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받은 사람: 더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언니네트워크)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지오,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조나단: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더지: 더지이고요.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고, 평생을 통틀어 평범한 직장을 다닌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 지금 그런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오묘하게도 여가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웃음) 흥미로운 사업을 맡아서 의외로 재미있어요. 배울 점도 있고요. 또 행성인 회원이고 아직은 시스젠더라고 생각하는 레즈비언이며 애인과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무지개 집(망원동에 자리잡은 성소수자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어요. 시스젠더 부분에 대한 고민은 요즘 Terf 같은 논쟁이 있을 때 ‘어떻게 자신이 여성이라는 걸 확신하지?’ 라고 반문하기는 하지만, 저도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서 확신하며 살고있지 않은가에 대한 거에요. 나를 시스젠더로 소개할 때 마다 그런 부분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조나단: 더지라는 닉네임을 쓰고 계신데,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더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두더지와 닮아서. 성을 떼고 더지라고 불리고 있어요. 이게 21살 때 붙여진 별명이자 이제는 이름 같은 거에요. 대학 생활할 때도 더지, 운동할 때도 더지라고 불려서, 제 본명이 오히려 더 어색해요. 정현희라는 본명을 부르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요. 그냥 괜찮은 것 같고 좋다 싶어서 계속 쓰고 있어요. 대학교 1~2학년 때는 어떤 사람은 ‘더지’, 어떤 사람은 ‘현희’ 라고 하다가 여성주의 모임 활동을 활발히 시작한 뒤, 그곳에서는 닉네임을 많이 쓰니까 그때부터 더지가 이름이 된 거죠. 

 

 

조나단: 본인의 성정체성은 언제 깨달으셨어요?

더지: 저는 정체성을 깨달았다기 보다, 제 자신이 여자랑 사귀려고 되게 기대하면서 살아온 사람 같았어요. 학교 여성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동성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동성애가 뭐가 문제냐’고 생각을 해왔는데요.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아는 언니에게 커밍아웃을 받아 보았는데, 솔직히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응을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걸 계기로 내 주변에 정말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멋있고 진짜로 저렇게 살수 있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되고(웃음)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2008년에 언니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는데, 레즈비언 활동가들이 많더라고요. 그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언니네트워크가 페미니즘 단체로 굉장히 알려져 있어서 활동하고 싶어서 갔는데, 활동하는 레즈비언, 바이섹슈얼들을 많이 만나며 그 삶이 재미있어 보이고 그 사이에 끼고 싶기도 하고 매력적 여자들이 워낙 많으니 나도 저런 여성분과 빨리 사귀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호시탐탐 촉을 세우고 있었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레즈비언으로 살아야지’ 했던 거죠.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더지

 

조나단: 언니네트워크에 활동하게 된 계기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세요.

더지: 2008년에 대학을 느즈막히 졸업하고 여성학 대학원 지원을 했어요. 제 삶을 완전히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버린 거에요. 여성학 공부를 하고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기 위해 언니네트워크를 찾고요. 그당시 언니네트워크에서는 ‘비혼 여성 축제’를 기획하고 있었는데요. 그 기획단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고, 더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Action Now’ 팀에 들어가게 되었죠. 언니네트워크는 그때 상근자가 두 명 이었고 팀이 3개 있었는데, 다 비상근활동가였어요. 다들 조나단님처럼 직장 생활하다가 저녁에 회의하고, 대단한 열정이죠. 그러다 2010년 가을쯤 상근을 하기 시작했고, 2년 정도 상근 활동을 하다가 그만두고 석사 논문 쓰고 졸업을 했죠.

 

논문은 ‘동성애자의 정체성 드러내기와 정보관리행동연구-커밍아웃과 아웃팅의 이분법을 넘어’로 썼어요. 그 논문을 쓰던 당시에 학교에 큐이즈라는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어서, 31살 때 그 동아리에 갔어요. 가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영감을 얻은 거죠. 학교 내에서 성소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피부로 느끼면서요. 예를 들어 안전과 아우팅 문제 때문에 동아리방 앞에 명패는 달지 않지만, 어느 정도 동아리 방을 드나드는 긴장을 무릅쓰고 또 그 안에서는 그렇게 퀴어하고 자유로울 수 없죠. 그런 방식으로 공간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어요. 단체활동을 하고 여성학과에 있을 때는 커밍아웃 조차 필요 없는 사람하고만 지내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동아리에 있으면서 영감을 얻어 그 논문을 쓴 거죠. 졸업 후 성소수자 운동도 하고 싶어서 3~5년간 활동할 곳을 찾고 있으니 좋은 단체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알렸어요.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SOGI) 법정책연구회에서 3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조나단: 그럼 여성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관심 갖게 되셨어요?

더지: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와서 에요. 소위 운동권 학생회를 했는데, 세미나를 많이 하니까요. 그런데 많은 세미나 중 페미니즘에 꽂힌 이유는, 아마도 대학 오기 전까지의 삶을 강력하게 다시 보도록 하는 게 페미니즘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설명하지 못했지만 불쾌했던 일들 말이죠. 고등학생 때, 대학생 남자 선배가 오면 예쁜 여자 후배들이 그 옆에 앉아야 되었던 것들 같은 것이 다시 생각이 나는 거죠. 사회에서 여자가 배치되는 방식 같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됐던 게 페미니즘이었죠. 그래서 빠져들게 된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사학을 전공해서 한국의 신여성에 관련한 논문(김수진, 2005, 1920~30년대 신여성담론과 상징의 구성)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런 게 공부구나, 진짜 멋있다’ 싶었어요. 그 논문과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운동으로서 뿐만 아니라, 연구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대학에 여성학 과정이 있어서 쉽게 선택을 할 수 있었죠. 없었으면 되게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조나단: 아까 언니 네트워크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는데, 웹사이트 ‘언니네’에서 시작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언니네트워크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더지: 언니네트워크는 ‘여성주의문화운동단체’라고 소개를 합니다. 입법운동 영역이 아니라 생활이나 일상의 문제를 바꾸자는 의미에서의 ‘문화’에 주목하면서 2004년에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언니네’라는 사이트를 바탕으로 모여 그 사이트를 운영하고, 거기서 모인 사람들이 상호 작용을 하면서 더 목소리를 내고 싶고 똘똘 뭉친 액션을 하고 싶어서 단체 설립까지 된 것 같아요. 성소수자 단체이나 퀴어 쪽에서는 문화 운동이 일반적인, 당연한 운동 방식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해요. 퀴어문화축제 처럼 인식, 분위기를 문화로써 바꾸는 것들이 성소수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페미니즘 운동 역사 속에서, 물론 평등을 위한 제도를 바꾸는 게 전부였던 것만은 아닌데, 90년대 말 당시에는 80년대부터 여성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군가산점이나 호주제 폐지 같은 제도화 성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잖아요. 그것과 분리되는 측면들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여성주의문화운동단체라고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는데, 앞으로는 여기에 조금 더 색깔을 부여해도 되지 않나 싶어요. 예를들어 ‘퀴어페미니스트 문화운동단체’ 이렇게 할 수도 있고요.

 

 

언니네트워크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언니네트워크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클릭)

 

 

 

조나단: 지금 그러면, 언니네트워크는 어떻게 구성되어있어요?

더지: 타 단체에서는 운영위원회로 불리는 ‘운영지기’가 3명 있고요. 또 상근활동을 하는 ‘사무지기’가 1명 있어요. 예전에 팀이 있었던 시기에는 전체 활동가가 2~30명 정도 됐죠. 저도 그 시기에 활동을 했다가, 2015년에 다시 와서 활동을 하고 있는 건데, 언니네트워크의 활동조직은 그 때와 규모 면에서도 그렇고 많이 다르기는 해요. 중간에 팀이 없어지기도 했고요. 페미니즘이 주목 받지 못하고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려고 모이는 사람도 발견하기 쉽지 않고, 가시적인 풀이 없었던 시기를 거쳐왔죠. 언니네라는 공간도 나이가 들어가기도 했고요. 30대에 들어와서 마흔이 되는 분들도 있었고요. 가시적으로 활동하는 그룹이 있더라도 접속이 잘 안되기도 했어요. 문화라는 게 그렇기도 한 것 같아요. 접속이라는 것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거요. 예나 지금이나 회원 수는 꾸준히 300명 정도인데, 충성도가 되게 높은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단체가 어렵게 버티던 시기를 지나서 이렇게 페미니즘이 리부트 되는 시점을 만나니 새로운 기획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도 팀은 없어요. 팀을 다시 만들고 싶기도 해요. 지금 하고 있는 사업들인 '펢' 같은 경우는 그때그때 기획단을 모집해서 운영하고, 책방 '꼴'은 서점운영위원회 같은 '꼴키퍼'라고 이름을 붙인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팀처럼 운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나단: 언니네트워크에 있으면서 했던 활동 중에 가장 인상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더지: 저는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웃음)
 

조나단: 가장 인상적인 것이 어렵다면 아까 말해주셨던 2008년의 액션 나우 활동도 괜찮고, 사소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라도 괜찮아요. 뒤에 질문이 더 있으니 '꼴'이나 '펢'은 빼고요.

더지: 아.. 기억에 남는 것.. 멋있는 활동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웃음) 정말 제게 좋았던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춤췄던 것이 제일 인상 깊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거든요. 매년 언니네에서는 ‘페미니즘 캠프’를 가요. 2004~2009년까지 6회 진행하고 쉬었다가 회원 MT 처럼 규모가 작아지긴 했어도 요즘 다시 가는데요. 여름에 캠프에 가면 2박3일 동안 프로그램 짜서 노는데, 그런데 가면 장기자랑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럼 춤추며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는데요. 그런 것들이요. (웃음)

 

지오: 굳이 춤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어요? (웃음)

더지: 사람들이 좋아해서? (웃음) 저도 좋고요. 
 

나단: 저는 전에 그 캠프의 메뉴 구성이 아예 채식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굉장히 인상 깊게 들었어요. 행성인도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 메뉴 구성을 하지만, 그건 메인 메뉴는 아니거든요. 따로 준비를 할 뿐인 거죠. 고기를 아예 안 굽는다고 들었어요.

더지: 전에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따로 사전 조사를 하기도 했었어요. MT에서도 고기를 막 구웠던 시기도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서 채식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버섯도 굽고 새우도 굽는 식이었죠. 그런데 구우면서도 고민이 생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고기를 굽지 않는 걸로 하자고 원칙처럼 정한 건 아닌데, 그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언니네트워크에 비건 페미니즘 소모임이 있어요. 전에 총회에서, 뒤풀이 할 때 채식 식단이 있는 식당에 가서 하자고 소모임에서 제안을 했거든요. 그래서 채식 중국집으로 뒤풀이를 갔어요. 그런 제안과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된 것 같아요.

 

또 하나 얘기하자면, 요즘에는 안하고 있지만 연말마다 해왔던 ‘꼬매고 싶은 입’ 시상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유명인 정치인들 중에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후보로 올려서 투표를 통해 왕중왕을 뽑는 행사죠. 재미있었어요. 온라인에서 이벤트처럼 해왔는데, 2009년인가 언니네 국제연대팀에서 한국여성재단 지원을 받아서 각 국의 영페미니스트들과 네트워크를 갖는 사업을 했는데요. 대만, 필리핀도 가고 마지막 3차년도 때, 서울로 불러서 행사를 했어요. 외국 영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을 초정해서 포럼도 하고,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도 진행했는데, 이때 ‘꼬매고 싶은 입’ 후보를 글로벌하게 선정했어요. 대통령, 정치인 등. 그래서 그 후보들 얼굴이 프린트된 가면을 쓰고 희화화 하며 시상하는 행사를 하고, 그 내용을 알리는 구호도 만들어 홍대에서 길거리 시위도 한 거죠. 피켓을 들고 ‘꼬매고 싶은 입’ 마스크도 쓰고요. 그런 경험이 기억에 남아요.

 

조나단: 그럼, 요즘에 하는 활동으로 질문을 넘어가볼게요. 퀴어 페미니즘 매거진 <펢>을 발간하고 계시잖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더지: 제가 2010년에 언니네트워크 상근을 시작해서 2012년에 상근 활동을 그만두면서 단체를 그만두었는데요. 제가 다시 들어오기 전에 언니네트워크에 남아있던, 난새님이랑 나기님이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언니네에서 웹진을 운영해온 경험과 그 컨텐츠를 토대로 <언니네 방>이라는 책을 내거나 출간사업을 해왔던 경험들을 살려보자고 해서 잡지를 기획한 거죠. 언니네트워크가 여성주의적 비평 활동을 많이 해왔잖아요. 그 시대에 고민할만한 페미니즘 문제들을 글쓰기를 통해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2013년에 언니네를 닫으면서 온라인보다는 손에 잡히는 독자들을 만나고 물질적으로 직접 전달되는 매체를 만들어보자고 결의가 된 것 같아요. 만들었는데 너무 괜찮게 나오는 거에요. 재미있게 만들고 있어요. 

 

 

펢을 즐겁게 읽었고 펢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만나보고 싶다면, 펢 독자와 만나는 펢미팅을 신청해보시라. (클릭하면 신청링크로 이동)

 

 

조나단: 올해 언니네트워크에서 퀴어 페미니스트 책방 ‘꼴’도 오픈 했잖아요. 어떤 계기로 오픈하게 되었는지와 서점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더지: 책도 안 팔리고 서점도 잘 안 되는 시대에, 이런 것만 골라서 시작하는 재주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웃음) 그래도 최근에 페미니즘 책방으로 복합문화공간 두잉도 생기고 신림 쪽에도 페미니즘 책방이 생기기도 했어요. 언니네트워크가 그 동안 주택, 방 2개짜리 주택을 사무실로 써왔는데, 그런 공간이 회의하기 힘들기도 하고, 회원들도 사무실을 잘 안 찾게 되더라고요. 모임도 밖에서 하게 되고요. 그래서 ‘회원들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과방 같은 공간을 만들자’ 는 취지에서 생각을 하다가 서점이 그런 방식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2년 전부터 조금씩 기획하며 만들고 있었는데, 저는 진짜 만들어질 줄은 몰랐어요. 책, 영화 같은 문화 컨텐츠에 관심을 가진 회원들이 꽤 있고 또 작고 큰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회원들도 많아요. ‘펢’도 마찬가지였지만, 서점 기획에도 열정있는 회원들이 기여하고 헌신을 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17년 11월 25일에 오픈을 했습니다.
 

책방 '꼴' 전경

 

 

조나단: 11월 25일이 언니네에서 의미 있는 날짜에요?

더지: 11월 27일이 언니네 창립일이에요. 보통 11월 셋째주 토요일에 생일 축하를 하는데 그거 겸 오픈을 하자고 해서 한 거죠. 보통 어떤 사업 지원을 받아서 그 비용으로 사업을 진행해온 경험이 언니네트워크에 되게 많아요. CMS로 모인 운영비에서 상근비와 임대료가 나가고 나면 사업을 할 비용이 없는데, 외부 지원금 없이 서점을 오픈한 건 되게 대단하고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지원을 받아서 했으면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꼴’이 사무실이고 회의실이자 서점이에요. 여기서 회원들이 회의도 하고 모임도 갖고 책도 사죠. 출판사 등록을 했고, 도서와 잡화 판매(굿즈) 등록을 했어요. 외부 대관은 하지 않고 회원들이 속해있는 모임들이 와서 모임 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죠. 서점 운영은 ‘꼴키퍼’라는 이름으로 회원들의 자원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언니네트워크에 ‘같이 읽는 책’이라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 모여서 책을 읽는 모임이 있는데요.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서로 책을 소개하는 그런 모임이 있다 보니까 꼴을 준비하고 세팅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주셨어요. '꼴'은 평일 오후 3시에서 9시까지 열어요. 주말은 안하고요. 수익이 많이 나면 좋지만 수익을 바라고 가다 보면 단체의 리듬이 깨질 수도 있잖아요. 하나밖에 없는 상근자를 쓰러지게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책을 한 두 권 더 판매한다고 해서, 굉장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안되면 닫고 되면 여는 식으로 편하게 시작을 하고 있어요. 상근자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커버를 하되, 저녁은 꼴키퍼들이 서점을 돌보는 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나올 때 도저히 빈손으로 나올 수 없을만큼 매력적인 책이 가득하다

 

 

조나단: 책방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더지: 현재 어려운 점이자 앞으로도 어려울 점인데 수익이 나기 어렵다는 거에요. (웃음) 그래도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저희 지향은 ‘공간 자체’에 있어요. 책방이 너무 예쁘거든요. 그 곳을 돌보려고 하는 회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앉아서 책 읽고, 카드 결제도 해주고 손님들도 챙기고요.

 

조나단: ‘꼴’이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에게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요? 혹은 책방을 열며 가지게 된 포부나 목표가 있나요?

더지: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와보시면 새로울 거에요. 서교 미래사랑 주민들이 왔다갔다하는 입구 옆에 서점이 위치해 있는데요.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안이 다 보이는데, 잘 보이는 위치에 무지개와 손피켓이 디스플레이 되어있어요. 페미니스트 뭐 이런 이름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요. 그런 것을 보면 우리 되게 용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간혹, 괜히 들어와서 ‘여기 뭐 하는데냐’ 물어보는 식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심각한 문제는 없어요. 다 보이는 보통의 공간에 사람들이 그냥 앉아있으면서 책도 읽고 자기 할 것 하고 회의도 하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행성인 회원, 더지

 

조나단: 행성인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함께하게 되었나요?

더지: 제가 이번에 회원편지를 쓰지 않았겠어요? 행성인에 언제 가입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오소리가 상근을 하고 있던 때라는 건 기억나요. 행성인에 가입이라기 보다 후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되게 컸죠. 큰돈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다른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SOGI법정책연구회 활동가로 무지개행동에 참여하면서 집행위원 활동을 2년 간 했어요. 그러면서 다른 단체 활동가들을 알게 되었는데요. 얼굴을 맞대며 활동하다 보니 활동가들이 정말 멋진 거에요. 저는 단체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관심이 많은데요. 행성인이나 친구사이는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고, 또 물어보면서, 후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후원해서 가장 편리한 점은 뉴스레터를 받아보면서 그 단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받아보니 ‘행성인은 무슨 컨텐츠가 이렇게 많냐, 진짜 하는 게 많다!’ 싶더라고요.  친구사이에서는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에 여성 객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다른 단체에 들어가 보는 게 재미 있어요. 그 단체를 더 알 수 있게 되고요. 행성인도 속에 들어가서 보고 싶더라고요. 아이다호나 인권포럼 기획단에 행성인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행성인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반짝거릴까?' 싶었거든요.

조나단: 웹진팀은 어때요? (웃음)

더지: 됐고요. (웃음) 농담이에요. 여러 팀 중에 노동권팀 궁금해요. 들어가보고 싶다~ 노동권팀 궁금하다~

 

조나단: 더지님에게 행성인은 어떤 단체인가요?

더지: 행성인은 정말 희한한 단체다. 희한~해. 너무 희한해요. 진~짜 운동권 같은데 진~짜 넓고 다양하고, 굉장히 선명한 것 같으면서도 다양한 초점들이 있는, 그런 희한함. 풀뿌리 같으면서도 전위적인 그런 다양함이 있어요. 물론 그런 다양함 때문에 갈등도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게 좋아 보여요. 그래서 행성인을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시에 행성인의 회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미래가 밝다 싶어요. 회원들도 점점 늘어나고요.  

 

운동이 꼭 단체 형태로만 되는 건 아니지만 저는 회원 단체의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지금 온라인을 통해서 벌어지는 운동 같은 것들도 있는데,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파급력도 있지만, 그런 게 지속성을 가지려면 저는 단체 형태로 모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도 스스로 갱신이 되려면 모여서 배우기도 하고 서로 평가도 하는 게 참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단체의 운동이 중요하다고 봐요. 성소수자 바닥에 단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일정한 정체성에 기반한, 예를 들어, 게이는 친구사이, 레즈비언은 레즈비언상담소 이런 형태의 단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회원으로 모이는 단체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나단: 얼마전 행성인의 강연에서 회원들이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약속'을 읽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점에서 그러셨나요?

더지: 앞서 말한, 다양한 배경에서 이런 걸 만들었을 것이라는 그런 배경을 떠올리게 되었거든요. 그 과정이 마냥 밝고 그렇지 않았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의 노력이 보여서 감명받은 게 있어요. 또하나는 언니네트워크에서도 캠프 같은 사업을 할 때, 수칙 같은 것을 만들어요. ‘호칭을 언니라고 합시다. 나이를 묻지 맙시다. 존칭을 쓰고 반말할 때 서로 물어보고 합시다. 장애를 비하하는 언어를 쓰지 말고, 겨털을 깍지 않거나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지 맙시다’ 이런 우리의 가치를 담은 수칙이 있는데요. 어느 순간 스스로도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잊고 살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기본적인데 되게 중요한 것들이요. 사람들은 이런 수칙을 만들고 선언하는 게 구태의연하고 촌스럽다고 여길 수 있지만 저한테는 너무 신선하고 의미있게 보였어요. 기본을 확인하고, 심지어 그걸 다같이 읽는다는 게.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위한 약속

 

 

 

조나단: 다른 행성인의 활동 중 좋았던 것이 있나요? 혹은 앞으로 행성인과 이런 것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라는 점이 있나요?

더지: 전에 몸짓패를 하려고 했었죠.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행성인 안에서 활동해 보고 싶은 마음 50%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 50% 이었는데요. 꾸준히 나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아쉽게 그 기회는 접었고요.

 

그것 말고는 행성인의 페미니스트들과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회원들이 섞여서 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요. 여러분들도 우리를 좋아할 거에요. (웃음) 아니면 전에 잠깐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펢’이 주요 활동인데, ‘펢’에서 특별호를 내었듯, 아예 기획 자체를 같이 해보는 콜라보 형식의 잡지를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겠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그런 거죠. (웃음)

 

조나단: 저희도 좋을 것 같아요. 행성인 웹진은 웹을 기반으로 하지만, 퀴퍼 때는 호외로 오프라인 지면을 내거든요. 그럴 때 같이 해봐도 좋을 것 같고요.

더지: 그렇네요. 언니네트워크가 친구사이와 아시아 성소수자 합창제 ‘Hand in Hand’를 서울에서 주최했었는데요. 그런 식으로 다른 단체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경험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미 알게 모르게 많이 함께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행성인의 여성모임이나 흥산회 같은 곳에 언니네트워크 회원들도 갔다와서 ‘그런 곳은 이렇게 하고 있더라’ 얘기해보기도 하고요. 서로 친구도 사귀고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또 행성인에 비건 모임인 ‘바삭’이 있잖아요. 언니네의 비건 페미니스트 모임인 ‘아삭’을 오마주 했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작용이 있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조나단: 책읽기 모임도 있으니 서로 책읽기 모임에서 콜라보 활동을 해도 좋겠어요. ‘꼴’에서 책 사서 언니네 책모임과 함께 책 읽고 리뷰해보는 활동이요.

더지: 그런 것도 너무 좋죠. 회원들끼리 친하면 자연스럽게 교류가 되고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사업적으로도 같이 해서 그런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죠. 근데 눈치 채셨어요? 매거진과 서점을 합치면 '꼴펢'인 것?

모두: 아아~

더지: ‘책방 이름 뭘로 짓지?’ 할 때, 농담 삼아 ‘꼴펢’? 했던 게 이름이 되었죠. 그런데 잘 모르더라고요.

조나단: 뭔가 퀴어란 단어가 자리잡아오거나 슬럿워크 같은 느낌이에요.


 

퀴어 페미니즘


 

조나단: 더지님에게 퀴어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요? 이건 제 개인적인 질문과도 연결되는데, 한때 저는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열심히 스터디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때 미국의 친구에게 왜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공부하냐 요즘 미국은 퀴어 페미니즘이나 혹은 성소수자 이론이 대세인데,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언니네가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이야기 했던 시기도 있으니, 지금 퀴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요.

더지: 이 질문이 되게 재미있는 게,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퀴어 페미니즘이, 뭐가 뭐를 넘어서는 그런 시선이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요. 물론 언니네트워크 경우에도 지금의 퀴어 페미니즘에 도달하기까지 레즈비언 페미니즘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언니네트워크에서도 2009년 이럴 때, ‘레페파티’도 했었고, 스스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고도 이야기 했었어요. 한국이나 외국에서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라는 것이 사실은 여성 간의 차이, 여성 운동 내에서 여성운동이 이성애 중심적이라는 문제의식과 레즈비언으로서의 여성은 더 여러가지 억압에 직면한다는 데에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둥지는 여성운동이죠. 여성이라는 성별 정치학 속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차이를 가지고 운동을 하는 게 레즈비언 페미니즘 이었던 것 같아요.

 

퀴어 페미니즘은 ‘아 우리는 퀴어 페미니즘을 이제 선택할래’ 라고 알고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에요. 언니네트워크에서는 퀴퍼 때 트럭과 부스를 하면서, 성소수자들과 접촉면이 넓어졌는데요. 페미니스트 운동의 일부로 참여를 했는데 여러 성소수자들과 접촉이 있다 보니, 여성이라는 성별 정치학 뿐 아니라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HIV/AIDS 같은 경우 질병, 장애여성 이런 여러 지점들이 다 교차되어 들어오면서 ‘아 레즈비언 페미니즘으로는 뭔가 닿지 않는 것이 있겠다'는 감이 생겨온 것 같아요. 그 고민을 가지고 오다가 ‘펢’도 만들고 했던거죠. ‘펢’을 만들면서 ‘퀴어 페미니스트 매거진 펢’으로 가자고 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퀴어 페미니즘’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했어요. 일단 이 고민을 가지고 가다 보면 무언가 나올 것이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이나 그냥 페미니즘, 또는 다른 페미니즘에서 보이지 않았던 다른 관점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라고 믿고 갔던 거죠. 2016년 펢 1호가 L 커뮤니티 이었던 것은 너무 당연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조금 다른 얘기를 할 수 있기를 꿈꿨죠. 그런 혼란 속에서 ‘펢’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물론 퀴어페미니즘을 정의하거나 지향하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설명은 있죠. 펢 특별호 중간 중간에도 잠들지 않는 문장들이란 제목으로 한 여덟 분 정도의 글귀가 있어요. 그런 문제의식과 고민의 과정들이 퀴어페미니즘인 것 같아요.

 

 

펨 특별호 8p.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페미니즘 하니까 퀴어 페미니즘이지 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성소수자가 페미니즘 한다고 다 퀴어 페미니즘인 것은 아니죠. 그런데 또 생각하면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없이는 퀴어 페미니즘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성소수자 내부인으로서 페미니즘을 사유하는 사람들 없이, 아무나에 의해 만들어진 관점은 아니라는 생각도 분명히 있어요. 성소수자 운동을 하고,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페미니스트 궤적은 퀴어 페미니즘의 중요한 역사적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나단: 사실 이런 공적 담론들의 존재 의미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느냐 보다 그 시점에서 사회에 어떻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더 큰 방점이 찍혀있다고도 생각되는데요. 퀴어 페미니즘이 이 사회에서 지금 어떤 영향이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더지: 큰틀에서는 가부장제가 전혀 변화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 속에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대항 철학이나 문화도 발전을 해나가고요. 퀴어페미니즘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페미니즘을 유효한 인식론으로 확장하고 움직여나가는 흐름에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 관료제, 제도화, 시장화 흐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 믿음에 가깝죠. 페미니스트도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하고 다른 운동과 사유와 연결되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페미니즘을 괴상한 도구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있어요.

 

대학 때부터 여성주의 활동을 해왔다고 했잖아요. 성폭력, 성 정치, 여성 억압이 제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어요. 여성억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간의 차이 - 어떤 여성이냐의 문제-를 회피하고 나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라는 틀이 ‘젠더’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도록 하는 장치인데,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단일한 여성 범주를 상정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그 방향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한 규칙과 질서 안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이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모색하는 것이 퀴어페미니즘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조나단: 최근 ‘여자만 안고 가겠다’, ‘트랜스젠더는 여성이 아니다’ 이야기처럼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우려할 상황들이 꽤 있었을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 하실 코멘트나 혹은 예상하는 앞으로의 전망 같은 게 있나요?

더지: ‘여성주의’라는 말을 이런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가지고 헤게모니 싸움이 강화된 것 같아요. 이 사회가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갖는 관심이 정말 요만큼이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트랜스젠더’를 삶과 존재가 아니라 여성 범주를 이야기하기 위한 경계 전쟁의 분쟁선으로만 다루는 것이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에서 ‘성소수자는 인권의 문제고 여성은 성평등의 문제’라는 관계자의 말이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성평등은 인권의 영역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두 영역이 분리될 수 있나요? 성평등 없이 인권이 성취될 수 없듯 말이에요. 성평등과 인권은 하나이고, 다만 인권을 어떻게 실현해나갈지에 따라 현장, 이론, 네트워크와 정치적 프레이밍이 달라지는 것이죠. 여성운동이든, 빈민운동이든, 성소수자 운동이든, 인종차별반대 운동이든 간에 인권운동은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가가 관건이지 그것이 애초에 섞여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어떻게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차별금지법 제정의 정당성은 누구도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때문이죠. 누군가를 배제해도 된다는 논의 자체가 차별금지법의 기초에 반하는 일이죠. 마찬가지로 성평등은 성별, 섹슈얼리티라는 구조적 억압에서 파생된 현실들을 개선해야할 무거운 책임을 가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빼고 간다, 누구는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시선 자체가 성평등의 기초에 반한다고 생각해요.

 

조나단: 여전히 퀴어 페미니즘이 낯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글이나 책이 있나요?

더지: 퀴어 페미니즘이건 페미니즘이건 다 낯설고 어렵다는 말부터 나와요. 저도 인정… 그런데 이 불만을 들여다보면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법학은 어렵다고 뭐라 하지 않는데 여성학은 어렵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거에요.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낯설고 어렵다’고 불만이 있어요. 영어는 어렵지 않나요? 어렵다 욕하면서도 돈들여 공부하잖아요. 영어를 잘 못하면 기가 죽기도 하잖아요. 페미니즘은 왜 다른 걸까요. 어려우니 너희들이 쉽게 설명해내라. 이게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저는 당연히 ‘펢’이요. 그리고 ‘페미니즘의 도전’도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페미니즘 입문서’라고 표현하는데 정희진 선생님의 관점 자체가 퀴어페미니즘과도 맞닿아있어요. ‘나는 페미니즘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생각하는 분들에게  펢과 ‘페미니즘의 도전’을 번갈아 다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퀴어페미니즘으로 정희진 읽기’ 이런 세미나도 재미있겠어요.  

 


그리고, 더지라는 한 사람

 

조나단: 저희가 영광스럽게 초대를 받아서 무지개하우스에 왔는데, 무지개 하우스에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어요? 이런 삶에 로망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더지: 저는 언니네트워크 활동을 할 때부터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에 연대활동을 했었어요. 거기 안에 친구사이 사무국장 기즈베 님이랑 한가람 변호사가 있었죠.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에 오면 언젠가 한가람 님이 계속 무지개집을 만드는 프로젝트 얘기를 했었어요. 그 때는 집을 만드는데 법적 문제, 지어놓고 보니 공간이 좁은 것, 배수 문제 같이 여러 어려운 점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깔깔  대고 웃고 그랬는데요. ‘잘됐으면 좋겠는데 집 짓는 게 저렇게 힘들구나’ 그렇게 외부인의 시선으로 봤었어요. 그런데 여기 들어오기로 한 분이 못 들어오게 되면서 입주자 분들이 ‘그럼 누구를 들어오게 할까?’ 하다가 저랑 저 애인에게 제안을 하게 된 거죠. 저희도 그때 집을 알아보던 차라, '집이나 한 번 보자' 하고 봤는데 진짜 너무 좁은 거에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어렵겠다고 했죠. 그럼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다 노래방까지 간 거에요. 너~~~~무 재미있는 거죠. 모든 걸 다 놓고 놀았고, 그런 매력이 있어요. 사람들이. 사람들이 너무 좋은 거에요. 집은 그냥 그런데 매일의 삶이 이렇게 재미있고 좋으면 뭐, 살아 볼만 하겠다는 이런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함께 하게 되었죠. (웃음)

 

 

무지개집 전경 (출처: 친구사이 소식지, 무지개집 함께주택협동조합 제공)

 

 

언니네에서 비혼 운동 하면서,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언니들을 만나거나 할 때, 같이 사는 게 쉽지 않더라도 되게 잘 살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는데요. 부럽기도 했지만, 저는 공동체에서는 못살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공동체로 행복을 누리려면, 저도 그만큼 공동체에 기여를 해야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그런 부담을 너무 크게 느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만족도가 너무 높아요. 제가 만족도가 제일 높은 거 같아요. 집도 이제 큰 불만 없어요. 작긴 작지만, 안전하고 문을 열어놓아도 괜찮고, 저희 집 고양이를 풀어놔도 괜찮고요. 저희가 여행갈 때 저희 고양이를 사람들이 돌봐주기도 하고요. 그런 소소한 것부터, 사람이 항상 타인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는 게 더 좋은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타인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때 없으면 외로워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집 사람들도 항상 공동체를 지향한다기 보다, 살다가 필요한 순간에 여기가 되게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느낌? 회사 갔다 와서 피곤한데 여기서 누가 술을 마시고 있으면 그냥 가방 내려놓고 껴서 술을 마시는데, 너무 행복해요. 같이 김장도 하고요. 너무 좋죠. 

 

조나단:  몸짓패에는 잠시 오셨지만, 큐캔디 활동을 하기도 하시고 춤을 매우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살짝 들은 적이 있는데요. 춤을 추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더지님에게 춤이란 무엇인가요?

더지: 춤은 정말 너무 좋은 것이죠. 저는 초등학교 4학년때 본격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 아시죠? 그런 식으로 매년 춤을 췄어요. 학예회를 하면 무조건 춤을 췄죠. 내가 춤을 추고 싶어서 기회를 만들고 기회가 있으면 춤을 췄어요. 그것만 하고 살면 좋겠죠. 큐캔디도 하고 언니네트워크에서도 캠프 때 그렇게 흔들어대고 퀴어 퍼레이드때 트럭에서 그렇게 흔들고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리고 같이 할 사람도 많지 않아서 못하고 있어요. 지금 모 단체의 모 활동가와 서로 해보자고 꼬시고 있는데, 더 모으는 것도 일이고 연습을 하는 것도 일이니까 못하고 있는 게 너무 아쉽네요. 춤은 아이돌 커버댄스를 좋아합니다. 아이돌들의 댄스를 좋아해요.

 

조나단: 지난번 웅과 인터뷰를 했더니, 최근 동년배 나이 또래가 적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더지님은 어떠세요?

더지: 저도 아쉬워요. 저는 90년대 학번으로 살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들끓는 영페미니스트 탄생의 현장을 살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데요. 그때 활동했던 멋있는 언니들이 많잖아요. 그 이후 대학가에서 드문드문 페미니스트 명맥이 이어지다가 88년생들이 또 페미니스트가 많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82년생을 찾기가 힘들고 82년은 성소수자나 페미니스트 농사가 잘 안된 것일까, 우린 망했나 괜히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나이가 활동하면서 별 게 되어서도 안되고 잘 모르고 지내는 게 제일 좋지만, 또 나이를 알게 되면 동갑들은 더 잘 지내게 되더라고요. 결정적인 건,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사이에 말띠모임이 있었죠. 정욜(띵동, 전 행성인), 이종걸(친구사이 사무국장), 장서연(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타리(장애여성공감, 전 SOGI법정책연구회),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등 성소수자운동의 ‘허리’같은 사람들. 너무 부러운 거예요, 끼고 싶고. 그런데 제가 출생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활동가들을 긁어모아 운동판 82년 개띠들의 팔자를 다시 써보고 싶어요. (웃음)

조나단: 82년생 개띠이면서 활동가 이신 분들 댓글로 연락 주세요. 더지와 조나단이 기다립니다. (웃음)

 

조나단: 활동을 하다보면 일이 잘 풀릴 때보다 난관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돌파구를 발견하거나 혹은 그런 순간을 견뎌내는 더지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더지: 시기마다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활동하면서 난관에 부딪히는 게 정상인 것 같아요. 잘 풀리면 대박인 거죠. 난관에 부딪치는 게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심각한 난관에 부딪치면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에요. 밖에서 상황을 볼 수 있는 사람이요. 제 주변의 훌륭한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죠. 특히 대학 때 만난 친구인데, 운이 좋게도 다른 풀에서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가 보는 운동 얘기를 듣고 내가 보는 운동 얘기도 하면서 되게 지혜를 많이 얻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운동의 난관말고 개인적인 난관이 닥치면 해결하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편이에요. 주로 지치고 힘들고 그런 순간들이잖아요. 너무 버겁고 힘들다 싶으면 미안해하지 말고 조금 쉬자 생각해요. 요즘이 그런 시기에요. 그래야 길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성소수자인권은 평생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좀 넘어졌다 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조나단: 더지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혹은 어떤 사람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은가요?

더지: 저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영향력이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운동, 정치라는 것도 ‘영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영향력은 내가 많이 떠든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잘 들을 때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청하고 잘 들으며 사람들을 이해해야 운동도 잘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하는 사람.

 

조나단: 다사다난 했던 2017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든 아니면 활동이나 사회적 이슈 차원에서든 인상깊은 때를 짚는다면?

더지: 올해 처음 시작된 부산 퀴퍼요. 각 지역마다 퀴어 운동의 역사는 옛날부터 있었지만, 지금 시기에 다시금 꽃을 피우는 지역들이 생기고 있는데요. 서울에서 처음에 작은 규모로 시작되었던 퀴퍼와 달리, 이제 지역에서는 첫 퍼레이드 임에도 굉장한 규모와 멋있는 구조 체계를 가지고 시작하고, 굉장한 반대 속에서 주목 받잖아요. 짠함과 감탄과 고마움과 그런 게 느껴졌어요. 또 부산 퀴퍼에 참여한 부산성폭력상담소 같은 여성운동 쪽 부스를 보면서 되게 반갑더라고요. 특히 요즘 같은 시대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지역에서 같이한다는 게 도드라지게 보였어요. 그리고 바다가 있어서 좋았고 남이 차린 밥상에서 노는 건 정말 최고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조나단: 개인적으로 2018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더지: 대단한 목표를 말하고 싶지만, 춤 추는 거요. 매년 계획하는데 잘 안 돼요. (웃음) 내년은 일을 내년 상반기까지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와 활동을 할 계획을 짜고 있어요. 항상 활동과 공부와 알바를 하면서 살았는데요. 직장에 취업을 한 이유가 돈 때문도 있지만 삶의 정규성을 좀 찾고 싶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드는, 이런 정규성을 찾고 싶었어요. 활동하고 공부하다 보면 그런 리듬을 잊어버리기 쉽거든요. 그런 리듬을 무시해버리면 결국 활동도 공부도 잘 안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을 시작했는데, 일하면서 활동을 병행한다는 게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상반기 까지만 일하고, 그 리듬을 잊지 않고 하반기에는 공부, 활동, 생계의 조화를 잘 찾는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조나단: 마지막으로 인터뷰에서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 하는 게 있다면요?

더지: 저도 행성인의 회원이긴 하지만, 다른 단체 활동가로서 행성인이 계속 (너무 잘돼서)질투나는 단체로 잘 이 바닥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언젠가 행성인과 함께 공동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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