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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by 행성인 2024. 5. 26.
기획의 말

2024년 한 해 동안 '상임활동가의 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행성인 네 명의 상임활동가들은 종횡무진하며 단체 안팎에서 활동을 하는데요, 한 달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무엇을 보고 어떤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지 함께 만나봅시다.

 

 

지오


5월 주말의 시작과 끝을 야외 운동을 하며 보냈습니다. 4일 토요일엔 여성마라톤대회에 참가했고 26일 일요일엔 풋살 경기를 뛰었어요. 

 

마라톤 대회에는 개인으로 신청해서 참여했는데 행성인 회원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행성인 회원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 활동가들도 많이 만나서 마치 활동가대회에 온 것같았어요. 내년엔 행성인으로 단체 신청을 하고 회원들과 달리기도 하고 끝나면 돗자리 깔아놓고 도시락 먹으며 아침 소풍 온 것처럼 즐겨보고 싶어요. 행성인 운영위원 해리님도 내년엔 회원들과 함께 오고싶다며 잊지 않고 추진해보겠다 했으니 가능성이 부쩍 높아보여요. 우리 2025년엔 무지개 달고 함께 뛰어요. 

 

풋살 경기는 행성인 소모임 큐리블이 다른 퀴어 풋살팀들과 경기가 있어 응원차 참여했어요. 그런데 막상 응원을 하다보니 제 발이 부릉부릉하더라고요. 왜이렇게 신나보이던지요. 비가 내려서 온몸이 흠뻑 젖어 뛰어다니는데 저도 막막 마음이 달려가는거죠. 한 타임인 15분만 뛰어 보자고 부탁을 해서 골키퍼를 맡았어요. 제법 막았답니다^^ 예전에 프리미어리그를 보던 것이 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같았어요. 재미가 있어서 한 타임만 뛴대놓고 무려 세 타임이나 뛰었어요. 다행히 큐리블에 교체 멤버가 부족해서 민폐는 아니었네요. 다같이 공을 차며 뛰고 부대끼는 경기장 안에서 모처럼 거리낌없이 웃고 있는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몸을 쓰는 일은 그런 것 같아요. 하기 전엔 귀찮고 하고나면 근육통에 시달려 이걸 왜 하지? 싶지만 몸을 쓰는 그 순간, 땀흘리며 무언가에 전념하는 그 순간에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단 말이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도 들고요. 지난 주 다른 모임에서 퀴어 해방이라는 단어가 너무 모호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비가 와서 그랬을까요. 평소 몸을 하도 안써서 그랬을까요. 녹색 경기장 안에서의 기분을 떠올리면 해방감만큼 적확한 단어가 없는 것만 같아요. 여러분도 느껴보고 싶지 않나요? 현재 큐리블에서 절찬 회원 모집 중이랍니다. 아무래도 더 미룰 것 없이 저도 큐리블 멤버가 되어야 하겠어요.



 

오소리

 

저희 부부는 ‘소소부부’라는 이름으로 혼인평등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저희 부부는 각자가 해당 의제뿐만 아니라 HIV/AIDS 인권, 군인권,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트랜스젠더 인권, 성소수자 노동권 등 성소수자 인권 전반에 걸쳐 활동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5월부터 각자가 활동하며 경험한 내용들을 토대로 성소수자 인권 의제들에 대해 알리고자 민중언론 <참세상>에 연재를 시작합니다. 코너의 이름은 <소소부부의 Love Wins> 인데요. ‘사랑이 이긴다’는 말은 그저 구호가 아닌 변화에 대한 확신을 설명하는 선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 코너의 이름을 지어봤습니다. <소소부부의 Love Wins>를 통해 산재한 성소수자 인권 의제가 많은 이들에게 가 닿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다가오는 5월 25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벌써 5주년을 맞이했네요.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저희 부부가 만나서 처음으로 떠났던 여행지를 그대로 복기해보는 여행을 떠납니다. 이 글이 발행될 때면 여행을 다녀온 뒤겠네요.

 

저희 부부의 첫 여행은 만나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강원도 계곡과 바다로 떠난 여행이었는데요. 이건 벌써 10년 전이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의 추억이 깃든 곳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설레는 기분입니다. 그 때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는데, 지금은 푸릇푸릇한 나무와 청량한 바다가 저희를 반기겠지요? 여행으로 리프레쉬 하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10년 전 그때 그 장소에 다시 찾아가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신기하게도 지형지물이 거의 그대로였다. 변한 건 계절과 나이 먹은 우리뿐...



 

남웅

 

1년 조금 넘게 알고 지낸 상대가 연초에 갑자기 증발했다. 완전한 잠수는 아니고, 쉬겠다는 말만 하고 연락을 끊은 거다. 종속적 파트너십은 아니고, 그렇다고 애착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말하면 fwb에서 f가 좀 더 강화된 비독점 wb 정도가 근접한 설명이다. 

 

그냥 사라졌으면 몇일 욕하다가 지웠을텐데, 본인이 심신상태가 좋지 않음을 사진까지 올리면서 알린 직후에 연락을 끊은거라 마음에 걸린다. 원하면 관계를 정리해도 좋다고 종종 얘기하는데 읽기만 하고 답은 없다. 보통의 지인이면 SNS로 소식을 듣거나 나눴을텐데 그런 것도 없고 데이팅어플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보내는 카톡을 확인하는 걸 보면 살아는 있다. 내가 모르는 그의 사정과 만남의 채널이 있겠거니 싶은데 SNS를 통해 사람들의 근황과 안부를 일상처럼 꿰는 일이 익숙해졌지만, 그런 것도 없이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신기해하는 지금의 느낌은 좀 새삼스럽다. 

 

마음이 아프거나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왜 그렇게 숨었지?' 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붙잡아서 묻고싶지만, 안다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선을 지킨다. 그보다도, 후지고 별로인 인간이라고 책망하기에 앞서 이 관계는 뭐였을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친구나 애인, 부부와 같은 규범적 범주는 아닌데 지속성 있는 친밀한 관계, 그런데 바깥에 공유하거나 발을 넓히지는 않는다. 불륜도 뭣도 아니지만(쓰고 보니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말 뭣도 아닌 채로 지속할 수 있는 관계...는 언제고 깊이 들어갈 수 있지만 그만큼 언제라도 종료하거나 지금처럼 무기한 정지(당)할 수도 있다. 이런 관계를 이 나이에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별거 있나 생각하는데, 이것도 퀴어라면 퀴어지 싶고 ㅅㅂ(모르겠으니까 걍 웃자)

 

원하면 관계를 정리해도 좋다고 남긴 메세지는 사실 나한테 보낸 것이기도 하다. 언제 정리해도 타격도 흔적도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간신히 잡고 있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언제 정리해도 타격도 흔적도 없는 의미없는 만남으로 사라지는게 아쉬워서 얄팍한 미련을 갖는 시늉이라도 하는 중인지 모른다.  

 

 

 

호림

출처: 보일러룸 ( https://boilerroom.tv/ )

 

사마 압둘하디(Sama’ Abdulhadi)는 “팔레스타인 테크노 씬의 여왕”이라고 알려진 테크노 디제이이자 음악 프로듀서다. 그녀는 1990년 요르단에서 태어났다. 1969년, 그녀의 할머니인 이쌈 압둘하디(Issam Abdulhadi)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한 여성 시위자들의 죽음에 항거하는 연좌 시위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모두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3살이던 1993년에 이르러서야 가족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7세에 부상으로 인해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그녀에게 아버지는 음악을 즐기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에 거주하며 음악을 공부하고 사운드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프랑스에서 본격적인 디제이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는 투어가 잦은 디제이라는 직업을 사실상 할 수 없기 때문에 고향과 가족, 자신의 사람들이 있는 땅을 떠나 이주해야 했다. 

 

제네바 출장의 여독을 풀며 집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지난 주말,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사마 압둘하디가 5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공연한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기있는 디제이로 만들어 준) 보일러룸 디제이셋을 제안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재생 버튼을 누른 이후 그녀의 음악에, 퍼포먼스에, 음악을 즐기는 영상 속 사람들의 몸짓에, 그 모든 것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작년 11월 발매 된 그녀의 믹스음반을 들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저런 기사와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사마 압둘하디는 한 인터뷰에서 디제잉은 그녀가 “여성이자 아랍인, 팔레스타인인으로서 견뎌야 하는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가지 길이라고 여긴다”고 답한 적이 있다. 동시에 그녀는 음악과 무대라는 플랫폼을 통해 그 모든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고발하고, 연대의 방법을 알리고, 팔레스타인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앞둔 지금,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춤을 추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습에 분노하고 낙담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저항과 연대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평화와 해방을 염원하는 사람에게, 그녀의 음악과 영상을 추천하고 싶다. Peace, love, unity and respect for everyone.   

 

 

https://www.youtube.com/watch?v=x9VYKrtzi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