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권


   지난 5월 발행준비를 거쳐 6월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동인련 웹진 ‘랑’에 매월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촛불입니다.  이젠 ‘촛불’이란 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뿐만이 아니라 이명박에 반대하는 모든 행동을 통칭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동인련은 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에 지난 5월부터 줄곧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간 동인련은 촛불이 만든 위대한 민주주의의 광장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함께하면서 시민들과 즐거움, 안타까움, 분노등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들에게 이 촛불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생한 기사들로 웹진 ‘랑’을 통해 선보였습니다. 


   늘 그렇듯 촛불을 든 사람들은 분노를 내뿜고 있습니다.  들어선지 반 년 밖에 안되는 이 정부가 만들어 놓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습니다.  한편, 공권력도 변함없이 위협적인 경고방송과 함께 전경들을 촛불 앞에 쏟아내고 물대포를 쏘아댑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전경들은 수비조로 바뀌었는지 움직임이 둔해졌고, 그대신 짧은 몽둥이와 작은 방패를 들고 설치는 ‘백골단’ 아저씨들이 포효하며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고 있습니다.  공권력과 시민들의 경계선이었던 인도는 ‘마일리지 제도’로 인해 지워진지 오래입니다.  휘발유 냄새와 최루탄 냄새가 나는 물대포 대신 이번엔 색소를 탄 물대포가 등장했습니다.  이것이 8월 동인련이 촛불과 함께 맞이한 거리의 모습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만들어낸 이 촛불의 ‘광장’이 경찰에 의해 유린당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촛불문화제로 시작했던 평화의 집회는 계속해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촛불을 들 정신이 없습니다.  공권력이 줄기차고 매몰차게 촛불을 끄려는 발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들은 촛불집회 참여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반응도 예전 같지 않으니 다른 운동 (소비자 운동 등)으로 중심을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직접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 초기단계에서 이미 한 계단을 올라선 상황이라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촛불들은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지 않았을까요?  촛불을 통해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 확인했지요.  다시 말해서, 너와 내가 분노하고 있고 이렇게 모여서 촛불을 들어 올리니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하고 확인했던 것이지요.  이런 촛불을 보고 어떤 이들은 ‘탈근대’이니 ‘광장의 역동성’이니 보기 좋게, 포장 아닌 포장을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도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촛불집회를 통해 얻어낸 것은 결국 무엇일까요?  오히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한 보수들의 공격이 더욱 악랄해지고 있습니다.  YTN, KBS는 이제 ‘그’의 손에 넘어가버렸고 MBC는 조심스레 항복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무슨 공수부대마냥 그의 심복들이 낙하산들 타고 윗자리를 꿰어 차고 있습니다.  권력의 꼭대기에 있으니 이제 맘껏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겠다고 판단한건지, 그는 한국사회를 ‘검열과 통제 그리고 검거’가 횡횡하는 ‘공안정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수배자들은 늘어만 가고 있고 심지어 네티즌들을 검거자 명단에 올렸습니다.


  이제 ‘촛불’은 이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낙인’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촛불시위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여집니다.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어디에서나 말이에요.  촛불을 든 사람들, 색소탄과 물대포에 맞은 사람들, 피켓을 든 사람들, 우비를 입은 사람들, 깃발을 든 사람들, 보수언론 광고 명단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 미국산 쇠고기 위험성을 알린 프로그램까지 낙인은 삽시간에 이곳저곳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찌가 유대인을 비롯한, 집시, 동성애자들에게 낙인의 표식을 씌워 학살했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듯이, 현재 벌어지는 위와 같은 낙인들은 성소수자들에게 쉽게 넘길 수 없는 사건들입니다.  언제 그의 낙인이 연약하고 만만해 보이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향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정신없는 이 지경에 ‘호모포비아 이명박’은 자신의 친구 ‘호모포비아 부시’를 모셨습니다.  이에 동인련은 8월 5일 부시 방한에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여했습니다.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이 집회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의경들의 보호를 받으며 진행한 우익들의 부시 환영 집회와는 그 모습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들은 청계광장의 양쪽을 막아 시위대를 포위했고, 이에 도로 진출을 시도하는 시위대 앞에 ‘백골단’은 빠른 발과 곤봉 그리고 방패로 막아섰습니다.  힘겹게 행진하던 시위대는 종로2가에서 다시금 쏟아지는 물대포에 동대문 운동장을 돌아 충무로까지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명동성당에 다시 모여 중앙극장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를 토끼몰이로 에워싸고 연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발만 늦었어도 저 역시 잡힐 뻔했습니다.  그곳을 빠져나온 뒤 그 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연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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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5일, 부시방한 반대 집회 중 (고뉴스 자료 인용)


  17일 동인련은 이주노동자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퀴어퍼레이드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한 연대의 ‘모금’을 한 이후,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마치 자신을 쓰다버리는 건전지 취급하는 이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권은 안중에도 없고 이들에게 ‘인권’은 사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날 우리는 단속반을 피해 나온 이주노조 조합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나와 시찰을 해도 떳떳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하는 ‘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날은 무시무시한 전경들과 물대포가 보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법’이라 딱지붙인 이주노동자들을 연행하러 마실 나온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동인련 한 회원은 집회 중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몸도 피곤하고 피로회복제를 먹어서 그런가보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알았습니다. 사실은 이주노동자들의 몹시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겨누고 있는 칼을 언제든 성소수자들에게도 겨눌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분노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숫자는 촛불집회의 1/100도 안되었지만 참가자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Achieve Human Right! Achieve Labor Rights!',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다! 노동권을 인정하라! 이주노조 탄압 중단하라!’를 힘껏 외쳤습니다.  무지개 깃발이 함께하고 있으니 더욱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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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7일 무더위에도 이주노동자들은 단숙추방 중단을 외치며
집회에 참석했다.


  뜨거웠던 여름이 조금씩 물러서고 있습니다.  5월부터 시작된 촛불도 왠지 수그러든 것 처럼 보입니다.  더구나 올림픽은 삶의 희망과 즐거움을 빼앗아 버린 이명박을 싫어하는 모든 이들이 잠시 정신줄을 놓아도 될 만큼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용대 선수의 ‘윙크’는 잠시 촛불을 잊어도 될 만큼의 마취제 역할을 하니까요.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찾아들면 우리가 주워 담아야 할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껏 정리됐던 책상을 그 누군가가 어지럽혀 놓아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듯’ 말입니다. 여름날 축 늘어졌던 몸들을 추스르고 질긴 싸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장병권 _ 동인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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