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욱, 삶은 희망(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런 표현을 쓰면 내가 행성인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오해”이다. 각설하고 행성인이 나의 애인을 찾아준 것은 아니지만, 나의 반쪽은 찾게 해주었다. 내가 두려워서 인정하지 않고 있던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변에도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90년대 후반이었다. 소위 학생운동의 끝물이라고 불리는 세대인데 그래도 여러 가지 연대활동이 나름 활발히 진행되었다. 농활은 대학생이면 누구나 다 하는 활동으로 인식될 정도였고, 빈활, 철거투쟁, 노동자 투쟁 등과의 연대도 비교적 활발하였다. 위와 같은 활동에 항상 열성적으로 참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같이 하려고 노력했고, 연대사업국장 등 주요 연대사업에 대한 책임도 부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연대 투쟁의 과정에서 뭔가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공허함 내지 빈공간이 항상 있었다. 당시에는 그 컴컴한 빈 공간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호모포비아였던 것 같다. 당시 학내에서 여성주의 운동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소수의 활동으로 치부되고 있었고, 성소수자 관련 이슈는 “호모”와 “ㅋㅋㅋ”로 통용되는 분위기였다.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었지만 거의 비밀 결사조직처럼 보일 정도로 공개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으며, 이는 소위 진보적이라는 활동가 그룹 내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당시 나는 나의 성적 지향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벽장 안에 숨어있던 또 다른 나는 끊임없이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소위 인간 해방을 위한다는 운동그룹 내에서도 그 벽장안에 있던 나는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처지였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내가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공허함의 정체였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위와 같은 공허함을 가진 채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제대한 후에 나의 성적 지향에 대하여 고민하던 중 행성인(당시 동인련)에서 성적 지향에 대한 상담을 받게 되었다. 당시 동인련 대표였던 욜과 이경 등이 나의 상담을 받아주었는데, 그 상담이 내가 게이인 점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주변에 순차로 커망아웃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동인련에서의 상담 이후 나는 비록 느리더라도 꾸준히 주변에 커밍아웃을 해오며 성소수자 인권활동에도 참여하려 했고, 나의 학생시절 활동의 중간 종착지였던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도 여러 활동(ex. 2008년 진보신당 최현숙 선거 운동 사무국장 등)을 하게 되었다.

 

노동자를 위한 변호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일부만 커밍아웃한 상태이지만, 가급적 완전히 커밍아웃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커밍아웃 그 자체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하여 과거 학생시절처럼 나의 반쪽을 숨긴 채 공허함을 느끼며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왔던 나의 또 다른 반쪽과 함께 나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바꾸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행성인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물론 내가 행성인에 의지하는 것 뿐 아니라 나 스스로가 행성인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행성인 파이팅 !, 나도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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