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 ‘권장’이라니, 그저 웃지요.
- ‘표현의 자유’와 폭력의 자유 사이, 서울대 미술대학 졸업전시에 전시된 ‘이성애 권장 동성애 반대’ 캠페인


바로 작년, 공전의 ‘히트’를 친 바 있던 동성애 반대캠페인 ‘남자가 며느리라니!’ 라는 카피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반(反)동성애적 구호와 메시지가 등장해주셨다. 그것도 ‘이성애 권장 동성애 반대’ 라는 제목을 버젓이 달고 서울대 미술대학 졸업전(12.1 - 12.11)의 일개 작품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에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난 5일에는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QIS에서는 성명서를 통해 규탄하고, 교수와 인권단체의 인터뷰를 딴 기사들이 온라인에 뿌려졌으며, 당일 작가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5일 하루 동안 동성애를 반대하는 재현과 비판에 이어 그에 대한 변명과 사과가 동시에 나오다니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전시에서 작가는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 포스터에 ‘당신의 생명이 어떻게 창조될 수 있었겠습니까? (How could your life be created?)’ 문구가 새겨진 도장을 찍고 티셔츠를 제작하는 등 자신이 진행한 캠페인을 정리한 가이드북을 보여준다. 동아리 포스터를 훼손시키며 동성애를 반대하겠다는 그 객기,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퀴어인권주간에도 아랑곳 않고 도장을 퍽퍽 찍고 다녔던 패기, 일단 높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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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상의 객관성결여


으레 반동성애를 골자로 하는 이미지들이 갖는 논리상 단순함만큼이나 캠페인의 표현 방식 역시 단순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작품에는 DNA고리가 응용되어 있는데, 아마도 과학적 기호를 넣어 객관적 뉘앙스를 살려보고자 했던 의도로 보인다. 헌데 작가는 여기에 두 가지 색만 첨가하여 성차화된 DNA를 암시한다. 언제부터 남녀의 DNA가 완연히 달랐던 것인가?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오히려 객관성을 결핍한 작가의 엉터리 디자인이야말로 간결하게 디자인된 포스터를 흡사 낙인이라도 찍듯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성애 ‘권장’의 가벼움 속 허구로 폭로되는 이성애근본주의와 동성애 반대의 명분


물론 디자인이 객관적 사실을 모두 반영할 필요는 없다. 상식을 깨는 디자인이 종종 훌륭하게 평가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녀 이분법이 과잉 적용된 DNA는 ‘모든 생명은 남녀의 합으로 오기 때문에…’ 라는 작품의 설명과 접목되면서 제 편협성을 드러낸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자연의 섭리’는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되고도 남는 그들의 최종적인 논리가 아닌가. 작가는 이를 반복함으로써 ‘반동성애’라는 디자인의 의도를 명확히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제목을 무조건적인 이성애가 아닌 이성애 ‘
권장’으로 한발 물러나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고리타분한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임을 계산에 두었던 것일까. 기존 반(反)동성애단체들이 내거는 막무가내 식의 반대구호가 사람들에게 폭력적이고 무식하다는 반응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건 누굴 살리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재미있는 작업’을 보여주는 미술전시가 아닌가.


아마도 작가는 ‘레즈가 어때서’, ‘게이가 어때서’ 가 적힌 선전물에 ‘자연의 섭리’를 낙인처럼 도장 찍고 흠집을 내서 포스터의 맹점을 유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성애마저 권장된다는 캠페인의 제목 아래 작가의 작업은 스스로 자신에게 흠집을 낸다.


이성애가 권장사항이 되고 기호식품처럼 선택여부가 가능해짐에 따라 이성애주의의 본질적 위계는 기각된다. 헌데 그 위상은 앞서 작가가 장황하게 설명했던 ‘자연적인 섭리’에 부딪힌다. 즉 이성애는 근본적이지만 선택사항이기에 근본적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가당착적 모순 속에서 ‘이성애 권장 반동성애 캠페인’은 이성애 또한 자연의 섭리가 아님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동성애는 무조건 차별하겠다는, 혹은 우월한 자연섭리 아래 기만해도 된다는 무지한 폭력을 드러낸다. 그것은 정체성이 다양해지고 저마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 위협받는 보수적인 가치관들이 관용을 베푸는 듯 보이면서 기득권을 놓지 않는 위선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작가의 반동성애적 작품은 외려 소박한 민주주의적 표현의 나쁜 예로, 작업의 재미를 위해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독하는 일도 거스르지 않는 무지한 디자이너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한다.


표현의 자유, 폭력의 자유


지난 5일에는 QIS의 규탄 성명서가 나오고, 바로 작가의 사과와 ‘표현의 자유’라는 교수의 인터뷰가 쏟아져 나왔다. 기실 이렇게 이슈를 일으킨 데에는 반동성애라는 이슈에 서울대 미술대학이라는 공적인 ‘간판’이 한 몫 한다. 작품에 ‘서울대 미대 졸업전시’라는 이름을 부여해 공론화했던 점을 들면 교수들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들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미적 수준이 너무 낮지만 않으면 통과시킨다. 지금은 (작품이) 수정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본다.’, ‘심사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생각이 전혀 없다.’


교수 당신이 고수하는 ‘표현의 자유’란, 예술은 사회와 별개의 범주로서 아름답기만 하면 좋다는 모더니즘 담론을 편협하게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적 수준만 충족된다면 통과시킬 수 있다는 언급 속에는 위계의 맥락이 표백되고 분리되어 있다. ‘예술지상주의’ 아래 표현의 자유는 무관심한 폭력의 가능성을, 상대를 부정하고 모독할 위험을 내포한다. 예술의 자유를 외치며 유색인종을 재현했고, 여성을 객체화해오던 미술의 역사는 폭력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로 은폐해온 궤적의 혐의를 갖지 않는가. 적어도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교수에게는 어떤 반성이나 성찰의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작가의 캠페인 명분과 관련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음을 알리고 싶었다.’ 는 언급에는 사회의 대다수가 동성애에 동의하고 있을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성애이슈에 우호적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정말로 이들의 시선에 동성애는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긍정되는 무엇으로 비춰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성애를 반대하기 위해 전제된 제한적 인정에 지나지 않는다. 즉 폭력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부정적 긍정’인 셈이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자신은 ‘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적 객기는, 종종 사회적 관용이야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으리라는 만용으로 왜곡되곤 한다. 이는 학생 작업을 대하는 교수의 태만을, 학생을 대하는 교수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감수성과 소양의 부족을 드러낸다.


공적인 대응, 미지근한 수습


반동성애적 의미가 완연한 작품이 공식적인 행사에 버젓이 나왔으니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했고, 또한 서울대 성적소수자 동아리QIS는 작품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성명서를 올리며 ‘소수자 차별적이며 반인권적’이라고 비난을 높이면서 즉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공식석상에 성소수자의 존재가 대놓고 부정당했으니 공적인 비난을 보여준 QIS의 대응은 당연한 처사이다.


다만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에 당면하여 대자보에 그치는 반박은 대응상의 ‘관성’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디자인 자체는 여전히 이성애를 권장하는 ‘장난’에 그침으로써 가벼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센’ 반박 앞에서 무지한 장난의 말로는, 끝내 ‘자연의 섭리’를 고집하는 작가학생의 미적지근한 사과로 식어버렸다. 공사(公私)의 범주를 넘어 얼토당토 않는 메시지로 동아리 포스터를 유린하고 오염시키는 디자인을 가볍게 눌러줄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랐는데, 아쉬운 지점이다. (필자는 뭐라도 해보겠다고 글 쓴 시간보다 긴 시간을 할애해 엉성하나마 패러디물 까지 만들었는데 말이다.)

(물론, 발로 그렸다.)




QIS의 성명서에는 전시물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적 요구라면 전시물을 철거하는 것이 응당 옳겠지만, 학교 측에서 이를 고분고분 들어줄 것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전시 마지막 날까지 철거되지 않는다면 저 고리타분한 캠페인에 철퇴를 가해주자. 여의치 않으면 똥물이라도 끼얹어줄 것이야.


웅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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