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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노동권, 이젠 놓치지 않겠다!

by 행성인 2009. 8. 7.

 

이 글을 쓰는 지금, 평택에서는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싸우려면 목숨 내놓고 싸워야 하는 나라, 아무리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 안하는 괴물이 지배하는 나라다. 원래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쌍용차 침탈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추욱~ 가라앉는다.


평택에도 있다.

지난 일요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성소수자 지인 두 명을 만났다. 셋이 나란히 앉아 촛불만 깜박이는 어두운 도장공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살자고 시작한 싸움인데 어째서 정부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가? 문득 게이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내 파트너가 들어가 있었으면 내가 가대위 대표 했을거야. 제일 적극적으로 싸웠을 걸”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 안에도 성소수자들이 있겠지?”

금속노조 조합원인 한 게이 동지가 말을 받는다.

“금속 같은 곳은 내놓고 활동하긴 어렵지만, 서비스 유통 이런 쪽에는 훨씬 더 많을 거야.”

“민주노총에도 있을 걸? 다만 워낙에 인식이 척박하니까, 때로는 당에서 했던 것처럼 민주노총에서 일단 성소수자위원회를 만들고 가능한 사람부터 모아내면 좋겠어.”

“우린 늘 추측할 뿐이잖아. 동성애자가 분명 있을 거다 하고”

 
확률 상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늘 하는 이야기로 우리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작업장에 없으리란 법이 없다. 오히려 작업장에 가장 많은 성소수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노동조합운동과 일상을 살아가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매우 당연한 결론이다. 우리 주변만 해도 대다수가 월급쟁이들 이니까.



성소수자 노동, 이건 도대체 몇 년 걸리는 문제야?

노동, 하면 참 우리랑 거리가 멀다 싶다. 투쟁조끼입고 머리띠 묶고 팔뚝질 하는 노동자 사이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노동운동을 지금껏 조직노동자 중심, 즉, 남성, 대기업, 정규직이 중심이 되어 이끌다 보니, 여성,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이주민, 감염인, 장애인, 청소년 등의 노동은 차이는 좀 있지만 이제 시작하는 셈이니 얼마나 갈 길이 먼가. 대기업 정규직 탓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가시화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처럼 쌓여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HIV/AIDS감염인 노동권을 위한 워크숍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현장에서 AIDS환자를 동료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는 그런 문제를 풀기가 너무 어렵고, 사회에서 이슈 파이팅 해서 현장으로 끌고 들어와 주길 바라는 것이죠.”


이주노동자운동은 꽤 자리를 잡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늘 비슷한 상황은 있다.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에 대한 증오를 가감 없이 분출한다.

“공사장에서 중국놈들이 우리 일자리 다 빼앗아. 난 불법체류자 추방단체에 가입했어. 그 놈들 잡으러 다니는 활동을 한다구.”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노동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건설노동자 사이에 이러한 갈등은 매우 흔하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조직이다. 조합원 당사자의 요구가 아닌 것을 당위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조합원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도 아니요, 더군다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인 사회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지도 않은데, 이 문제를 노조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럼 도대체 성소수자 노동권은 몇 년 걸린다는 거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우리는 수년 동안 노동권을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왔지만, 말 그대로 인권사회단체가 아우를 수 있는 범위에서 차별과 권리 문제인 노동권이었지, 적극적인 성소수자 노동운동, 성소수자 노동자 조직화 문제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혹은 그럴 토양도 없었다. 어쩌면 차별 문제조차 핵심적인 화두로 내세워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다는 반성적인 생각도 해본다.





성소수자는 작업장에서 안 보이잖아요.

 도대체 왜 어려울까? 그걸 푸는 데는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하나씩 가능한 시도를 이어가야 하다는 생각이 떠오를 뿐이다. 얼마 전 비정규직 노동인권 상담 워크숍에서 성소수자 노동을 가지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 비정규직 노조 위원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근데 성소수자는 작업장에서 안 보이잖아요.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이주 노동자도 우리가 보고 알게 되는데 성소수자는 그렇지 않으니까 조직화가 어렵네요.”

맞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안 보이는 게 문제다. 그러다보니 우리 문제를 말할 주체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 문제, 동료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고, 기본적으로는 그럴 필요도 못 느끼거나 혹은 혐오하고 적대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에 커밍아웃하고 함께 싸우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업장은 노동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터이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커밍아웃으로 인해 불거질 고용에 대한 불안,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 보이게 하자!

작업장 단위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를 조직하기는 어려워도, 민주노총에 여성위원회가 있듯이 우리도 성소수자위원회를 구성하여 아쉬운 대로 뜻이 맞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모아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처럼 단위 사업장으로 구성되지 않아도 개인의 조건이나 정체성을 계기로 모일 수 있다.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훨씬 많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성소수자 노동 문제를 사회에서 현장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요구와 과제도 훨씬 구체화 될 것이다.


작년에 내 친구는 2년간 파견직으로 근무하다가 실직을 했다. 그런데 실직보다 더한 고통은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 때문에 채용면접과정에서 겪는 모멸감과 위축이란다. 대다수가 성적 지향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이고, 수당이나 휴가 같은 아주 기본적인 혜택에서 배제되는 차별에도 큰 박탈감을 경험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발언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려면 작업장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와 노동권 현실에 대한 보다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해외 노조들에는 성소수자 분과에 해당하는 단위들이 구성되어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차별 문제와 조직화를 가지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차별 사례를 알리고, 노동자운동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기를 적극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와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기업에게 항의하는 미국 성소수자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

“성적 취향? 바람둥이도 업무능률에 영향을 준다며 승진시키기를 꺼리는 게 우리 사회다. 회사의 ‘인사’란 ‘사람 뽑는 법’과 동시에 ‘자르는 법’을 연구하는 곳임을 모르는가?”

어느 일간지가 대기업 이사와 한 인터뷰 일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확실히 깨달았다. 아, 자본가들이 성적 지향을 혐오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가지고 해고하는 게 문제겠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들은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동성애자들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지언정 그걸 가지고 누군가를 해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가 협력적으로 단결할 사람들과 맞서 싸울 사람들은 명백해지는 것이다.


반쯤 농담을 섞어서 대기업 비정규직인 한 동인련 활동가에게, 그가 출연하는 다큐가 개봉할 무렵에는 직장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해고당하면 함께 싸워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1타2피를 하자는 것인데, 다큐가 개봉하면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하게 되는 것이니 회사에 성적 지향에 알려질 가능성이 커지고, 그 때쯤 당신이 일전에 이야기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조직화하면 필경 곱게 회사를 다니긴 어려울 텐데, 그럼 우린 두 개 다 걸고 싸우자. 사실 회사가 성적지향 때문에 해고하는 건지, 노조를 만들어서 해고하는 건지, 아님 둘 다인지, 어느 쪽이든 다 중요하지 않은가 하고.


그런데 난 정말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게이인 것이 밝혀져서 노동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 하고, 게이인 노동자가 소박한 바램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노동권을 박탈당하는 위험에 처하는 것 하고, 어느 것 하나 경중을 매길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우리는 우선 성소수자로서 당할 수 있는 수많은 노동권 차별 문제를 수집하고, 실제로 성소수자 노동자가 직접 나서건 안 나서건 간에 보다 평등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법으로 만들든 사규를 정하라고 요구를 하든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것은 어느 순간에든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노동 인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성소수자 노동자 또한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소수자 노동자를 가시화하고 조직하는 것과 연결된다. 그리고 노동자 운동 안에서의 단결,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연대, 우리가 노동계급의 일원으로써 적극적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도장 공장 안에서 싸우는 저 쌍용차 노동자와 사무실에 앉아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사무직인 내가 영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혹은 순대촌에서 밤늦도록 알바하는 청소년과 직장을 잃고 고용지원센터를 드나드는 실업자들 속에도 우리 동지들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노동권은 어디에나 있다.



이경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