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동인련의 청소년 대표 프로그램으로 잡아가고 있는 무지개학교 놀토반, 혹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그 비하인드 스토리 궁금하지 않아?
작년,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밤에 종로의 한 카페에서 동인련 청소년 자긍심팀 회의가 있었어. 겨울방학에 진행했었던 청소년 겨울 세미나를 바탕으로 놀토반이 만들어진 거지. 세미나를 통해서, 정기적인 청소년 프로그램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의견이 나왔어. 그렇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많은 청소년 회원들이 활동하진 않았지. 그래서 청소년들이 왜 동인련 참여를 어려워할까를 느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우리는 운동 용어에 대한 공유 부족이나 함께 흥미꺼리를 찾기를 어려워하거나, 청소년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재하다는 의견 등이 나왔고, 그런 의견을 개선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그래서 우리는 2009년에는 월 1회 청소년 프로그램 운영을 주기적으로 하고, 청소년 활동에 많은 관심을 쏟기로 한 거야.
이게 놀토반의 첫 시작이야. 우리도 처음엔 너무나 막연했어! 월 1회 청소년 프로그램으론 무엇을 하면 좋을까, 청소년 친구들이 많이 올까, 어려워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수많은 걱정이 들었거든. 그래서 청소년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함께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퀴어영화 보기나 그저 청소년 친구들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그런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놀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기로 한거였거든.
참, 원래 제목 후보들은 놀토반뿐만 아니라, 틴에이저 레인보우 파워, 레인보우 에듀케이션, 미션 스쿨, 언니들이 알려주는 기갈파티(ㅋㅋ)등 많은 후보들이 많았지만, 역시 학교에 묶여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올 수 있는 시간이 놀토로 정해져서, 무지개학교 놀토반으로 이름이 정해진거야.
첫 번째 시간, 혹시 첫 번째 시간에 온 사람! 놀토반 진행을 한 내가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에 뭘 했는지 기억나? 바로 규칙 정하기야. 아무래도 많은 참가자들을 생각했고, 또 모르는 사람도 많이 올 것 같아서 서로가 다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규칙을 했어. 혹시 그 규칙 기억나? 우선, 서로 존중하면서 생각하고 말하기.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헛 튀어나가는 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거든. 그리고 아는 사람끼리라고 프로그램 진행할 땐 다 같이 존댓말 사용하기. 프로그램을 하다가 친한 사람들끼리만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끼리끼리 놀다보면, 처음오고 소심한 참가자는 소외되는 느낌을 받을까봐 함께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했어. 그리고 뭐 비흡연자를 위해서 밖에서 피우기 등등.
그런 규칙들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지켜진 건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서로를 위해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는 건 참 좋았어.
그리고 영화 ‘ 하지만 난 치어리더인걸. ’ 을 함께 보았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줘서 추웠던 사무실이 후끈후끈했었지. 그리고 영화를 보고 많은 참가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 놀토반 첫 번째 시간을 대 성공이었어! 많은 참가자들과 청소년 친구들의 반응도 너무 좋았거든.
9월 무지개놀토반 조별 프로그램
두 번째 시간, 이번에는 내가 추천했던 영화 ‘ 램프의 영화 ’ 를 보았지! 퀴어 영화는 아니지만, 동성애 코드가 들어간 달달한 국내 하이틴 영화였거든. 참가자 모두가 너무나 좋은 반응을 보였어. 그리고 소설 ‘ 엠 아이 블루 ’ 를 함께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어. 기존의 영화만 보고 끝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설을 통해서 참가자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
그렇지만, 두 번째 시간에는 동인련 내에 슬픈 소식으로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있었어. 그래도 그 당시 스탭이었던 정욜은 분위기나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는데, 많은 청소년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고 했어. 역시 청소년들이 동인련 사무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지.
혹시 두 번째 시간 웹자보 기억나? 분홍색 바탕에 달콤한 웹자보였잖아. ‘고민고민하디망’ 을 머릿속에 남긴 그 웹자보 말이야. 그런 웹자보가 무려 회원수가 63만 명이 넘어가는 다음의 유명한 큰 카페에 불펌이 된 사건이 있었던 거 혹시 아니? 우리 웹자보가 올라간 지 1시간도 안 된 사이에 무려 조회수는 3천 건을 넘었고, 덧글도 300개를 넘어갔어. 마침 내가 그 카페 회원이었고 얼른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해서 금방 글은 내려갔지만, 우리는 민감한 청소년 프로그램이다보니 아웃팅을 너무나 걱정했지. 그래도 다행히 큰 사건은 없었고, 다행히 그 카페 회원 분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
첫 번째 시간과 두 번째 시간이 특별한 날에 진행했었지. 아마 참가자들은 알꺼야! 첫 번째 시간은 발렌타인데이에 열렸고, 두 번째 시간은 화이트데이 때 열렸어. 그래서 우리는 달콤한 도넛, 초콜릿과 상큼한 사탕을 입에 한아름 물고 프로그램을 함께했지.
세 번째 시간, 아쉽지만 세 번째 시간은 예정 돼있던 4월 달도 아니고, 5월 달도 아니고! 6월 달도 아닌 7월 달에 열렸어. 무려 세 달이나 밀렸지. 故 육우당 추모제와 청소년 캠폐인, 그리고 퀴어퍼레이드 준비로 인해서 동인련과 스탭들이 너무나 바쁜 나머지 미루고 미뤄진 거지. 세 번째 시간엔 ‘너(네)가 만드는 막장드라마‘라는 모의 상황극을 진행했어. 조를 짜서 각자의 키워드를 가지고 시나리오와 상황을 즉흥적으로 짜서 연극을 했는데, 다들 소심하게 안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로 끼와 재미로 연극을 빛내 주었다구.
네 번째 시간, 여름방학이었던 8월에는 최초의 성소수자 정치인이었던 ‘하비밀크’ 의 영화를 함께 보면서 ‘내가 만약 성소수자 정치인 후보로 나설 때’ 내세울 공약을 작성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 영화 또한 너무나 많은 교훈을 주는 시간이었고, 공약을 작성하는 시간에는 의외로 지겹고 어려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톡톡 튀고 공감 가는 공약을 많이 내세웠어. 꼭 동성애자들에게만 필요한 공약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사회의 이슈가 되는 쟁점을 가지고도 많은 공약을 내세웠어.
9월 무지개놀토반 반장선거 투표모습
이렇게 어느새 훌쩍 1학기가 지나갔어. 처음에 계획했던 ‘ 월 1회 청소년 프로그램 ’ 으로 시작된 놀토반이 어느새 50명이 넘는 청소년이 다녀갔어. 그리고 놀토반이 생긴 뒤로 동인련 프로그램에 청소년 친구들이 많은 참여를 했지.
정말 맨 처음에 내가 기획한 놀토반은 ‘ 그저 청소년들이 쉬고 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와 여건 정도를 만드는 간단하고 편한 프로그램 ’ 을 생각했어. 물론 지금은 성격이 많이 변해있지만, 이것도 많은 청소년들의 의견과 건의사항을 통해서 바뀌었다고 생각해. 놀토반은 ‘ 우리가 정말 원하는 학교 ’ 같은 거야. 모두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고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지. 홍보부터 시작해서 웹자보 문안, 웹자보 디자인 등 모두 청소년이 직접 만들어. 기존의 기획회의가 아니라 우리는 학급회의야.
현 사회의 학교는 너무나 억압적이고 강압적이고 그저 입시경쟁만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지. 어쩌면 나는 그런 학교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쉼’을 주고 싶어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걸지도 몰라. 앞으로 남은 2학기와 그리고 내년에 또 시즌2로 돌아올지 모르는 놀토반, 그리고 2010년 동인련 청소년 자긍심 팀의 프로젝트 등 많은 기대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상 1학기 놀토반 반장이었던 은찬이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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