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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동성애 혐오

동성애혐오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by 행성인 2010. 10. 20.


최근 동성애혐오 조장 세력의 준동에 대항하는 활동을 조직하면서 우리는 많은 고민 지점에 부딪혔다. 저들의 목소리에 일일이 반응하면 저들만 부각시켜주는 게 아닐까? 왜 하필 ‘지금’인가? 동성애혐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까지 동성애혐오에 대항한 활동을 돌아보면서 동성애혐오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해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썼다.

 

2010년 5월 한참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화제가 되고 있었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로부터 동성애자들의 삶을 꽤 진지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오늘날 동성애 코드나 소재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가족극으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자를 가족 속에서 그린다는 얘기를 듣고 나또한 드라마의 전개가 사뭇 궁금해지던 터였다. 극중 남성 동성애자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내용이 방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친구들이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드라마는 현실의 재현보다는 캠페인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인생은 아름다워>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과 용기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보수 일간지에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왠말이냐!”는 낯익은 구호가 등장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방하고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광고가 실린 것이다. 광고를 낸 곳은 2007년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도록 활약한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하 동반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광고를 보고 분노했다. 저열한 거짓말로 도배된 그 광고는 상대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환멸과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들은 무언가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에서 대응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규탄 성명서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도저히 글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신속하게 그 광고에 대응하는 입장을 낸 곳은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뿐이었다.

 

드라마는 계속 인기가 있었고 동반국 광고는 별 반향을 얻지 못하고 조롱당하는 듯했다. 그러나 동성애혐오를 부추기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은 분명했고, 저들의 목소리를 그냥 무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침 퀴어 퍼레이드가 다가오고 있었고 민주노동 당성소수자위원회의 제안으로 동반국 대응 광고 모금이 진행됐다. 이날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이 동반국에 분노하고 그들에 맞서 행동하길 원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장대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60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물론 이 돈은 신문 광고를 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또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이 점점 더 조직화하고 공세적인 활동을 펼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동성애혐오에 맞선 행동을 더 폭넓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즉, ‘동성애혐오’에 맞서 다양한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함께 행동하려면 ‘동성애혐오’에 초점을 맞춰 운동을 조직해야 했다.

 

우리는 성소수자 단체들과 차별없는 세상을 여기는 기독인연대(이하 차세기연)에게 동성애혐오에 함께 대응하는 틀을 제안했고 ‘동성애혐오반대공동행동 열림’(이하 열림)이 탄생했다. 차세기연의 참여는 특히 중요했다. 2007년 차세기연의 등장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였다. 보수적 기독교 세력이 자신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굴면서 동성애혐오 조장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기독교에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보수 기독교 세력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최근에는 종교적 색체를 많이 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은 보수 기독세력인 동성애혐오 세력과 맞서는 데서 종교계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그 사이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미국 외교부 동성애자 모임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최한 행사의 장소 사용을 불허하는 사건이 있었다. 동반국과 같은 동성애혐오 세력은 공적 공간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사건은 차별의 현실을 재확인해줬을 뿐 아니라 동성애혐오 세력의 목소리가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동성애혐오 조장에 맞서 행동할 필요성이 재확인된 것이다. 다행히 무지개행동은 신속하게 항의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소마 미술관 앞에서 항의 행동도 벌였다. “키스 해링 액숀 데이”라는 제목으로 벌어진 항의 행동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날 관람객들은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모자이크 만들기 퍼포먼스에 키스 해링 전을 보러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여럿 참여하기도 했다. 우리는 냉담함에 위축되기보다는 관심과 지지를 확인했다.

 

열림은 이런 상황에서 첫 번째 활동으로 5월 동반국의 동성애혐오 광고에 맞대응하는 신문광고를 모금을 이어나가고 열림 명의로 게재하기로 했다. 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금 참여를 호소하는 홍보물을 올리고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에 동참을 제안했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동성애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려는 열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모금 홍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동참했고 단체들도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3주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개인 213명과 단체 32곳이 300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 대학 성소수자 모임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열림’의 호소에 응답해 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익명의 많은 개인들이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며 모금에 참여한 것이 소중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9월 13일자 한겨레신문에 “동성애 혐오 없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혐오 조장에 반대하는 하단 광고가 실릴 수 있었다.



광고가 나가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뿌듯함을 느꼈다. 타이밍은 좀 아쉬웠지만 혐오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함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다.

 

열림은 광고 캠페인을 마친 뒤 긴 호흡으로 동성애혐오에 어떻게 맞설지 고민하고 우리 자신을 다지면서 행동을 기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여유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동성애자인권 지지광고가 나가기 바로 직전 옛 동반국 세력들은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이하 바성연)과 ‘동성애반대포럼’이라는 단체를 발족했고 며칠 뒤 또다시 조선일보에 <인생은 아름다워>를 공격하는 광고를 냈다. 이번 광고의 주최는 바성연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참교육 전국 어머니모임’, 다양한 보수 단체들이었다. 광고 문구는 ‘며느리가 남자라니’보다 기발하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편견에 노골적으로 기댔다. 에이즈 공포를 이용하고 동성애는 학습에 의한 것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아주 저열하지만 혐오 조장에는 탁월한 타이틀이었다.


10월 6일 동성애 혐오 규탄 기자회견



동성애혐오 세력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뿐만 아니라 영화 <친구사이?> 청소년관람불가 처분 취소 판결을 비난하면서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논리를 다시금 강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숱한 청소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논리를 되풀이하며 이들은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 행세를 한다. 무엇보다 동성애가 에이즈 전파의 주범이라는 낡은 논리를 이용해 에이즈에 대한 낙인과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정말이지 악질적이다. 저들은 에이즈의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 즉 사람들이 에이즈로 고통 받지 않도록 하는 것과는 한 치의 관심도 없다.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려면, 빈곤과 섹슈얼리티 억압, 제약회사의 특허권이 사라져야 한다. 대표적인 반동성애 주창자인 교황청은 콘돔 사용에도 반대해 왔고 따라서 에이즈 확산의 가장 큰 주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즉각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열림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시민사회인권단체들에 제안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는 기독인들을 비롯해 보건의료단체, 에이즈 감염인 단체 등이 한 목소리로 문제는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혐오”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긴급하게 준비했음에도 기자회견문에 26개 단체들이 연명했고, 기자회견에도 20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날 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발언이 동성애혐오가 낳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다. 같은 반 친구를 발로 밟으면서 “게이는 밟아야 돼. 게이니까”하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바성연은 이런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10월 6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쓴 메시지



동성애혐오 세력은 정부와 권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법무부는 교도소에서 <인생은 아름다워> 방영을 금지했고, 국정감사에서 국회조찬기도회 소속 국회의원은 <친구사이?> 청소년관람불가 처분 취소 판결을 공격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언론을 통해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는 29일에는 국회에서 ‘동성애반대포럼’이 차별금지법 입법에 반대하는 토론회를 연다.

 

성소수자 운동은 물론 동성애혐오 세력에 항의하는 행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지금도 29일 국회에서 열리는 ‘동성애반대포럼’의 토론회에 항의하는 행동이 준비되고 있다. 동성애혐오에 어떻게 대응할지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될 예정이다.

 

동성애혐오 세력의 활동이 본격화하고 그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면서 동성애혐오와 그에 맞선 투쟁에 대해 사람들과 이런 저런 토론을 나누게 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동성애혐오는 어디서 비롯하는지,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지 등을 둘러싸고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동성애자 권리가 많은 진전을 이룬 서구 세계에서 최근 다시 동성애혐오 범죄와 동성애자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훈을 얻고 이런 상황이 오늘날 한국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살펴볼 필요도 있었다. 이는 다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에 관한 물음과도 연결될 것이다.

 

동성애혐오 세력의 공세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확대에 대한 반발이라는 측면이 있다. 지난 20년 동안 동성애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되고 권리 운동이 성장하면서 사회적 이해와 인정이 (물론 아직 형편없이 부족하지만) 확대되면서 대중 매체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묘사와 재현도 증가했다. 청소년보호법에서 동성애차별 조항이 삭제됐고 국가인권위원회 법을 비롯해 성적 지향 차별 금지를 명문화한 법률들도 생겨났다. 진보정당들도 성소수자 권리 지지를 강령에 담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60년대 후반 이후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하면서 가시화와 사회적 용인, 평등이 진전되는 것에 대한 우파의 반발이 계속됐다.

 

그들은 우리가 성취한 자긍심과 우리의 공간, 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친구들의 존재를 끔찍이도 싫어하며 우리를 다시 골방에 처넣고 우리가 자기혐오와 수치심, 죄책감 속에서 살 것을 강요한다. 요컨대,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왜 어떤 때에는 자유와 평등이 각광 받고, 어떤 때는 혐오의 목소리가 판을 치며 우리를 괴롭히는가?

 

최초의 동성애자 권리 운동이 20세기 초 격변과 혁명의 시대에 꽃피웠다가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등장으로 파괴된 역사. 냉전의 암흑기에 매카시즘의 또 다른 표적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 현대 성소수자 권리 운동이 60년대 후반 세계적 반란과 저항의 물결 속에서 탄생했고 보수 기독교를 위시한 반동성애 운동이 80년대 보수화와 우경화의 맥락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은 성소수자 권리의 운명이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운명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동성애혐오 선동은 여성 낙태권 공격, 이주민을 경제위기의 속죄양 삼는 정부정책, 민주주의 억압, 경제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와 함께 일어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동성애혐오 범죄와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이주민에 대한 우익의 공격과 파시즘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경제 위기 희생양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정부는 G20을 핑계로 무차별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체제가 정당성을 잃어갈 때, 기득권자들은 늘 속죄양을 필요로 했다. 파시즘이 그랬고, 대처와 레이건이 그랬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양보했던 것들을 되찾으려고 할 때 지배자들은 분열을 이용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하고, 이주민과 내국인을 이간질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탓하게 만든다. 진정 부도덕하고 해악적인 존재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리는 결정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개인들의 나태함과 부도덕함, 문란함, 이기심, 악마적 본성을 탓하는 이야기들이 판을 친다. 동성애혐오 세력은 이런 분위기를 먹고 자란다. ‘바성연’의 논리를 보자. 동성애는 가족과 사회를 파괴하는 부도덕한 행위고 그럼에도 동성애를 고치지 않는 자들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국가와 사회의 안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성적 보수주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전통적 가족 가치의 강조는 오늘날 위기에 빠져 있는 자본주의 가족 제도를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 경제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족 여전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동성애혐오가 하는 구실 또한 가족 유지와 궁극적으로 착취와 차별에 기초한 체제의 유지에 있다. 성해방의 전망은 체제의 변혁의 전망과 분리될 수 없다. 착취와 차별의 체제의 지속은 우리가 이룩한 성과와 진보가 끊임없이 위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억압의 원인과 효과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성애혐오를 인간의 본원적인 심리 등 초역사적인 것으로 돌리면 미궁에 빠지게 된다. 동성애혐오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늘날 가진 생각은 사회 체제의 산물이자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또한 동성애혐오가 무지와 편협함의 발로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계몽, 이성에의 호소를 통해 혐오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시각은 한편으로는 동성애혐오를 과소평가하고 한편으로는 동성애혐오의 진정한 원인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혐오를 조장하는 체제와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 지배자들이 아니라 기독교 신자들이나 평범한 대중들의 무지를 탓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성애혐오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첫째, 단호해야 한다. 동성애혐오는 존중받아야 할 개인적 의견이 아니다. 그리고 바성연과 같은 혐오 조장 세력들, 그리고 국가를 비롯한 기성체제가 그런 혐오가 상식이라는 핑계로 취하는 차별에 맞서야 한다. 동성애혐오가 끔찍한 비극을 낳는 차별이고 폭력이라는 것을 말해야 한다. 동성애혐오 세력의 영향력은 크다. 여전히 저들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 저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저들의 목소리는 억압과 차별을 유지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단호한 대응은 우리 자신의 사기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둘째, 함께 싸워야 한다. 동성애혐오는 모든 차별과 억압을 강화한다.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자들은 여성차별을 부추기는 자들,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 자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과 같다. 따라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사람들, 차별과 불의가 없는 다를 세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동성애혐오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은 모두에게 좋다. 성소수자 운동과 사회운동 모두가 이런 단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진정한 해방의 전망이 필요하다. 차별금지 법률과 동성결혼, 입양권이 보장된 사회에서도 동성애혐오는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성과를 위협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그런 권리들이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음은 둘째치고라도 말이다. 우리의 권리를 구매할 자유가 우리 목표일 수는 없다. 누구나 두려움 없이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을 드러내고 누릴 수 있는 사회, 동성애자/양성애자/이성애자/트랜스젠더 이런 식으로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갑갑한 상자 속에 구겨 넣어버릴 필요가 없는 사회, 먹고 살기 위해서, 가족에게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감추고 남을 속일 필요가 없는 사회를 꿈꾸자.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상향을 포함하지 않는 세계 지도는 눈길을 줄 가치도 없다.”

 

 

나라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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