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0년 10월6일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렸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비난하고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회원 우주님의 발언문입니다.
10월 6일 동성애 혐오 조장 규탄 기자회견 _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안녕하십니까,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자긍심팀의 우주입니다. 제가 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유는 여러분에게 간단한 질문 하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바른 것’이나 ‘참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이나 ‘다수의 생각이나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만약 제가 지금 “한국의 왼손잡이는 다수의 오른손잡이에 비해 ‘다른 사람’입니까, ‘틀린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왼손잡이라는 소수집단은 다수집단에 비해 다릅니다. 그런데 10년 전만 해도 전 밥을 먹을 때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한다는 이유로 친척들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습니다. 오른손은 바른 손이고 왼손은 그른 손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는 그 때부터 ‘바름’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바꿔놓기에 가장 좋은 단어니까요.
그리고 지금,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대와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은 동성애자를 틀린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문구의 광고를 내세워서요. 동성애 매체를 접하면 동성애자가 된다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고, 남자끼리 성관계를 하면 무조건 에이즈에 걸린다는 말 역시 잘못된 지식입니다. 그런데도 이 무식한 사람들은 이런 쓸데없는 문구를 헤드라인으로 실어놓았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청소년들을 동성애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보호’라는 ‘바름’만큼이나 애매한 단어 때문에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극심한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즉, 그들에게 있어 동성애자 청소년은 ‘타락한 존재’ 혹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이고, 보호하는 것이란 그들의 시각 기준으로 너무나도 ‘바른’ 이성애자 청소년들을 위해 타락한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탄압하거나, 동성애자를 ‘어떤 방법을 써서든’ 이성애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례를 몇 가지만 들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는『선생님! 저 동성애자인 거 같아요!』라는 교사들을 위한 성소수자 인권지침서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인권지침서 안에는 다섯 명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저는 그 중 한 명의 이야기를 읽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1급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레즈비언입니다. 그녀는 시각장애에 대한 불편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큰 불편과 상처를 주었던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그녀는 “네가 레즈비언인 이유는 장애인이니까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만나봤기 때문이다.”, “정신이 타락해 하나님이 벌을 주셨고, 그래서 에이즈에 걸려 눈이 멀었다.”와 같은 독설을 들었습니다. 강제적인 이성과의 성 접촉이라는 치료를 받기도 했고, 악귀를 쫓는다며 집단 구타를 받기도 했으며, 정화의식이라는 이름의 물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정녕 청소년들을 동성애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까?
이 책에는 교내 아웃팅 문제를 담은 이야기도 있는데, 본인의 글이므로 본문 내용 대신 제 고교시절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학년 2학기에 서울로 전학 온 저는 2학년 때 큰맘 먹고 블로그를 전체공개로 설정하고 이성애자들과의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블로그를 발견한 우리 학교의 몇몇 호모포비아 학생들에 의해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삽시간에 전교로 퍼졌습니다. 옆 반 친구가 제 얼굴에 침을 뱉었고, 블로그에 글을 쓸 때마다 악플이 수십 개가 달렸고, 급기야 담임선생님 귀에까지 들어가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웃팅 일로 호모포비아들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학교에서 최대한 존재감을 없애기로 했지만, 이미 알려진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 학생들이 찾아와 저와 제 친구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며 괴롭혔고, 체육시간에 같은 반 몇몇 학생들이 저를 향해 공을 차고, 돌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3학년이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과의 진로상담 때 인권단체에서 활동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떤 분야의 인권이냐고 계속 물어보시며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담임선생님께서 들고 계시는 학생 이름 명단 맨 오른쪽에는 질병 등의 주의사항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제 이름 옆에는 ‘게이 블로그’라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누구이며, 뭘 하고 다니는지 학교 측에서 다 알고 조종하려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습니다. 공부는 너무나도 싫어하지만 성적은 그런대로 나왔던 제게 있어 상위권 학생들을 모아 12시까지 시키는 강제 야간자율학습은 끔찍했고, 이렇게 반쯤 고립된 상황에서 호모포비아 학생들의 괴롭힘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저는 제가 동성애자임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성격도 낙천적이지만, 매일 학교에 고립되어 괴롭힘을 당하면서 점점 생활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답은 얼마 안 되어 졸업앨범 촬영 때 내려졌습니다. 단체 촬영이 끝나고 9명씩 찍는 그룹 사진 촬영을 할 때였는데, 하필이면 번호대로 9명씩 끊어서 저를 괴롭히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속해 있는 1~9번 그룹에 들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장소를 찾아 포즈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어떤 녀석이 제 어깨에 발을 올렸습니다. 제가 싫다고 몸을 틀었는데도 그 녀석은 다시 어깨에 발을 올렸습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힘이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싫다는데 왜 그러냐는 물음에 대한 그 녀석의 답은 황당했습니다. “게이는 밟아야 돼, 게이니까.” 저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분노감이 들었지만 간신히 앨범 촬영을 끝내고 후다닥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빠, 나 그냥 자퇴할래요.” 버스정류장에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고 내뱉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결국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저는 가방과 책을 모두 학교에 둔 채 몸만 빠져나왔고, 담임선생님의 일방적인 설교 때문에 3주 정도 무단결석을 찍고 나서야 자퇴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남성에게 성적 매력과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저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잔 문제아였습니다. 3주 동안이나 무단결석을 했고 결국엔 자퇴한, 결과적으로 ‘모든 면에서 바르지 못한’ 청소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발언의 마지막입니다. 여러분에게 ‘바르고 참된 것’은 무엇입니까?
우주 _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자긍심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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