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성소수자 노동자로! 121주년 노동절 집회에 참가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가 노동절 집회에, 그러니까 메이데이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입니다. 지금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저만해도 학생 시절에 동인련을 처음 만난 것이 바로 노동절 집회에서이니까요. 그때에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던 회원들의 숫자가 상당히 조촐하기도 했고, 저도 그 아래 서 있는 것이 머쓱해서 금방 자리를 떴지만, 어느새 메이데이는 동인련의 연간 행사표 중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인련의 대학생 회원이거나 청소년 회원이었던 이들이 노동자가 되어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가. 그리고 ‘성소수자에게 평등한 일터’를 외치며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야기를 모으고 활동을 펼쳐온 성소수자 노동권팀이 활동한지도 2년이 넘었으니,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거겠죠?
이번 집회에는 스무명이 넘는 동인련 회원들이 참석해서 부스도 차리고 유인물을 배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소수자 노동권 사진전과 홍보물들을 관심 있게 지켜봤고, 각종 기념품과 다양한 내용의 책자들도 많이 판매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과 학생인권조례 서명에 동참하신 분들도 많았고요. 특히 이번에는 ‘이래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목의 글과 만화를 유인물로 배포했답니다.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법’이라고 매도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했죠. 힘차게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과 함께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서는 성소수자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겠지요?
121주년 노동집 집회 참가 모습
여기에는 이번 노동절에 함께 한 8명의 성소수자 회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마다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분들이죠. 짧지만 굵은 메시지, 해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누어지길 기대합니다^^
첫 번째, Rouge.C. 그녀는 레즈비언이다. 열 두해 동안 메이데이에 참가했지만,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레인보우 깃발 아래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혼, 미래, 직장, 압박, 사방이 적인 30대의 한 가운데를 돌파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메이데이의 기적.
“나는 열두 해 동안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해 왔다. 학생 때는 친구들과 ‘메이데이 참가단’ 깃발아래 섰다. 노동자가 되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에 다녔던 나는 메이데이에도 일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휴가나 병가를 내고 메이데이에 참가했을 때에는 즐기고, 싸우고, 축하해야 하는 날이기 보다 분노가 앞서곤 했다. "백 십여 년 전에 여덟 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자고 싸웠다던데 나는 이게 뭐람…" 짜증이 하늘을 찌르곤 했다. 이래저래 축하만 할 수 없는 메이데이. 내가 참가했던 메이데이는 매년 쟁점도, 규모도 분위기도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매년 개인적인 소회도 꽤 차이가 있었다. 노동자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나에게, 취업이나 주변 친구들의 결혼 등 저마다 삶의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편에서 소외감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소수자에게 공정하지 못한 여러 조건과 환경은 문뜩문뜩 어깨를 움츠려들게 했다. 하지만 올해 메이데이에는 마음속에서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소외가 깨끗하게 사라질 수 없다. 그래도 2011년, 121주년 메이데이에는 싸우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성소수자들이-예상보다도 많이!-시청 앞 잔디밭에서 메이데이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레인보우 깃발을 뿌듯하게 함께 바라봤다. 시위에 힘을 보탠다는 면에서도 한 명의 성소수자가 더 참가했다는 것 자체로도 무척 기쁜 일이지만, 내게 더욱 각별한 점은 쉽게 떨쳐지지 않을 삶의 소외를 가슴으로 느끼고 함께 보듬어줄 동지와 레인보우 깃발아래 가슴 벅차게 뚜벅뚜벅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두번째, 흰곰. 난생처음 집회에 참석했다는 그녀. 그녀가 본 것 들 중 가장 예뻤다는 무지개 깃발은 그녀가 찍은 사진 속에서도 충분히 예뻐 보인다. 그녀의 바램만큼, 성소수자들의 자신감과 용기가 시청 건물보다 쑥쑥 자라주길.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 같이 간 사람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 말고는 모든 게 다 낯설기만 했다. 난생 처음 '집회'라 부르는 것을 경험한 날이었다. 온 사방에서 모두가 다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아서 누가 내게 말을 건네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주로 본 것들이 기억난다. 어깨에 더께로 앉아있을 노동의 피로라는 것이 그리 쉽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그날 시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가벼워 보였다. '노동자의 날이니 이 노동자는 집에서 좀 더 자면 안 될까'하며 매년 잠만 잤던 나로선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동성애자인권연대가 보였다. 광장에서 나부끼는 깃발들 중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눈에 잘 띄던 그것. 깃발 아래 모여 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딘가 멀리서 깃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사람들은 더 많았겠지. 수많은 노동자들 중에 있을 수많은 동성애자들을 생각하며, 저 깃발이 바람을 타고 쑥쑥 자라 저 시청 건물보다 더 높이 펄럭이는 상상을 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깃발 아래에 오밀조밀 모여들 수 있도록.”
세 번째. 예리. 내가 그녀를 만난 건 근 7년 전.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애쓰더니, 다시 만난 그녀는 피곤한 하루 일과를 이어가는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권을 위한 활동에 다시금 합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짜 노동자가 된지 삼년 만에 메이데이에 참가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그냥 노동자가 아닌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함께 투쟁하고 메이데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드pride를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네 번째, 종호. 그를 만난 건 정말 뜻밖이었다. 수년전에 동인련에 찾아온 조용한 청소년으로 기억된 그가 오늘은 훌쩍 큰 모습으로 집회장 한쪽에 자리 잡은 동인련 부스에 나타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쌍용차와 재능교육도 승리하고 성소수자도 승리할 수 있길!
“동성애자이면서도 서비스노동자인 나는 5월 1일을 맞아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 모여 투쟁을 마친 후 참여한 것이라 지치기도 했지만, 저 멀리서 펄럭이는 레인보우 깃발을 보곤 ‘내가 있어야 할 곳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나 반갑고 기뻤지만 숨겨야하는 현실도 씁쓰레 하였지요. 또한 쌍용차, 재능교육 노조분들 등등 많은 분들이 복직하시고 투쟁에 승리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고, 노동자이자 동성애자로서 직장에서의 차별로 인한 핍박과 멸시하는 눈빛들이 조금씩 개선되길 바래봅니다. 덥고 지치기도 했지만 유익한 하루였습니다.”
다섯 번째, 유결. 그녀는 나의 오랜 동갑내기 친구다. 2005년 퀴어퍼레이드에서 일찍이 “일터에 평등을” 외치며 나갔던 그녀였고, 생긴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대로 존중해주는 직장을 원하며 산다. 그전에 “쉴 시간을 존중”하는 직장을 찾아야 할지도^^
“2003년 전쟁반대 공동행동으로 무지개깃발과 함께 거리에 나갔던 날엔 낯설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더랬다. 8년이 지난 메이데이엔 무지개 빛 장식품에 시선을 빼앗긴 아이와 자연스레 그 물건을 집어 아이에게 사주던 부모를 만났다.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내가 동성애자 노동자로 살아감에는 면접관에게 외모에 대한 폭언을 듣던 날들과 달라진 게 없다. 또 다시 8년이 지나면, 우리의 노동도 당연한 권리를 누리게 되기를. 성소수자 노동권팀, 파이팅!”
여섯 번째, 곱단. 그는 학생회 활동도 하고 동아리도 하고 동인련 활동도 하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커밍아웃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핫핑크 진을 소화하는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멋진 사람이다.
“정말 불쾌한 메이데이였다. 많은 노동자 민중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야당들의 발언, 혹은 명망있는 사람의 '축하한다'는 말 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절대 아니다. 노동절의 참의미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기 위해 모였던 것이다.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한 새내기는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 “여기 선거유세장이에요?” 430메이데이를 지나며 나는 성소수자를 욕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 기간의 투쟁과 집회자리에서 나는 발언 중에 커밍아웃을 많이 했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들었고, 이후에 나에게 친히 찾아와 인사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같이 아파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이 처참한 현실을 슬퍼했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일곱 번째, 오리. 이제 군에서 막 제대한 그는 성소수자와 노동자가 만날 수 있는 일은 뭐든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다. 황사바람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꿋꿋이 부스를 운영하고, 멋진 유인물을 만들어낸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노동절, 무지개 깃발 아래서 유인물을 뿌리고 서명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전시해 놓은 사진전도 인기가 좋았다. 와서 시비 거는 사람도 없었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무지개 깃발 아래서 웃으며 있을 수 있어서 기뻤다. 오랜만에 들은 "철의 노동자"란 노래는 이랜드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 노동자들이,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세상이다. 다음 해 노동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무지개깃발 아래 모이면 참 좋겠다.”
여덟 번째, 조은혜. 그녀는 최근에 동인련에 얼굴을 내민 신입회원이고 이성애자이다. 굳이 이성애자라는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그녀를 만나면 바로 이해될 것이다. 그녀의 에너지와 따뜻함이 주변에도 퍼져나가길^^
“노동절 집회에 참가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반가운 분들과 인사 나누고 이경님과 잠깐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유인물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처음해보는 일이라 먼저 말 걸기가 쑥스러웠지만 다들 잘 받아주셨고 정말 동인련 회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이렇게 자꾸 드러내고 알리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다보면 성소수자와 함께 일하고 어울려 살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일터에서의 차별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함께해요~^ㅁ^”
맨 처음 성소수자의 노동이란 뭘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정해진 어떤 발표회의 제목이 떠오르네요. “우리의 일터에 핑크를 허하라!!” 이제는 그 외침이 바로 일터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질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마음을 담은 진실한 글을 써서 보내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사례로......사무실에 놀러 오시면 커피 한잔 대접하죠^^;
정리 : 이경
함께 쓴 사람들 : Rouge.C, 흰곰, 종호, 예리, 유결, 곱단, 오리, 조은혜
* 웹진 '랑'의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그리고 성소수자 차별없는 세상을 원하신다면 매월 동인련
활동 소식, 회원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성소수자들에게 꼭 필요한 글들을 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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