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동성애혐오 조장하고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 부추기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을 강력히 규탄한다!
근래 보기 드물게 경악스러운 신문광고를 접하고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9월 29일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이하 바성연)’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이라는 단체가 조선일보에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SBS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난하고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는 일일이 반박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로 반인권적이고 몰상식한 허위사실로 도배돼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동성애혐오조장 광고에 이어 실린 이 광고가 노골적으로 사회적 다양성을 말살하는 것일뿐더러 안 그래도 천대받는 동성애자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심각한 폭력이기에 우리는 묵과할 수 없다.
‘바성연’은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책임져라”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수많은 상식 있는 시민들이 통쾌한 반박 댓글과 항의로 응수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들이 비난하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이하 <인아>)가 정말 국민 건강과 공익에 반하고, 동성애를 미화시키고 있는가? 이 저열한 사고방식에 혀를 내두른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오히려 이런 드라마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가 보기에도 가족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 고민들을 꽤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 덕분에 동성애에 거부감이 있던 시청자들도, 아들이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며 오열하는 장면에 함께 눈물 흘리고, 결국 그를 받아들이는 가족에 공감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니 <인아>야말로 국민의 정신건강에 득이 되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사회로 가는데 일조한 공익적 드라마 아닌가. 오히려 방송 장악 시도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들을 퇴출시키고, 정권을 비호하는 방송만 지원하는 이 정권이 국민 건강과 공익을 해치는 장본인이다.
10년 전 커밍아웃한 연예인인 홍석천씨가 비판했듯이, 드라마를 보고 동성애가 전염, 학습된다면 홍석천씨가 진행했던 ‘뽀뽀뽀’에 함께 출연한 아이들이 왜 동성애자가 되지 않았겠는가? 또한 이성애에 관한 것만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동성애자들이 존재하느냔 말이다. 한술 더 떠 ‘바성연’은 "14~16세의 청소년기에 큰 도시에서 자랐을 경우 동성애 빈도가 높고 시골에서 자랐을 경우 동성애 빈도가 낮다"며 동성애는 문화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학습되어 확산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것이야말로 잘못된 인과관계의 엉터리 해석이다. 설령 저 연구결과가 피상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의 폭이 좁고 단절된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진지하게 탐색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동성애가 ‘학습’된다는 것을 반박하는 근거는 너무나 풍부하여 여기서 더 부연할 필요도 없다. 동성애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바성연’은 동성애를 억압하고 천대하는 세상에서 끝내 동성애자로 생존해온 이들을 모욕했다. 더불어 동성애자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친구, 가족, 동료까지 모욕한 것이다.
이제 ‘바성연’은 “게이가 된 내 아들이 에이즈 걸려 죽으면 책임지라”고까지 한다. 이 무슨 망발인가! ‘바성연’은 “AIDS환자 160만명 중 50%가 동성간 성접촉 의한 것”, “에이즈환자중 절반이 동성애자”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확률 730배” 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 극단적인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것으로 모자라, HIV감염인과 AIDS환자의 권리까지 짓밟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에이즈는 동성애자만 걸리는 질병이 아니며, 성관계만으로 전염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HIV 감염인이나 AIDS 환자는 여타의 질병을 앓는 환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며, AIDS에 걸리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여기는 것도 터무니없다. AIDS는 적절한 치료제를 쓰면 다른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일 뿐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거짓을 버젓이 인용해 왔는지 궁금할 뿐이다. UN에이즈계획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HIV감염인/환자의 약 70%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한다. 아프리카에 동성애자들이 모여 살기라도 한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에 에이즈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문제의 본질이 ‘빈곤’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바성연’은 영화 <친구사이?>에 대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철회하기로 한 ‘지극히 상식적인’ 재판부의 결정조차 비난했다. 이 영화에서 ‘남성의 성기에 손을 대는 장면’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바성연’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이광범 부장판사의 판결문대로 “청소년들에게 성적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성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교육적 효과가 있는” 영화를 제대로 볼 줄도 모르는 문외한들은 더 이상 영화에 대해 논하지도 말라.
이들은 ‘차별금지법안’을 ‘동성애를 부추기는 법안’으로 매도하며, 동성애가 보편적인 성윤리에 반하는 가정, 사회, 국가를 붕괴시키는 행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국가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왔으며, 특히 그 어떤 법적 보호 장치도 없이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사유로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동성애허용법’이라면서 게거품 무는 ‘바성연’의 무지와 독선이야말로 인권존중과 평등실현의 의지를 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단체가 “성별, 장애, 나이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해봤자 누가 믿어 주겠는가?
‘청소년을 보호합네’ 하면서 이런 광기어린 광고를 내보내는 ‘바성연’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단체 맞는가? 지금 이순간도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한국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심각한 자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70% 이상의 청소년 동성애자가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있고, 18.1%가 ‘매우 자주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을 시도해본 경우가 45.7%로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이라는 단체의 부모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진정 자살로 내몰고자 하는 것인가? 청소년 동성애자 커뮤니티 상담게시판에는 자살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으며,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한 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성연’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조차 처벌할 것이냐’며 길길이 뛰고 있다. 분명히 말한다. 동성애혐오 조장은 용납될 수 없으며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논리적인 척 쏟아내는 동성애혐오 발언들이 오히려 죄라는 것을 알라. 차별과 냉대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말로 하는 살인’이다. 차별금지법을 일찍이 제정하지 못하여, ‘바성연’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 못내 개탄스럽다.
‘바성연’은 대체 무슨 이유로 혐오를 부추기려 하는가? 1980년대 초 미국 레이건 집권 당시 에이즈라는 병을 30여명의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골라내, ‘게이 돌림병’, ‘변태적 성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천벌’ 등으로 혐오를 조장하던 역사가 다시 재현되려 함에 섬뜩함을 느낀다. 당시 에이즈에 대한 혐오와 비이성적 공포는 성적 보수주의를 강화시켰고 에이즈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예방에는 관심 없는 정부와 권력에 면죄부를 주었을 뿐이다. 에이즈 공포를 이용한 선동으로 동성애혐오가 다시 고개를 든 상황은 낙태권 공격, 노동자 권리 축소, 인종차별 강화 등 사회 전반의 보수화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여성, 동성애자 등 억압받는 사람들이 쟁취했던 민주적 권리들이 후퇴했다.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금 악몽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끔찍할 따름이다. 바성연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성애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되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지난 역사에서 경제위기 때마다 여성,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 삼고 그 권리를 공격해 온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말 더럽고 역겨운 부류들은 누구인가? 경제위기의 고통을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이 정권과 자본가들 아닌가! 캐도캐도 끝이 없는 비리와 사기행각으로 얼룩진 고위 공직자들 아닌가!
우리더러 더럽다 하지 말라. 혐오를 조장하여 비난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라! 우리는‘바성연’과 그에 동조하는 제 단체들의 광기어린 혐오조장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동성애자 인권과 평등을 옹호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랑을 축복하는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임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0년 10월 1일
동성애자인권연대
2010.9.29일자 조선일보에 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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