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몇 년 전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했던 결심이 하나 있었다. 성소수자와 연관된 주제로는 논문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와 연관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연구 전반이 척박한 환경에서 아등바등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성실히 작업할 젊은 연구자들이 많으니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핑계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두려웠다. 그 때까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별다른 소속이 없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혹은 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고, 내가 쓸 수 있는 것들의 한계와 가능성이 다시 내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돌아올 것이 두려웠고, 그것이 다시 꼬리표처럼 내내 나를 좇을까 겁이 났다. 석사논문 주제 선택과 관련해 지도교수와 면담을 하던 연구실의 공기가 여전히 떠오른다. “언젠가는 네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올 텐데, 그게 반드시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
 
성소수자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석사논문을 쓰고 졸업하자마자 입대하게 됐는데, 장교로 복무하게 된 탓에 길고 지루했던 3개월의 추가 훈련기간이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고, 데이팅 앱을 설치해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뛰어들고, 익명의 트위터 계정으로 섹드립을 치면서 또 동시에 오래 읽고 싶었던 퀴어이론 관련 논문과 책들을 마음껏 찾아 읽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해 연말에 트위터로 관심있는 사람들을 모아 퀴어이론 연구회를 꾸렸고, 이후 3년 가까이 빡빡한 리딩 리스트를 함께 헤쳐나간 동료들이 내게는 처음으로 만난 퀴어 커뮤니티였다 (대학 시절 함께 활동한 적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이 퀴어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조금 더 이후의 일이다). 한국 성소수자의 현실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작업에 하나 둘 욕심이 늘었고, 자연스레 삶 역시 퀴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새로 꾸려지기 시작했다. 다만 군인 신분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내 바짝 긴장한 상태였던 것 같다.
 
전역이 가까워지던 해 봄, 내 근무지가 속해 있던 미군 기지에는 오바마 정부에서 장려한 프라이드 달 (Pride Month)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무지개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었고, AFKN 에서는 성소수자 미군과 그들의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행사와 프로그램에 관한 안내가 여러 차례 있었다. 같은 기지를 공유하지만 한국군에 속한 내가 그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면 나는 바로 군형법 제92조6의 처벌대상이 되는건지 궁금했다 (물론 참여하지는 않았다). 2016년 4월 한국 정부는 미 국방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군의 동성 배우자에게 이성 배우자와 동일한 법적 지위와 혜택을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현재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만이 유일하게 국가가 허용한 ‘동성애자’로서 사회적 권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나는 이처럼 같은 영토 안에서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권리가 상이하게 분할되고 배분되는 방식이 궁금했다. UN이나 EU, 그리고 미국 기반의 국제인권 기구들을 통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국제인권 담론과 한국의 성소수자에 관한 공적 논의 사이의 격차와 그 격차가 재생산되는 방식이 알고 싶었다. 성 소수자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등록하고 범주화하는 국가의 테크놀로지, 이에 더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성소수자’에 관한 공적 지식, 그리고 이를 통한 성소수자에 대한 국가의 관리—단지 배제나 포섭이 아닌—와 통치에 관해 철저하고 섬세하게 연구해 쓰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미국에서 만난 지도교수들이 지금이 그것에 관해 쓸 때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들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과 활동가들, 정책계발자들이 지금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서 상이하게 부상하고 침잠하는 성소수자 운동과 사회적 권리를 둘러싸고 변화하는 국가의 역할에 관해 궁금해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한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상대적으로 유사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를 둘러싼 법적 구조가 상이한 아시아의 다른 두 발전국가들—대만과 싱가포르—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2015년 여름부터 매 여름과 겨울마다 한국에 머물며, 성소수자 운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 몇 년 전처럼 겁이 나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성소수자 운동에서의 활동 경력이 없는 연구자라는 위치가 제약이 되진 않을까, 연구자로서 어떻게 운동과 커뮤니티에서 쓸모를 얻고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혹여 내 한계로 인해 급속하게 성장하는 성소수자 운동과 커뮤니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지 않을까. 어려운 순간들마다 늘 주위를 둘러보면 행성인의 낯익은 사람들과 무지개 깃발이 보이곤 했다. 어쩌면 무지개 깃발이 있는 공간들에서 언제나 중요한 투쟁과 갈등이 있었고, 내가 그 순간의 파편들을 좇아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과정 중에 있는 연구자인 나는 물론, 오랫동안 성 소수자 운동에 헌신해 온 활동가들조차도 복잡하고 역동적인 한국의 성 소수자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주변화된 사람들의 목소리와 열의가 모이는 곳, 무지개 깃발—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향하는 곳에서 우리의 정치가 벌어질 것이다. 그곳에 두려움 없이 함께 서서 기록하고 또 기억하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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