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노동권팀 회원)

 

 

이미지 제작: 별

 

예전의 저는 겁이 참 많았습니다. 꽤 오래 전 저의 성적지향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날까봐 벽장 속에서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그때는 저만 숨죽이며 살면 언젠가 세상이 바뀔 거라 믿었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리 숨죽이며 살아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더 이상 이렇게 숨죽이며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행성인에 가입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맨 처음 행성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무지개 텃밭을 방문했을 땐 불특정 다수의 성소수자를 만난다는 생각에 손떨릴 정도로 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행성인 프로그램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데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묘한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이때 느낀 기분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행성인 사무실을 자주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성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주 조금 벽장문이 열렸습니다.

 

미약하긴 하지만 벽장문이 열린 지금 숨죽이며 살았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물론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시시때때로 마주치게 되는 성소수자에 혐오는 아직도 저를 위축들게 합니다. 특히나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혐오를 마주치면 한없이 무너지는 기분마저 듭니다.

 

지난달에는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한동안 제가 애정을 갖고 참여하던 인권 모임이 있습니다. 저는 모임 회원들에게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성소수자 활동가와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등 성소수자 친화적인 태도를 취했던 터라 그 모임을 조금은 안전한 공간이라고 판단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그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들은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성소수자에대한 혐오 표현을 무자비하게 쏟아냈습니다. 혐오 표현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저에게 ‘세상의 이치’, ‘정상’ 등의 표현을 하며 저의 의견을 묵살했습니다. 그 날 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제가 벽장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왔기 때문에 성소수자에대한 혐오를 직접적으로 마주해본 적이 없어서 지난 경험이 날카롭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다시 벽장 속에 숨죽이고 살고 싶진 않습니다. 숨죽이며 살았던 긴 시간동안 결코 세상은 변하지 않았기에 저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물론 아직은 많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의 곁에 여러분이 있어서 참 든든합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 될 때까지 우리 조금 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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