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젠더를 바꾼다는 것
젠더를 바꾼다는 것, 우리 사회는 흔히 그것을 트랜지션이라고 부른다. “전환”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레버를 당기는 것처럼 손쉽게 바뀔 것 같지만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이 그리 간단할 리 없다. 트랜스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트랜지션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무척 어려울 지 모른다. 그러나 책의 저자인 먼로는 “우리는 모두 트랜지션”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전환의 시기를 거쳐간다. 성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학창 시절, 연애, 사랑, 인종, 일, 가족, 우울과 같은 인생의 여러 조각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의 저자인 먼로 버그도프에게 트랜지션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었던, 유일하면서도 가장 용감한 자기 사랑의 행위”이다. 트랜지션은 때로는 지난하고 너무 아픈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동시에 그 어두운 우울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려는 단단한 의지가 쌓여가는 과정이다. 젠더를 바꾸는 일은 그래서 사실 삶의 모든 국면과 맞닿아 있다. 먼로의 말처럼, “분명한 게 있다면, 그건 모든 건 변한다는 것”이고 이 책은 젠더를 축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혐오에 맞서서
모든 해방 운동의 핵심은 직접 경험, 정체성 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습에 제약받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를 실현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어야 마땅하다(31쪽).
저자가 사춘기 시절을 보낸 곳은 먼 타지이지만 어떤 혐오의 양상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2024년 한국의 현실 속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1988년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 보수 정부에서 통과된 지방자치법 수정안 28조는 학교를 포함한 지역 당국이 “고의로 동성애를 촉진하거나 동성애를 촉진하는 의도를 지닌 자료를 출판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이는 작년부터 논란이 되던 성평등, 성교육 도서 검열과 아이들을 동성애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보수단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한편으로는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혐오하는 자들의 논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고 당최 창의적이지가 않아서 복잡하고 다채로운 우리를 담아낼 수 없다. 약자는 지배세력의 언어를 가질 수 없어서 중첩되는 차별을 경험하지만 공고해 보이는 그들의 언어도 사실은 천편일률적이기도 하다. 이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에 기반한 혐오를 내면화한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트랜지션이라는 복잡다단한 과정 속 경험의 조각과 저자가 그것을 그려내는 섬세하고 조밀한 언어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혐오에 맞서서 우리는 항상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려고 한다. 괴롭더라도 먼로처럼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현실과 진실을 애써 찾아나서”야만 공고하게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 구조에 맞설 수 있다. 누구도 누구를 혐오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퀴어가 커밍아웃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혐오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토로하는 일은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전환의 시작”이자 “내가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의 내가 되는 일을 막을 수도 없다는 깨달음”이다. 모든 정체성이 포용되고 인정받는 사회를 꿈꾸는 먼로 옆에서 우리도 혐오에 맞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이분법을 넘어서
내가 사회가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에 점점 더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길거리 성희롱을 당하기 시작했다. 길에서 사람들이 내게 보이는 반응들과 무척이나 기묘한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위험과 대상화가 지니는 모순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게 손가락질하고, 소리를 지르고, 침을 뱉고, 내가 아이들 곁에 가지 못하게 막아서며 나를 괴물 취급했지만, 동시에 내가 트랜스 여성인 걸 알면서도 극도로 성적인 방식으로 나를 대상화하는 남자들이 나를 따라다녔다(139쪽).
책은 먼로의 개인적인 여정을 담고 있지만 때로는 날카롭게 성별 이분법으로 점철된 가부장제를 비판해낸다. 그건 끊임없이 여성성을 수행하면서만 ‘여성’이라는 사회적 집단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도 동시에 ‘여성’이 아닌 존재로 추방 받는 트랜스 여성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트랜스 혐오, 특히 트랜스 여성 혐오에 가장 빈번히 나오는 논리는 그들이 여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결국 트랜스 여성이 여성성을 수행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성에게는 여성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성별 이분법”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지겹도록 받는 질문인 “그럼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건 언제예요?”에 대한 답변은 불행히도 일부 성별 이분법에 기대게 된다. 호르몬을 처방받거나 법적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사회적 집단에 귀속감을 느껴왔는지 증명해야만 한다. 우리의 젠더 정체성은 둘로만 나뉠 수 없는 훨씬 다양한 색채를 가질 수 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에 들기까지 하는 모든 행동과 표현이 나의 젠더를 드러낸다면, 그걸 어떻게 두 가지로만 감히 나눌 수 있겠는가.
젠더를 바꾼다는 것은 그래서 때로는 “내 몸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내 삶에 가져다주는” 일이다. 시스젠더 이성애 규범에 맞춰서 틀에 박힌 여성성과 남성성을 수행하는 일에 대한 불편감은 비단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먼로는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과도하게 남성적인 남자가 내 여성성을 알아봐주어야 진짜 여성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적는다. 공고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사회에서 이런 생각은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 동성애자 남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체성과 당사자성의 벽을 넘어 성별 이분법을 초월하고 싶은 우리에게 먼로의 목소리와 이야기는 큰 힘이 된다.
어둠에서 나온 빛
먼로의 이야기는 때로는 아주 어둡다. 책을 넘기다 보면 트랜스젠더에게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흑인 트랜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일의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다.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에게 잔혹하게 두 시간 동안 강간을 당하면서 먼로는 그를 공격할 물건을 찾으면서도 “흑인 트랜스 여성이 시체와 함께 발견되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 트랜스, 여성이라는 교차적인 지점에 놓인 그녀가 살면서 경험해온 폭력과 차별은 감히 형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상처에 침잠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위한 빛을 찾아나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외면한 가족부터 자신을 부당하게 해고한 회사까지 그녀는 삶이 가질 수 있는 잔혹함에 대항해서 다시 관계를 다지고 활동가로서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먼로가 트랜지션을 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들은 활동가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차별과 트라우마로 얼룩진 삶을 살아왔지만 그녀는 “인간인 우리 모두의 정체성 내에는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권리를 박탈할 잠재력을 가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특권이 끼칠 수 있는 해악의 잠재성을 인정해만 “서로의 진정한 앨라이”가 되고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녀는 “내가 가진 행동주의란 결국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의 경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행동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와 닮아 있을 것이다. 나도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사랑하고 연대할지 고민하다가 행성인을 찾아 흘러왔다. 책을 덮은 뒤에도 먼로의 강렬하면서도 다정한 활동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요즘은 투쟁하지 않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삶에서 투쟁할 일이 없어지길 바라고 있는데, 먼로와의 독서 경험은 다시금 행성인의 슬로건을 떠올리게 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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