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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하늘을 듣는다』 따라 읽기

by 행성인 2011. 1. 10.

『하늘을 듣는다』 따라 읽기
  하늘을 듣는다, 가브리엘을 듣는다.

 

△ 윤가브리엘, 《하늘을 듣는다》

 

람들에게 가브리엘은 이야기 잘하고 글 잘 쓰는 HIV/AIDS 인권활동가이자 친구로 알려져 있다. 아마 주변사람들이라면 그의 어록 한두 개 씩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다. 평소 그가 말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간혹 던지는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힘을 준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주변 사람들의 요청에 그는 그동안 써온 글들을 엮어 책을 냈다. 덕분에 우리는 책을 통해 이야기 들려주는 가브리엘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인권활동에 이르기까지, 책에는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을 공적인 투쟁의 외침으로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그의 재주가 발휘되고 있다.


여기서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는지, 책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시도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요컨대 그의 삶은 생존을 위협하는 고립 속에서 음악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투쟁의 삶으로 이어가는 소사이다.


고립의 반복

책의 시작부터 그는 자신의 등장이 가족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독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벽에 부딪혀야 했던 그의 모습을 마주한다. 큰형의 강압으로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한 채 두세 시간이 넘도록 마주해야 했던 벽, 집안의 벽은 노동조합의 눈을 막기 위해 사장이 막아버린 합판지의 차단벽으로 이어졌다. 가족들로부터 도망치듯 들어간 그곳은 쉬지 않고 미싱이 돌아가던 봉제공장이었다. 개인공간이 몇 평 되지 않는 취약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동료들과의 소소한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성애적인 것들뿐인 공장 안에서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건 쉽지 않았다.


잡지를 통해 우연히 찾게 된 종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종로의 공간은 술집과 여관이 전부였다. 그나마 가장 넓은 만남의 공간이었던 파고다극장 역시 삶의 빛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항상 어두웠던 그 장소들은 서로 간 흘깃거리며 탐색하는 시선이 교차하고 회한 섞인 늙은 게이의 한숨이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랑과 우정을 나눴다. 물론 예나지금이나 한국에서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밤에 한정된 행복이고 젊음에 헌정된 열정에 그친다. 아침이면 다시 숨 막히는 일상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외부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립의 공간은 새로운 천년이 바뀌는 즈음 삶 전체를 흔들어놓는다. HIV/AIDS 감염인의 삶-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일색의 시선들 속에서 그는 자기와 같은 정체성의 이반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조차 움츠러들었다. 무엇보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벽은 그의 생존을 위협했다.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보다 상업적 이득을 먼저 생각하는 제약회사의 비인간적 상술 속에서 의약품에 접근하기 어려운 그의 상황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자본의 벽 앞에서 바이러스로 잠식당한 그의 몸은 조금씩 망가졌다. 삶을 위축하는 고립의 반복, 그것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타자의 경계가 교차하는 소외의 공간이었다.

 

인생의 OST

잡히는 것 없는 세상 속에서 삶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그는 잡히는 것 없는 삶 속에서 음악을 통해 인생의 굴곡을 새겼다.


책에서 음악은 그에게 마음을 다잡기 위한 일상의 ‘의식’처럼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는 어느 때나 음악을 찾았다. 또 어느 때고 음악은 그의 곁에 있었다. 중이염으로 노랗게 울고 있는 그의 귀로 음악이 들려왔다. 인생을 따라다녔던 고립 속에서 외롭거나 슬플 때, 망막이 떨어져 나가고 청력이 손상되었을 때도 그는 음악을 찾았다. 삶의 벽 틈으로 스며들 듯, 혼자 있는 순간 이어폰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은 그와 같이 울어주고, 또 그를 응원해줬다. 그렇게 가브리엘에게 음악은 더없는 안식처로 그려진다.


책에서 그는 자신이 가까이 두고 들었던 노래가사들을 끌어와 삶을 녹여낸다. 몇 년 전 인터넷 음악방송을 진행했던 이력의 연장으로, 그는 책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디제잉’한다.


노래가사는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의미를 더한다. 보이지 않는 선율들과 입으로 되뇌는 가사들은 주변으로 밀려난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엮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더불어 음악을 통해 서로 간에 놓였던 거리는 ‘우리’라는 공간으로 공명된다. 자신이 줄곧 들었던 노래들을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울리도록 안내하면서, 그는 혼자의 시간동안 들었던 노래를 ‘우리의’ 이야기로 넓혀 가는 것이다.

 

감사의 이름

그의 책은 중간마다 지인들의 짤막한 글을 싣고 있다. 대부분 그에 대한 인상과 추억들을 회상하는 내용의 메시지에는 저마다 그를 향한 응원과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삶을 막고 있는 벽의 틈새로 자신을 달래준 음악의 선율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음을 가지고 가브리엘의 오선지를 채운다.


한편 책 뒤편에는 감사의 이름들로 빼곡하다. 의례적인 ‘감사의 말’이 그의 책에서는 특별히 비중이 실려 있다. 여기서 그는 소제목을 붙이고 수십 페이지를 할애하여 자신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새겼다.


그는 자신이 인복이 많은 것 같다고 소회한다. 사실 다른 감염인들에 비해 가브리엘 주변에는 각개 분야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일찍이 그가 인권운동을 알게 되면서 마이너리티적인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이 그의 ‘인복’을 조금은 설명해 줄지 모르겠다. 여전히 HIV/AIDS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감염인들이 누군가를 새로 사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감염인들이 고백하듯 질병 자체보다 두려운 것은 질병으로 인한 주변 관계들의 변화이다.


하지만 그보다 그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힘이 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더불어 감염인이라는 낙인에 갇혀 철저히 자신에게 침잠하여 외려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는다. 외려 독자들이 책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그의 시도들이다. 그의 당당함은 감염인의 낙인을 안고 있지만, 낙인에 따르는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의 가슴은 주변 사람들의 아픔 역시 놓치지 않는다. 아픔 속에서도 그는 절친한 장애인 활동가의 생활을 보면서 배우고, 또한 자신을 지금도 지지해주는 친구의 고단한 삶을 걱정한다. 또한 어린 시절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던 큰형의 사고를, 우리에게도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먼저 떠난 활동가들을 애도한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고통을 넘어섬으로써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을 누르는 현실에 매몰되어 자위하지 않고, 자신처럼 아픔을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그의 삶은 타인과의 연대에 이른다.

 

삶과 투쟁

벽은 사람들을 하나씩 떼어놓으며 배타적인 방어로 일관하게 만든다. 벽이 커질수록 사회는 위계가 생기고 온갖 편견과 차별이 만들어지며, 자본이라는 이익 속에 매수당한 세계를 그린다. 위계와 차별로 점철된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 아래 그의 삶은 한편의 신파로 그려진다. 하지만 신파적인 삶, 고립된 삶의 공간 속에서 그는 음악을 울리고 사람들과의 조우를 통해 삶의 고통을 치유한다. 벽을 부숴나가는 그의 삶은 책 뒷면 추천사의 한마디처럼 ‘음악의 치유’로, ‘사람과의 연대’로, 나아가 ‘인권운동’의 이름으로 분출된다.


그는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절망과 소외를 이겨내기 위해 그는 고통을 공유하는 이들과 연대하고 자신들을 상처 입히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벽에 직접 부딪히는 투쟁을 선택한다. 그에게 삶은 투쟁일 수밖에 없었지만, 투쟁이야말로 그에게는 삶의 힘인 것이다.


인권운동은 분량의 반을 차지할 만큼 그의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책 속에 그려진 그의 삶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일궈온 투쟁의 궤적이 새겨져 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이 활동해온 에이즈운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에이즈운동에는 치료와 활동을 제약하는 빈곤과 다국적 회사의 횡포가, 혐오와 판타지 속에서 고립된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팎에서 강박적으로 배제되는 성소수자 감염인의 존재가 교차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바탕 되어야 하는 HIV/AIDS 감염인 인권활동 속에서 그는 에이즈 운동이 혼자만의 고립된 투쟁이 아니었음을 몸소 체험한다. 즉 감염인 인권운동은 삶 속의 서로 다른 차별들을 복합적으로 엮어나가고 사회운동의 연대를 만드는 과정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하늘을 듣는다.’ 우리는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듣는다. ‘천사의 이름’(새삼 다시 보니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이다)으로 들려주는 하늘 아래 이야기. 소외받았던 가족사부터 봉제노동자, 동성애자, HIV/AIDS 감염인,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의 위상은 그의 감수성으로 보듬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자서전이 갖는 다른 의미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책은 개인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 한국사회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비망록을 직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들려주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 속에는 80년대 봉제노동자의 삶이, 종로의 게이게토 역사가 그려져 있다. 또 주류 매체들이 전하는 에이즈 퇴치 캠페인 속에서 드러날 수 없었던 감염인의 삶과 국내 에이즈 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삶들이자, 지금 여기서 함께 바꿔나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절망으로부터 삶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음악처럼 번져나간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아픔이 가득한 삶에서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그는 한영애님의 노래가사를 빌어 책의 마지막을 적는다. 고립과 상처에 대한 치유와 투쟁은,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웅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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