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건강이 매우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했던 언니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전했었다. “언니! 다 나으면 내가 영화 보여줄게” “무슨 영화?” “<종로의 기적>. 그러니까 얼른 나으삼” “ㅋㅋㅋ 오케이!”
영화보기로 약속한 날 안국역 앞. 어느 샌가 다 나아서 건강해진 언니A와 또 다른 언니 B와 저녁이 시작될 무렵 만났다. 매일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만 보다가 이렇게 쫙 빼입은 모습들을 보니 서로 어색하기도 하다. 삼청동의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 씨네코드 선재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분식을 해치우고 상영관에 들어오니까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슬프다. 괜히 상영관의 위치 탓을 해본다. 그러고 보니, 언니B에게 무슨 영화인지 설명을 안했다. 헉!
두 언니들에게는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다. A는 축하해주었고, B는 내가 얘기하기 전에 이미 눈치를 채고 있다가 커밍아웃할 때 너무 담담하게 받아들여서 나를 놀라게 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커밍아웃 했다는 사실과 무방비상태에서 이 영화를 바로 본다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영화는 네 명의 게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지만, 마치 나의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바로 옆에 앉아있는 이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같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나에겐 4번째 관람하는 시간이었다. 시사회 2번과 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이미 많이 관람했다. 그럼에도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은, 그 전에 캐치하지 못한 감정의 선들이 명확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감염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정부 인사들을 쏘아보는 욜의 눈초리라던가, 갑자기 만난 동창 앞에서 머뭇거리는 병권의 표정이라던가.
이제는 어느 쯤 되면 어떤 웃음코드가 나오는지 미리 예측해서 웃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수씨의 마지막 부분은 항상 눈물을 참기 힘들다. 평소에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것을 싫어해서 참아보려고 눈․코․귀 다 막아보면서 애를 썼지만, 지보이스의 노래가 나옴과 동시에 이내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지난번에 같이 보았던 분도, 영수씨의 밝은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더 슬픈가보다.
그렇게 평범한 게이들의 일상이 화면에 번져나간다.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하품을 하고……. 재미있다. 영화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꺼내고 던진다. 다른 다큐에서 성소수자를 비추는 시선 - 그러니까 인생극장식의 처절하고 음울하고 비관적이거나, 일부러 밝고 튀려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아 편하다. 그리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서 얼굴을 내민 그들의 용기에 나는 매번 감탄한다.
레즈비언인 나는 성소수자운동을 하면서 이제는 쉽게 게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3년 전만 해도 아는 게이가 한명도 없었다. 따라서 이성애자들이 가지고 있는 게이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게 내게도 조금은 있었음을 인정한다. 막연하게 ‘레즈비언 중에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것처럼 뭐 게이들도 그러하겠지’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처음 만나고 이야기했을 때에는 별것 아닌 것에도 연신 ‘컬쳐 쇼크’였다. 마치 장동건은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았는데, 그것을 목격하는 그런 기분과 동일했다. 오래 마주한 지금의 이들은 마치 내 가족과 같다. 그래서 내 가족들에게, 나의 또 다른 가족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싶고 뽐내고 싶은 그런 마음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어 이외에 더 좋은 단어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의미적으로는 그렇다.
혹자는 등장인물들이 너무 평범하지 않다고, 혹은 너무 평범하다고 나무란다. 하지만 그 평범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젊어야 할까? 원숙해야 할까? 아님 트렌드에 맞는 세련된 용모가 필요한 것일까? 직장인이어야 되는 것일까? 평범의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게 있다고 하면 우리 사회에선 게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평범에서 동떨어지는 게 아닐까? 나에게는 <종로의 기적>에 나오는 이들의 모습이 일상적이다. 간혹 레즈비언 친구들을 단체로 만나게 되는 날이면 나는 그들의 무궁무진한 다양함에 놀라기 일쑤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솔직히 일반 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느낄 것인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친절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지 않아도, 대신 나서서 이야기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나를 대변해 준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늦은 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언니 A와 B가 너무도 친근하게 주인공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욜은~” “영수는~” 하면서 말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어서 그런가? 보통 영화를 보고난 뒤 극중 인물을 자유롭게 부르는 것처럼. 그때 언니 B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야! 너네는 왜 다 너처럼 입고 다녀? 티셔츠 쪼가리만 입지 말고 예쁘게 입고 다니라고 해.” 나는 그 말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언니에게 문자를 받았다. 영화 잘 봤다고.
참, 이번 주 토요일에 레즈비언 친구와 함께 한 번 더 보기위해 약속을 잡았다. 5번째 관람이다. 감독님이 나의 이런 노력(?)을 알아주어야 할 터인데…….ㅋㅋㅋ
레이가_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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