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HIV/AIDS 운동의 주춧돌, ACT UP

Posted at 2017.11.01 22:52// Posted in HIV/AIDS

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

 

1970년 말, 유럽과 북미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많은 게이 남성들이 이유 모를 비슷한 증상들로 인해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 병으로 인해 1981년 까지 미국에서 2-30대 남성 동성애자 수 백명이 죽어나가면서 이 병은  ‘게이 암 (Gay Cancer)’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해, 미국 질병 관리 본부는 이 병을 에이즈 (AIDS; 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이라는 면역의 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증상들의 군집이라 명명합니다. 이 병의 원인이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인 것은 몇 년 후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발견 됩니다.

 

이런 공식적인 전문가의 입장이 나오기까지 이미 1980년도 초의 게이/퀴어 커뮤니티는 하루가 멀다하고 초상이 나는 암울한 분위기였습니다. 미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60년대 후반, 1966년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항쟁, 1969년의 스톤월 항쟁을 겪으며 해방을 외치며 격렬히벽장을 뚫고 나왔다면, 10년 후, 그들은, 특히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매 년 수 백명, 그 이상이 죽어나갔던 1980년도 초, 프라이드 행진은 애도와 추모를 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추모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살아야 했으니까요. 이 병이 언제 누구에게 발병해 또 입원 혹은 부고 소식을 들을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믿고 기댈 곳은 커뮤니티 뿐이었습니다. 정부는 이 상황의 심각성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대책 역시 미비하고 느렸고, 미디어는 발병의 책임을 남성 동성애자들의 문란한 성생활에 돌리며 사회적 낙인을 확산시켰고, 의사들은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정보의 부재, 편파적인 보도로 인해 에이즈 환자들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도시들 마다 에이즈의 근본과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관련 연구자료들을 읽고, 그것을 커뮤니티와 대중에 알리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이 시작합니다. 이들은 커뮤니티 내에서의 발병률을 조사하고, 그들을 위한 핫라인을 설립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게 HIV/AIDS인권 운동의 초석인 Gay Men’s Health Crisis (GMHC; 남성 동성애자 건강 위기 지원센터; 미국에서 아직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HIV/AIDS 의료 센터, 1981년에 설립) 입니다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정보와 의료 서비스 제공만으로는 사회가 에이즈에 찍어놓은 낙인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 몇몇 성소수자 커뮤니티 일원들은 좀 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조직화를 시작합니다.

 

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힘을 방출하기 위한 에이즈 연합이라는 단체 명에 어울리게, 1987년에 설립된 ACT UP은 성소수자, 특히 에이즈 위기를 맞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들과 지지자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행동으로 옮겨 보수적이고 편파적인 미국 사회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침묵 = 죽음 (Silence = Death)‘ 라는 표어를 내걸고, 스톤월 항쟁의 저항 정신을 계승한 이 단체는 뉴욕에서 시작해 신속히 다른 도시들로 퍼져나가며 새로운 지부를 설립하거나 있던 에이즈 인권 운동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전국적인 세력을 확보합니다.

 

ACT UP이 시작된 1987년은 1세대 에이즈 치료약인 AZT의 출시 후 발생한 의료적 문제들,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들이 불거지던 시기였습니다. 약이 출시 되었음에도 보건, 복지 정책의 부재로 인해 신규 발병율은 끊임없이 높아갔습니다. 약은  비싸서 부담할 수 없는 환자가 많기도 했고, 부작용도 심해서 이미 면역력이 많이 결여된 사람들이 꾸준히 복용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에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에이즈 위기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보수정권의 영향으로 인해 안전한 성교에 대한 담론의 생성은 커녕 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만 재생산 되었으며, ‘동성애 = 에이즈라는 낙인은 짙어져만 갔습니다. 미국 식약청은 유럽의 신약을 수입하는데 있어서 여러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런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ACT UP은 정치적인 활동들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먼저 활동의 표적을 골랐습니다. 큰 틀로는 1987년 에이즈를 1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며 한 층 더 짙은 낙인을 찍은 레이건 대통령, 더 직접적으로는 두 곳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신약 개발 및 수입에 지나친 레드테이프를 가하는 미국 식약청이었고, 두 번째는 시장을 독점하고 약 값을 높게 책정한 AZT의 제조사였습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바는 한가지, 에이즈에 대한 침묵과 무반응은 곧 에이즈 환자들의, 성소수자 공동체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것. 그들은 비장하게 시청들과 월가, 그리고 식약청을 점거하고, die in (죽는 시늉을 하듯 바닥에 드러누워 사태가 불러올 죽음의 심각성을 보임) 과 여러 행위예술적 퍼포먼스 형태의 시위와 시민불복종을 이어갑니다. 또한, 그들은 대중예술을 매체로 삼아 미국 사회에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1989 AZT의 가격 인하, 그리고 다른 시민단체들과의 협력으로 1988, HIV로 인한 직장에서의 차별 금지의 법제화를 이루어 냅니다.

 

 

 

그 중에서도 1990,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국제 에이즈 컨퍼런스 (International AIDS Conference) 에서의 활동은 눈에 띕니다. 1989년 몬트레알에서 열렸던 제 5회 국제 에이즈 컨퍼런스에서 처음으로 활동가들이 참여하면서 기존에 연구자들과 정부 관계자들만이 참석하던 컨퍼런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회, 6회에서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활동가들이 대거 컨퍼런스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ACT UP 뉴욕 지부의 치료-데이터팀은 AIDS 연구자들의 연구 방향과 이 컨퍼런스에서 생성되어야 하는 담론의 주제들을 제시하는 에이즈 치료 강령을 컨퍼런스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수 백명의 활동가들은 컨퍼런스 참가를 위해 미국에 입국하려던 HIV 감염인들의 입국을 금지한 당시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루이스 설리반의 기조연설을 휘파람과 야유, 그리고 경적으로 뒤덮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가과 연대하기 위해 수 많은 다른 참가자들은 설리반의 입장과 동시에 등을 돌리고 앉아 뜻을 함께 했습니다. ACT UP은 이 샌프란시스코의 컨퍼런스 당시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졌던 다른 시위들, 특히 여성과 이민자 HIV 감염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위들과도 연대하였습니다. 이 일주일 간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활동가들은 보건과 복지에 대한 연구의 중심에는 당사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연구자들과 의사들,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고, 감염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운동은 현재 국제 에이즈 컨퍼런스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0년 대 초, ACT UP감염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활동들을의료 시설 및 치료약 접근성 증가 및 검증된 정보 전파계속해 나갑니다. 점차 당사자들의 권익 보호와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어 가고 (특히 1990년의 미국장애인법의 제정으로 인해 에이즈를 포함, 여러 만성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료권, 건강권, 노동권 등의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합니다), 약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면서 다양하고, 부작용의 위험이 훨씬 줄어든 약들이 개발되어 치료 접근성 역시 증가하게 됩니다. 정책적, 치료적, 사회 인식적 개선을 통해 HIV감염이 만성질환화가 되고 이미 예방약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ACT UP이 처음 내세웠던 활동의 대상들에 요구했던 바의 많은 요소들이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이즈 위기가 한창이던 1987년에 더이상 커뮤니티 내 자체 복지 사업으로는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시대의 부름에 응해 결성된 ACT UP은 에이즈를 단지 미국의 한 소수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이겨나가야 할 공중 보건 위기로의 인식 변화를 주도하고, 이로써 미국 성소수자 운동에 큰 한 획을 그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침묵은 곧 죽음을 뜻한다는 강력한 메세지를 안겨준 그들은 현재, 자체 활동 보다는 다른 나라들의 HIV/AIDS 운동의 롤모델로서 제조사, 보험사, 정치인의 사리사욕으로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로 미국 사회, 세계 사회와 끊임없이 30년째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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