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2 10일 토요일 연세대학교에서 10회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열렸다. 토요일 첫 세션인 <교차성을 넘어 트랜스 정치학으로: 퀴어X페미니스트 지평을 모색하다> 은 아침 10시였음에도 인권 포럼 입장권을 사는데 긴 줄을 서야 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인권포럼과 이번 세션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고 흥하는구나 싶었다.

 

 

사회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나영님이 맡았다. 나영님은 최근 교차성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중에 교차성의 내용이 무엇이고 교차성을 가지고 운동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논쟁이 있었으며 한편에서는 어떤 페미니즘에 대응하는, 반대 개념으로서의 다른 페미니즘의 이름인 것처럼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고 섹션을 준비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서의 교차성이 굉장히 새로운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으며,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복합 차별 등의 개념을 통해서 교차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이야기해왔던 역사가 있음을 이야기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교차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운동을 함에 있어서 교차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발제자 두 분과 토론자 한 분을 통해 중요한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 같이 이야기를 해보기를 제안했다.

 

 

첫 발제는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젠더섹터의 김순남님이 맡아주셨다. 발제 제목은 <세계만들기로서의 퀴어정치학 – ‘우리의 이야기들, ‘우리를 변형시켜온 과정들>이었다. 아직 연구중인 내용이지만, 그 고민을 대략적으로나마 먼저 나누고자 한다고 이야기 하셨다.

 

김순남님이 주목한 부분은 정체성의 요인들이 교차하는 지점으로서의 교차성이 아니다. 교차적인 억압의 구조를 통해 하나의 정체성의 요인에서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다른 요인에서는 가해자일 수 있는 억압의 다층성, 그리고 규범적으로 주어진 피해나 특권 자체의 의미를 트랜싱하는, 존재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수행적 실천적 정치 현장으로서의 무엇이었다. 그것을 김순남님은 퀴어정치학 담론에서 빌어, 한국의 퀴어/페미니즘 운동 현장을 보고자 하셨다.

 

퀴어 정치학에서 의미하는 세계만들기 프로젝트에서의 세계는 공적인 의미와 마찬가지로 그룹이나, 커뮤니티와는 다르며, 그러한 세계만들기 프로젝트는 정체성의 범주로 구분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며, 몇가지 공통적인 사안으로 범주화 되는 것보다 더 많은 공간들을 만드는 것이며,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경험의 세계보다 다중적인 정동을 만들어가는, 경험하는 장이다.” (Berlant and Warner, 1998: 558)   

 

김순남님이 주목한 현장들은 다음과 같다. 1) 현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찾은 성평등 포럼에서의 무지개 시위 (페미니즘 대통령을 지향하지만 동성애는 반대한다는 대통령 후보에게 던진 나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느냐는 물음) 2) 2004년 다닮연대의 3.8 무지개 시위 (다양성으로서의 N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분할된 세계, 권력, 규범을 트랜스하는 정치학으로서의 퀴어/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3) 여러 집회에 항상 함께한 무지개 깃발, 퀴어 버스 (그것이 성소수자들의 서울 시청 점거 때, 민주노총이 연대하고, 노동자 대회에서 성소수자들이 발언을 하게 되는 순간으로 이어지는 것) 4) 쌍용자동차 농성장의 얼굴 없는 영정과 성소수자, 장애, 홈리스 농성장의 얼굴 없는 영정 (슬픈 연결성) 그리고 그 순간 순간들이 정동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김순남님은 이때의 정동들이 연결 되는 정동적 연결성이 세계만들기로서의 퀴어정치학 현장으로 본다. 정동적 연결성은 정체성에 기반한 연결성도 아니며, 정체성에 기반한 유사성, 동질성도 아니고 부분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힘을 추동하는 연결성이다. 주변화된 존재들 사이에서 정동적 접촉을 통해서 규범적으로 상상되어온 시공간적 질서에 균열을 내는 가능성이다. 시간을 가로지르는 연결성은 시간과 공간을 횡단하며 정동적으로 접촉하는 것들, 다중적인 시간성을 구성하며 현재의 자아와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 속에 놓여진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접촉들은 한시적 공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감각에 체화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길을 잃게 하는 접촉들에 자신의 존재를 여는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만들기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 했다. 우리가 거쳐오고 행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천할 운동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발제였다.

 

 

 


 

두번째 발제는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루인님의 발제였다. 루인님의 발제는 여러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왜 지금 교차성인가 그리고 LGBTAIQ 같이 성소수자들에게 교차성의 의미, 그리고 교차성을 넘어 트랜스 정치학으로 라는 문구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질문이었다.

 

왜 지금 교차성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던 배경은 작년 <펢> 매거진에서 교차성이 주요한 키워드로 이야기 되기도 했고 2015년부터 이 교차성이 운동사회에서 큰 키워드로 자리잡아 왔는데도 누구도 이 교차성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하셨다. 교차성이라는 말은 요즘에 쓰이지만 이런 비슷한 고민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예를 들어 2007년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여러 성소수자, 장애, 여성, 청소년 단체 들이 모여서 ‘반차별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복합차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차별이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당시 차별금지법에서는 여러 차별 사유 중 7개가 빠지게 되었고, 빠지지 않은 15개 사유가 있었다. 7개가 빠지게 된 것에 대해서도 저항 운동이 있었지만, 빠지지 않은 15개 사유에 있어서도 예컨데 장애 같은 경우 이미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고 있으나 장애인 차별이 해결되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기에, 어느 하나를 나중으로 미루고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차별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복합차별’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차별이 어떻게 복합적, 중층적으로 이루어지는지 고민했었던 역사가 있다. 그런데 요즘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교차성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면, 왜 지금 교차성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하셨다.

 

루인님은 이에 대해 그때와 지금은 이야기하는 대상과 방식이 달라졌다는 부분을 들었다. 2007년 이후 시기에는 법무부나 보수적 혐오세력들을 대상으로 한 반차별에 대한 부분이었다면, 지금은 페미니즘 정치학, 페미니즘 윤리학, 가치 지향에 대한 질문과 맞닿으며, 페미니즘이 다른 운동과 접촉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약화시키고 억압시킨다고 보는 세력, 그리고 누가 여성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력과의 경합에서 교차성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 같다고 보았다. 당시에는 차별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라는 질문이 지금은 누가 여성인가로 질문과 사유하는 방식이 완전히 재배치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교차성을 이야기하는 기초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은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가치, 윤리학에 대한 집요한 성찰 속에 나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의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또한 여러가지 질문들 - 내가 가진 차별과 억압을 이야기 하기 위해 타인을 혐오하거나 부인하는 행위는 가당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 억압이나 차별은 말할 수 없는 것인가? 내가 가진 범주를 확장하거나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곧 내가 겪고 있는 차별이나 부당함을 약화시키는 일이 되는가? 내가 겪는 부당함은 내가 속한 범주의 사람들이 순수하게 피해자이기만 할 때에 발화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특정 순간에 가해자이고 권력자라는 것이 왜 내가 다른 순간에는 피해자이고 피억압자라는 것을 부정한다고 인식되거나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인식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교차성이 이야기 되는 가운데 나와야 하지 않나 싶었다고 이야기 하셨다.

 

또한 이러한 교차성이든, 연결성이든 이 개념을 우리에게로 가져와서 성소수자와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성을 이야기 할 때에도, 성소수자는 단일한 집단이냐며 성소수자들은 이러한 교차성을 얼마나 내재화하며 질문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다. ‘성소수자들은 연결되어 있나? 혹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성소수자들이 하나의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으로 이야기 되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혐오가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나오는 것, 무성애는 삭제되고 있는 것 같은 것, 트랜스젠더퀴어에게 동성이나 이성은 누구인가? 같이 LGBTAIQ로 뭉뚱그려지면서 질문되어야 하는 많은 것이 질문되지 않으며 단지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기 위해서만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는 ‘교차성을 넘어 트랜스 정치학’으로라는 문구에서, 여러 질문을 뽑아내셨다. ‘교차성을 넘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교차성을 넘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때 교차성은 어떤 정치학인가? 또한 트랜스 정치학으로가 지향을 뜻한다면 이때의 트랜스 정치학은 어떤 정치학인가? 만약 트랜스 정치학이 트랜스젠더 퀴어의 어떤 정치학을 소화하거나 긴밀되게 연결되어 있는 정치학이라면, 여성 남성에 대해 질문하고, 그 이분법을 질문함을 통해서 이성애 중심과 여성, 남성 이분법이 마치 더 우월하고 정상적이라는 것이 놓친 부분이 있다는 것으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인가? 또 반퀴어 진영과 퀴어 진영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동성애 중심성에 대해서 질문하고, 동성이라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회자되고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또 그것을 통해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들이 여기 인권포럼에서도 단지 어떤 분과 세션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전환적인 의미로 자리잡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안정성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완전히 뒤흔들며 다시 내 문제로 자리잡는 정치학으로 정말 자리할 수 있을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또 ‘트랜스와 퀴어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가 이들 관계들에서 트랜스와 퀴어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시 사유되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도 던지셨다.

 

 

마지막은 언니네트워크 더지님의 토론이었다. 더지님에게 앞선 두분의 발표는 <펢> 매거진을 만드는 언니네트워크에게 단지 발제가 아니라 깊은 토론 거리를 던지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많은 비평을 받고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더지님은 교차성이 역동적인 개념이고 역동성을 이끌어내야 하는 개념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교차성 개념은 김순남이 말하셨듯 나의 자리 너의 자리가 있고,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듯한, 멈춰있으면서 여러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듯한, 역동성을 상실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에서 넘어서야 하는 지점이 있음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교차성을 폐기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도 트랜스 인식론이라는 사유를 통해 교차성을 역동적으로 재구성을 해보자는 것이 이 세션의 취지인 것 같다고 세션의 기획 의도를 다시 한번 짚어주셨다.

 

발제한 두분은 트랜스 정치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결이 다르다. 김순남님의 트랜스 인식론과 정치학, 루인님의 트랜스 정치학에서 트랜스는 정체성이냐 정치학이냐와 같이 질문과 고민의 결이 다른데, 더지님은 그 두가지에 있어 ‘접촉’이 교차성 개념을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바탕인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접촉을 결여한 담론과 싸움에서 교차성을 이야기 한들 역동성이 발휘되지 않고, 또한 교차성을 외부를 향한 싸움의 도구로 사용할 때, 퀴어로 돌아와서 퀴어들 자체도 우리가 교차적인 권력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들이댈 수 있어야 그게 역동성을 가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이후, 객석과 발제자 토론자들의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두분이 사용하신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질문이 많았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은 좀더 실천적인 측면에서의 질문과 답이었던 이것이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연대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성소수자 의제를 가지고 함께 싸우자고 할 때 연대 조직에서의 관심을 어떻게 이끌어내기가 힘든데, 정동과 교차점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객석의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한 답을 나영 님이 하셨는데, 활동하면서 두 가지 의도적인 개입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계속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로 각각의 영역에서 연대하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만났을 때의 그 집단은 우리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다. 그런 것들을 깨기 위해서라도 직접 만나는 경험이 계속해서 필요하고 너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서로를 바꾸어나가는 존재로서 서로가 되려면 이야기하는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예를들어, 노동자집단 내에서 성소수자를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가 거기에도 있다고 정체성으로서의 집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이야기가 되었다면, 노동에서 임금, 보상체계, 연금 등은 누구를 기준으로 되어있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도 이야기하면 가족과 이성애 중심주의에 대한 것, 출산하고 이 사회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몸에 대한 부분으로까지도 나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 하셨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운동과 노동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수 있음을 이야기 하셨다.

 

 

많은 질문과 영감을 얻는 세션이었다. 행성인 이야말로 여러 정체성을 가진 회원들이 존재하며 연대도 열심히 하는 단체인데, 우리는 얼마나 이러한 고민들을 깊이 받아 안고 활동에 녹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풀어낼지가 2018년 내 활동의 숙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