나 될까? 작은 방이었죠.
길벗: 그럼 대학모임이 첫 활동인가요?
웅: 그 전에도 나왔었죠. 90년대 말에 인터넷이 보급 되면서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게시판과 채팅방 정도 있는 군소 사이트가 몇 십 개씩 생겼어요. 저는 당시 중학생이었어요. 감상에 젖네요.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끝이 좋지 않아서, 그 아픔을 서핑으로 풀었어요. 몇몇 사이트를 단골삼아서 채팅 하고 번개 하고 정모도 나갔죠.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특별히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게이’, ‘동성애’ 를 입력하고 검색하는 과정에서 별 갈등 없이 받아들였는데요, 처음 쓸 때 흥분이나 긴장의 기억은 지금도 남아있네요. 청소년들이 모이는 사이트도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제가 많이 활동 했던 사이트는 당시 인기 있던 치약 이름을 딴 ‘포미앤유’ 였어요. 그 시기 청소년 성소수자 사이트로 ‘아쿠아’나 ‘애니79’ 같은 곳은 회원수가 1,000명이 넘던 시절인데, 거기 비하면 작은 동네였죠.
길벗: 그때부터 인권에 관심 있었어요?
웅: 처음부터 인권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어요. 사람 만나고 애인이나 친구를 만나고 싶었지 인권까지 생각은 못했죠. 대학교에서 학생운동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사회과학학회도 나갔는데 운동권문화는 어색하더라고요. (웃음) 동인련은 그냥 사람들 만나러 나오는 장소로만 생각했어요. 인권에 대해서는 따로 연결 짓고 관심 두지 않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이런 얘기들을 하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어요. 그래도 그게 지금까지 다 남는 거죠. 제가 아직도 여기서 활동하는걸 보면.
길벗: 동인련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활동했던 것은 뭐였어요?
웅: 동인련이 처음부터 활동팀을 두고 분야별로 활동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안이나 관심사마다 대응하는 식이었죠. 당시 활동하던 분들도 대부분 학생이었고요. 운영 구조나 CMS가 따로 있던 시기가 아니라서 그때그때마다 붙어서 활동했어요. 자기 돈 박아 활동한다는 얘길 농담처럼 했고요. 저는 제가 활동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사람 만나러 나온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그냥 활동을 돕는 역할이랄까?
놀러 가듯 나갔는데 너무 가까워졌죠. 2004년에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도 같이 갔고요. 같은 해 아스트리아에서 활동가들을 초대할 때도 같이 다녀왔네요. 그 다음부터는 군대 잠깐 다녀오고 학교 복학하면서 동인련 활동을 띄엄띄엄 참여했어요. 2010년에 활동팀이 생기고 지금의 구조가 갖춰졌는데, HIV/AIDS팀에는 발족부터 꾸준히 참여하게 됐죠. 1
HIV/AIDS, ‘단절의 역사’에서 ‘달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2
HIV감염인 차별행위에 대한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 중인 웅
길벗: 행성인 HIV/AIDS인권팀에서 주로 활동을 했잖아요. 처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웅: 그 즈음이 단체가 확장을 모색하고 조직력을 키우면서 구조를 잡아가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CMS 체제가 자리 잡고 활동가들이 가입하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활동팀을 만들어 활동하게 되면서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의 선택폭이 넓어졌죠. 2010년 3분기에 HIV/AIDS인권팀이 만들어질 때, 지금은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하는 정숙의 제안을 받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에이즈 팀이 없을 때도 행성인은 연대 활동을 많이 했어요. 나누리+가 2004년도에 만들어지고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 투쟁도 함께 했고요. 가브리엘 같은 커밍아웃한 질병당사자 회원이 2000년대 초부터 단체 안에 있으니 활동이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기도 해요. 감염인 인권침해나 차별사건에 대응하고, 에이즈예방법 개정운동에 대응하는 활동들을 하다 보니 에이즈운동은 연대의 형태로 이뤄졌어요.
내부 고민이 있었겠죠. 행성인은 연대활동 외에도 자체적으로 커뮤니티 안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HIV/AIDS 인권팀을 만들었어요. HIV/AIDS인권팀의 활동은 무엇일까에 대한 외부 질문도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컸어요.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 안에서 감염인들은 관계에서 삭제되기 쉬운 환경이었고 그게 성소수자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했어요. ‘단절의 역사’라고 표현할 만큼 거리가 있고 딱딱했는데, 그걸 커뮤니티 언어로 좀 풀어내보자, 에이즈를 둘러싼 이슈나 현안들을 커뮤니티 언어로 전달하고 같이 고민하는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로 활동을 기획하고 가져온 것 같네요.
길벗: HIV/AIDS 관련 연대체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면? 또 가장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뭐에요?
당시 단체에서 청소년성소수자와 에이즈 인권사업을 묶어 사업기획을 냈어요. 사업의 달인 정욜님 작품이었죠. 그 기획이 아름다운 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3년 사업으로 선정됐어요. 단체 차원에서 에이즈 운동을 시작한다는 걸 알리는 작업이 있었으면 좋겠고, 커뮤니티 안에서 인식을 환기하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욕구들이 있었어요. 질병당사자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관계 맺기의 과정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팀이 결성되고 이듬해 한국에서 아이캅ICAAP(아시아ㆍ태평양 에이즈대회)이 부산에서 열렸어요. 2011년이죠. 나름 큰 국제행사였죠. 우리 팀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리고 지금 현안이 어떤지 외국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해서 준비를 했어요. 에이즈팀 외에도 많은 유관단체 활동가들이 한국 참가단은 어떤 메시지를 전할 지 토론하던 기억이 남네요. 행사는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죠. 외국인 트랜스젠더 감염인 활동가는 입국 금지를 당하고, 활동가들은 채증을 당했어요. 이를 문제 제기하는 과정에 몇몇 활동가가 연행되기도 했고요. 감염인 분들은 아이캅을 겪으며 연합체를 꾸리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KNP+(한국HIV/AIDS 감염인연합회)이고, 한국 청소년 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도 만들어졌어요. 확실히 큰 행사의 영향력은 시야를 틔우는 것 같아요.
Zaps for PL 전시회도 기억나요. 이건 제 활동인생 트라우만데(웃음) 그만큼 기억도 또렷이 나. 커뮤니티 안에서 질병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보자는 취지로 글쓰기 공모전도 하고 문집이랑 도록을 만들어서 전시로 연결시킨 사업이었어요. 결과보다는 취지와 준비과정 중에 얻은 것들이 소중했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우리가 목소리를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을 테니, 내용이 추상적이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겠죠. 인권운동단체에서 작가와 소통하면서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것도 매끄럽지 않았고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했던 활동 중에서는 제일 기억에 남네요. 일에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것,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 확실히 각인된 소중한 씁쓸함이랄까.
2011년을 보낸 다음에 팀에서 질병에 대한 의학적 정보 말고도 지금 한국 에이즈 정책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감염인들은 어떻게 모임을 꾸려가는지 전반적인 환경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거리를 좁히는 감각을 익히는 활동을 하자는 거죠. 앞서 전시 얘기도 했지만, 우리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조모임이나 상담 간호사, 에이즈예방 협회나 아이샵 같은 에이즈 유관단체의 활동을 알아보고 지도를 그려보자는 의도로 단체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뷰할 때 우리가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그런 문제가 있잖아요. 상담 간호사 같은 경우는 현장 이야기를 하니 민감한 게 많아서 현재 그 자료집은 지금 유통을 못하게 됐죠. 언론, 법 캠페인에서 어떻게 에이즈를 이야기 하는지 토론회도 했어요. 기억나는 질문이 있어요. “당신은 감염인이냐, 당신은 감염인과 만나서 섹스 할 수 있느냐”. 지금은 나오지 않는 내용이고 뉘앙스도 다른데, 당시 질병당사자분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시도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경계하는 태도가 무리는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당황해서 답도 잘 못했어요. 지금은 잘할 수 있는데 이후에는 안 물어보시더라고요. (웃음)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도 단체 내부에서 ‘살롱 드 에이즈’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했죠. 팀원들은 교육프로그램 만들면서 제일 역량강화가 됐던 거 같아요. 자료도 남고요. 요즘에는 밖으로도 오픈해서 프로그램을 하고 있죠.
2013년에는 감염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해서 당사자 인터뷰를 했어요. 4-60대 동성애자 감염인 인터뷰였죠. 대상 연령이 4-60대였던 건 자조 모임 연령대가 비교적 높았던 것도 그렇지만, 예전 게이 커뮤니티 환경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던 게 작용했어요. 당시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커뮤니티에서 감염인의 삶은 어땠을지 듣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90년대 커뮤니티 풍경을 훑고, 감염인 생애사를 들어보자는 투 트랙으로 목표를 세우고 인터뷰를 했죠. 자신감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과감함도 있던 거 같아요. 인터뷰 하면서 댁에 찾아가 간식도 얻어먹고 이야기 들으면서 옛날 사진을 봤던 경험들이 지금 돌아보니 너무 소중하네요. 편하지 않은 관계 일 수 있지만, 말이라도 한마디 걸 수 있던 게 활동 차원에서 참 좋은 경험이었죠. 그 사업이 있기까지 십 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관계를 맺어온 활동가들의 노고가 컸고요.
그렇게 소중한 경험을 남긴 사업이었는데, 국민일보 백상현 기자가 자료집을 입수해서 악의적으로 기사 내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욕하고 싶다. 그 인간 악질적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소중한 이야기인 만큼 유통과 관리를 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팀의 과오가 컸죠. 혐오선동이 연대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그 일을 겪으며 사과를 드렸죠. 오히려 인터뷰에 응한 분들은 신뢰를 표하셨고, 관계도 더 깊어질 수 있었어요. 감사하죠. 여튼 그 인터뷰 자료집이 지금은 폐기된 상태지만, 이후에 낙인지표조사 준비할 때도 그때 경험이 많이 참고가 됐어요.
2014년에는 3년 사업을 마치면서 대중들이 HIV/AIDS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책자를 만들자고 해서 준비를 거쳐 2016년 가이드북을 만들었죠. 일단 HIV/AIDS인권팀은 다른 팀보다 자료집을 많이 냈죠. (웃음)
오소리: HIV/AIDS 인권 운동의 어려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웅: 제가 생각하기에 에이즈 인권운동은 당사자성이 강한 운동이다 보니 활동 범위나 개입하는 조건이 다른 연대운동이랑은 다른 거 같아요. 그에 비해 질병 정보나 현안들이 복잡하기도 하고요. 거기에 HIV랑 섹슈얼리티는 떼어 놓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팀에 비해 문턱이 높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에이즈팀이 다른 팀에 비해 소수로 굴러가요. 하지만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이에 대해 문제를 공유하면서 같이 싸워나가는 과정을 바탕으로 하는 운동이다 보니 여느 연대운동들보다 관계가 깊고 신뢰가 높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건 제가 생각하는 에이즈 운동이기도 해요. 밀착된 만큼 갈등이나 긴장은 끊이질 않지만요. 커뮤니티 내부 낙인이나 두려움 속에서 고착된 굴곡이 있는 만큼 이 운동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HIV/AIDS인권운동은 연대의 감각을 알려준 거 같아요. HIV/AIDS인권운동에서 가진 관계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서의 연대도 생각하게 되고요. 사람의 삶을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지금 연대활동 환경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조심스러워했지만 요즘엔 이것 저것 해보자고 사업 기획도 같이 해요. 아무래도 에이즈 운동은 당사자 목소리의 비중이 높잖아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감염인이나 비감염인이나 서로 시야를 넓히고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는지 감각도 익혀왔으니까요. 활동에 대한 상상력을 더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소리: HIV/AIDS 인권 운동의 현안은 무엇인가요?
웅: 지금 에이즈 인권활동가들은 감염인 의료차별 말고도 외국인, 이주민이나 난민 감염인 문제, 교도소같은 수용시설 내 감염인 차별, 여성감염인 이슈같이 인권 사각지대의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소수자 난민 감염인 이슈 같은 경우는 얼마 전에 네트워크도 꾸렸잖아요. 행성인도 참여하고 있고요. 모든 이슈에 행성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고 있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현안을 공유하고 있어요. 그리고 에이즈 예방법 개정에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감염인에게 적용하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어요. 제도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많이 떠올랐어요. 예방법 중에 민감한 사안 중 하나가 ‘전파 매개 행위 금지 조항’인데 감염인들에게 범죄자 낙인을 찍는 것이라서 고치려고 하고 있죠. 그리고 이제 PrEP가이드라인이 나오잖아요. 프렙 보험적용을 주장할 필요도 요구되는데, 한편으로는 인권운동의 관점으로 프렙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거든요. 이전부터 에이즈팀에서는 내부적으로 외부 활동가들이랑 오라킥이나 PrEP같은 현안들 중심의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대응 방향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 동안은 내부적으로만 준비하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오소리: 행성인 HIV/AIDS 인권팀 활동을 하면서 고민이 있다면?
웅: 얘기하고 보니까 대부분의 활동이 연대활동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들이네요. (웃음) 사실 외부 연대활동의 비중이 더 커지고 접근도 좋아진 환경 변화가 있어요. 작년 에이즈 인권의 날 즈음해서 유관 활동가들이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결성하면서 활동이 더 결합적으로 진행되는 지점도 있고요. 같이 대응하는 발판이 만들어진 거죠. ‘키씽에이즈살롱’ 처럼 일상사업도 준비하고 공동으로 대응하는 사안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인권팀에서는 나름의 고민이 있어요. 변화가 많은 시점이고, 단위들 개별활동보다 연대활동이 더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그래서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어떤 특화된 활동을 기획할 수 있을까, 당사자 활동 외에 인권 팀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동안 했던 내부적인 활동 너머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이 있죠. 인권팀은 당사자들이 운동주체인 구조는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팀원들도 활동하면서 갭이 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소수정예지만 인권팀 페이스를 지키면서 즐겁게 활동할 거리들을 만들면 좋겠어요. 팀원들이 어느 정도 역량을 갖고 활동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고요. 전문적인 현안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언어로 캐주얼하게 만들어 보는 기획력을 키우면 좋겠어요. 전문적인 조사나 연구를 대중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에이즈 혐오대응은 활동의 기본값 같은 느낌이고... 연대가 중요한 에이즈 운동 속에서 우리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은 두고두고 고민이 될 것 같아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웹진을 위해 - 프로투고자에서 웹진팀의 ‘깍두기’가 되기까지
웅을 인터뷰하며 화기애애한 웹진팀
길벗: 웹진팀에는 팀원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글을 많이 기고하셨고 팀원까지 하게 되셨는데, 어떻게 활동하게 되셨나요? 팀원이 아닐 때와 팀원일 때의 차이점은?
웅: 웹진에는 팀이 생기기 전부터 많이 기고 했어요. 기획과 상관없이 제가 쓰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그때 썼어요. 프로투고자였죠.
상임활동을 시작하면서 팀 활동에 참여했어요. 같이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필진으로 있을 때와 팀원으로 있을 때가 다르더라고요. 기획을 같이 하고 발행하는 과정이 중요해졌죠. 팀 활동은 같이 활동하는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잖아요. 특히 웹진팀은 기획하고 필자를 섭외하고 원고를 같이 읽는 과정이 중요하더라고요. 다른 팀들도 그렇지만 웹진팀은 호흡을 일상적으로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뉴스나 현안들도 실시간으로 공유되면 좋겠고요. 팀원들의 욕구를 반영하면서 단체 활동이나 인권현안을 전달하는 것도 매달 고민해야 하고요. 근데 제 욕심이죠. 팀원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활동을 하잖아요. 한계를 안고 활동을 만들어가는 거에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활동비전이랑 현실활동을 절충해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는 다들 쓰고 싶은 주제를 제안하면서도 웹진팀의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리듬을 유지하기까지 팀내 구심이 되는 팀원들이 있는 건 너무 중요하고요. 웹진팀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오소리: 행성인에서 웹진 ‘랑’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웅: 웹진팀은 정체성을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웹진은 전문적인 성소수자 미디어가 되어야 할까, 전문적인 미디어일 필요가 있을까? 소식지의 역할만 하면 안 될까. 지금은 팀 조건에 맞게 균형을 가져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때요?
오소리: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웅: 웹진팀 거품이 꺼졌다고 제가 농담처럼 팩트체크를 해주잖아요. (웃음) 웹진팀은 다른 활동팀들보다 문턱이 낮은 팀이에요. 활동현안을 같이 읽고 회원들을 활동이나 관심 이슈에 연결시켜주기도 하죠. 그런데 최근엔 단체에 소모임들이 많아지면서 낮은 문턱의 활동참여 폭이 넓어졌어요. 그런데 소모임이랑 웹진팀이 다른 건 웹진팀은 소수자 인권운동에 발을 담그면서 커뮤니티와 그 밖을 향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저는 팀원들을 모을 때도 이런 웹진의 강점을 많이 어필하고 활용해야 할 거 같아요. 어떻게 그 접면들을 넓혀갈까, 지금의 구조에서 무게에 눌리지 않고 가볍고 기동력 있게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이후에도 고민들이 있겠지만 단체에서 돌아가는 소식이나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들,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본분을 잃지는 말아야 될 거고요. 웹진팀의 기획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팀원들이 기획하고 청탁하면서 필진들의 풀을 넓히는 것만큼 자신들의 이야기도 잘 쓰면 좋겠거든요. 바람이 있다면 그 과정에 제가 웹진팀 깍두기지만 고민 같이 나누면 좋겠고요. (웃음) 그런 점에 웹진팀 팀 방이 좀 시끌시끌하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바람도 있어요. 깍두기가 제일 말이 많은 거 같아서 저는 요즘 자제하고 있습니다. (웃음)
오소리: 그냥 계속 떠드셔도 돼요. (웃음)
웅: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SNS 대응도 중요해진 것 같아요. 웹진 글들을 홍보하는 가이드라인도 손볼 필요가 있겠고요. 웹진이 티스토리 기반이다 보니 검색어를 따라 조회수가 높아지고 시끄러울 때가 있잖아요. 요즘에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팎에도 이슈가 여기저기 터지고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얼마 전까지 성소수자 운동이 커뮤니티까지 장마 전선이 형성된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공기층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부딪혀서 계속 비가 내리는 상황이랄까? SNS 목소리와 활동의 온도가 다르기도 하고요. 이 분위기가 새로운 커뮤니티 환경을 앞둔 과도기인지, 이게 우리의 미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과정이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 같아요. 웹진팀의 언어도 더 세련돼져야 할거고요. 이런 게 잘 이야기가 되고 공론장의 환경이 형성된다면 웹진이 정말 무지개처럼 아름답겠지요.
길벗: 웹진팀 활동하며 썼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면?
웅: 그때그때 다른데, 지금 기억에 많이 남는 글은 게이들의 여성혐오 언어 문화 관련 글이 되었네요. 여러 반응을 보면서 제 딴에는 제기한 다른 논의 지점들이 많았는데 특정 문장에만 집중이 되고 공격받는 상황이 조금 놀라웠어요. 글 쓸 때를 회고하면, 저와 무관하지 않은 현안인 만큼 자기 비판적인 글로 방향을 잡았거든요. 비판도 있을 거고, 온도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도 그런 이견들을 이끌어내고 이야기를 본궤도에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위를 넘어선 비판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대응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이런 비판이 논의를 통한 반성이나 이해나 논의를 넓힐 수 있는 발판 같은 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공론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논쟁을 위한 논쟁 같은 느낌이 들었죠. 내부적으로는 고민을 갖는 회원들이랑 얘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그들이 논쟁이 발생한 이후 글들을 남기며 궤적을 지금까지 이어오기도 했고요. 올해에는 특히 비판 수위가 심했던 것 같아요. 제 글은 하나의 좌표였죠. 게이의 여성혐오 논쟁에 이어 TERF까지 이어진 것 같은데요. SNS에서 논쟁의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밀물썰물이 사정없이 뺨을 치고 미끄러져나간 느낌이에요.
행성인에서는 웹진팀 내부에서 고민을 나누기도 했죠. 그때 저는 나름의 발제도 준비했네요. 이런 사안이 발생할 때 단체는 어떻게 입장을 정해야 할까를 단체 안에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마침 저는 안식월을 맞아서 직접적인 대응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었지만요.
오소리: 그 동안 편집장님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지… (웃음)
웅: 계속 이렇게 얘기하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느낌도 드네요. (웃음) 여튼 게이커뮤니티가 하위문화 안에서 만들고 유통했던 젠더표현이나 언어들이 성소수자가 가시화되는 시점에 다른 담론들에 부딪히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언어 안에서 여성혐오나 다른 차별적인 표현들에 대해 논쟁과 반성의 과정이 있어야 되는 것도 그렇고요. 저렇게 말하는 이들은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저는 과정 속에서 행성인이 리듬을 지키면 좋겠어요. SNS에서는 사안마다 가속이 붙어서 시간이 필요한 논쟁들이 금방 소모되고 잊혀지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같은 트랙을 돌면서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문제로 남겨두기보다 계속 곱씹으면서 다른 서사들을 모으고 부딪혀보면서 언어들을 만들면 좋겠더라고요.
단체 안팎에서 논쟁을 많이 나누는 과정에 언어가 더 풍부해진 것은 좋은 현상 같아요. 언어를 만드는 작업은 너무나 고통스런 투쟁이지만, 그게 손에 안 잡히는 문제를 파악하고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행성인이 논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되면 좋겠어요. 웹진팀이 그 역할을 기동력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정신승리보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논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겠죠. 웹진 팀에서도 그런 판을 계속 만들면 좋을 것 같고요. 이미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요. 제가 남 얘기처럼 말하죠? (웃음)
오소리: 괜찮아요. 웹진팀에 계속 남아 계실 거니까. (웃음)
조나단: 저는 웅이 펠릭스곤잘레스토레스 국내 전시 앞두고 쓴 글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웅: 처음엔 그런 글을 주로 썼네요. 그런데 상임 활동을 시작하면서 성명서 쓰고 현안에 대한 글을 써야 하니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거에요. 저는 비평을 할 때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편이거든요. 거리 조절도 해가면서 그런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적인 여유가 정말 없더라고요. 그래서 비평을 써도 내가 원하는 문장이 안 나와서 ‘이게 뭐지’ 싶고요. 활동 글과 비평이 연결이 되는 지점이 있기도 하지만 다른 성격의 글들이다 보니 문장의 호흡이나 단어나 언어의 온도가 달라지는 느낌인데, 저는 서로 절충해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평문도 그렇지만 성명서도 제가 쓴 건 다른 활동가들이 쓴 거랑은 문장이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제 스타일을 찾아가는가 싶어요.
회원 밀착형 소통 가능한 활동을 지향하며
회원들과 밀착한 웅. 사진은 2016 대구 퀴어문화축제 때.
길벗: 2014년도부터는 행성인에서 상임활동을 하고 있는데, 처음 상임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웅: 우리가 상임 활동 체제를 시작한 게 2011년 때부터였는데, 그때는 1명 (병권) 이었죠. 상임 활동은 행정이나 사무 업무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1명을 더 충원해야 한다는 게 단체의 과업이라 15주년 지나고 1명(오리) 더 충원이 되었죠. 그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정욜이나 이경 같은 반듯한 선배활동가(웃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인 것 같았는데, 오리는 그보다는 친구이자 동료 같은 느낌의 활동가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리가 상임 활동을 그만한다고 할 때, 제가 자원했어요. 당시 에이즈인권팀 활동에 집중하던 때라 활동을 본업에 가깝게 했었죠. 한편으론 회원들이랑 더 접면을 가지고 만나고 싶기도 했어요. 활동에 대한 애착도 많을 때였고요. 회원 조직이나 회원들과 관계를 깊게 가지는 역할을 하며 단체 내 소통에 도움이 되고자 했죠. 그때 얘기했어. 내가 적임자라고. (웃음)
길벗: 상임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웅: 책임감이 확실히 달라지죠. 직업으로 갖는 거잖아요. 나의 본업이 되는 거니까. 시간 배분 자체도 활동이 우선 되고, 내가 하는 활동 외에도 다른 활동까지 관심을 갖게 되고. 감각이 그렇게 변하는 것 같아요. 계속 사무실에 있으면서 활동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뇌가 다시 재편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일 중요한 감각상의 변화는 상임활동가가 되니까 예전에는 주말에 단체에 놀러 왔다면 지금은 그게 일이 되는 느낌? 주말에 활동이 많으니 주말이 없어졌죠. 근데 저는 상임활동가 뽕(?)이 오래간 편이라 그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소리: 예전에 병권과 덕현 인터뷰 했을 때 나온 질문인데, 상근 활동자가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웅: 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거 같아요. 단체의 상황에 따라서도 다를 거고요. 행성인의 경우에는 일단 노동시간에 맞춰 임금을 주기에 적합한 거 같지는 않아요. 저녁에 일정이 없는 날이 별로 없잖아요. 행사는 주말마다 있고. 그래도 단체에서는 활동가의 노동을 중요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게 책임을 위탁하는 거고 단체 운영에 쏟는 그 사람의 시간이나 노고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단체 차원에서 활동가의 복지나 활동가의 시간을 제공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요. 그런데 활동가 입장에서는 노동자로서 의식 말고도 활동가라는 사명감도 있어야 하죠. 저는 활동에 대한 에너지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걸 쉽게 얘기하긴 어렵네요.
그런데 단체에서 또 고민해야 되는 건 상임활동가가 아닌 회원들 중에서도 활동에 투신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에요. 행성인은 회원들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말이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회원들의 활동을 단순히 하고 싶어서 하는 활동이라고만 얘기하면 안될 거 같아요. 나름의 책임과 사명을 갖고 활동을 가져가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단체의 보상도 필요한 거 같아. 그게 금전의 문제든, 경력과 노고를 인정하는 것이든 말이죠. 그 부분은 단체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고요. 아무튼 활동가로서 노동을 한다는 건 이거다 얘기할 수 있는 문제 같지는 않아요. 상임활동가에게 노동이랑 활동은 당연히 교차하고, 그 풍경은 한눈에 잡히지는 않는 거 같아요. 그걸 노동이다 활동이다 나눠놓고 한쪽이 옳다고 하는 건 더 문제겠지만요.
길벗: 상임활동가로서의 삶은 만족스럽나요?
웅: 완전히 만족스러울 리가. 오소리는 어때요?
오소리: 저는 만족하는데. (웃음)
웅: 백년 하세요. (웃음) 만족을 찾으려면 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먼저 운동의 견적이 잡혀야 돼. 저는 사건이 여기저기 터지면 일단 한발 물러서는 편이거든요. 정신줄을 잡아야 활동에 대한 만족도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족을 하려고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외부에 페이스를 뺏기면 안되잖아. 활동하면서 자기 포지션을 정해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 시간도 많이 잡아먹게 되니까 자기 시간을 확보해야 되고요.
오소리: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는 뭐에요?
웅: 이렇게 활동가로 사는 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좋은 게 분명 있죠. 최저임금 겨우 받는데, 이 일은 내가 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거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기획하고, 현안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창구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이게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인가 가끔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웃음) 그런 면에서는 다른 직업보다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주말이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평일이 주말 같을 때도 많아요. 평일에 외근 나가면 우연찮게 자기 시간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단체에서도 활동가들의 쉼이나 개인시간 확보에 대해서는 존중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오소리: 어떻게 개인 시간을 확보해요?
웅: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는 일부러 땡땡이 치기도 하고요. (웃음) 단체 업무 자체가 양적으로 일주일을 온전히 다 쓸 정도로 많지는 않아요. 회의가 많고 일정이 많아서 그렇지요. 저는 반상근 하면서 단체 업무는 조금씩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라 제 시간을 조금 더 확보 하기 쉬운 것도 있어요. 일주일에 한번씩 ‘저 무슨 요일에 쉴게요’ 라고 말하는 거 자체로 숨이 트여요.
길벗: 단체에서 상임활동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웅: 제일 기본적인 건 단체 운영을 전담하는 거죠. 회원 관리, 회원들과의 소통, 사무실 및 단체 운영이라든가 그런 실무적인 것들이요. 회원들과 연락하고 소통하는 게 친목도 있지만 조직 차원에서도 중요한 거거든요. 행성인 가입할 때 제일 먼저 전화해서 목소리 들려주는 사람도 상임활동가에요. 단체 활동 기획을 할 때, 평소 관심사를 잘 알아야 회원이 하고 싶은 활동에 잘 매칭 될 수 있고 단체는 단단해지는 거니까요. 그 외에는 전화 업무, 상담도 하고 기자회견이나 집회 가서 발언도 많이 하고 외부 인터뷰도 하고요. 사업 계획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사업 조력을 하게 되죠. 단체에 방문하는 손님도 맞이 해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상임활동가는 단체의 얼굴이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활동가들에게 자기 공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상임 활동가 성격에 따라 단체 성격까지는 아니어도 얼굴이 달라지는 것 같거든요. 꼭 단체 업무를 전담한다는 역할을 떠나서 상임활동가는 자기 분야의 활동을 가질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활동에 대한 비전이나 성격을 의식해야 될 거고요, 다른 활동가들과 합을 맞춰가는 것에 있어서 자기가 어떤 사람들인지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오소리: 상임 활동을 하면서 상임 활동가들이나 다른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합은 잘 맞는다고 생각하나요?
웅: 자기가 그걸 묻다니. 오소리는 어때요? (웃음)
오소리: 웅의 생각이 궁금해서… (웃음)
웅: 제가 다른 단체 상임활동가들한테 가끔 물어봐요. 잘 맞냐고. 잘 맞는다고 대답한 단체는 아직까지 없었어요. (웃음) 요즘 고민이기도 해요. 이렇게 소통 안돼도 되나? 실무적 합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구조가 없는 단체는 아니니까. 활동에 대한 고민을 나누지 못하는 게 고민이죠. 스타일이 달라서 갈등을 피하려고 일부러 말을 안 하기도 하는 거 같아요.
사무국 활동가들이랑 얘기 나누면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요. 당신의 행성인 활동 파트너는 누가 있냐고. 답을 듣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활동파트너는 이상적인 개념인 거 같아요. 친밀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활동까지 밀접하게 가져가는 동료를 갖고 있는 활동가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건 커뮤니티나 사적인 관계 안에서도 많이 없을 걸요.
근데 생각해보면 웃겨요. 활동파트너가 없다고 말하고 동료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럼 이 얘기를 같이 나누는 당신은 나에게 뭐냐? 이렇게 물으면 제가 답을 못하거든요. 이건 동료 아니냐? 저는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소통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스타일이 안 맞고 완전한 소통이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긴장이나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 같아요.
얘기하고 보니 소통이나 합을 맞추는 과정이 상임활동가 사이의 문제만은 아닌 거 같네요. 인생전반의 문제야 이건. (웃음) 근데 이런 건 고려하면 좋겠다 싶어요. 제가 생각하기로 활동은 과정이에요. 특히 성소수자운동에서 성과만 보고 운동을 하게 되면 좌절의 순간이 너무 많아요. 과정을 남기고 평가랑 추후 기획을 잘 세워야 되요. 너무 교과서 같은 말인데 이걸 까먹을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순서를 잘 잡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죠.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단체가 커지니까 예전처럼 소통이 잘 되기가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소통이 없으면 다른 활동을 넘겨짚기 쉽고, 그러다 보면 오해와 갈등을 만들기도 해요. 담당자는 저기 있는데 친한 사람들이랑만 활동이야기를 하기가 쉽고요. 단체가 커질수록 소통의 구조를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소통할 것인 지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요. 단체뿐 아니라 연대활동을 할 때도 소통의 태도나 구조 자체도 많이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자애로운 운영위원장으로서
웅과 호림이 행성인 공동 운영위원장으로 인준된 2015년 행성인 정기총회.
길벗: 2015년도부터 현재까지 호림과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 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웅: 행성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이경, 욜, 병권이 다른 단체로 날개를 달고 활동의 범주를 넓혀 행성인 담벼락을 뛰어넘어간 시점이 있어요. 2014년 즈음인데요. 당시 운영위원 워크샵에서 행성인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공동 운영위원장 체제 이야기가 나왔어요.
앞에 얘기했던 활동가들은 행성인을 다지고 서로 역량을 키워왔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다른 분야의 인권운동보다는 년수가 짧잖아요. 사회운동에 이름을 올린 역사도 길지 않고요. 활동가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오래 활동한 활동가들은 많다고 할 수 없어요. 특히 한 단체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활동가들은 더 그렇고요. 이분들이 행성인 너머 활동을 가져가는 건 여러모로 행성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줘요. 저마다 관심을 두던 분야들에 전문적인 활동을 가져가고, 그 속에서 성소수자 의제를 확장시키는 거잖아요. 행성인도 힘 받고, 이분들에게 힘을 줘야 하는 거고요. 서로 쌍끌이 하면서 성장시킨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단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방향을 갖고 활동을 확장해가는 게 필요했고요.
오소리: 호림이랑 궁합은 잘 맞았어요?
웅: 호림이랑 저는 활동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역할 분담이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에이즈 팀에서 3년 정도 같이 활동 하면서 합도 맞췄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았어요.
호림은 똑부러지게 결정을 잘해요. 현실 감각이 좋은 친구에요. 기대는 부분이 적지 않죠. 논의 할 때 이야기가 깔끔하게 되는 것도 좋고요. 저 같은 경우는 관계 지향의 조력자 역할을 많이 했네요. 한동안 저는 단체의 자애로움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요. 다 호시절이야. (웃음) 단체의 언어를 만들고 활동의 뼈대를 단단히 하고 살을 붙이는 건 제가 잘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성명서나 논평도 제가 제일 많이 쓸걸요? (웃음)
길벗: 3년 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부담이 되진 않나요? 운영위원장으로서의 고충이 있다면?
웅: 부담이나 고충은 없어요. 물론 이건 상대적인 대답이죠. 반대로 모든 순간이 고충이고 부담이기도 해요. 지금은 3년 정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죠. 예전에는 괜히 신경 썼던 것들이 있어요. 단체 얼굴이 되었는데 옷 입는 것부터 언어 사용하는 것까지 신경을 많이 썼죠. 지금 생각하면 기분 내려는 핑계였던 거 같네요. 요즘은 그렇지도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대표를 하면서 상임활동도 하잖아요. 힘든 것 보다는 위치를 잘 잡아야겠다 싶은 게, 상임활동이랑 운영위원장의 포지셔닝이 섞일 때가 있어요. 나는 뭘까.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나는 고용주인가 노동자인가 하는 내면의 갈등이 있었죠. 상임운영위원장 제도가 없는 단체에서는 당연한 고민이었죠.
길벗: 올해 하반기에는 호림이 개인 사정상 해외로 가면서 혼자 운영위원장 역할을 맡게 됐는데요. 무엇이 달라질 것 같나요?
웅: 제가 호림한테 의지한 부분이 있다고 했잖아요. 호림이 본인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을 하는 역할이었어요. 물론 공동의 의사를 전달하기 전에 따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거기서 크고 작은 논쟁이나 뒷얘기들을 나누기도 하고요.
저는 결단에 앞서 결단에 살을 붙이는 역할에 가까운데 호림이 간 뒤 제 역할을 어떻게 변경해야 하나 싶었죠. 그래서 그런가? 요즘에는 많이 단호해진걸 느껴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제가 결단해야 하는 상황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목소리에 힘을 싣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엔 논쟁과정이 길어지더라도 공개석상에서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려고 하게 되더라고요.
길벗: 행성인 20주년에 운영위원장을 맡아 반년이 흘렀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남은 임기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웅: 저는 20주년까지 운영위원장을 맡을 줄은 몰랐어요. 작년까지만 하고 잘 내려놓자는 게 계획이었는데 말이죠. 생각 안 했던 건 아닌데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못했던 거죠. 20주년 마무리를 잘 해야죠. 행성인 20주년은 단지 단체의 20주년만은 아니니까요. 단지 양적으로 늘어난 시간만이 아니잖아요.
행성인 20주년은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이랑 같이 간다고 얘기해요. 행성인의 비전과 미션을 이야기하는 건 성소수자 운동이랑도 무관하지 않고요. 로드맵과 비전을 그리는 거 말고도 그 비전을 실현할 단체의 구조를 잘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게 요즘 성소수자 단체들이 갖는 공통의 과제인 거 같아요. 성소수자 운동의 차원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달라졌잖아요. 운동 환경도 많이 달라졌고요. 특히 촛불을 시점으로 예전과 다른 규모로 회원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살펴보면 성소수자 이슈가 터지고 행성인이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낼 때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최근엔 뉴스 보고 왔다, 깃발 보고 왔다는 가입 동기가 많아졌어요.
회원들이 누가 들어오느냐 회원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팀의 균형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단체 안에서 조직 개편을 계속 이야기 하려고 해요. 저는 이럴 때일수록 소통이 잘되면 좋겠어요. 단체의 새로운 상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보니 활동가들이 서로 다른 단체상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걸 뒤늦게 확인하면 괜히 당황하게 되고요. 왜 내가 네 생각을 이제 알게 된 거지? 우리 그 동안 무슨 얘길 나눴던 거지? 하는 자괴감도 생겨요.
그래서 드는 생각은 성소수자 운동이나 행성인이나 규모가 커지고 의제가 많아지는 만큼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구심력도 커져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리더십도 중요해지는 것 같고요. 활동을 오래 한 회원들만큼이나 단체를 고민할 수 있는 운동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필요해요. 중추가 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고 소통도 잘 되어야 하고요. 교육이 일상화 되어야겠지만, 교육은 제일 기본적인 활동이고, 활동의 경험을 같이 쌓아가면서 언어를 맞추고 기획을 세우고 같이 책임을 분담하는 과정이 중요하겠죠.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에요. 말이 쉽죠? (웃음)
미학과 인권운동의 접점을 찾아서
웅의 욕심으로 탄생한 작가/디자이너들이 제작해 준 행성인 20주년 이미지 (좌) 이우성 (우) 전나환
길벗: 학교 다닐 때는 미학 공부를 한 것으로 아는데, 전공이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미친 영향이 있나요?
웅: 학부는 예술학이었어요.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는데, 저는 다른 것보다도 예술작품 자체에 대해서 분석하기보다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식을 만들어간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작가의 감각과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공론장에서 의미 부여되고 작가의 감각이 세계가 얘기하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지.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었네요.
미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연구하기보다도 현장에서 배움을 갖고 싶었던 거 같아요. 대상이나 세계가 어떻게 재현되는지, 어떻게 의미 부여되면서 그려지는지 대상의 위상까지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활동을 하면서도 제 공부와 관심사를 쥐고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분과로 나눠서 말한다면 제 전공이 활동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성소수자 운동문화나 언어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게 만들어주는 거 같아요. 전공과 직접적으로 상관 없는 직종을 갖게 됐지만, 그럼에도 인권 자체에 대해서 공부를 집중하기보다 관심 있는 분야와 제 공부를 접목 시켜 나갔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사회에 설명되고 그려질 때, 그렇게 재현이 된 사람의 감각은 어떻게 재편이 되는지, 어떻게 체제에 저항하는지를 보게 돼요. 대개 시선이 가는 쪽은 사회에서도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이었고요.
대학원 학위논문을 탈고할 즈음에 봉인해제 하는 기분으로 ‘에이즈가 동성애자에게 어떻게 재현되는가’에 대한 에세이를 한편 썼어요. 저는 글을 쓰면서 준비해온 과정들이나 모아온 자료들이 성소수자 역사와 역사의 기록을 훑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후 에이즈팀 활동에 밀착해서 갈 수 있던 계기나 자원이 됐던 것 같아요.
길벗: 미학이 활동과 연관되는 지점들이 있는데 (육우당 문학상, 전시 주최, 웹진에 전시 비평 기고)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은 없는지?
웅: 행성인 방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문화관련 사업들이 활동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점은 있어요. 육우당 문학상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텍스트들을 만들어냈다는 직접적인 성과 말고도 문학상을 통해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나왔다거나, 심사위원으로 섭외하면서 활동인맥의 풀이 넓어지는 효과도 있거든요. 김비님 같은 경우는 웹진에 장편소설도 실어주시고, 트랜스세미나에 초청해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잖아요. 행성인 활동 차원에서도 문화사업은 다른 활동들이랑 호흡이 다른 사업이기도 해요. 많이는 아니어도 꾸준히 하면서 활동의 다양한 리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요즘 하고 싶은 건 커뮤니티 디자이너, 작가들 얘기를 듣고 싶어요. 젊은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나 본업으로 예술을 하기는 힘들잖아요. 일시적인 연대와 협업을 갖지만 근본적으로는 각자도생하면서 공간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하거나 외주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 활동이랑 접면을 가질 기회가 생겨요. 특히 순수예술이랑 디자인의 경계를 나누기가 구차해진 지금 환경에서는 더 넓게 접촉하고 섞이게 되는 거 같아요. 무엇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 작가들이나 디자이너들이 많고, 협업도 수시로 시도하면서 각자 프로젝트들도 진행하잖아요.
저는 그건 활동의 언어가 달라지고 있다는 징후로 읽혀지기도 해요. 성소수자 운동은 대중을 만나야 하잖아요. 운동권문화의 적폐를 바꿔야죠. (웃음) 한편에서는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더라고요. 작가로서 말이죠. 운동언어랑은 다른 문법을 가질 거에요. 성소수자 운동도 항상 운동권의 프레임에 갇혀있진 않으니까요.
오소리: 디자이너나 작가들과의 연대나 협업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나요?
웅: 아까 말한 Zap for PL이 있겠지만...지금은 이제 간보면서 걸음을 겨우 떼는 거 같아요. 이번에 우리가 20주년 사업을 진행하면서 제가 욕심을 낸 부분이 있는데, 커뮤니티와 접면을 대고 있는 디자이너나 작가들이랑 협업을 하는 거였어요. 아직 서로의 언어에 서투르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들이랑 손잡고 할 수 있는 활동들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꼭 디자인이나 예술의 분야가 아니더라도 하위문화의 언어로 뭔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웹진팀에서 열었던 ‘시원한 불금’ 기획이 그렇게 진행됐고요. 행성인 활동과는 거리가 있지만, 최근 들어 재밌게 준비했던 사업이었어요.
저는 이런 접점이 많아지고 운동 언어가 다양해지는 환경이 단체에 소모임이 많아지는 거랑도 연결되는 거 같아요. 단체가 커뮤니티 성격을 갖고 친목과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회원들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행성인의 미션과 비전에 대한 집중력은 흐릿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재미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지만, 저는 이런 가벼운 프로그램들을 통해 인권의 언어가 좀 더 다양하게 분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웹진팀은 단체 내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는 플랫폼이죠. 웹진팀에 거는 기대가 있어요. (웃음) 기존 팀 차원에서도 사회운동과 커뮤니티 사이의를 연결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해볼 수 있죠. 목소리를 바꿔가면서 우리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어요.
질문이랑 상관없이 딴 얘기를 많이 했네요. 지금 막연하게 생각해보고 있는 건 단체들이랑 연이 있는 디자인그룹이나 작가들이 있잖아요. 모셔서 작업들을 나눠보는 워크숍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많이 하잖아요, 감각 있는 활동가들이 자기 품으로 제작하는데, 사실 이것도 감각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보니 제작자의 부담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프로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나 있고요, 다른 분야의 활동문법을 나누면 행성인 활동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데도 참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이렇게 접점이 만들어지기도 할 거고요.
길벗: 웅의 전공인 미학 말고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분야나 학문이 있나요?
웅: 지금은 외국어를 배우고 싶네요. 청산유수처럼 외국어를 뱉고 싶다. 대학원에서 나온 이후로 원서를 자세히 읽은 적이 없어요. 외국어를 사용하려면 그 언어의 구조로 사고해야 하니까 시야가 달라지잖아요. 활동의 폭도 넓어질 거고요.
또 하나 있다면 포토샵 같은 거? 정말 할 사람 없을 때 웹자보 같은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번 만들었는데, 기술적으로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기술적인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주먹구구로 살았던 거 같고요.
정말 개인적인 욕구가 있다면 술을 빚어보고 싶네요. 회원 중에 자기가 빚은 술을 선물해서 애인을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움의 욕구가 솟은 적이 있어.
인간 남웅
언제 어디서나 찰나의 순간에도 사진 촬영 시 포즈의 긴장을 놓치 않는 웅. 사진은 2016 아이다호 공동행동 때.
오소리: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까 해요. 회원들과 자주 독대를 한다고 알고 있어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원들과 어떤 관계를 갖기를 원하시나요?
웅: 개인적 질문이군요. 근데 첫 질문이 일대일 만남이야? (웃음) 보통 술자리는 회의 끝나고 뒤풀이 자리가 대부분이에요. 재밌긴 한데 지치죠. 술 먹으면서 못다한 활동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느 때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단체 동료 말고도 친분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최종적으로 둘이 얼마나 분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활동이랑 상관없이 사람들과 일대일로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아요. 이건 제가 동인련 들어왔을 때부터 가졌던 천성인가 봐요. 일대일은 해도 술번개는 부담스러웠어요. 못버려.. (웃음) 회의를 둘이 하는 경우는 없으니 따로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둘이 술 마실 기회가 많이 없더라고요. 적어도 내가 4년 가까이 일한 단체라면 술친구 두어명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하는 게 제 신조이자 활동 버킷리스트가 됐어요.
저는 단체에서 관계를 되도록 사무적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괴롭기도 한데. (웃음) 적어도 불편한 사람은 없으면 좋겠어요. 저는 너무너무 사적인 인간이라 불편하면 티 나게 냉정해지거든요. 저는 그러면 사무적인 이야기만 건조하게 나눠요. 간혹 소통 안 되는 활동가들이 있기도 해요. 친해지고 싶은데 그쪽이 원하지 않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고요. 그럴 땐 어쩔 수 없죠.
오소리: 그럴 땐 어떻게 해요?
웅: 저는 그분들한테 활동 이야기를 막 던져요. 고민과 불만과 감사 같은 표현들을 가감 없이 전달하죠. 대신 뒤끝 없이 정리를 확실히 해야 하겠지만요. 그게 더 편하고 논의가 잘 될 때도 많더라고요. 주말도 잡아먹는 활동이라면, 업무를 일처럼 느끼고 싶진 않아요. 이건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조나단: 처음에 행성인에 활동보다는 거기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요. 웅에게 사람과 관계란? 특히 행성인 사람들과의 관계와 활동 사이의 거리가 궁금해요.
웅: 사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더니 웹진팀이 이렇게 질문을 던지네요. (웃음) 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크다 생각하고 답을 드리면요, 사적인 관계, 활동을 통한 관계는 확실히 나눠지지 않더라고요. 활동하면서 갈등을 겪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뒤풀이 같은 거 하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이 활동까지 오게 됐는지 얘기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친해지는 것도 친밀함을 만들잖아요. 제가 사적인 생활을 더 찾고 싶어하고 활동 외에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더라도 결국 활동 얘기 안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활동이 저한테는 체화 된 것 같아요. 어디 가겠어요? 활동을 통해서 관계를 만들어갈 때 이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고 활동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 좀 더 즐겁게 활동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하면서 들어요. 자기 생활이 투영되지 않은 활동은 업무처럼 되는데 금방 지치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활동을 하면서 한쪽에는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게 중요하고, 활동과 어떻게 엮어가는지를 아는 과정이 중요한 거 같아요.
조나단: 오래 활동하는 회원도 많지만 떠나가는 회원도 많은데, 그런 회원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웅: 단체가 커지면서 회전문처럼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가는 이유는 다 있거든요. 일이 바빠서, 단체에 대한 서운함이나, 단체가 부족한 지점이 있을 때 피드백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단체운동은 서로 자발적으로 모여 하는 활동이다 보니 개인활동이랑은 차이가 있잖아요.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보다 단체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게 중요하죠. 구성원에 따라서 연령대,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이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도 소외감이 있을 거고요. 그런 경우에 우리 단체가 완전히 갈등을 해소하기는 어려워도 어떻게 완충과 예방을 할 수 있을까 할까 고민해요. 예전에 김모리 활동가가 인터뷰하면서 얘기했던 부분이랑 상통하는 지점인 거 같네요.
회원들 중에 몇몇 분들은 ‘왜 회원들을 못 챙기냐’ 말씀하기도 해요. 틀린 얘기가 아니지만, 단체활동가들은 자기들 건강도 잘 못 챙기고 있잖아요. 꼭 그게 아니라도 단체에서 사람들 챙기는 지점들에는 한계가 있어요. 물론 활동을 밀어주고 연결시켜주는 것들은 못하지 않아요. 그게 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단체 안에 문제가 발생해서 해결을 요구할 때, 문제의 당사자로서 회원을 챙기는 조건은 더 취약해지는 거 같아요. 사건이 무거울수록 신중하게 접근하게 되는데, 그만큼 더 멀어질 소지가 크고. 결국 원망이나 불만으로 단체를 향하게 되는 과정이 악순환 되기 쉬워요. 그래서 단체 차원에서 구조나 장치들이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평등한 약속’도 만들어서 행사 때마다 복기하고 낭독하잖아요. 물론 명문화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회원들이 그걸 읽고 좀더 의식적으로 활동 참여에 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거 같거든요.
조나단: 떠나가는 회원들을 보며 공허해지지는 않는지?
웅: 공허함 같은 건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 느낄 틈이 없네요. 떠나가는 회원이 아니어도 느껴지는 기분이지만 그건 너무 근본적인 얘기가 될 거 같네요. 공허함보다도 외로운 느낌은 항상 있어요. 일단 제 또래의 활동가들이 없더라고요. 동갑의 활동가들은 거의 없고, 쭉 내려가거나 쭉 올라가거나. 그 중에서는 오래 활동했던 사람은 더 찾기가 어렵고요. 그런데 내 또래가 있고 오래 활동한 사람이 많으면 외로움이 없을까? 이건 모르겠어요. 또래가 없다는 건 핑계 같네요. 외로움은 그냥 팔자소관인가 봐요.
그래도 또래 얘기랑 오랜 회원들 얘기를 해서 말인데, 단체에서 오래된 회원들 챙기면서 청년회(30대 이상 회원 소모임)도 만들고, 역할 같은 것도 제안을 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회원관리 매뉴얼이나 시스템도 디테일 해질 필요가 있겠죠. 연령에 따른 회원 관리나 모임도 더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 같고요.
길벗: 웅에게 가장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이끌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웅: 하하. 별걸 다 물어봐! 정말 사적인 얘기 하고 싶어지네요. 이런걸 물어본 건 아니겠죠? 그게 궁금하면 녹음기 대신 술을 따라주셨겠죠.
활동이랑 사적 관계가 겹치는 경우라면 몇 가지 기준이 있어요.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잘 물어봐요. 매력적인 사람들은 많잖아요. 특히 행성인 회원이나 단체활동에 오는 사람들은 매력점수가 더 붙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다가 행성인에 오게 됐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궁금한걸 물어보는데, 대개는 자기 이야기를 잘 들려주시죠. 그런데 답하는 사람들 중에는 얘기를 나누다가 질문에 대한 답에서 끝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생소하더라고요. 특히 저에 대해 물어 올 때가 있죠. 활동이나 사건에 대한 입장과 생각들 말고요. (웃음)
전 상호피드백이 중요한 사람인가봐요.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질문에 나에 대한 관심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근데 그 관심의 감각이 남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죠. 이 사람은 나를 궁금해하는구나 싶으면 전 가벼운 관계로 두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겨요. 아무튼,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그 다음부턴 합을 맞춰가는 게 중요하겠네요.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잖아. 속궁합도 그렇고 서로의 리듬도 맞춰봐야죠. 저는 활동얘기를 하고 있어요. (웃음) 이렇게 얘기했지만, 사실 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사람 관계는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자유한국당 아니면 정치색도 안 본다고 했지만, 아... 이건 활동 얘기에요. (웃음)
오소리: 네, 활동 얘기 잘 들었습니다. (웃음) 취미는 뭐에요? 쉴 때 어떤 것을 하며 노나요?
웅: 시간 나면 스마트폰 보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아요. 취미라기보다 페이스북 타임라인 훑고 인스타그램 보고 다른 링크로 연결되어 찾아보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가요. 그런데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더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일부러 책을 읽는 다거나 전시를 본다거나 해요. 말로는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얘기 하는데,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아무것도 안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요즘은 자기 전에 ASMR 을 들어요. 근데 ASMR은 들을 수만 없겠더라고요. 보면서 듣죠. 유투브에서는 잘자라고 ASMR방송들을 하는데 보다 보면 오던 잠도 깨요. 제가 애정하는 채널들이 있죠. 요즘에는 글 쓰면서 듣네요. 의외로 집중이 잘되더라고요. 그런 취미가 있고요.
예전에는 웹진팀에 글 쓰는 것도 취미였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것도 내가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이 된 것 같아요.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찾는 편이에요. 혼술도 많이 해요. 뒤풀이 때 먹는 술은 이 사람과 얘기를 더 편하게 하기 위한 도구 같은 느낌인데, 혼자 술 마시면서 안주해먹고 술자리를 혼자 연출하는 거 좋아해요. 남들 떠는 청승 궁상은 다 떨어보는 편이에요.
길벗: 술을 마실 때 따지는 게 많다고 들었는데, 술을 마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웅: 저를 프로알콜릭으로 만드는 질문이군요. 그래도 답해드린다면, 혼술 할 때는 좋은 술을 찾아 먹으려고 해요. 다른데 쓸 돈을 주지육림으로 흘려 보내요. 술 맛 자체에 집중을 하려고 하고, 시간 자체가 내 것이라는 걸 음미하려는 거 같아요. 사람들과 술 마실 때는 술 안주가 중요하죠. 술집의 분위기도 중요하고요.
예전에 행성인 사무실 근처에 ‘팔공산 먹걸리’ 집이 있었어요. 우리 단골집이었는데요, 거기 사장님 남매분들이 우리가 성소수자라는 걸 아셨거든요. 어련했겠어요.
근데 하루는 화장실에 아이샵 포스터 붙어있는 거에요. 반갑더라고요. 동질감도 생기고. 그래서 나중에 우리 정체를 알려드리면서 브로셔랑 기념품을 드리기도 했죠. 지금은 이사갔다는데, 낙원동으로 갔다고 해요. 그 이후로 연락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거기 사장오빠님이 살짝 이준기랑 모델 배상돈을 살짝 닮았는데, 아련하네요.
아무튼 민속주점은 단체에서 뒤풀이 하기 좋은 분위기인 거 같아요. 뒤풀이 할 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무래도 친근하더라고요. 거기 이사간 뒤로는 맨날 처갓집 통닭집만 가요. 근데 얘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기왕 딴 얘기 하는 김에 하나만 더 말씀드릴게요. 회원 여러분, 사무실에서 뒤풀이하고 나서 정리 잘하고 분리수거 잘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행성인 텃밭은 우리가 만든 공간이고 우리가 함께 쓰는 공간입니다. (엄근진)
조나단: 요즘 웅을 웃게 하는 것은?
웅: 저는 본디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서, 아무리 유머코드가 달라도 조금이나마 웃음포인트가 있으면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즐거움의 선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재미가 없어도 재미 거리를 찾아서 다니는 것 같고요. 활동하다 보면 민감해지는 상황이 많이 생겨요. 신경질적으로 되기 쉬우니까 빡빡하지 않고 여유 있는 활동을 위해서 힘든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편이에요.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걸 스트레스로만 남기고 싶지 않더라고요. 힘든건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걸 다른 식으로 상대에게 스트레스 주고싶지는 않고요. 요즘에는 텔레그램에서 음슴체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네요.
웃음의 선을 유지하면서도 반응을 유도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때 유난히 반응이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랑 좀 친해지는 것 같고 관계도 좀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합을 맞추는 거 같고요.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런 상황들에 애착을 갖는 거 같고 그런 사람들을 찾는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대답하고나니 저는 요즘 저를 웃게 하는 게 없어 제가 일부러 웃고 다니는 거 같네요. 사실 웃겠다는 것도 스트레스에요. 그런데 같은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미간 찌푸리느니 웃고 스트레스 받는 게 피부미용에 좋겠더라고요. 어쩔 수 없어요 그건. (웃음)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행성인’
19대 대선 직전 마지막 촛불집회 무대에서 행성인 운영위원장으로서 발언하고 있는 웅
오소리: 행성인(구 동인련)에 처음 갔던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본인의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웅: 예전에는 받기를 갈구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제 발로 행성인 갔다기보다 초대를 받아서 갔다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 제안을 했던 활동만 참여를 했지,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의지나 의식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 건가? 제가 떠들고 접근을 해야 하는 위치고, 제가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제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은 것 같아요. 요즘에는 어지간하면 제가 먼저 말 붙이고 표현을 하네요. 그 자리에서 제 의견을 내는 편이에요. 말이 안 되는 말이라도 어떻게든 정리하고 늦게라도 전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논의가 좀더 진전이 되더라고요. 그 사람 의견도 확인할 수 있고요. 부딪힘이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갈등이 있을 때 갈등으로만 끝내면 그게 봉합하기 어려운 여운을 남기잖아요. 어떻게든 합의지점을 찾아내고 거기서 우리가 더 얘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남겨둬야 한다는 걸 가늠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런 잔기술도 생긴 거 같아요.
길벗: 만약 과거, 행성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웅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나요?
웅: 모르겠다. 뭐하고 있었을까요? 대표나 상임활동을 안 했더라도 행성인이랑 연은 있었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제가 뭐를 하고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 같은데, 이것저것 하다가 다 때려 치고 술이나 빚고 있지 않았을까요? 낮에는 술을 빚고 밤에는 글을 쓰고. 반댄가? 그러다 답답하면 행성인이나 친구사이를 나갔을 것 같고요.
오소리: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웅: 지금으로선 행성인이 제일 고민이죠. 어떻게 구조를 잡아야 할까, 운영 쪽에서도 그렇고 변화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니 고민이 돼요. 단체에서는 상임활동가를 늘리려고 해요. 그만큼 구심 있게 활동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인력을 확보하는 거겠죠. 9월에 첫 출근을 하시는데, 사무실에 자리가 세 개밖에 없다 보니 한 명은 자리를 비워야 돼요. 아무래도 제가 주4일 출근을 하게 되니 당분간은 교육장을 제 업무장소로 써야겠죠. 상임활동가들이 자기 자리를 갖고 활동업무를 볼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마련하는 게 단체 과제에요. 여러분의 후원을 앙망합니다.
내년 운영위원장에 대해서는 고민이 커요. 그건 행성인 뿐 아니라 제 거취까지도 생각해야 되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막연하게 행성인 활동 마무리하고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를 해야 할까 고민이 들어요. 특정 직종에 몸을 담았던 건 아니니까 활동이 꼭 경력이 되지는 않잖아요. 생각해보니까 행성인은 저에게 안정적인 둥지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방패이기도 했죠. 제 자신감의 동력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행성인을 나간다면 어떨까. 그림이 안 그려져요. 단체에 안 나오면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이런저런 플랜들을 세우고 시뮬레이팅하고 있죠.
제가 행성인에서 운영위원장을 더 역임할 수도 있지만, 저는 지금 일단 주어졌던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행성인 과도기에 안정을 도모하자는 게 호림과 저의 다짐이었는데 (웃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체평가하고 내려오려니 걱정이 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저 없이도 단체는 잘 돌아가겠지만, 지금의 행성인에서 구심 활동가 하나가 빠지는 게 단체에는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 같거든요.
미련이 많아요 제가. 그래서 헤어진 남자들도 못 잊고... 는 아니고요. (웃음) 저는 단체랑 밀당한다고 표현했어요. 서로가 확신이 없는 상황이잖아요. 근데 그게 다른 활동가들한테는 혼란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 결정은 보류해둔 상황이에요. 누가 결단하고 끝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활동가들한테 생각들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비슷한 걱정에 다른 바람과 그림들을 갖고 있더라고요. 빨리 얘기를 나눠야겠더라고요. 저는 같이 단체 구조를 계획하면서 저나 단체의 판단도 설 거라고 생각해요.
오소리: 웅에게 ‘활동’ 이란?
웅: 저는 활동을 넓게 잡고 이해해요. 나의 권리를 요구하고 직접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도 활동일 수 있는데, 활동가라는 표현보다도 저의 내적 자아는 그걸 ‘플레이어’라고 부르거든요. 제 표현은 아니고, 지도교수기도 했던 양효실 선생님 표현인데요. 자기가 뭔가 하고 싶고 어떤 식으로 기여하고 싶다, 목소리 내고 싶어서 행동 하는 것도 활동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건 차후에 지속적으로 계속 고민 해야 하는 지점일 테지만요.
그래도 단체에서 활동한다는 감각이나 경험들은 중요한 것 같아요.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그 전까지의 과정이나 거기서 갈등하고 절충하고 협의하고 협력하는 과정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단체에서 활동할 때처럼, 감각이나 경험들을 같이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행성인 같은 단체는 사람들의 스피커가 될 수 있고 비빌 언덕이나 그루터기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거든요. 물론 그걸 기대하기보다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행성인은 논쟁할 수 있는 싸움판이나 채널, 울타리이자 플랫폼일 수도 있고요.
단체에서 활동하는 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과 다른 점은 단체기 때문에 또 가질 수 있는 이런 저런 상상력이 있고, 혼자 못했던 것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약하면 활동에 대해서 넓게 정의 내리지만 단체에서 하는 활동에 더 많은 사람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 정도 되겠네요.
오소리: ‘행성인은 이런 단체다.’ 라고 한다면?
웅: 제가 그리는 행성인이라면 성소수자 운동 최전선에 있는 집단이라는 거? 웃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요, 제일 급진적으로 책임감 있게 인권운동의 선봉에 서서 활동을 가져가는 단체라는 것. 그 과정에서 다른 사회단체나 사회운동들이랑 연대를 제일 열심히 하고 있고, 그런 자부심은 일부러 가져요.
그런데 행성인은 공동체고 커뮤니티다, 라고 말할때 조금 망설임은 있어요. 넓은 의미에서는 맞는 것 같은데, 과연 지금 행성인이 단체라는 커뮤니티로서 이름에 묶이는 것 말고 어떤 방향성을 가질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거든요. 특히 요즘은요. 행성인은 커뮤니티면서도 단체에 묶이잖아요. 그럼 우리는 단체 활동방향을 같이 고민하고 있을까? 공동체로서 인권단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죠. 그런 고민을 계속 가져가는 단체 커뮤니티라고 하면 되려나? 고민을 나누고 활동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단체면 좋겠어요.
길벗: 웅에게 행성인이란?
웅: 질문 안 끝났어요? (웃음) 그래도 굳이 답한다면 제 밥줄이죠. (웃음) 일차적으로는 그렇죠. 상임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는 나의 비빌 언덕 그루터기 이런 생각은 안 했고, 만만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정도라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또 하나 생각나는 건... 행성인은 십 년 넘은 ‘썸’이다. 저의 인생 직장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행성인에 와서 경험을 하고 같이해온 시간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던 시간들이 켜켜이 지층처럼 쌓인 관계죠. 하지만 썸도 정리 할 때는 해야죠. 너무 오래했어. 그래도 잊지는 못할 거 같아요. 내일 그만두는 사람처럼 얘기하네요.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할게요.
오소리: 마지막 한 마디 부탁 드려요.
웅: 여러분, 행동하는 성소수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행성인과 바꾸는 세상을 같이 상상해보면 좋겠어요. 행성인 20주년이잖아요. 20주년 응원 파티에도 많이 와주시고, 많은 후원 부탁드려요. 정말 두서없이 아무말대잔치를 끝낸 느낌이네요. 속기하고 편집하느라 고생하실 텐데, 웹진팀의 건승을 바라 마지 않습니다. 힘드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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