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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노동자대회 그리고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by 행성인 2009. 12. 31.

11월7일~8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열렸다. 이 날은 역대 최대 규모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지금은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으로 공조가 파기되었지만 당시에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양대 노총이 이명박 정부에 함께 맞서자는 의지가 충만한 때였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자율교섭제와 전임자임금 노사자율 △공무원노조·전교조 탄압과 사측의 단체협약 해지 공세 중단 △철도·발전·가스 등 국가 기간사업 민영화와 공공부문 인력감축 저지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와 함께 전국노동자대회를 찾았다. 성소수자 노동자들도 이명박 정부에 맞서 함께 싸우는 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행사장 입구에 걸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에게 나눠줄 유인물도 8,000부 준비했다. 성소수자 차별없는 일터! 함께 만들어갑시다 라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에는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성소수자 노동권 모임과 성소수자 차별과 인권침해를 예방할 지침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전야제가 열린 7일에는 이주노동자 후원주점에도 함께 하였다. 17명의 회원이 참여하였으며 이주노조 소속 활동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특히 발딛을 틈도 없던 후원주점 자리에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강석주 위원장이 연대발언을 해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본대회가 열렸던 8일 역시 10명의 회원이 참여하였고 유인물 배포는 물론 ‘평등한 일터 만들기’ 캠페인을 펼쳤다.


2009 전국노동자대회 장소에 걸린 현수막





사라져 가는 내 젊음같이 쓸쓸했던 11월. 욜에게서 전화 한통이 왔다.

가브리엘 형의 인권홀씨상 추천 글 부탁과 노동자대회 홍보전단 배포할 사람이 필요하니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친절은 하지만 따뜻한 사람이 아닌 욜이 지금의 내 심정을 알아주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일이 있을 때에만 겨우 연락을 하는 작태(?)에 괘씸해하면서도 나는 밤새워 가브리엘 형의 추천글을 고치고 또 고쳐서 새벽녘쯤 메일을 보내고 전야제 당일날 주섬주섬 준비를 해 훈에게 연락까지 하고 같이 여의도로 향했다. 노동자대회 전야제는 표적수사로 인해 방글라데쉬로 강제출국당한 ‘마숨’하고의 인연이 깊은, 이주노동자 후원주점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여의도 광장은 여느 노동자대회 전야제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나는 불편했던 상황과 사람들을 피해 미친사람처럼 웃어대며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성소수자라는 민감한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자본에 의해 가장 소외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과의 이해가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눠주었고 어느 아주머니 한분에게선 비 맞지말라며 노란색 우비까지 받았다.

읽어보게 된다면 적잖이 놀라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노동자대회 이곳에도 성소수자들이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많은 전단지를 배포하고 잠깐 전야제 행사를 본 후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 후원주점으로 이동해 지금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이주노동자 중에 트랜스젠더 활동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꼭 한번 보고 싶던 그 분을 그 자리에서 만났다. 생각보다는 푸근해보였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고 어려운 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강단이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그의 두 손을 잡고 만나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처럼 웃는 그의 손은 이명박 정부의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이주노동자 정책에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 작았지만 힘있고 단단했다. 이 힘든 시기와 상황을 잘 헤쳐나가리라는 믿음 같은, 간절한 바람을 마음속 깊이 전하며 잡은 두 손을 놓았다.

언제고 노동자 대회는 계속 되겠지만 2009년 노동자 대회의 의미는 지금의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자리매김일까? 시니컬한 그 와중에서 술을 퍼마시면서도 나는 되물어본다.

명확한 것은 탄압이 계속되는 한 투쟁도 계속 된다는 거겠지.

그날 많은 술을 마시며 울었던 것도 같다.

몸을 가눌 수 없게 술이 취해 집에 오면서 행사 때 하늘을 날아가던 불새 한 마리를 영화처럼 떠올리며 나는 오늘 만났던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솔직함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갔을까.. 그럼에도 그에게 남아 있는 모든 것이 진실이고 사랑이겠지...

여성의 몸을 벗은 그에게 언젠가 진실 같은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류이찌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