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요즘 들어 지인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2000년에 홍석천이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뭐,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해서 나도 게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뒤 이어 그 모임의 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성인)’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커밍아웃해준 것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때부터 내 ‘게이 인생’은 좋든 싫든(!) 행성인의 좌표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홍석천이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나는 게이로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행성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른 삶에 대한 미련일 뿐이다. 마흔을 목전에 두었기에, 그 가지 않은 길을 궁금해 하거나 아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가 아닐까? 그것은 지나온 삶의 모든 중요한 선택들에도 유효한 ‘가정’이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그저 한 번 웃어넘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반성의 힘을 지닌다.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꾸려는 욕망은, 당연하게도 현재의 불만족 때문이다. 물론, 애초에 만족스러운 삶이란 없는지 모른다. 다만, 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들이 미래의 만족을 향한 동력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그것은 ‘행성인이랑 함께 한 지난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어요’라고 향수에 젖는 것보다 행성인의 미래를 더 밝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상은 행성인을 들락날락 했던 오래된 회원의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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