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반성폭력 교육 후기

Posted at 2018.10.25 11:36// Posted in 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곱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0.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오매님을 모시고 반성폭력 교육 시간을 가졌다. 행성인이 비상체제로 전환 된 이후, 행성인에게 반성폭력 교육은 교육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자, 앞으로의 각오와 긴장을 가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의 무게가 성평등을 향하고 간절히 바라는 회원들에게 최대한 전달되기를 바라며, 후기를 작성한다.
 
 
1. “왜 그랬냐면,”

 

 

 

오매님께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왜 그런거라고, 혹은 왜 그러지 못했냐고 묻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위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셨다. 성폭력을 저지른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위치’는 이미 ‘왜’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성폭력의 피해자는 그 ‘왜’라는 말에서 소외된다. 아니, 그 ‘왜’라는 말에 짓눌린다. ‘왜’라는 말을 두고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주눅 든다. 많은 경우에 이미 발생한 성/폭력에서 원인과 이유를 따질 때 권력의 불균등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것을 꼬집어야 한다. ‘왜’를 어떻게 ‘왜’ 묻는가? ‘왜’를 묻는 우리는 ‘왜’의 무게를 아는가? ‘왜’를 묻는 우리는 ‘왜’ 묻는가?
 
 
2. “드러나지 못했던, ‘원하지 않음’.”

 

 


권력의 속성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적 정체성과 박탈당하는 사회적 정체성은 매우 다양하며, 교차하여 존재한다. 힘이 없는 자의 ‘원하지 않음’은 드러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힘이 없는 자는 ‘원하지 않음’을 주장하기 어렵다. 덧붙여, 아무리 그 ‘원하지 않음’을 주장해도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힘을 가진 자들은 ‘원하지 않음’에 대해 묻지 않을 것이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며, 알고 싶지 않아할 것이다.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원하지 않음’은 드러나지 못한다.
 
 
3. “‘원하는 사람/상태’와 ‘원하지 않는 사람/상태’는 대등하지 않다.”

 

 

 

 

‘왜’와 ‘원하지 않음’에 대해 이미 우리는 깨달았고 앞으로도 꾸준히 깨달을 것이지만, 성/폭력은 불균형한 권력 속에서 더 치졸하고 치밀하게 발생한다. 다시 말해, 권력은 성/폭력에서 치밀하고 치졸하게 사용되는데, 우리는 그 권력의 유무를 망각하기 쉽다. 망각하기 쉬운 주변에 산재해 있는 대등하지 않은 권력들 속에서, 그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오매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하지 않음’에 대한 감각이자 감수성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혹은 가지지 못한 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고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원하지 않음’을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4. “‘나’, ‘나와 너’, ‘우리들’, 그리고 ‘조직’”

 

 

성/폭력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나’와 ‘너’가 존재하고, ‘나와 너’가 구성하는 ‘우리들’이 존재하며, 그 ‘우리들’의 ‘조직/단체’가 존재한다. 행성인과 같은 인권단체의 성/폭력 사건에는 ‘나’도 있고, ‘너’도 있으며, ‘우리들’과 ‘조직/단체’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가해자와 피해자에게만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사건의 발생에서만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해결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 ‘우리들’과 ‘조직/단체’가 행성인과 같이 인간의 존엄함과 인권을 추구한다면, 더욱 더 그 모습은 달라야만 한다.
 
 
5.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질문이 나왔다.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 오매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될 수 있는 순간, 혹은 성/폭력 발생의 전과 후에서의 즉각적인 ‘행동’이라고 하셨다. 현장에서 혹은 성/폭력 발생의 전과 후에 우리는 그것을 즉시 중단시키기고 제지시키는 문제제기의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강조하셨다. 그 ‘행동’은 개개인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이라고. 그리고 덧붙여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자칫 피해서사가 모든 것을 잠식해버리면, 모두를 잠식해버리면, 해결과 치유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해결과 치유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야 한다. 성/폭력 사건과 가까이에서 그리고 멀리에서 모두. 경청과 옹호, 지지와 공감, 공정한 절차와 담당자를 선정하는 것 또한 물론이고.
 
 
6. “피해/권리/거절/욕망/선택/수용이 공존하는 섹슈얼리티-사회 상상하기”


상상하자.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 성소수자들의 인권단체에서의 평등을. 그 누구도 지금 당장 ‘정답은 이것이다’라고 얘기할 순 없다. 완성된 성평등을 인류가 아직 경험한 적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성평등은 영원히 과제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과제로만 남기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상상하자. 피해와 권리, 거절과 욕망, 선택과 수용이 공존하는 섹슈얼리티의 사회를 상상하자. 그리고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고찰하며 실천에 옮기자. 성/평등, 반성폭력은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함께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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