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 (지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소지인권아카데미 2강은 한가람님의 강의로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강의는 기초를 깔아주는 것이며 어떻게 접근하고 왜 중요한가를 알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하였어요. 역사는 관점을 가지고 뒤를 보는 것인데 역사가의 관점과 활동가의 관점, 개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될지 매우 조심스럽다고 운을 떼었습니다. 한정되거나, 불명확하거나 모순된 자료들이 무척 많기 때문에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정도를 아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거듭거듭 강조하였네요. 성소수자인권운동은 현재성을 가진 운동이란 점에서 강사님의 고뇌와 애환이 느껴졌던 대목입니다.


시작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0년대 중반 이전은 바지씨, 치마씨, 보갈 등의 언어로 불리거나 여장남자/남장여자로서만 재현되었던 시대입니다. 동성애자는 없고 동성애 행위만 있던 시대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움직임들이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93년 초동회의 발족으로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초동회는 얼마 안 있어 친구사이, 끼리끼리로 분리됩니다. 이 시기에는 연세대 컴투게더, 서울대 마음001, 고려대 사람과 사람 등 각 대학 모임들이 결성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96년도에 대학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가 발족하는데요. 당시 언론과 대학 사회의 관심이 엄청 컸다고 해요. 한편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도 이 시기에 결성이 됩니다. 이렇게 없는 존재로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던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서로를 알아보며 규합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97년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반대 노동자투쟁 때는 무지개깃발을 펼치고 세상 밖으로 나아갑니다. 이 투쟁은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출범하는 계기가 됩니다.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은 동성애자인권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후에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꿉니다. 반갑!!^.^)

90년 대 말은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때로 성소수자들이 서로를 찾고 모일 수 있던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막대합니다. 먼저 인권운동 초기부터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습니다. 성명서를 내고 언론사에 항의 방문을 하거나 역사서, 이론서, 대중서 등을 출판/번역하고, ‘니아까’ , ‘버디’ , ‘보릿자루와 같은 각종 성소수자 잡지도 등장합니다. 이때의 운동은 글을 쓰고 내보이며 존재를 알리는 것이 주요한 활동이었습니다. PC통신과 153전화사서함을 통해 많은 성소수자들이 모임을 만들고 소통해 나갑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국내 첫 동성애자 인터넷 사이트 엑스존이 개설되고 그와 함께 각종 포털 사이트의 카페들이 개설되기 시작합니다. 이로써 성소수자 온라인 커뮤니티가 급격하게 팽창하고 확대됩니다. 여기서 성소수자 인권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생기는데요. 바로 엑스존 사건입니다. 엑스존 사이트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규정되며 이에 항의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이지요. 엑스존 운영자는 항의의 의미로 사이트를 폐쇄하기에 이르고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이 결성되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패소하기에 이르지만 소송의 승패여부와는 별개로 과정에서 성소수자 단체들이 청소년보호법 상 동성애자차별조항을 인권위에 진정하였고 인권위의 권고로 이 조항은 결국 삭제되게 됩니다.


2000년에는 퀴어문화축제가 처음 개최합니다. 20여 단체들이 공동개최하였고 연세대 학내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퍼레이드를 진행했다고 해요. 방송에서는 홍석천, 하리수의 커밍아웃으로 떠들썩한 때이기도 합니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인 홍커지모가 결성되기도 하지요

2000년대는 제도화 운동이 시작된 시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당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하며 한국정당사 최초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발족하게 됩니다. 이후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녹색당 소수자인권특위 등이 생겨납니다. 성소수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커진 이 시기에 단연 큰 이슈는 차별금지법 투쟁입니다.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보수개신교를 중심으로 집단 항의에 부딪혀 성적지향을 포함한 7개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안을 확정하게 됩니다. 조직화된 반성소수자집단의 첫 위력 행사에 성소수자 단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성소수자 주도의 차별금지법 투쟁이 이어지고 법안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됩니다. 운동의 자신감과 패배를 번갈아 맛 본, 이때 만들어진 성소수자 운동의 지형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2010년을 전후하여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운동, 동성혼 소송과 가족구성권 운동, 트랜스젠더 인권이슈와 성별 정정 등 성소수자들의 쟁점은 더욱 다양해지고 운동의 폭도 넓어집니다. 이에 반성소수자 세력의 선동 또한 점점 더 거세어져 서울학생인권조례 투쟁, 서울시민인권헌장 무지개 농성 등 제도투쟁으로 계속됩니다. 특히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해 서울시청을 점거했던 무지개 농성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광범위한 연대와 지지를 확인한 장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반성소수자 세력의 혐오선동 역시 그 기세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최근만 해도 EBS <까칠남녀> 패널이었던 은하선씨를 하차시킨 데 이어 자한당을 중심으로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요. 그들의 기세에도 성소수자 운동은 더 커지고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들이 가시화되고 있고 이슈별로 연대체가 결성되어 지속적인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며 퀴어문화축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등 지역 활동 또한 확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역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며 다양한 단체들 속에 신뢰 기반을 어떻게 확장하고 형성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말로 한가람님은 강의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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