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7월 20일 행성인 사무실에서는 언니네트워크 더지 님을 모시고 7월 회원 모임 <평등에 대한 감수성 향상>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평등에 대한 감수성 향상> 프로그램은 행성인이 비대위를 구성한 뒤 단체 내외의 불평등과 위계를 돌아보고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어 이야기하며 함께 반성, 고민, 성찰해보고자 마련된 전체 회원 프로그램 입니다. 일정이나 거주하는 지역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참여를 못한 분들을 위해 이날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을 상세히 전해드릴게요. 


더지 님의 강의는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행성인은 공동체 인가요?”


행성인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가해자-피해자 관계에서의 사건 해결뿐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해결’을 모색해나가고 있습니다. 공동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의 전제는 그 사건이 공동체 내에서 벌어진 것으로서 공동체가 그 책임을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럼 행성인은 공동체 일까요? 어떤 공동체일까요? 그것을 규정하기 위해 더지 님은 먼저 행성인 사업/활동의 근간이자 행성인 내부의 조직 원리인 정관을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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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회원이라면 이러한 원칙에 대한 최소한의 형식적 동의가 필요합니다. 또 후원이라는 최소한의 참여 의무와 권리 또한 발생하죠.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동의 이외에 행성인을 공동체로 생각할 필연적 이유는 사실 없다고 더지님은 말합니다. 실제로도 행성인에 소속된 기간, 후원 금액, 실제 활동 여부를 막론하고 단체에 대해 회원 개개인이 느끼는 거리는 굉장히 차이가 나는데요. 거기에는 다양한 사회적/개인적 배경, 행성인 내외의 관계, 친밀감, 단체 내에서 속한 조직의 책임과 권한 등 차이를 낳는 많은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를 가로지르는 언어적, 문화적, 심리적 공감대가 행성인을 공동체로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언어적, 문화적, 심리적 공감대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더지님은 그것을 ‘농담에 대한 공감대’로 간단히 이해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농담이 통하는, 농담에 흔쾌히 웃을 수 있는 곳’으로 정리해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어떤 농담에는 무례하게 느껴져서 웃을 수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공동체에서 소외, 불편, 불쾌 등 다양한 감정과 함께 중심에서 주변으로, 내부에서 외부로 배제거나 튕겨져 나오는 기분을 느끼게 되지요. 나만 빼고 다들 그 농담이 통하는 느낌일 때 더 그렇고요. 언어적, 문화적, 심리적 공감대를 더지님은 농담에 비유했지만, 집단 내에서 행해지고 통용되는 언어적 비언어적 (신체적 등) 커뮤니케이션이라면 다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행성인은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있을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성인에서도 이렇게 불편, 안전하지 않음, 불평등함을 경험한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불편하게 만든 회원, 불편함을 경험한 회원, 어찌할지 모르거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여 방관한 회원들이 모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단체인 만큼 피해/가해/방관 경험이 모두 있는 회원들도 많습니다. 더지님은 ‘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다는 것은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권력과 불평등을 드러내는 작업 속에서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회문제부터 일상의 성찰까지 아우르는 작업이라는 것이지요. 조직 내 일상에 녹아있고 발휘되는 권력을 서로 이야기하고 파악하며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었습니다.


그 연습 차원에서 ‘채식과 육식, 그리고 뒷풀이’로 이 단체 내의 권력 분석과 대안 찾기를 진행했습니다.


총회 뒷풀이 장소 섭외 역할을 맡았다. 저녁식사 장소를 예약해야 한다. 총회 참여자 중에는 채식인도 있다. 단체 뒷풀이는 주로 치킨집에서 했는데, 채식을 하는 회원들은 이를 이유로 종종 뒷풀이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수소문해보았지만 채식 식당은 없었다. 다양한 안주가 있는 술집을 예약했다. 음식도 미리 주문해놓아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음식을 어떻게 주문할 것인가? 


1. 채식인을 한 테이블에 앉게하고 그 테이블에는 샐러드를 시킨다.

2. 각 테이블마다 고기, 해산물, 샐러드 세트를 시킨다.

3. 모든 테이블에 샐러드를 시킨다.


행성인 내에서 정말 흔히 접하게 되는 상황인데요. 더지님은 조마다 1, 2, 3의 의견을 임의로 맡도록 지정하여 각각의 이유를 만들고 주장, 논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마도 각자 평소에 생각하던 답을  선택할 경우, 특정 의견이 소수화 되어 각각의 대안들이 동일한 선상에서 이야기되지 못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게 이유와 우려점을 조에서 이야기한 뒤 각 조에서 나온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모두가 차별받지 않아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위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게 참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함께 공감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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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는 불평등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파악, 분석 및 대안을 모색할 때 참고해볼 수 있는 질문들 입니다. 앞서 총회 뒷풀이 상황을 보더라도 채식 음식점이 근방에 없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미비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메밀’이나 ‘복숭아’ 등의 알러지가 있는 특정 개인을 배려하는 것과 운동적 실천으로서의 채식은 다른 사안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여러 고려할 지점들이 얽혀 있는 문제는 단지 뒷풀이 하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등점검표를 함께 체크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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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불평등을 놓고 이 문제가 사회에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행성인에서도 발생하는지를 파악해보는 표인데요. 각 조에서 토론을 통해 표를 채우고 그것을 공유했습니다. 원래 더지님은 이 과정을 통해 각 경우들 중 행성인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뽑으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로 문제 인식이 다른 번호들이 있었어요. 즉 어느 조는 행성인에 그러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조에서는 없다고 생각한, 문제의식이 나뉘어진 번호가 있었던 것이지요.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동으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기에 오히려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은 판단이 미뤄지거나 문제가 공론화 되기 어렵게 되는 것일 수도 있기에 교육에서 다루어 보기로 했습니다. 


서로 인식이 달랐던 번호는 5번, 9번, 11번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5번 조, 9번 조, 11번 조로 나누어 다시 조을 편성했습니다. 5번의 경우 저 표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되어있었지만, ‘행성인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이 발언권이 크다’로 변경해서 진행했어요. 9번은 행성인 사무국이나 운영위원, 팀장, 모임장이 단체의 서비스 제공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보며 진행했습니다. 11번은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번호별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모여 저 번호의 내용에 해당하는 실제 일어났던 사례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에피소드 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리고 만든 이야기를 공유하며 작동된 권력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보았습니다. 


5번 조에서는 팀회의에서 특정 사안의 활동 전략에 대해 오래 활동한 회원 두어명이 주도하며 논쟁을 하고, 회의 진행을 맡은 사람은 서기까지 같이 하느라 중재를 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신입인 회원은 정보 부족으로 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차하고 상황이 급해 보이는데 이야기를 끊고 일일이 물어보기 주저되는 상황을 에피소드로 만들었습니다. 정보가 오래 활동한 사람에게 누적되기에 발생되는 불평등, 소외의 문제로 어떤 권력이 발생했는지를 드러냈는데요. 반대로 나이나 활동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 회의에 참여하기로 했으면 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것들에 대해 각자 사전에 준비를 해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에게 불평등이나 소외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역시 의견이 갈리는 번호 였기에 여러 의견이 나왔던 것 같아요. 더지님은 이것이 행성인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며 많은 곳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좀더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회의 안건과 자료가 미리 공유되었는가, 사전에 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했는가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요. 또 반대로 대안 마련 시 이부분을 놓치지 않고 가는 것의 필요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9번 조에서는 행성인 행사 상황 시 사무국원의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회원 모임 시작 전 행성인 사무실을 못 찾겠으니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은 상임 활동가가 행사 준비 중이라 전화로만 길을 안내한 상황, 행사 후 사무실이 어지럽혀져 있고 쓰레기통에는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쓰레기가 넘치는데 회원들이 정리를 함께 하지 않고 가버려 상임활동가 혼자 남아 청소를 하고 있는 상황을 에피소드화 시켰어요. SNS에 전화를 했던 회원이 사무실 간판도 없는데 전화로만 안내해준 것을 아쉬워하는 글이 올라왔고, 그 글을 본 다른 회원이 사무국원에게 전화해서 간판 비용이나 간판을 달았을 경우 우려되는 문제를 말하는 사무국원 말은 무시한 채 전에 자신이 간판을 달라고 하지 않았냐며 전화를 끊어버린 가상 에피소드였습니다. 흔히 권력이 지위에서 발생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 이 단체의 후원자이기에 상임 활동가에게 서비스를 무조건 적으로 요구 하는 것, 일이 A에서 Z로 끝나는 것을 모르고 D에서 G까지만 활동으로 기억하며 그 나머지를 당연한 서비스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리로 치면 재료를 냄비에 넣어 익혀서 그릇에 내오는 것 외에도 장을 봐오고 재료를 씻어 손질하고, 다 먹은 뒤 설거지를 하고 찬장에 그릇을 정리해 넣는 것까지가 요리의 과정임을 상상하지 못하는 경우의 상황인 것이지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더지님은 공감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회원들과 가져보는 것 말이죠. 이 에피소드 덕분에 7월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모두 함께 남아 정말 열심히 사무실 정돈을 했습니다. 원래도 정돈을 함께 했으나 의자나 책상 배치 정돈 정도만 함께하고, 후에 설거지나 쓰레기 분리수거 등은 모임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던 사람들이 주로 했었거든요. 


11번 조에서는 공식 뒷풀이 이후 2, 3차 뒷풀이에서 술에 취해 어깨를 만지거나 팔짱 끼고 손잡는 것, 또 서로 다른 성이지만 동성애자 사이이기에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으니 스킨쉽이 희롱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 그리고 예전에 MT 에서 있었던 술자리 게임을 사례로 만들었습니다. 모두 이것이 문제 상황이라고 함께 느꼈습니다. 아까 번호에서 의견이 갈렸던 것은 회원들 각각의 활동반경, 활동했던 시기(과거에 더 많이 발생함), 활동하는 팀 분위기, 팀, 소모임에서의 감수성 차이, 개인들의 뒷풀이에서 남아있는 시간 등에 따라 행성인에서의 경험  차이 때문이었더라고요. 


저는 권력은 한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번호에서는 오래 활동하고 장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 의해 권력이 발생하고, 또 다른 번호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 권력이 발생하는 것과 같이 권력이 작동되는 상황을 사안 사안마다 세심히 보아야 구체적인 대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요즘 현실에서 매순간 경험하는 터라 더더욱 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회원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계실 회원들과 함께 고민을 앞으로 계속 나누어가면 그 과정 자체로부터 조직 문화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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