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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30주년 세계에이즈의 날 ‘명절’ 단상

by 행성인 2017. 12. 9.

웅(행성인 HIV/AIDS인권팀)
 


0. 모여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기도 전에 빨간 옷을 차려 입고 광화문에서 빨간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이맘때면 기자회견문이든 성명서든 논평이든 발언문이든 다른 날보다 자판 두드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오랜 만에 보는 얼굴들도 있지만, 다른 날보다 더 없이 자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생존을 챙기고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세계에이즈의 날이 누군가에겐 ‘명절’로 다가온다.
 
행성인도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이런 저런 자리를 꾸리고 같이 준비하며 친척집 방문하듯 다른 행사들을 드나들었다.
 
 
1. 지르고
 
12월 1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항의행동을 펼쳤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역사에 기습시위는 수차례 있지만, 반인권 정치인들과 단체들이 주최한 행사 한복판에 항의하러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동성애 에이즈를 불러주니 이번엔 우리가 찾아 간다’는 ‘패기’를 끌어 모아 자유한국당과 국회에서 열린 ‘디셈버 퍼스트’를 찾았다.
 
작정하고 혐오의 도가니에 뛰어드는 만큼 집단의 결의가 필요했다. 몇 번씩 택을 맞추고 동선을 짰다.
 
행사 전 진행한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에서는 면전에 욕하고 침 뱉는 이들이 있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혐오선동이 난무하는 행사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자는 ‘동성애자’와  ‘에이즈 환자’가 잠입했다고 언급하며 집단구호를 유도하여 수치심을 조장했다. 3년 전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에 날것의 구호를 외쳤던 저들의 표정에 비하면 한결 체면을 차린 모습이지만, 체감되는 압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호를 외치면서 주최단체인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타올을 들지 않은 이들은 동성애자냐고 의심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발생했다.
 
하지만 혐오선동 수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장막을 헤치고 터져나온 외침을 막을 수 없다. 모자이크에 숨어있고, 낙인 프레임에 발언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이들은 실패를 몸에 익혔으며, 시도하기 전에 이미 차별과 낙인을 몸에 새겨야 했다. 형사고발 하겠다는 위협과 회유에도 항의한 이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외친 내용은 간명했다.
 
‘감염인의 이야기를 들어라.’
 
차려놓은 밥상에 재 뿌릴 줄이나 알았지, 제가 차린 잔치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사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1분의 시간을 내어줬다. 집단적 비아냥과 야유는 관용을 빙자한 박수와 악수와 포옹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혐오선동의 부정적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한 쇼일까, 동성애와 에이즈를 진정 찬반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쟁투 자체를 즐기는 것일까. 저들은 ‘우리는 혐오하는 게 아니’라며 ‘동성애 독재’를 입에 물면서도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소위 유사-환대를 베풀었다. 분명한 것은 의도야 어떻든 저들은 성소수자와 감염인을 선심의 대상으로 상정함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부정하기 위한 장식용 거짓 포용일 뿐이지만.
 
가브리엘의 발언은 또렷하고 분명하게 울렸다. 행동이 있고 나서 활동가들은 얼굴 드러내길 결정한 가브리엘을 걱정했다. 더불어 밥 한술 뜨지 못하고 내내 항의행동을 총괄하며 가장 먼저 샤우팅을 끊었던 정욜의 긴장을 지켜보고 숨고르기했다. 결단의 부담은 무겁지만, 선언은 한순간이다. 망설임을 잠식한 순간의 용기는 선연하다. ‘한 번 해보지 뭐.’ 무심한 문장에 누적된 고립과 외로움의 겹이 잠시 스친 것도 같지만, 프로 투쟁러들의 처연한 엣지는 싸우는 삶에 배움이 된다.

 

올해의 항의행동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이후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합을 맞춘 동료들의 지지와 연대를 기억하면 좋겠다. 자조 너머 무언가 반짝하는 섬광 같은 유머와 여유도 우리는 놓지 않겠다. 대중앞에 어떤 표정과 발성으로 호소해야 화면에 부끄럽지 않게 남을까 하는 자괴감 앞에서는 잠시 멈칫하게 되지만. 이길 싸움일지, 이겨야 하는 싸움인 것인지,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존재를 드러내길 결단한 이상 우리는 타인의 삶을 삭제하며 자리를 지키는 당신에게 지지 않는다.
 

 

[20171201 세계 에이즈의 날] 혐오와 공포는 에이즈 예방책이 될 수 없다!

 

 

 
2. 섞으며
 
11월 30일 진행한 <그녀들의 이야기- 여성이 말하는 HIV/AIDS>는 가을동안 시민사회를 흔들었던 용인과 부산의 여성 감염인 사건을 둘러싼 HIV/AIDS인권팀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토론회는 고민의 결과로 기획된 자리지만,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해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용인 사건 당시 성명서를 냈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는 유나와 여성 감염인 연구를 진행한 HIV/AIDS 인권활동가 미란, 여성 PL 쏭이를 섭외했다.
 
여성과 HIV/AIDS, 성매매와 청소년, 장애를 가로지르는 사건은 호명부터 쉽지 않다. ‘사건’이라고 간편하게 부르지만 실상 압축된 명명은 질병에 취약하고 낙인과 혐오에 노출된 누군가의 생애를 단편화 한다.
 
거리 두고 프레임에 넣는 것만큼 쉬운 태도도 없다. 하지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상황에 ‘사건’의 이름으로 가두는 작업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관점이다. 관성적인 질병 혐오와 성적 보수주의에 초점을 둔 언론의 관점을 따른다면 사건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적 낙인으로, 청소년 여성의 성적 문란에 대한 단죄로, 에이즈 환자에 대한 국가의 관리소홀 비난으로 함몰된다. 개별 정체성의 논리로 사건을 바라보거나, 이를 성매매와 청소년, 여성과 HIV/AIDS, HIV/AIDS와 성매매의 관점으로 묶어 읽는 시도 역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체성 논리에 사건을 적용하고 끼워 맞추기 앞서 과정을 훑으며 당사자의 생애를 읽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상황을 추적하고, 정책을 비교하며 당사자 목소리를 듣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논리 바깥의 취약한 서사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특정한 관점을 갖는 것보다 관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노력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사건을 설명하는 프레임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개별의 특수한 생애들이 사회 구조에 어떻게 위치 지어지는지, 그 속에서 어떻게 주어진 상황들을 이탈하고 가로지르는가를 파악하며 사건의 경계를 살핀다. 성매매의 언어로 HIV/AIDS를 읽고, HIV/AIDS의 언어로 장애와 여성을 읽으며, 이를 성소수자의 눈으로 다시 읽는 중층의 번역작업 역시 요구된다. 사건은 반성매매의 논쟁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에이즈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의 문제점을 적시한다. 여성의 취약함은 동시에 감염인에 대한 성적 낙인과 나란히 수면 위에 올라와 여성의 성적 낙인으로, 감염인의 취약함으로, 여성 감염인의 문제로 상호 교차한다.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에 따라 사건 해석과 당사자 지원이 달라지기에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권력의 도면이 떠오르고, 상이한 정체성의 논리들이 상호 착종하고 탈구되는 가운데 당사자의 서사가 구성된다.
 
일련의 긴장과 교차 속에서 토론회 발제들은 참가자와 기획자들의 기대를 어느 정도 앞지르고 압도했다. 당사자의 언어는 여과되지 않은 날 것의 묵직함을갖는다. 설령 의미를 거친 언어라고 해도 사례는 상상 이상의 영역에 걸쳐 있다. 어쩌면 거리두기에 실패하고 여과되지 않은 고백을 마주해야하는 고통스러운 자리는 지금 HIV/AIDS인권 담론의 변경(邊境)이 어디쯤인가를 확인시켜준다.

 

한편으로 토론회는 사건 당사자의 취약한 부분을 수면에 올리고, 복잡한 삶의 맥락들을 세어내는 작업이자, 그럼에도 세어지지 않은 부분에 접촉함으로써 인권의 발아를 목도할 수 있다는 믿음에 힘을 실어준 자리였다. 여성 감염인 연구를 통해 HIV/AIDS인권운동의 맹점을 읽고, 이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된 데 감사를 표하는 미란의 언급은, 한동안 HIV/AIDS 인권운동을 떠오르면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나누리+ 의 타리 활동가는 여성 감염인이 사람들 앞에 나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여성 감염인 참가자들이 성소수자들과 함께 자리를 채운 데 대한 감회를 첫 키싱에이즈쌀롱에서의 벅차오름으로 유비하기도 했다. (더불어 일련의 감회들은 지난 25일 행성인 여성모임이 레즈비언 바에서 HIV/AIDS를 이야기하는 낯선 시도와도 조우한다.) 당사자가 제 얼굴을 드러내고 목소리내기까지 사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당사자의 삶을 지지하고 고민을 잇는 시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토론회는 가능했다. 인권팀과 함께 고민을 맞댄 청소년·청년 감염인 인권모임 ‘알’이 아니라면 이 날의 행사는 준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 토론회는 이야기들이 나오기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믿음과 신뢰의 약속의 중요함을 새삼 일깨운 자리기도 하다.
 
 
3. 한 번 더

 

11월 28일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을 방문했다. 명목상 비누 만들기 워크샵이었지만 KNP+와 친목을 다져보자는 목적이 있었다. 비누를 만들면서 나눌 질문을 짜고 검토하기도 했다. 만든 비누는 외부에 후원리워드로 사용하고 수익은 HIV/AIDS인권활동에 보태자는 소기의 계획도 있었다. 적어도 기획은 그랬다.
 
사랑방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에 놓인 김치전을 권유받았다. 방문하기 전에 KNP+ 회원들이 부친 거라는데, 팀원들은 젓가락을 들고 접시를 비웠다. 같은 테이블에는 비누의 역사부터 효능과 제작법까지 적혀 있는 핸드아웃이 쌓여있었다.

 

나중엔 김장김치를 꺼내줘서 저녁까지 먹었다. 밥 먹고 온 회원들도 김장김치에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나서는 직접 부쳐준 누룽지도 한쪽씩 나눠먹었다.
 
대접은 융숭했고 프로그램은 순서를 잃었지만, 비누제작만큼은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 했다. 가르쳐주는 과정 속에 팀원들은 엉성하게나마 준비했던 질문도 나누지 못하고, 온도를 맞추고 향과 색을 배합하는데 정신이 팔려 자기소개도 잊었다. 명절 부침개 부치듯 비누를 찍어냈다. 


 

 

KNP+ ‘선생님’들은 비누 만들러 한 번 더 오면 더 잘할 거라고 응원했다. 11시가 훌쩍 넘도록 비누 빼고는 나눈 이야기도 별로 없고 뒤풀이도 없는 자리였는데 마음은 꽉 찬 기분이었다. 마침 나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온기 남은 비누가 녹지 않게 품에 안고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