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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일탈이 일상이 되도록

by 행성인 2017. 5. 30.

마당(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언젠가 글을 쓰며 ‘방어적 체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소하겠지만 아마 들으면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오리라 생각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감정. 실망하지 않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슬퍼하지 않기 위해 그 무엇도 희망하지 않는 태도. 내가 나의 성적 지향을 깨달은지 10년이 넘었지만 외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선 좋은 소식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차별금지법도 동성 커플의 가족구성권도, 군형법 92조의6 폐지도 모두가 아직 혹은 나중에였다. 그 모든 시도가 혐오에 막혀 무산 되었다는 뉴스만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분노와 우울로 몸이 지쳐갔다. 버티기도 힘들거니와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어차피 안 될것이고 되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살게 되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군형법 92조의 6 위반을 이유로 구속된 A대위가 결국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일 앞에서 나는 애써 가장해오던 무던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건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고 말고의 일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이 그것을 이유로 삶과 미래가 불투명 해진 사건이었다. 나는 절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져서는 안 되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겪게된 그의 처지에 울분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리고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가. 차별에서 보호 받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 받는 기본적인 권리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 때에 나는 내가 체념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세상에 동성애자인 나를 드러내고 사는게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서 가만히 숨 죽인채 이성애자로 간주되는 삶을 오랜 시간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1년 중 몇 일을, 아니면 몇 시간을, 어쩌면 몇 분을 성소수자로서 살아갈까. 그렇지 않은 시간 동안 동성애자인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흔히 사람들은 ‘벽장 밖으로 나서다(Coming out of closet)’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벽장은 무슨 벽장, 이 정도면 관짝인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집회에 나가는게 장례식에 가는 느낌이 들었다. 피켓이 영정사진 같고, 구호가 장송곡 같았다. 무지개깃발은 근조기 같았고 입은 옷은 장례복 같았다. 살아있는 내가 아니라 죽은 나를 위한 권리를 외치는 느낌이 들었다.

A대위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이후 긴급하게 꾸려진 집회에서 나는 발언을 했다. 성소수자로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마주하고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했다. 평소라면 절대하지 않았을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궁금했다. 처음보는 다수의 사람들, 단 한번도 커밍아웃 하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말을 하지 않으면 나의 성적 지향을 숨길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성소수자로서 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너무 좋았다. 오랜 시간 방 구석에 버려져 있다 거리로 나서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광화문에 가본 적이 없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발언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부끄러움도 어딘가 모를 답답함도 없었다. 이 상태로 회사로, 가족들에게로, 친구들에게로, 낯선 이들에게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아마 긴 시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나는 아마 그렇게 꺼내 보았던 나의 일부를 집에 가두어 둔채 회사로 나설 것이다. 누군가 ‘결혼은 언제 할거냐’고 물으면 ‘아직은 크게 생각이 없다’며 말을 회피할 것이다. 누군가 A대위에 대한 뉴스를 이야기 해도, 당사자가 아닌척 의연함을 가장할 것이다. 낯선 누군가 무지개 깃발이 그려진 내 옷을 보고 ‘혹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도, 아마 ‘무지개가 무지개죠’라며 후다닥 그 자리를 뜰 것이다. 하지만 그 날, 발언을 위해 무대에 오르던, 사람들과 눈을 맞추던, 성소수자로서 나를 소개하고 말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그 느낌을 기억하고 싶다. 유독 시원하게 느껴졌던 그 날의 공기도, 유독 따스하게 느껴졌던 사람들의 시선도,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것 같이 가슴이 부푼 감정도. 일탈이었던 그 순간이 언젠가는 일상이 될 것이다. 굳은 마음을 먹어야 할 일이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체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 세상은 변할 것이다. 나는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